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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인요거트의 글방

초능력자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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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플레인Y
작품등록일 :
2020.05.03 20:09
최근연재일 :
2022.03.04 19:00
연재수 :
197 회
조회수 :
6,477
추천수 :
205
글자수 :
1,004,484

작성
22.03.01 08:00
조회
18
추천
1
글자
11쪽

193화 - 파디샤(7)

DUMMY

현애의 눈앞에 보이는 남자는 자신이 언제 얼었냐는 듯, 멀쩡히 서 있다. 젖은 감촉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거기에다가 이 주변의 휘저어진 듯한 느낌은 덤이다.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 같기도 하고, 빠르게 가는 것 같기도 하다. 눈앞에 보이는 아케이드 자체도 이리저리 휘어져 버리는 것 같다. 그 전에도 여러 번 이것과 비슷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지만, 이건 훨씬 더 강하다!


“뭐라도 유의미한 저항을 해 보려고 했지만 그것도 할 수가 없게 되겠군. 보다시피 내게서 가까운 시간과 공간을 뒤틀어 버리는 건 일도 아니라서 말이야.”


“그래?”


발레리오가 제지함에도 현애는 다시 앞으로 나와서 말한다.


“그래서 아까 그렇게 상자를 잡으려고 그렇게 허둥대던 거였어? 신의 손동작과 발동작이라는 건 그런 거였나 봐? 아, 신은 아니지? 신을 참칭하는 자일 뿐이고.”


“헛소리를 지껄이거나 할 시간은 있나 보군. 그럴 시간에 네 몸을 피했으면 최소한 시간은 벌 수 있었을 텐데.”


어느새인가, 남자는 다시 공격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번에는 절대 실패하지 않겠다는 듯 아까보다 더 강한 살의를 내비친다. 평범한 사람은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바로 얼어 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절대 피할 수 없을 거다, 이번에는. 운이 그만큼 따라 주었으면 감사하게 여겨야 할 텐데 말이지!”


남자의 말대로다. 조금 더 주위를 잘 살폈다면 남자가 일격을 노릴 틈을 조금은 메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잠깐의 틈 동안 이렇게, 남자는 또다시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 마치 이 세상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다. 비록 그의 능력은 눈 깜짝할 새, 아주 제한된 공간에만 영향을 미쳤다고는 하나, 그 여파는 의외로, 꽤나 진하게 남은 듯하다. 시간과 공간이 휘저어졌다는 남자의 말, 그냥 허풍 같아 보였지만 그 실체를 보니 소름마저 돋기 시작한다. 그래 봤자, 이것을 인지하게 되는 것도 한순간이겠지만...


바로 그때.


“여기다, 탈라스!”


누군가의 목소리가, 분수대 쪽으로부터 들린다.


“태양석을 갖고 싶나? 그럼 이쪽으로 와라!”


태양석이라는 말이 들리자 남자는 급히 목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하지만 목소리의 주인공은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도대체 누구이기에 자신을 탈라스라고 하는지, 남자는 금방 알 것 같다. 탈라스 곤이라는 이름은 유적 발굴업자들에게 알려진 이름이고, 따라서 목소리의 주인공은 유적 발굴업자 중 하나, 테르미니 퍼스트의 누군가일 것이다.


“헛소리하는 녀석이 누구냐. 당장 나오지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나온다고 해도 죽이겠지. 안 그런가?”


그 누군지 모를 목소리는 자꾸 남자의 성질을 돋운다. 남자가 현애와 발레리오, 비토리오를 죽이겠다는 생각을 잠시 잊게 할 정도로.


“그래, 그런데 나를 죽이면 태양석이 어디 있는지 모를 텐데, 괜찮겠나?”


“헛소리 작작 해라...”


“네 녀석이 진짜로 원하는 건 그게 아닌가? 여기 있는 모두의 목숨보다도 더 원하는 게 그거잖나.”


보인다. 남자의 눈에, 아케이드 한구석에 있는 남자의 실루엣이. 그림자가 져 있어서 잘은 보이지 않지만, 확실히 남자가 보고 있는 실루엣은 미켈일 것이다. 키와 머리 모양이 딱 그 정도다. 목소리도 그렇고...


“다시 한번 지껄여 봐라.”


“죽여 보시지. 태양석을 얻기 싫으면.”


“하, 하, 미켈 파울리, 그간 잘 버텨 왔고, 내게서 잘 빠져나왔어. 자신의 결말을 모르는 미꾸라지처럼 말이지.”


어느새, 마치 몇 걸음을 그냥 건너뛴 것처럼, 남자는 한구석에 있는 미켈의 바로 앞까지 와 있다. 여전히 자신을 피하지 않고 구석에 서 있는 미켈이 가소로웠는지, 남자는 헛웃음을 연신 뱉어내며 입을 연다.


“그 노력은 가상하지만, 판단은 똑바로 했어야지. 거기에 대한 징벌을 내리겠다.”


