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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오재 님의 서재입니다.

죽지 않는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SF, 현대판타지

수오재
작품등록일 :
2022.12.15 16:30
최근연재일 :
2024.03.24 11:00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279
추천수 :
12
글자수 :
60,779

작성
23.03.07 12:10
조회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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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제2화 데뷔와 반열

DUMMY

어둠이 얼마나 흘러 내렸을까...


무슨 일인지 진섭은 밤새도록 식은땀을 흘리며 너무나 많은 꿈을 꾸며


어둠 속에서 요동쳤다.


아침이 돼서도 쉽게 잠에서 깨지 못해 뒤척이다 점심쯤 돼서 일어났다.


그는 깨어나자마자 허겁지겁 배낭에서 항상 가지고 다니던 볼펜과 스프링 노트를 꺼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꿈속에서 본 것들에 대해 미친 듯이 쓰기 시작했다.


저녁이 되자 볼펜 잉크가 모두 말랐고 두툼한 노트 한 권이 다 채워졌다.


촛불을 켜고 노트 첫 장에 큼지막하게 [예언]이란 제목을 붙였다.


꿈속에서 본 이야기들을 엮는데 불과 반나절밖에 걸리지 않았다.


꽤 재밌는 소설이라고 생각한 순간 그제야 속이 쓰리다는 것을 알았다.


노인을 찾았다.


따끈한 숭늉이라도 얻어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어르신’을 외쳤다.


‘그러고 보니 아침부터 아무 인기척이 없었는데...’


텃밭에서 정갈하게 서 있는 약초들이 지금 보니 참 거만하게 느껴졌다.


마치 질긴 생명력으로 하늘에 건방을 떨려는 듯이.


아무리 노인을 불러도 대답이 없자 노인의 방으로 가 보았다.


문을 열자,


노인은 웃는 표정으로 자고 있었고,


옆에는 수면제 빈 통 뚜껑이 열려 있었다.


진섭이 가까이 다가가서 노인을 보자마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노인은 백발의 긴 수염을 한 채,


마치 150살이 넘은 미이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기(奇)노인은 하루아침에 100년도 더 넘게 늙어 있었다.


‘어디 시간 여행을 100년 동안 갔다 오기라도 했단 말인가.’


진섭은 알 수 없는 영문에 당황하며 황급히 밖으로 나왔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도망가야 해. 잘못하다간...’


어제까지만해도 하루라도 빨리 세상과 작별하고 싶어했으나,


뭔가 만들어냈는다는 생각에 생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발동했다.


진섭은 노트 한 권과 신비의 약초들을 한 움큼씩 뽑아,


빈 배낭을 가득 채운 뒤 산에서 내려왔다.


노인의 시신은 풍장(風葬)이 더 어울릴 거 같아 묻지 않고 썩기 좋은 곳에 방치(?)해 두었다.


그러다 문득,


기(奇) 노인의 주검을 보고 계속 쉬지 않고,


‘최초의 유령은 누구였을까...’


‘최초의 유령은 누구였을까...’


‘최초의 유령은 누구였을까...’


라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집에 도착한 시간은 밤 12시였다.


집에 들어서자 늘 그렇듯 한 움큼의 어둠이 그를 맞았다.


전등 스위치를 켜봤자 소용없었지만, 습관이란 놈이 다시 한 번 무섭다고 생각했다.


들어오지 않는 전깃불에 문명의 혜택을 잊은 지 오래였다.


어둠 속에서 차압 딱지를 본 진섭은 산더미처럼 쌓인 미납 영수증과 로또복권 용지들을 한 장씩 꺼내 말아서,


널려있는 빈 소주병마다 꼽아서 태우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트리에 장식한 전등 같은 느낌을 주었다.


아니, 마치 생일 케이크에 꽂힌 촛불처럼 느껴졌다.


책장에는, 산부인과에서 아기들과 찍은 간호사 복장의 아내의 사진이 있었다.


그 옆에는 한때 단란했던 진섭의 가족사진이 보였다.


야구장 매점에서 5살 난 아들을 중심으로 오징어를 입에 물고 셋이서 한 몸이 되어 활짝 웃는.


다 함께 웃고 있는 모습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진섭은 구석에 먼지 덮여 엎어져 있던 사진을 들었다.


남들보다 더 빨리 늙어버리는 병에 걸린 아들.


어둠 속이었지만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아내의 사진이 보였다.



* * *


다음 날 병원에 도착한 그는 엘리베이터에서 몇 층을 누를지 망설였다.


어차피 몇 층을 누르든 진섭에게 달라질 불행은 없었다.


그는 아내에게 먼저 가기로 했다.


아내의 방에 들어서자 또 한 번의 의문이 머리를 스쳤다.


진섭은 아직도 믿을 수가 없었다.


구습 박사가 그랬다.


아내는 뇌졸중에 걸린 후 ‘감정․모정의 뇌’라고 불리는 변연계가 손상됐다고.


그곳은 사랑이나 공포 같은 감정을 주관하는 곳이라,


그렇게 아들 병간호에 극진했던 아내가 마치 차가운 기계처럼 변한 것이라고 했다.


진섭은 큰 배낭에서 기(奇)노인이 심었다던 약초를 꺼내서 아내의 침대 옆에 놓았다.


아내는 말이 없었다.


이제 아내는 딴 사람이 된 듯했다.


누가 와도, 누군가 자신에게 음식을 줘도 아내는 신경쓰지 않았다.


진섭이 세상에 불만을 토로할 때도 항상 옆에서 들어주었고, 밝게 웃어보이던 아내였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움직이는 시체와 사는 것 같다고 느꼈다.


TV뉴스에서는 줄기세포, 조혈모세포, 제대혈, 인간배아복제 등의 단어와 함께 획기적인 실험성공이란 단어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흥분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분자생물학자라는 에이작 박사의 인터뷰가 들렸다.


