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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R
작품등록일 :
2024.01.12 16:12
최근연재일 :
2024.02.0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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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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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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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글자수 :
127,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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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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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막이 오르며

DUMMY

011.


나흘 전, 첫 만남 때. 동혁의 기분은 당연하게도 좋지가 않았다.


쪼옥-


아이스 초코를 아주 맛나게도 빨아 먹고 있는 이 아이가 내 장학금을 책임질 작가라니······.


“하아······.”


자연스럽게 한숨이 터져 나왔다. 자기도 신문을 봐서 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아이가 얼마나 좋은 글을 써냈는지, 하지만······.


‘희곡과 소설은 아예 다른 영역이라고.’


자기가 글 좀 잘 쓴다고 거들먹거리다가 연극판 와서 물먹은 소설가들 줄 세우면 연병장 세 바퀴는 거뜬할 것이다.


하물며 ‘희곡의 이해와 입문’을 이제야 읽고 있는 작가가 좋은 극을 쓴다는 건······. 지나가던 학장이 내가 불쌍하다며 장학금을 주는 것만큼이나 비현실적인 일이 아닌가.


그런 자기 마음을 알 리 없는 꼬맹이는 아이스 초코만 쪽쪽, 빨아먹을 뿐이었다. 참, 맛있게도 먹는다, 어휴······.


어느새, 바닥을 보이는 아이스 초코. 의천은 아쉬운지 슉슉, 빨대로 바람 소리를 몇 번이나 내고서야 물고 있던 빨대를 놓았다. 그리고는 아홉 살짜리 같지 않게 꽤 당당한 모습으로 말했다.


“땀도 식혔겠다, 그럼 연극 얘기를 한 번 해볼까요?”


진지한 모습, 민지와 승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동혁만이 여전히 뚱한 표정으로 소파에 늘어져있었다.


“실례가 될 수도 있겠지만, 세 분이 입시할 때 보신 실기 시험 영상을 받아 봤습니다.”


“······그걸 어떻게 보셨어요?”


승태의 질문에,


“제가 아는 어둠의 경로가 있어서요, 하하!”


의천이 대답했다.


어둠의 경로는 무슨, 김 교수한테 부탁해서 봤겠지. 지가 밀매업자야, 뭐야······. 동혁은 속으로 비식거렸지만 의천이 알리는 만무했다.


“일단 조장인 승태 형은······. 형, 누나라고 불러도 되죠? 다들 말 편하게 하세요. 저도 그게 편하니까.”


순식간에 호칭 정리도 끝내버린 의천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승태 형은 실기 시험 때, 갈매기의 나나 역을 연기하셨던데 굳이 여자인 나나를 선택하신 이유가 뭘까요?”


“고등학교 축제 때, 연극부에서 갈매기를 올렸었는데 나나 역을 내가 맡았었거든···요? 남고여서 어쩔 수 없이 한 거긴 한데 재밌기도 했고 반응도 되게 좋았어서······. 그래서 그냥 나나를 했었네······요? 말 놓기가 좀 어렵네, 하하.”


부끄러운지 승태가 머리를 긁적였다. 의천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민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누나는 왜 현대극을 하신 거예요?”


“아무도 현대극을 안 할 거 같아서 했어. 그래야 기억에 남으니까.”


그런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동혁에게도 왜 리어왕을 했냐는 질문이 왔고 동혁은 ‘내가 리어왕을 잘하니까.’ 라고 짧게 답했다.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이기만 한 의천은 잠시 생각에 빠져있는 듯 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흐음······. 제가 영상을 보고 대충 생각해놓은 줄거리가 있거든요? 들어보시고 어떤지, 말씀해주시겠어요?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같이 수정해가면 되니까 편하게 말하시면 돼요.”


“오, 그래. 그래! 한 번 얘기해봐.”


의천의 얘기에 승태와 민지는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눈을 빛냈지만, 동혁은 여전히 썩은 동태 눈깔이었다. 팔짱까지 낀 폼이 딱 ‘그래, 어디 한 번 해봐라.’라는 식이었다.


“첫 장면은 민지 누나가 승태 형의 자취방에 찾아가는 장면이에요. 몇 번이고 벨을 눌러도 안에서 반응이 없자 민지 누나는 자연스럽게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에 들어가요. 근데 짜잔, 승태 형이 여장을 하고 있네?”


“······.”


“승태 형과 민지 누나는 오래된 연인 사이였고, 승태 형은 여장이 취미인 사람이었죠. 당연히 여자친구인 민지 누나에겐 비밀이었고요. 모든 걸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 오래된 연인에게 말 못할 취미가 있었다면 누나는 어땠을까요?”