남자의 말이 끝나고, 다음 순간...


남자는 앞으로 주먹을 내지르는 자세를 하고 있다. 몸을 뒤로 내뺀다든가, 주먹으로 미켈을 정확히 노린다든가 하는 동작도 없었는데, 마치 그 과정이 생략된 것 같다. 마치 영화를 찍고 나서 과정에 해당하는 필름을 통째로 잘라 버린 것 같다. 미켈이 남자의 주의를 끌기 직전, 현애와 발레리오, 비토리오의 눈앞에서 느껴졌던 이상한 기류, 시간과 공간이 휘저어진 능력의 편린이, 미켈을 가격한 주변에서도 보인다.


그리고 또 몇 장면이 삭제된 듯한, 다음 순간.


사방으로 튀는 파편이, 마치 스톱 모션을 틀어 놓은 것처럼 멈춰져 보인다. 주먹을 내지른 남자의 얼굴에서는 망설임 같은 건 전혀 비치지 않는다. 그의 눈에 비치는 것은 감히 자신에게 대항하다가 한순간에 일격을 당한 미켈에 대한 비웃음, 그리고 마치 벌레를 짓밟고 난 다음을 보는 듯한 아무 감흥 없음, 그것들이다.


곧바로 다음 순간, 사람들이 인지하지도 못한 순간에, 남자는 시간과 공간을 날려 버리고서, 다시 현애와 발레리오, 비토리오를 마주 보고 서 있다.


“감사해라.”


‘진작 처리할 걸’이라고 말하는 듯한 남자의 노려보는 눈과 그동안 사용한 남자의 능력의 여파로 조금 흐려 보이고 물컹한 느낌까지 드는 것 같은 눈앞의 광경이 한데 어우러지니, 마치 시간이 1/10은 느리게 흐르는 듯하다.


“파울리라는 녀석은 자기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도 모르고 겁도 없이 내게 덤볐다가 결국 저렇게 비명도 못 지르고, 변변한 저항 같은 것도 못 하고 내게 덤벼들던 수많은 겁 없는 녀석들과 같은 꼴이 되어 버렸지.”


“허, 그러셔?”


“살 기회를 준다는 게 아니야. 이왕이면 더욱 기쁘게, 그리고 준비된 제물이 되게 해 주려는 것이다. 알겠나?”


남자의 주위에서부터 호텔 지하 아케이드 공간 전체로, 그 기분 나쁜 물컹거림이 퍼져 나간다. 마치 이 호텔 안의 시공간 전체를 휘저어 버릴 수 있다는 듯.


“시간을 너무 끌었다.”


남자가 그렇게 운을 떼려는데...


“여기라니까?”


미켈의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그것도, 아까 남자가 미켈의 몸통 한가운데를 꿰뚫어서 처리했을, 바로 그곳에서 말이다. 이상한 일이다. 분명히 처리했을 미켈이 살아 있다는 것은. 설마 남자가 주위의 시간을 왜곡했을 때 미켈이 덩달아 살아서 돌아온 것인가? 그건 아니다. 남자는 이 능력을 사용할 때, 바꿀 것과 바꾸지 않을 것, 왜곡할 공간과 왜곡하지 않을 공간 정도는 지정해서 사용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이런 데에서 실수하거나 한 적은 없었다. 무엇보다도, 신이 될 그에게 있어서 그런 정도의 오류를 범한다면 신이라고 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지금의 이 상황, 도대체 어떨게 된 일인가? 남자가 그 답을 찾는 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는다. 뒤를 돌아보니, 그 자리에 쓰러져 있어야 할 배가 뻥 뚫린 미켈은 온데간데없고, 이상할 정도로 끈적거리는 젤리 모양의 무언가가 그 자리에 넓게 퍼지고 있다.


“이봐. 설마 찾지도 못하는 건 아니겠지? 나는 네가 찾지 못하는 근처에 있다. 어딘지는 네가 알아서 찾으라고!”


“파울리, 되지도 않는 수작으로 나를 농락할 생각은 집어치워라. 네가 나와 맞서겠다고 생각한 그 순간, 네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건가?”


“네 운명이 결정된 거겠지.”


분명 근처에서 나기는 하는데, 어디서 나는지도 갈피가 잡히지 않는 미켈의 목소리는 남자의 속을 더욱 긁어 놓는다. 마치 사방에 스피커를 설치해 놓고 동시에 트는 것과도 비슷한 기분이다.


“훗, 운명이 결정되어 있다는 말은 아무나 하는 말이 아니야.”


그런 상황에서도, 남자는 평정심을 되찾고 곧바로 입을 연다. 그의 눈은 확신으로 가득 차 있다. 보인다. 분수대를 등지고 반대편에 미켈이 서 있는 모습이. 거기에다가, 은근히 남자를 보고 ‘이리 오라’는 듯 손가락으로 삿대질까지 하는, 다분히 약을 올리는 듯한 자세는 덤이다.


