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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동도사 님의 서재입니다.

금지된 밤사냥에서 흑마법을 쓴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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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동도사
작품등록일 :
2019.12.05 18:50
최근연재일 :
2019.12.05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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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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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05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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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금지된 밤사냥에서 흑마법을 쓴 대가 (완)

DUMMY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못한 배가 시끄럽게 울어댄다. 동시에 여기저기에서 살타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굶어죽지 않으려던 사냥꾼들이, 다른 방식으로 생을 마감하는 냄새. 더욱 끔찍한 사실은, 이 냄새가 썩 군침을 돌게 한다는 것이다. 도대체가 분간이라는 걸 할 줄 모르는 몸뚱이 같으니.


이 모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밤이 되었다는 뜻이다.


인근에 사는 용들은 야행성이다. 그리고 주둥이에서 불이나 전기를 뿜는다. 아무리 그 사실을 지적해도, 굶주림에 찌든 사냥꾼들은 들어먹지를 않는다. 때문에 요즘은 밤마다 살 타는 냄새를 맡으며 꼬르륵거리는 것이 일상이다. 그러면 향기의 출처를 상상하고 만다. 처음에는 소름이 끼쳤으나 이제는 무감각하다.


“나쁜 용 자식들, 먹을 게 있으면 좀 나눠먹고 그러지. 하여간 가진 놈들이 더 해.”

“별 수 있겠어. 힘이 없는 우리 탓이지.”


어제와 비슷한 시나리오다. 찰스 형이 목표 없는 원망을 던지면 그 옆에서 앤더슨이 투덜거린다. 만약 앞으로의 진행도 어제와 같다면, 찰스 형의 목표 없는 원망은 앤더슨에게 향하게 될 것이다.


“아,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


정확히 예상대로다. 하지만 두 사람 다 배가 고파서 싸울 힘도 없었기 때문에 대화는 여기서 끝난다. 모닥불 타는 소리가 더 커진다.


나는 뭔데 이렇게 침착하냐고? 사실 그렇지 않다. 며칠동안 뱃속에서 불규칙적인 구조신호를 보내기는 나도 마찬가지니까. 나는 그저 그 구조신호를 무시하기 위해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했을 뿐이다.


“젠장, 언제까지 이렇게 굶을 거야?”

“가을은 끝났어. 이제 더 이상 음식을 구하기가 쉽지가 않단 말이야.”


찰스 형의 뜨거운 행동과 앤더슨의 차가운 목소리는 그럴듯한 대비를 만들어낸다.


“우리도 밤 사냥을 나가볼까?”


찰스 형이 말했다. 배고파서 죽을 것 같은 사냥꾼들이 결국 하게 되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 말이 썩 나쁘지 않게 들리는 걸 보면, 나 역시도 제정신은 아닌가보다.


용들은 야행성이기 때문에, 목숨을 소중하게 여긴다면 밤 사냥은 금지다.


‘밤 사냥’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사실 진짜 뜻은 ‘용의 둥지 털기’에 가깝다. 용들은 자신기네 둥지에 음식을 잔뜩 쌓아놓는다. 집채만한 몸뚱이를 유지하기 위해 음식이 얼마나 필요할지 상상해보라. 밤 사냥의 목표는 그것들이다.


“굶어죽으나 용한테 죽으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내가 하려던 말이 바로 그거야.”


찰스 형은 신이 나서 박수를 짝 쳤다. 우리 둘은 앤더슨을 쳐다봤고, 앤더슨은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우리는 숲으로 떠났다.


밤이 된 숲은, 우리의 상상보다 조금 더 꺼림칙했다. 어둠은 다가갈수록 우리에게 무언가를 끊임없이 토했다. 바닥에 깔린 낙엽과 나뭇가지들. 우리가 그것을 밟을 때마다, 우리가 여기에 있다고 사방에 고발하는 것 같았다.


“젠장, 둥지는 구경도 못 하고 죽는 거 아냐?”


찰스 형은 투덜거렸지만,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며칠 굶은 사람답지 않게 빠른 속도였다. 젖먹던 힘까지 짜낸다는 게 저런 걸까.


