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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레
작품등록일 :
2024.07.22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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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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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2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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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3화

DUMMY

김 철이 무기 거래를 개인적으로 제안했다. 그것도 두목이 거절했던 거래를.


그 사실이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상황이 내가 짜놓은 판대로 흘러간다는 거지.

그렇기에, 나는 거절했다.

“개인적인 거래는 안해.”

“거 그렇게 깐깐하게 굴지 말고 실무자들끼리 유도리 있게 하자고. 유도리 있게.”

“거래는 실무자가 아니라 책임자급과 하는게 원칙아닌가?”

내 말에 김 철은 쾅, 하고 옆에 놓인 세절된 종이가 가득한 박스를 걷어찼다.

종이 조각이 뿌연 가루를 흩날리며 사방에 흩어졌다. 그 조각 너머로, 김 철은 내게 삿대질하여 외쳤다.

“야 이새끼야. 너, 우리 회장님 좀 만나봤다고 내가 아무것도 아닌거 않아? 이 회사, 내꺼라고 내꺼! 나도 책임자야! 원래는 너희 같은 떨거지가 나랑 만날 수 있을 거 같아?”

김 철의 행동에 이전에 나였다면 겁먹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의 나에게 지금 김 철의 행동은 어떻게든 자신의 권위를 되찾기 위한 발악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너도 그 자식과 붙어봤으면 알 거 아냐? 총 같은거 없으면 상대가 안되는 괴물 같은 놈인 거! 그래서 거래를 제안한거 아니냐고!”

“너희 두목은 거절했지만.”

“두목은 그 괴물 같은 놈은 직접 붙어보지 않아서 몰라!”

“두목을 설득할 자신이 없어서 몰래 거래하시겠다?

“닥쳐. 어차피 너희는 물건만 팔면 장땡이잖아?”

이쯤이면 튕길 만큼 튕긴 거 같군.

나는 한동안 입을 다물고 고민하는 척하다, 못 이기는 척 거래 제안을 승낙했다.

물론 만약 거래 내용에 대해 두목이 추궁할 경우 사실대로 말하겠다는 조항을 달고서.

김 철이 말했다.

“그건 신경쓰지마. 어차피 그 새끼만 죽여서 데려가면 뭐라 못할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 안하는데.

하지만 굳이 그 사실을 입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그렇게까지 충고해줄 생각도 없고, 필요도 없을뿐더러 들어먹지도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신 최대한 빨리 중으로 원하는 품목과 거래 날짜를 제시해달라고 했을 뿐.

김 철은 그제야 좀 화를 가라앉히며 바닥에 흩어진 종이 조각을 신발로 대충 옆으로 밀었다.

“그럼 더 용건이 없으면 돌아가겠다.”

“······잠깐.”

“또 뭐야?”

이번에는 내가 신경질을 낼 차례였다. 김 철은, 좀 전과 다르게 긴장한 투로 말했다.

“그 납치된 여자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어.”

“그게 누구지?”

“같이 일하는 동료인데, 둘이 친했다고 해.”

“요컨대 같은 상품이라는 건가?”

“뭐, 그런 셈이지.”

묘하게 미심쩍은 김 철의 반응을 신경쓰며, 나는 시큰둥하게 물었다.

“그래서?”

“숙소도 이 근처고, 때마침 지금 쉬고 있어서 소개시켜줄수 있어. 어차피 그 여자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잖아? 안그래?”

“친절도 하시군. 그럴거면 고객에 대한 정보도 알려주지 그래.”

“그건 꿈도 꾸지 말고.”

김 철의 말대로 정보가 필요한 건 맞지만, 갑자기 이런 친절을 베푸는 것이 의심스러웠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떻게든 알려주고 싶어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나는 혹시 몰라서 확인 차 엄포를 놓았다.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그렇다고 값을 깎아줄 수는 없어.”

내 말에 김 철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거지냐? 우리 두목이 너희를 좋게 봐줘서 그런거니 건방떨지나 마.”

“그럼 너희 두목에게 좋게 봐줘서 퍽이나 고맙다고 꼭 전해줘.”

“재수없는 새끼.”


***


서류보관소를 나와, 나는 김 철의 안내를 받아 그 동료가 있는 인근 오피스텔로 향했다.

가는 길에 지금로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를 파견에게 알려주니 파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함정같다고 느껴서 그런 것이리라.

그리고 파견은, 그 여성이 따라오자 더욱더 경계했다. 물론 그건 상대쪽도 마찬가지였다.

“이 빌어먹은 년은 왜 따라오는 거지?”

“호위를 위해서인게 당연하니까요. 요새는 멍청한 사람도 경호를 할 수 있나 보군요.”

험악한 기운을 뿜어대는 둘을 뒤로하고, 나와 김 철은 오피스텔 앞에 섰다.