“네가 그런 행동을 한다고 해서 네 운명이 변할 것 같나? 처음은 어떻게 피했는지 모르겠으나, 두 번이나 요행을 허용한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또다시 시간이 통째로 없어진 듯한 기분이 들고, 어느새 남자는 눈앞에 있는 분수대를 뛰어넘어, 자신의 눈앞에 있는 미켈을 향해 주먹을 깊게 내지르고 있다. 다시 한번, 미켈의 복부로부터 파편 같은 것들이 사방으로 튄다.


하지만, 남자의 표정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 사방으로 튄 것들을 보니, 피나 육편, 뼛조각 같은 게 아니다.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또다시 끈적끈적한 액체 같은 것들이 이리저리 튀고 있다. 거기에다가 형체도 다시 흐물흐물해져 가더니, 이윽고는 사람의 형체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의 끈적끈적한 무언가로 변해 버렸다.


“속였구나... 또... 잘도, 나를!”


남자가 분함에 가득 찬 한 마디를 내뱉을 때, 남자의 머릿속을 문득 스치고 지나가는 게 있다. 시간을 돌려 보자. 차근차근, 마치 책장에서 책을 꺼내듯. 그렇게 이 아케이드 안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하나하나 보고 나니...


“하지만 그런 얕은수를 써 봤자 내 손바닥 안이다. 어떤 수를 쓰든, 결국 벗어날 수 없다!”


보인다. 미켈의 진짜 본체가 숨어 있는 위치가. 그곳은 다름 아닌 남자의 발 바로 밑에 있는 그림자. 그런데 그림자 안에는 어떻게 숨어 있나... 그것도 바로 답이 나온다. 2년 전의 기시감. 그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호오, 그 밑에 있었군. 내게 굴욕을 안겨 줬던 그 녀석도. 역시 운명은 피할 수 없지.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해도 결국에는 다 만나게 되어 있어.”


다시 기회를 잡은 남자에게, 방해꾼을 처단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다. 마음만 먹으면 한 주먹에 처리할 수도 있다. 인지하지도 못한 사이에 말이다.


그런데...


“저거... 저기 있었어?”


비토리오의 목소리가 들린다. 순간 남자는 그 말에 뒤를 돌아본다. 비토리오가 가리킨 방향은 직원용 통로 방향. 그쪽에서 희미하게 붉은빛이 발산되는 것같이 보인다.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먼 거리에서도 붉은빛이 보일 정도면... 남자의 추측은 이윽고 확신으로 바뀐다. 저곳에 태양석이 있다. 확실하다. 물론 여기에 훼방꾼이 많기는 하지만, 태양석만 손에 넣으면 이 훼방꾼들쯤은 한 손에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한 줌도 안 되는 녀석들에게 매여 있을 이유는 없다. 자칫하면 태양석을 빼앗기고 만다. 그간 내가 해 온 일들이 전부 허사가 되게 놔둘 수는 없지...”


남자는 그 길로 그림자 안에 들어 있던 미켈을 놔두고 직원용 통로 쪽으로 몸을 돌린다.


“절대 빼앗기면 안 된다. 태양석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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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 200화 - 여행의 끝 22.03.04 45 1 12쪽
196 199화 - 자칭 신 22.03.04 20 1 11쪽
195 198화 - 태양석의 주인(2) 22.03.03 19 1 11쪽
194 197화 - 태양석의 주인(1) 22.03.03 22 1 11쪽
193 196화 - 파디샤(10) 22.03.02 13 1 11쪽
192 195화 - 파디샤(9) 22.03.02 23 1 11쪽
191 194화 - 파디샤(8) 22.03.01 18 1 11쪽
» 193화 - 파디샤(7) 22.03.01 19 1 11쪽
189 192화 - 파디샤(6) 22.02.28 15 1 11쪽
188 191화 - 파디샤(5) 22.02.28 13 1 11쪽
187 190화 - 파디샤(4) 22.02.25 14 1 11쪽
186 189화 - 파디샤(3) 22.02.23 16 1 11쪽
185 188화 - 파디샤(2) 22.02.18 17 1 11쪽
184 187화 - 파디샤(1) 22.02.16 24 1 11쪽
183 186화 - 산 넘어 산(2) 22.02.11 24 1 11쪽
182 185화 - 산 넘어 산(1) 22.02.09 21 1 11쪽
181 184화 - 암전 22.02.04 23 1 11쪽
180 183화 - 라자와 도르보(6) 22.02.02 18 1 11쪽
179 182화 - 라자와 도르보(5) 22.01.28 15 1 11쪽
178 181화 - 라자와 도르보(4) 22.01.26 29 1 11쪽
177 180화 - 라자와 도르보(3) 22.01.21 20 1 11쪽
176 179화 - 라자와 도르보(2) 22.01.19 30 1 11쪽
175 178화 - 라자와 도르보(1) 22.01.14 20 1 11쪽
174 177화 - 운의 흐름은... 22.01.12 1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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