오늘도 역시나 밤이다. 그러니까, 사방에서 살 타는 냄새가 난다는 말이다. 그 냄새 때문에 우리는 또 배가 고프다. 젠장! 용은 가학적인 성향을 가진 변태가 분명하다. 동족을 태우는 냄새에 허기를 느끼게 만들다니.


“잠깐.”


앤더슨이 돌연 발걸음을 멈췄다. 그 뒤에 서 있던 나도 발걸음을 멈췄고, 앞서 가던 찰스 형은 우리를 돌아보았다.


“왜?”

“뭔가 오고 있어.”


찰스 형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우리가 모두 멈추자 주변이 조용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저 멀리에서 낙엽을 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가 걷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단검을 뽑아들고 싸울 준비를 했다.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싸운단 말인가? 그 거대한 용을 상대로? 심지어 며칠이나 쫄쫄 굶은 우리가?


싸움을 준비한다기보다는, 우리를 그냥 지나쳐가기를 기도한다고 보는 편이 옳았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제발 아무 일도 없기를 빌었다. 그리고 세상은 뜻대로 움직여주질 않았다. 낙엽을 헤치는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어떡...”

“쉿!”


찰스 형은 입에 검지를 가져다대고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우리는 가로로 한 줄이 되었다. 협공을 할 수 있는 위치. 찰스 형은 마지막까지 싸울 생각인 듯 했다. 나는 하던 기도나 마저 하기로 했다. 아무 일도 없을 수 없다면, 깔끔하게 죽게라도 해달라고.


어둠 속에서 죽음이 건조하게 걸어오고 있다. 우리의 생을 짧게 만드는 주제에, 더럽게도 천천히. 그렇기 때문에 나는 '혹시 안 오는 거 아닐까?'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무언가가 나타난 것도 그 때쯤이었다.


“악!”


한스형이 소리를 질렀다, 전투의 함성. 아니면 그냥 비명. 그러자 반대편에서 응답이 왔다.


“깜짝이야!”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은 용이 아니었다. 여자 사냥꾼들이었다.


“뭐야, 셋이서 밤 사냥을 나온 거야?”


가장 앞쪽에 서 있던 여자가 말했다. 그러자 그 뒤편에서 다른 여자들이 우루루 몰려나왔다. 하나 둘 셋 넷... 다해서 열 명이었다.


‘여자 사냥꾼들은 선천적으로 흑마법을 쓸 줄 안다지만, 세 명이든 열 명이든 용한테는 큰 상관이 없을 것 같은데.’


나는 그 말을 하려다가 꾹 참았다.


“어디 부족이냐?”


앤더슨이 물었다. 아주 정석 같은 질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은근히 우리를 깔보던 여자 사냥꾼들은, 자세를 다시 잡았다. 어디 부족이냐고 묻는 건, 무척이나 격식을 갖추는 질문이었으니까.


“북서숲 어금니 소속 사냥꾼, 에밀리야.”

“나는 서쪽숲 빠른발 소속 사냥꾼, 앤더슨이다. 용의 둥지로 가는 길을 알고 있나?”

“안 그래도 가는 길이야.”

“동행을 요청해도 될까?”


에밀리를 포함한 여자 사냥꾼들은 지나치게 정중한 태도를 보이는 앤더슨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난감해했다. 여자 사냥꾼들은 서로의 얼굴을 몇 번 쳐다본 다음, 우리들에게 따라오라고 말했다.


“용의 둥지에 들어가본 적 있어?”

“처음이야.”

“미리 경고하는데, 거기는 위험한 것들 천지야.”


앤더슨이 여자 사냥꾼들을 상대하는 것을 보면서, 찰스 형과 나는 잠자코 있었다.


“뭐가 가장 위험하지?”


게다가 앤더슨은 우리가 궁금한 것들을 알아서 쏙쏙 질문해주었다.


“용.”

“용이야 당연히 위험한 거 알지.”

“그리고 소용돌이 마법진.”

“소용돌이 마법진?”


용이 마법을 쓴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둥지 안에 마법진이 있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다.


“용들도 우리의 존재를 알아. 그래서 침입자를 자동으로 공격하는 마법진을 설치했어.”

