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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달로스의 미궁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nZNear
작품등록일 :
2021.05.14 19:13
최근연재일 :
2021.05.22 11:26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255
추천수 :
23
글자수 :
56,778

작성
21.05.16 12:36
조회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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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3쪽

1. 미로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4)

DUMMY

상당히 목이 말랐던 모양인지,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는 내가 건넨 물을 꿀꺽 꿀꺽 소리를 내며 마셨다. 500ml짜리 물 한 병이 눈 깜짝할 새에 비워진다.


"후아-"


물병에서 입을 뗀 그녀가 문득 내 시선을 알아차리고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 죄송해요. 혼자 다 마셔버려서..."


나는 대답 대신 그녀가 내민 물병을 받아 가방에 넣었다. 밖에서야 쓰레기에 불과하지만 여기서는 이마저도 귀한 물건이다. 분명 어디엔가 쓰일 곳이 있겠지.


문제는,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였다.


동행이 생긴다는 것은 의외로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은 일이다.


소비되는 자원의 양도 두 배로 늘어날 뿐더러, 의사결정에 있어 걸리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문제가 생겼을 경우 그걸 해결하기 위한 방법 자체가 한정되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이런 곳에서는 더더욱 그런 문제들이 두드러질 테고.


한가지 다행인 점은, 그녀가 어느정도 싸울 줄 안다는 것 정도일까.


내가 잠시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곁에서 잠자코 있던 그녀가 슬며시 내 옷깃을 잡아 당겼다.


"저, 저기"


내가 고개를 돌리자 그녀가 잠시 머뭇거린다. 어쩐지 귀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고맙습니다"


그녀가 느닷없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아까 구해주시지 않았더라면 저는 분명 죽었을 거예요"


그녀의 까만 눈동자 속에 내 모습이 뚜렷이 담긴다. 옆으로 땋은 머리가 온통 헝클어져 있었지만 인상은 반듯했다. 좋게 말하면 모난 곳 없이 예뻤고, 나쁘게 말하면 그다지 특징 있는 얼굴은 아니었다.


"전 김승아라고 해요"


그녀가 빙긋 웃었다.


"...나시욱 입니다"

"아, 잠시만요"


별안간 그녀가 예고도 없이 앞으로 다가와 선다. 내가 경계하며 슬쩍 물러섰지만 그녀의 손이 끈질기게 쫒아와 내 이마에 닿는다.


"휴, 다행이다. 다치신 줄 알았어요"


그리고는 소매 끝으로 내 이마를 몇 번 슥슥 문지르더니 금방 뒤로 물러선다. 그녀의 하얀 소매가 푸른색으로 얼룩덜룩해져 있었다.


"별 것 아닙니다"


아직도 근처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한가하게 담소나 나누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일단 움직이죠"


몇 걸음 걷는데 따라오는 기척이 없길래 고개를 돌리자, 바닥에 떨어져 있던 손도끼를 집어 든 그녀와 눈이 딱 마주친다.


"이, 이거 제 거 아니에요! 아까 주워 온 거예요..."


그녀는 묻지도 않은 말에 저 혼자 대답을 하고는 이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검게 물든 그녀의 운동화 끝이 바닥을 톡, 톡 두드렸다.


나는 길을 걸으며 그녀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여기 오기 전에는 무엇을 했는지,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지병은 없는지 등등.


별다른 의미는 없었다.


어쨌거나 앞으로 함께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필요했고, 그 신뢰를 쌓기 위해서 상대방에 대한 정보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였다.


물론 그 전에 앞서 내 이야기를 먼저 해주는 것이 예의였지만, 스스로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나로서는 그녀에게 해 줄 이야기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녀는 순순히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자신이 무명의 배우였다는 것. 아르바이트를 하고 돌아가는 길에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보니 이곳에 와 있었다는 것. 한참을 숨어 다니다가 괴물에게 발각되어 죽을 위기에 처해졌을 때 나에게 구해졌다는 것.


단순 명료하고 간결한 소개였다.


그 말마따나 정말 도망만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던 건지, 그녀는 상태창을 호출하는 방법 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이것 저것을 눌러보는 저 표정이 만약 연기라면, 그녀와 함께 일했던 감독들은 전부 등신일 것이 틀림 없었다.


그녀는 대체로 내게 호의적이었지만, 고유 능력을 묻는 내 질문에는 표정이 굳어졌다.


머뭇거리는 그녀의 입술이 살짝 떨린다.


"그··· 죄송해요. 지금은··· "


목소리 끝에 망설임이 묻어 있었다.


대체 무슨 능력이기에 저러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분명 저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때문에 나도 굳이 더 캐묻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뒤쳐지지 않도록 최대한 속도를 맞춰 걸었다.