“놀랐겠지? 어쩌면 경멸했을 수도······?”


“빙고, 민지 누나는 경멸에 가득 찬 눈으로 말해요. 야, 너······.”


스토리는 계속해서 이어져갔다. 어쩔 땐 표정을, 어쩔 땐 톤을 바꿔가면서 스토리를 읊어대는 의천의 모습에 동혁은 자신도 모르게 팔짱을 스르르, 풀기 시작했다.


“······동혁이 형이 그렇게 둘을 죽이고 끝나요. 어떤 거 같아요?”


잠깐의 정적, 승태는 의천의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들었었는지 멍을 때리다가 고개를 몇 번 흔들고는 입을 열었다.


“······와, 난 너무 좋은데 너희들은?”


순수한 감탄, 민지도 당연하게······.


“저도 완전 좋아요, 스토리 자체도 재밌고 저희 셋 캐릭터도 잘 묻어날 거 같고요.”


동혁만 대답하지 않았다. 셋의 시선이 자연스레 동혁에게로 꽂혔다.


“크흠, 나는 말이지······.”


의천이 구상한 스토리는······ 사실 구미가 당겼다. 셋의 개성을 확실히 녹여낼 수 있고 일단 스토리 자체가 너무 좋았다.


동혁이 의천을 쳐다봤다. 나이답지 않은, 조금은 건방져 보이기까지 하는 표정.


‘꼬맹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건가, 내가 나이만 보고 얕잡아 본건가?’


누군가를 너무 쉽게 판단한 거 아닐까, 자신의 행동을 아주 조금 반성한 동혁이 입을 열었다.


“나도 좋은 거 같아, 그렇게 진행하자. 그, 대본은 언제쯤까지 줄 수 있을까? 시간이 얼마 없어서 최대한 빨리 연습에 들어가야 하거든.”


자기가 반했다는 걸, 보여주기 싫어하는 츤데레 히로인처럼 동혁이 괜한 말로 주제를 돌렸다.


“다음 연극A1 수업이 나흘 뒤죠? 그 때까지 완성해서 김 교수님한테 맡겨놓을게요.”


의천은 ‘나한테 반한 거 다 알고 있어.’ 라는 표정으로 말하고는 ‘이 대본을 멋진 연극으로 만드는 건, 우리 넷에게 달린 일이니까 저도 최선을 다할게요.’ 덧붙였다.


이제 꽤나 믿음직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넷이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넷 다 눈이 반짝거리는 게 앞으로의 일이 꽤나 기대가 되는 듯 해보였다.


이 때 의천이 해서는 안 될, 기대를 무너트리는 말을 던졌다.


“아, 맞다. 혹시 희곡 입문서로 추천해주실 만한 책 있을까요?”


“아······.”


방금 믿음직스럽다고 말한 거 취소다, 취소. 퉤퉤!


***


믿음은 무너졌지만······.


그 날, 조금씩 엿보인 천재성만큼은 진짜였단 걸 보여주듯, 그들이 받아든 원고는 충격적이었다. 스토리가 좋을 건 알았지만 대사부터 지시문, 동선까지······. 무대 상황을 완벽히 파악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수준의 희곡이었다.


동혁의 눈은 지금 이글거렸다. 나흘 전, 썩은 동태 눈깔을 하던 그가 아니었다. 그는 지금 당장 이 배역을 연기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 거릴 정도였다.


그런 그에게 민지가 다가와 말했다.


“오빠, 눈을 왜 그렇게 떠요? 누구 잡아먹기라도 할 거 같아요.”


“김민지, 너 알바 언제 가냐?”


“저 알바 그만 뒀는데요?”


“······갑자기?”


“좋은 극 나올 거 오빠도 알았잖아요, 연습 빡세게 해야죠.”


다들 같은 맘이구나, 승태를 쳐다보니 항상 유순하기만 했던 승태의 눈도 이글거리고 있었다.

학교에 입학한 뒤, 쏟아지는 과제에 연극을 딱 ‘과제’ 정도로 치부했었다. 이렇게 열정이 식어가는 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이 극을 보니 알겠다.


여전히 우리는 연극을 너무 좋아한다.


“학교에 세면도구 좀 갖춰놓아야겠구먼.”


막이 오르기까지 남은 시간은 3주, 셋의 합숙이 시작되었다.


연습실과 과방에서 먹고 자는 3주 동안 셋은 눈에 띄게 남루해져갔다.