오피스텔은 내가 알던, 일반적이 오피스텔과 많이 달랐다. 내가 아는 오피스텔이 다 낡아빠진 공용주택이었다면, 이건 거의 초고급 호텔이었다.

화려한 조명과 유리로 근사하게 장식된 외관을 바라보고 있는데, 김 철이 으스대며 말했다.

“여기가 우리가 직원에게 제공하고 있는 숙소다. 걔들이 벌어들이는 돈에 비하면 여기는 껌값이나 다름없지,”

전 직장이었다면 평생 돈을 벌어도 사지도 못할 건물이 껌값이라······.

이전이었다면 굉장한 박탈감을 느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 그보다, 이 시설에 대해 관찰하고 그 정보를 머릿속에 넣어두는 것이 더 중요했다.

오피스텔 입구에 도착하자, 호텔처럼 정장을 입은 컨시어지가 나와 우리를 맞이했다. 그들은 김 철과 여성을 알아보고 정중하게 인사를 한뒤, 우리에게 다가와 인사를 한 뒤 발렛파킹이 필요한 지를 물었다.

필요없다고 하고 건물 안에 들어섰다. 건물안은 외관보다 더 으리으리했다.

천상에 달린 샹들리에처럼 생긴 조명부터 시작해서 조명가득한 인테리어와 시설이, 마치 어제 방문했던 블루문 그룹 본사의 건물이 떠오르게 했다.

그리고 입구의 보안장치도 마찬가지고.


우리는 덩치가 커다란 보안 요원 둘이 단단히 시키고 있는 입구를 지나 안내데스크에서 카드키를 받은 뒤,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는 카드키가 있어야 작동하는 방식이었다. 그것도 카드키 마다 갈수 있는 층이 정해져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내가 말했다.

“보안이 아주 철저하시군.”

“여자에 미쳐서 허튼짓하려는 녀석들이 한 둘이어야지.”

“손님도 가려서 받는다며?”

“원래 높으신 분들이 더한 법이지.”

“사장님.”

여성의 말에, 김 철은 뜨끔하며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가 10층에 도달했다.

부드러운 벨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소리없이 열리자, 새하얀 복도가 드러났다. 여기저기 설치된 CCTV 위치를 확인하며, 복도바닥에 깔린 검은 대리석을 따라 안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웬만한 사무실보다 넓은 라운지가 나타났다. 딱봐도 고급스러워보이는 소파와 탁자, 가구가 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에 비치되어 있었다.

김 철이 말했다.

“저기 안쪽 복도에 있는 문으로 들어가. 우린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허튼짓 하지 말고.”

“우리만 들어가라고?”

“아니, ‘너만’ 들어가라고.”

김 철이 나를 콕 집어 말하자, 파견이 인상을 찌푸렸다.

“난 왜 들어가지 말라는 거야?”

“당신은 위험하니까요.”

김 철 다소곳하게 앉아있던 여직원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파견은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여자 혼자 있는 방에 남자가 가는 건 안 위험하고?”

“적어도 죽이진 않을테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직원은 나를 보고 웃었다.

“그럴 성격도 아니고요.”

김 철은 나를 향해 으르렁 거렸다.

“혹시 모르니 말하지만, 절대 손대지 마라. 귀중한 상품이니까.”

파견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그들을 한번 보고 나를 보았다.

나는 그 시선을 읽었다.


맞다. 그들은 지금 억지를 쓰고 있다. 나 혼자 저곳으로 보내기 위한 억지를.


이유가 생각나지 않는 건 아니다. 당장 떠오르는 이유는, 상대가 남자를 유혹하는데 천부적인 프로라는 거다. 조직의 수장인 나를 꾀어내어, 거래에서 유리한 위치를 가져가거나 밑에 두려고 하는 속셈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게 너무 노골적이라는 거다. 경계심이 들 정도로 말이다.

어쩔수 없지. 여기까지 온 이상 어쩔수 없지. 부딪혀보는 수밖에.

사장이 나를 골탕먹이던게 , 유혹에 저항하는 훈련이 되었기를 바라며, 나는 방으로 향했다.


10-04호.


의미심장한 호수가 적힌 문 앞에 선 뒹, 두꺼운 철로 된 문에 달린 보안장치를 터치했다, 그리고 호출버튼을 터치했다.

그 뒤로 한 두어번 더 시도해도 아무런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뭐야? 여기라며?

설마 해서 문고리를 잡고 돌리자, 그대로 열렸다.

아니, 손님이 온다고 해도 그렇지. 현관도 안잠그는 건 너무 보안이 허술한거 아닌가?

하긴 건물 입구 보안요원이나 카드가 있어야 작동하는 엘리베이트. 복도 CCTV를 생각하면 현관 정도는 열어놔도 크게 지장 없을 것 같긴하다만은.