웬만하면 괴물을 몇 마리 더 죽여서 점수를 조달하고 싶었지만, 그녀로 인해 어떤 변수가 생길지 알 수 없었기에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다.


"상태창"


큐브에서 빛이 쏟아져 나온다. 그토록 지겹게 보았던 상태창의 모습이 어쩐지 굉장히 오랜만인 것 처럼 느껴졌다.


상점 바로 가기 버튼을 누르자 곧바로 화면의 구성이 바뀌며 좌측 상단으로 몇가지의 메뉴가 생겨난다.


지잉!


[생필품][잡화][무기][방어구][경매장]


나는 우선 생필품 탭을 눌러 물을 검색했다. 다행히 1리터짜리에 몇 개의 재고가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중 세 개를 구입하자 가지고 있던 점수에서 180점이 훅 줄어 드는게 눈에 보였다.


이제 와서 느끼는 거지만, 이 곳의 생필품 가격은 살인적인 수준이었다.

저렴한 권총 한 자루가 100점. 괜찮은 수준의 소총이 300점 정도인데 반해, 간이식은 100점, 물은 리터 당 60점이라는 인지부조화가 일어날 수준의 가격은 자원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기에 충분했다.


다행히, 사마귀를 죽이고 얻은 점수가 상당했기 때문에 아직은 어느 정도 여유가 남아 있었다.


나는 물 하나를 그녀에게 던져 준 뒤 내 몫의 물을 따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아껴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겠지만 그건 뭘 모르는 소리다. 이런 땡볕 아래서 아껴 먹다가 탈수 증상이라도 오는 순간 곧바로 황천길 프리패스다.


차라리 그럴 바에 수분 보충이나 제대로 하고 괴물 한 마리라도 더 때려 잡아 점수를 올리는게 백 배는 나았다.


탈수증에 걸려 손 하나 까딱 할 수 없는 상황에, 커다란 지네 대가리가 입맛을 다시며 다가오는 걸 눈 앞에서 본 경험이 있다면, 더더욱 그런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늘조차 찾기 힘든 미로 속에서는 내리쬐는 햇볕마저 아군이 아니었다.


나는 주머니를 뒤적거려 남은 총알을 확인했다.


'여섯 발···'


앞으로 두 마리 정도는 상대할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은 분명 무리다. 일단 무기 탭을 열어 이리 저리 찾아보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총에 맞는 총알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외부에서 흘러 들어온 물건은 취급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이 새로운 무기를 사야하는 상황. 하지만 이미 웬만한 물건들은 전부 품절된 상태였다. 남은 것들이라고 해봐야 서바이벌 나이프나 몇 종류의 권총 정도.


나는 아쉬운 대로 목록에 남아 있는 것 중 가장 싼 권총 두 자루와 그에 맞는 탄창을 다섯 개씩 구입했다. 간단하게 배를 채울 칼로리 바도 네 개정도 챙겼다.


이제 남은 점수는 410점. 괜찮은 방어구 하나 구입하기도 빠듯한 수준이었다.


김승아에게 줄 방검복과 안전모를 끝으로, 나는 상점의 전송 버튼을 눌렀다. 곧, 눈 앞으로 내가 구입한 물건들이 수북이 쌓였다.


안전모를 쓴 김승아의 모습은 어딘가 어설퍼 보였다. 하지만, 이곳은 런웨이가 아니다. 외형이야 어쨌든 살아남는데 도움이 된다면 괴물의 시체라도 뒤집어 쓰고 다녀야 한다.


나는 구입한 두 개의 권총 중 하나를 집어 들어 그녀에게 건넸다. 그러자 안전모를 연신 고쳐 쓰던 그녀가 그걸 보고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저, 저는 이거면 충분해요"


그리고는 도끼로 입가를 가리며 수줍게 웃었다.


***


햇빛은 여전히 뜨거웠다.


우리는 꽤나 오랫동안 걸었고, 또 그만큼 지쳐 있었다. 때문에 뜨거운 태양빛으로부터 몸을 숨기기 위해 그늘을 찾아다녔지만, 그 어디에도 몸을 숨길 만 한 그늘은 보이지 않았다.


만약 아까 상점에서 구입한 1리터짜리 물이 없었더라면, 그녀와 나는 진즉 탈수로 쓰러졌을 지도 모른다.


"꺄아아아악!!!"


바로 그때, 근처에서 소름끼치는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곧바로 바로 맞은 편의 갈림길로터 서너명 정도의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저게 뭐야! 뭐냐고!"

"누가 좀 살려줘!!"


겁에 질린 채 내달리는 목소리를 뒤쫒아 길다란 뱀의 몸통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첫 인상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저 기괴하다.


꼬리에는 사람 손이 달려 있고, 혓바닥을 낼름 거리는 주둥이 위로 청새치처럼 삐죽 솟은 뿔이 보인다.