- 네들 학교에서 잤냐? 아주 학교가 여관방이지, 엉?


처음엔 셋을 나무랐던 교수들마저······.


- 그래,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좀 씻고 다녀라, 응?


- ······ 아니, 열심히 하지 말고 좀 쉬엄쉬엄해. 너희들 몰골을 봐라, 나 들어오다가 심장 멎을 뻔 했어.


그들의 안위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불편한 잠자리, 인스턴트로 대충 때우는 식사. 그들의 몸은 혹사당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얼굴엔 계속해서 미소가 걸려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일을 가장 좋아하던 때로 돌아가서 하는 듯한 뿌듯함이 그들의 원동력이었다.


- 헤헤, 죄송합니다······. 극이 너무 좋아서 열심히 하게 되네요, 헤헤······.


- 그렇게 좀 웃지 마······. 더 무서워.


물론 남들은 그렇게 안 봤지만.


의천 또한 승옥을 만나지 않는 날에도 연습실을 찾아와 극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했다. 그 결과, 결말 부분에 약간의 변화를 주기로 했는데······.


- 마지막에 어린 애가 나와서 나한테 돌을 던지는 건 어떨까? 그게 더 울림이 있을 거 같은데······. 의천아, 넌 어때?


- 저도 괜찮을 거 같아요. 근데 조원 아닌 사람이 출연해도 되는 거예요?


- 뭐, 한 장면 정도는 조원 아닌 사람이 출연해도 괜찮긴 한데······. 극에 올릴 만한 어린 애가 없어서 문제지.


- 아! 김민지, 너 남동생 있다 하지 않았냐?


- 제 동생 다음 주에 입대하는 아주 건장한 청년이에요. 신검 1급.


- 아······.


얼마 남지 않은 시간, 극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어린 아이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 아니지! 우리에겐 극을 그 누구보다 완벽하게 하는 꼬맹이가 있잖아!


셋의 시선이 자연스레 의천에게로 향했다. 동혁이 무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의천아, 아무리 봐도 네가 해야겠지?


- ······네?


- 너 방금 네라고 했어. 무르기 없다.


막무가내로 의천의 특별출연까지 확정 되었다.


3주가 그렇게 지나갔다. 짧다면 짧은 시간. 그래도 후회 같은 건 없게끔 최선을 다했다.

오랜만에 목욕재계를 끝마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배역, 그 자체로 변신했다.


여장을 하고 있는 승태,


평범한 여대생, 그 자체인 민지와······,


백발의 수도승이 된 동혁까지.


거지꼴에서 멋들어진 배우가 된 셋을 보며 의천이 엄지를 척, 하고 올렸다.


“와, 배우는 배우인가 봐요. 완전 멋져요!”


“왜? 우리 연습실에서 살 때도 꽤 멋지지 않았냐?”


“눈빛만요.” 의천이 그렇게 말하곤 웃었다. 동혁 또한 따라 웃었다.


의천은 몸집은 작지만 자신보다 훨씬 큰 꼬맹이였다. 의천을 만나지 못했다면 가슴 속의 불씨를 되살릴 수 없었을 거다.


의천을 만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난 장학금을 받기 위해 연극하는 게 아니라고.


감사를 전할 타이밍은 많았지만 의천 앞에 서면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괜히 우스꽝스러운 얘기로 화제를 돌리기만 했다.


‘연극이 끝나면 꼭 말해야지. 작가님, 좋은 극을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라고.’


“연극 A1의 마지막 조입니다.”


막 너머로 자신들을 소개하는 멘트가 들렸다.


1장의 1막, 민지와 승태의 만남. 둘의 어깨를 두드려준 동혁이 무대 위를 쳐다봤다.


막이 오르고 강렬한 빛이 무대를 내리쬐었다.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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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연극계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 +1 24.01.22 451 19 13쪽
» 막이 오르며 +1 24.01.20 446 20 11쪽
10 이거 X되는데? +1 24.01.19 430 21 12쪽
9 그건 나도 잘…… +2 24.01.18 437 20 12쪽
8 연극과 김 교수 +1 24.01.17 434 21 13쪽
7 여름이었다 +1 24.01.16 425 22 12쪽
6 새로운 시작 +2 24.01.15 444 17 12쪽
5 상실에 관한 연구 +2 24.01.14 454 20 14쪽
4 등단 +2 24.01.13 473 21 11쪽
3 천재 등장 +3 24.01.12 471 20 12쪽
2 대문호 되기 프로젝트 +4 24.01.12 528 1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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