“어떻게 생겼는데?”

“말 그대로 소용돌이 모양이야. 초록색이고.”


에밀리는 검지손가락을 빙빙 돌리면서 말했다.


“혹시라도 그게 보이면 당장 도망쳐. 그것보다는 아예 안 보는 편이 좋고.”

“알았어.”

“그런데 너희는 왜 용의 둥지로 가는 거야? 역시 먹을 것 때문인가?”


에밀리가 물었다.


“그러면 딱히 다른 이유가 있나?”

“있지.”

“뭔데?”

“용의 피.”


나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 했다.


“용의 피를 먹어?!”

“몰랐어? 얼마나 좋은 영양식인데.”


용의 피가? 믿기 힘들었다.


“맛 없을 것 같은데.”

“뭐? 아하하! 그래, 썩 훌륭한 맛은 아니지."


에밀리는 내가 한 말을 농담으로 들은 듯, 분위기가 한층 누그러졌다. 하지만 농담은 아니었다. 용의 피를 마신다는 상상을 하자, 토할 것 같았다.


"그런데 놀랄 정도로 몸에 좋다니까. 그래서 우리 부족 임산부들이 즐겨 마셔. 입덧도 없어지고 산후조리에도 좋아. 덕분에 우리는 음식이 많이 필요하진 않아. 너희들이 가져가.”

“고맙군.”


내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본 앤더슨이 대신 대답했다.


이윽고 우리는 용의 둥지에 도착했다. 까마득하게 높은 천장은, 올려다보면 목이 아플 지경이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숲에 있던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둥지의 내부는 깔끔했다.


그래서 위화감이 들었다. 이것은 둥지가 아니라, 거대한 생물의 아가리는 아닐까?. 저 안으로 들어가면 안될 것 같은데.


“뭐해? 빨리 와.”


에밀리는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여자 사냥꾼들이 모두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억지로 용기를 짜내야 했다.


찰스 형이 앞장섰다. 나는 그 뒤를 곧장 따라갔다. 두려움이 다리를 굳게 만들기 전에. 앤더슨은 마지막까지 둥지를 살피다가 천천히 걸어왔다.


에밀리와 여자 사냥꾼들은 이 둥지가 익숙한 듯 했다. 꽤 어두운데도 우리는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쭉쭉 걸어갔다. 둥지의 구조가 그렇게 복잡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워낙 거대했기 때문에, 우리는 거의 직진만 했고, 한 번만 오른쪽으로 꺾었다. 그러고 나서 쭉 직진하다가, 멈췄다.


도착한 거냐고 물어보려다가, 덜덜 떨고 있는 찰스 형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왜 그러지? 나는 찰스 형이 보고 있는 곳을 쳐다보았다. 아직은 벽이 막고 있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찰스 형의 바로 옆에 서서야, 뻥 뚫린 공간이 보였다. 그리고 나도 찰스 형과 똑같은 상태가 되었다. 그곳에는 용이 있었다.


“왜 그... 허억!”


가장 뒤에서 오던 앤더슨도 뒤늦게 용을 발견하고 얼어붙었다.


“자, 자고 있어.”


찰스 형이 말했다. 덕분에 나도 충격에서 깰 수 있었다. 여전히 다리는 후들거렸지만. 찰스 형의 말이 맞는 듯 했다. 여기서는 꼬리 쪽만 보이지만, 등과 배로 추정되는 부분이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그사이 에밀리가 우리에게 왔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운이 좋네. 아직 자고 있나봐. 음식은 조금 더 안쪽으로 가면 있을 거야. 잘 챙기고, 둥지 입구에서 만나.”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 사냥꾼들은 용에게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다 아찔할 지경이었다. 저런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용의 피가 먹고 싶은 걸까?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공포에서 벗어나고 나니 배고픔이 또다시 배를 찌르기 시작했기 때문에, 우리는 음식을 찾으러 가기로 했다.


“지, 진짜 용이야!”


용이 있는 곳에서 멀어지자, 찰스 형이 말했다. 나와 앤더슨도 고개를 끄덕였다. 차이점이 있다면, 우리와 달리 찰스 형의 감정은 놀라움이었다.