나는 슬며시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예상대로 집안 역시 복도 못지 않게 화려하고 사치스러웠다.

깔끔하게 고급 주방용품이 갖춰져있는 주방과, 검은 대리석으로 되어있는, 거실과 주방을 구분하는 것처럼 놓인 입식 테이블.

그리고 바로 붙어있는 거실은 주방과 마찬가지로 가구 및 인테리어가 백색과 흑색 톤으로 디자인되어 고급스럽고 깔끔한 느낌이 들었다.

고급스러움으로 따지면 내가 잠시 묵었던 사장의 별장과 비슷하다고 해야하나.

하지만 한가지 이상한 건, 마치 지금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지 않게, 지나치게 깔끔하다 못해 삭막하다는 점이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 아닌, 마치 꾸며놓은 모델 하우스 같다고 해야하나.

평소의 나였다면 누구 있어요? 라고 외쳤겠지만, 지금의 나는 잔인하고 냉철한 조직의 두목이었기에, 그 대신 집안의 흔적을 살피기로 했다.

먼저 거실로 걸어가 소파와 테이블을 둘러 보았다. 그리고 테이블에 뭔가가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건 책이었다.

‘순수이성비판’

딱봐도 머리 아플거 같은 책이군.

책을 집어 들자마자, 책 페이지 중에 접혀있는 부분이 자연스럽게 펼쳐졌다.

그리고 그 페이지 중 한 구절에 펜으로 짙게 줄이 그어져 있었다.

‘나는 내가 현실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시간 속에 규정된 것으로 의식하고 있다.’

그 문장 밑에 ‘secrète’라고 낯익은 필기체로 적혀져있었다. 나는 그걸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이게 대체 뭔뜻이지?

그렇게 고민에 빠져있는 찰나,


“지금 뭐하시는거죠?”


갑자기 알몸에 타월 하나만 달랑 걸친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순간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하마터면 표정 관리를 실패할 뻔했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마음을 다잡고, 여성에게 말했다.

“사라진 설유진에 대해 이야기 해준다고 해서 왔는데.”

타월을 여미며 나를 경계하는 눈으로 바라보던 여성은, 내 말에 ‘아’ 하고 작게 소리내었다.

“조직에서 보낸 사람이군요. 맞죠?”

“그런 걸로 해두지.”

여성은 가슴에 손을 대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제발 옷 좀 입어줬으면 좋겠는데. 눈 둘 곳을 찾기 힘들단 말이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여성은 흑발의 머리를 어깨 뒤로 쓸어 넘기고는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냉장고 문을 열더니 중얼거렸다.

“아, 맥주 밖에 없네.”

그리고는, 냉장고에서 맥주 캔 두 개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곧바로, 캔을 하나 따 벌컥벌컥 마셨다.

나는 캔에 맺혀있는 물방울이, 목을 타고 흐르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다, 정신을 바로 잡았다.

캬아, 하고 과장된 소리를 내며 여성은 캔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손목으로 입가를 훔치며 나를 바라보았다.

“드세요.”

“업무 중에 음주는 하지 않는 주의라서.”

“같이 마시지 않으면 한 마디도 하지 않을 거에요.”

오, 신이시여. 어째서 제 주변에는 이렇게 막가는 여성만 있는 것입니까.

나는 속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한숨을 참으며, 여성에게 책을 들어보였다.

“꼴을 보니 이런 책을 볼만한 성격 같진 않은데. 어디서 빌려왔나?”

“업소여자는 다 멍청할 거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계시다니 유감이군요. 제 책이거든요?”

나는 별 수 없이 책을 들고서 여성의 맞은 편에 앉았다. 그리고 책을 옆에 두고 캔을 땄다. 여성이 말했다.

“우리 진실게임하는 게 어때요? 그냥 말해주면 재미없으니까, 각자 하나씩 물어보고 진실을 말해주는 걸로.”

“난 일하러 왔지, 재미있자고 온게 아닌데.”

“저는 일도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는 여성을 말 없이 바라보았다. 여성은, 깍지를 낀 손 위에 턱을 올리고,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웬만한 모델과 연예인은 저리가라 할 정도의 외모였다. 그런 여자가 알몸에 타월하나만 달랑 걸치고 맞은 편에 앉아있다니, 자극이 심한 것도 정도가 있디.

아마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정신 못차렸겠지.


그래,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지금은, 내게 있어서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캔을 따서, 단숨에 반 정도를 마셔버렸다. 그리고 내려놓으며 말했다.

“좋아, 대신 나 먼저 하지.”

“그래요. 그 대신 대답만 듣고 도망가기 없기에요? 만약 그러면 당신이 날 강간했다고 소리 지를 거니까요.”

나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열기를 삼키며,


“너, 두목의 딸이지?”


게임을 끝냈다.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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