여기 있는 모든 괴물이 다 그렇듯 인간의 형태를 띈 부분이 한 군데씩은 꼭 포함 되어 있는 것이, 마치 성격 나쁜 과학자가 재미삼아 이것 저것을 섞어 만든 실험체 같다.


게다가 놀라운 것은 따로 있었다.


꼬리에 달린 손을 다리 삼아, 그 길다란 몸통이 세로로 서 있었다. 그 상태로 바닥을 짚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손가락의 분주한 움직임은 가히 공포영화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꺄악!"


정신 없이 달리던 여자 하나가 자리에 굴렀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뱀 꼬리의 손가락들이 그녀의 몸을 올라타 꽉 움켜쥐었다.


그저 같이 도망치고 있었을 뿐인건지, 다른 사람들은 여자를 버려둔 채 일제히 흩어져 도망가 버린다.


"도와줘! 가지마!!"


그녀의 절박한 목소리가 사방에 울려퍼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곳에서 그녀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허공을 휘저으며, 뱀의 뿔이 큰 폭으로 주억거렸다.


"안돼, 제발!!"


그녀가 소리쳤다. 물론 소용 없는 짓이었다.


퍼걱!


순식간에 여자의 입이 쩍 벌어졌다. 눈알은 희번덕거리며 뒤집혔고, 몸뚱아리는 감전이라도 된 듯 바르르 떨었다.


여자의 머리를 뚫고 들어갔던 뿔이 천천히 빠져 나왔다. 진득한 피가 뿔을 타고 뚝뚝 흘러내렸다.


나는 그립을 감아 쥐었다.


총열을 움켜진 손바닥 위로 땀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이미 가늠자 속에는 역 삼각형의 머리통이 움큼 담겨 있었다. 그 너머에서 세로로 쩍 갈라진 눈동자가 또렷하게 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입꼬리를 치켜 올린 채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모습은 마치 '다음 차례는 너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서로의 손가락이 움직인 것은 그 직후였다.


하지만 내 쪽이 조금 더 빨랐다.


탕!!


총구에서 불꽃이 튀었다. 갑작스런 굉음에 금세 귀가 먹먹해진다.


"키히익!"


어울리지 않는 쥐소리를 내며, 놈의 고개가 뒤로 확 꺾였다. 동시에 푸른 액체가 사방에 흩뿌려졌다.


놈이 거칠게 고개를 세웠다.

한 쪽 눈에서 푸른 색의 피가 질질 흘러내리고 있었다.


"쉬익-!!"


놈이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주둥이를 쩍 벌렸다.


"피해요!"


등 뒤에 있던 김승아가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치이익!


놈의 주둥이에서 뿜어져 나온 액체가 내가 서 있던 자리 위로 쏟아졌다.

고개를 돌리자, 땅바닥이 부글거리며 끓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곧장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 순간, 김승아가 내 옆을 치고 나갔다.


퍼억!


푸른 액체가 사방으로 튀었다. 허공을 가르는 도끼날이 매섭게 빛났다.


허리가 반쯤 동강난 길쭉한 몸뚱아리가, 순식간에 아래로 무너져 내린다. 뒤이어 두개골이 부서지는 소리가 두 번, 세 번, 도끼가 휘둘러질 때마다 이어졌다.


털퍼덕!


바들거리며 경련을 일으키던 뱀의 꼬리가 곧 움직임을 멈추었다. 흘러나오는 뱀의 혈액 위로 희번뜩 뜨여진 그녀의 눈동자가 나와 시선을 마주친다.


"어라···?"


별안간 정신을 차린 그녀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자신의 손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괴물의 시체를 발견한 것은 그 다음이었다.


"엄마야!"


그녀가 소리를 지르며 내 옆으로 달라붙었다. 아까 괴물을 도륙 낼 때와는 정 반대의 모습에, 그녀가 연기를 하고 있는건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건지 점점 의심이 들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즈즈즛-


그 때, 어디선가 날카로운 고주파음이 들려왔다. 소리를 쫒아 고개를 돌린 방향으로, 덩그러니 달려 있는 문 하나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위에 탈출구를 의미하는 픽토그램과 함께, EXIT라는 글씨가 새겨진 전광판이 불빛을 깜빡이며 나를 향해 손 짓을 하고 있었다.


<<탈출구를 발견했다>>


뒤늦게 떠오른 메시지가 더 없이 반갑게만 느껴졌다.


.

.

.


종료까지 남은 시간. 앞으로 9시간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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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 미로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5) 21.05.18 14 0 12쪽
» 1. 미로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4) 21.05.16 19 1 13쪽
4 1. 미로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3) +1 21.05.15 34 2 13쪽
3 1. 미로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2) +1 21.05.14 33 2 15쪽
2 1. 미로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1) +1 21.05.14 41 5 11쪽
1 프롤로그 +1 21.05.14 74 10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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