우리는 더 안쪽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커다란 공간이 나왔다. 거기에는 용의 덩치만큼0 과일이 높이 쌓여있었다. 우리는 또 입을 쩍하고 벌렸다. 음식 하나를 구경하기도 힘든 요즘에, 이렇게나 많은 과일이라니!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갔다. 그리고 게걸스럽게 과일들을 먹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씨에 붙어있는 과육까지 다 긁어먹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처음에는 배를 채우기 위해서 잡히는대로 입에 가져가던 우리들은, 조금 뒤에는 먹고 싶은 과일들로 가려먹기 시작했다. 편식을 하는 때가 오다니, 감격스러웠다.


우리는 부족 사람들에게 가져갈 음식들을 담기 시작했다. 가방이 불룩해지다 못해 터질 지경이 되어서야, 우리는 돌아가기로 했다. 뱃속에 마구 집어넣은 과일들이 배를 찢고 나올 것 같았지만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우리는 천천히 둥지 바깥을 향해 걸어갔다. 배부름에 취해 묘한 졸음마저 몰려오려고 할 때, 돌연 우리의 잠을 확 깨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아아아!”


심장이 철렁했다. 이렇게나 시끄러운 소리로 울어대는 생물은 단 하나뿐이었다. 용이다.


“꺄아악!!”


비명소리가 들렸다. 일이 틀어져도 한참 틀어진 것이 분명했다. 우리는 헐레벌떡 뛰기 시작했다. 여자 사냥꾼들도 용이 있던 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에밀리가 우리를 발견했다.


“얼른 도망쳐!”


무슨 상황이냐고 물어볼 겨를도 없었다. 오른편에서 용이 거대한 몸을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겁에 질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찰스 형의 거친 손길에 끌어당겨졌다.


“정신 차려!”


그런데 그 순간, 이상한 것이 보였다. 용의 발 언저리에, 초록색으로 밝게 빛나는 무언가가 있었다. 여러 개의 원이 그려진 듯한 형상. 나는 그것이 소용돌이 마법진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겁에 질려서 그런 게 아니었다. 누군가가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기라도 하는 듯, 이유 모를 힘이 내 다리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허겁지겁 도망치던 다른 사냥꾼들도 천천히 멈추었다. 저들에게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듯 했다.


“이 벌레 같은 자식들!”


용이 말했다. 아니, 말을 한다고? 생각지도 못했다.


필사적으로 도망치던 우리들은, 갑자기 무릎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소용돌이 마법진 때문인 듯 했다. 다리를 후들거리며 어떻게든 버티고 서있던 찰스 형도, 나도, 앤더슨도, 에밀리까지도. 결국에는 모든 사냥꾼들이 무릎을 꿇었다. 도망칠 수가 없게 되었다. 용이 다가오고 있었다.


“다들 흩어져!”


에밀리가 소리쳤다. 우리는 하반신이 사라진 기분이었으므로, 두 팔의 힘에 의존해서 땅을 기어가기 시작했다. 모두들 필사적이었다. 그런 우리를 비웃듯이, 용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조심해!!”


여자 사냥꾼들 중에 하나가 소리쳤다. 정말로 간절히, 그렇게 하고 싶었다.


용이 전기를 뿜었다. 무시무시한 굉음이 났다. 전기가 파지직거리는 소리. 이게 들리는 걸 보면 나는 아직 죽지 않았나보다.


고개를 들어보니 바닥에 거무죽죽한 흉터가 생겼다. 한때 사냥꾼이었던 누군가가 사라진 흔적. 나는 얼른 찰스 형과 앤더슨을 찾았다. 다행히 두 사람은 무사했다.


“전부 피 꺼내!”


에밀리가 소리쳤다. 여자 사냥꾼들은 그 소리에 허겁지겁 가방을 풀기 시작했다.

피? 용의 피를 말하는 것이겠지. 나는 그런 것이 없었으므로 부지런히 팔을 움직였다. 용은 그런 나를 비웃듯이 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숨을 들이마셨다.


“에밀리!”