[이제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만능 신약이 개발되는 건 시간문젭니다. 인간은 모든 암을 조기 진단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암을 정복할 수 있는 날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TV를 보던 진섭은 냉소적인 목소리로 말하며 TV를 껐다.


“무슨 햄스터 방귀 뀌는 소리야. 저런 말은 10년 전에도 들었다고”


그는 세상의 고집을 똘똘 뭉쳐놓은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러다가도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정말 그 기(奇)노인이 170살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글과 약초가 넣은 배낭을 생각했다.



***


[데뷔와 반열]


1년 후


진섭의 추리소설 [예언]시리즈는 1년 동안 초스피드로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의 글은 영화와 드라마로도 제작이 됐고.


전 세계에 번역이 되어 강연료만으로도 한달에 억대의 수입을 벌었다.


진섭이 책을 한 권씩 쓸 때마다 신비의 약초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지만,


몸은 오히려 1년씩 젊어지는 듯했다.


놀라운 책을 써내는 비결이 뭐냐는 사람들에 대해,


“어두웠던 과거에 대한 보상이죠.”


라고 농담을 던졌다.


그의 고급빌라 창고 깊은 곳에 ‘살아 숨 쉬는’ 신비의 약초들이 환각성분의 풀이라는 사실이 그는 고마울 뿐이었다.


진섭의 특별 부탁으로 약초를 분석한 구습박사는 그 약초가 환각을 일으키는 도파민 성분이 강하게 들어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구습은 그 약초에 대해 별로 궁금해하지 않았다.


다만 그 물질을 과도하게 사용할 경우 진섭을 파멸시킬지도 모른다는 말만 던졌다.


그는 기자회견과 강연회를 통해,


[세상에 적응하는 승자의 방법]을 익히기 시작했고,


이제는 냉소주의를 신발 안에 가둬두기로 했다.


다만 일주일 전 강연회에서 한, 말실수를 빼면 그럭저럭 연기를 잘 해온 편이었다.


[예언]시리즈에 나온 주인공이 먹었다는 신비의 약초와 170세 기(奇)노인이 실제로 지리산에 존재한다는 진섭의 인터뷰 기사가 나가자,


사람들은 미친 듯이 지리산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뉴스에,


그 기(奇) 노인으로 추정되는 자연 부패 된 뼈가,


약초밭과 함께 발견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뉴스가 연일 보도되자,


일부 개인 방송 진행자들이 추측성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


기(奇) 노인이 살해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진섭은 문득 수면제통을 생각했다.


뚜껑이 열린 채로 놓아두고 온 걸 후회했다.


그의 걱정대로,


수사기관은 수면제 통에서 나온 지문과 대조해야 하니,


자진 출두하길 바란다는 명령서를 보냈다.


진섭은 느닷없이 자신의 몸속에서,


지난날 자신을 괴롭혔던‘도망 바이러스’가 생각났다.


그는 재빨리 창고를 청소했고,


현재 쓰고 있는 또다른 시리즈 책의 마무리를 쓰기 시작했다.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따져보았다.


절박감 속에서 달리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생각나지 않았다.


만약 자신이 붙잡혀가게 되면 조로(早老)증에 걸린 아들과 뇌졸중에 걸린 아내의 치료를 놓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진섭이 썼던 책 내용이 현실에서 벌어졌다.


미국 대통령이 뇌졸중으로 연설도중 쓰러진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미국 정부는 줄기세포연구를 위해 세계적 권위의 뇌 전문가들과 과학자들을 불러들였다.


연구팀장은 인간 배아복제에 성공한 분자생물학자 ‘에이작’이 맡았다.


그리고 미국 상원 의원에서 만장일치로 나노기술과 인간 대체 인공지능 로봇기술 투자에 무제한적인 지원 법안을 통과시켰고 책임자는 과학자 ‘노이즈’박사가 맡았다.


일이 이렇게 진행이 되자, 진섭이 쓴 [예언]에 나오는 미래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진섭의 책이 세계에서 더 불티나게 팔렸다.


진섭이 정말 예언의 힘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는 소문이 돌면서 언론기관에서도 그에게 다양한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


구습 박사의 의과대학


진섭은 구습이 출강하는 대학 주차장에서 초조하게 구습을 기다렸다.


빨리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치료약이 없는 조로(早老)증의 아들


아직 뇌졸중에서 회복되지 않은 아내를 두고


홀로 감옥에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두워지자 강연을 마치고 나오는 구습의 모습이 보이고.


진섭은 구습의 뒤로 잽싸게 다가갔다.


구습은 땀범벅이가 된 진섭을 보고 당황하며 차 문을 열었다.


진섭은 잽싸게 구습의 차 조수석에 앉았다.


“구 박사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구습은 진섭을 확인하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자네 얘긴 들었네. 일단 여길 빠져나가세.”


구습은 말없이 운전하다 한적한 곳에 주차하더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 진섭에게 귀엣말로 거절 못할 제안을 했다.


“가까이 와보게······.”



***


얼마나 흘렀을까.


진섭은 구습의 얘기를 다 듣고 놀란 표정으로 힘없이 말했다.


“가족 모두 말입니까?”

“빠를수록 좋네. 아이를 생각해보게. 조만간 자네보다 더 빨리 늙기 전에”

“오늘 밤 떠날 수 있게 조치를 취하겠네. 자네 가족을 위해”

“고맙습니다. 박사님. 왜 이렇게 항상 절 도와주시는지······.”

“우리 집안 평생 소원이, 의사 집안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만드는 거라네.”


그러나 구습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구습은 진섭과 함께 평면의 어둠속으로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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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화 데뷔와 반열 23.03.07 28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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