여자 사냥꾼들 중에 한 명이 소리쳤다. 그녀가 쳐다보는 방향으로, 용도 고개를 돌렸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용의 아가리에서 전기가 눈부시게 빗발쳤다.


에밀리는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양손에 뻘건 피를 칠해놓은 채로 높이 들고 있었다. 뭐하는 짓일까? 저게 용의 공격을 막아줄 거라고 믿는 건가?


용의 입에서 전기가 발사되었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그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갈래갈래 찢어지는 전기는 에밀리에게로 향하다가, 멈췄다.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멈췄다.


“뭐야?”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내 목소리를 들은 찰스 형과 앤더슨도 고개를 들었다. 찰스 형은 심지어 일어나기까지 했다. 그러고 보니, 방금까지만 해도 없었던 하반신의 감각이 돌아왔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무할 만큼 쉬웠다. 찰스 형과 나의 뒤를 이어, 앤더슨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머릿속이 뒤집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둠. 빛. 회전하며 공전하는 천체. 별똥별이 자기 꼬리를 삼킨다. 생명이 되는 죽음의 회전. 행성의 정렬.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폭포. 반짝이며 터지는 포자들의 행진. 용의 둥지에 있는 우리들. 찰스 형과 앤더슨은 나에게로 점점 가까이 온다. 그것이 옳다. 우리는 서로를 등지고 섰다.


에밀리는 용의 혈액을 사용하여 흑마법을 썼다. 용의 혈액은 더없이 훌륭한 마법소재였다. 에밀리 역시 훌륭한 흑마술사였고. 덕분에 에밀리는 감히 신을 소환하고 말았다. '나와 우리는' 매개체로 사용되어 신이다.


내가 우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가엾은 용이 뿜고 있는 전기를 무마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멈춰있던 시간을 흐르게 했다.


“불쌍한 에밀리. 나와 우리를 불렀느냐.”


그러나 에밀리는 나와 우리를 보고서 넋이 나가버린 듯 했다. 나와 우리가 용을 처음 봤을 때처럼.


“전능자시여.”


눈치가 빠른 용이 나와 우리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그나마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고등 생물체는 용 뿐이었다. 여자 사냥꾼들 중에 몇은, 나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목숨을 잃고 말았다. 정신이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아직 목숨이 붙어있는 에밀리는 칭찬받을만 했으나, 나와 우리를 이런 방식으로 불러낸 것은 썩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나와 우리는 대화를 하고 싶었다. 에밀리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하지만 나와 우리에겐 상관없었다. 나는 우리는 에밀리가 나와 우리를 소환한 이유를 알고 있었다.


“처량한 에밀리. 단순히 살고 싶다는 소망만 품었으면 될 것을, 용이라는 존재 자체에게 가진 적개심을 숨기지 못하였구나.”


용은 나에게 우리에게 그것이 무슨 뜻이냐고 물으려고 했다.


“용을 인간으로 만들어달라고 했다.”

“전능자시여, 그게 무슨 말입니까?”


질문보다 먼저 나온 대답에 용은 당황했다. 때문에 용이 내가 우리가 한 말을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다행이었다. 용 같은 고등 정신체가, 자신이 인간이 된다는 것을 예지하면 정신건강에 해롭다.


나와 우리는 용이 깨닫기도 전에 용을 인간으로 만들었다. 아무런 신호도 없었다. 처음부터 인간이었던 것처럼 용은 인간으로 변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용은 인간이 되었다.


에밀리는 만족했다. 그러나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나와 우리는 공의를 지향한다. 에밀리를 대표로 하는 가엾은 인간들을 위해 용을 인간으로 바꾸기는 했지만, 그러기만 해서는 형평성이 어긋난다. 나와 우리는 다음 행동을 준비했다. 인간들이 살던 방식을 생각했을 때, 거기에 딱 맞는 생물을 창조했다.


한 번도 용이었던 적이 없던 인간들은 모두 모기로 변했다. 암컷만 흡혈을 하는 독특한 생물체. 그리고 나와 우리의 현신 매개체 또한 용이었던 적이 없는 인간이었다. 따라서 나와 우리는,


나는 모기가 되어 날아갔다


작가의말

모기는 이렇게 탄생한 게 분명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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