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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이기 님의 서재입니다.

천재 아닌 대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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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이기
작품등록일 :
2022.09.08 21:40
최근연재일 :
2022.09.08 21:43
연재수 :
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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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추천수 :
2
글자수 :
3,814

작성
22.09.08 21:43
조회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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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변경의 삼류 (1)

DUMMY

세상은 어둡고 잔인하고 불공평하다.

강자는 모든 것을 얻고 약자는 모든 것을 잃는다.


"그러니까 강해져라!"


스승은 그렇게 침을 튀겼다.


"재력, 권력! 무력! 그러나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힘은 마력! 마법이니라!"


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야만족과 이단, 괴물들이 쏘다니는 변경에서 스승의 말은 상식이고 교양이었다.


"검에 재능 없어도. 귀족 자식으로 태어나지 않아도. 오롯이 그 누구보다 강한 게 바로 마법사! 그러니까 늘 감사해라. 이 녀석아. 이 헬슈타인 님의 제자가 된 걸 말이다!"


그건 상식도 교양도 아니었다. 스승은 그렇게 잘난 척할 정도로 대단한 마법사 같은 게 아니었으니까.


삼류 마법사.

신도 버린 이 변경에 제발로 찾아오는 건 용병과 범죄자. 광신도와 제정신 아닌 이단 마법사 뿐이었으며, 한의 스승도 그랬다.


"크크. 주제에 불평하기는! 마법사가 제정신이면 어디 써먹겠느냐? 마도를 위해서라면 부모형제도 팔아먹을 미친 놈들이 바로 마법사! 너는 감사할 일이지. 미치지 않았으면 너처럼 검은 머리 야만족 꼬마를 주워 길렀겠느냐?"


스승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스승이 시키는 일은 그렇지 않았다.


"어이! 더 깊이 파란 말이야! 팍팍!"


한은 하루종일 스승의 지시에 따라 묘지를 팠다.

또다른 하루종일은 버려진 화전민 마을이나 묘지를 찾아 계속 걸어야 했다.


'이런 씨발.'


병에 걸려 끙끙 앓고 괴물들과 목숨 걸고 싸우다 죽을 뻔했다.

그렇게 얻은 마도는 그럼에도 겨우 한줌에 불과했다.


"불평하지 말라니까! 뭔가를 얻으려면 뭔가를 희생해야 하는 법! 마법은 만능의 무보수 하인이 아니다. 등가교환이야말로 인생의 법칙! 마법의 법칙이다!"


그렇게 자신하고 노력했음에도 스승에게 주어진 평가는 언제나 삼류였고 비주류였다.

스승이 가르친 사령술은 이곳 변경에서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금술이었으며 그 결과는 비참했다.


"죽어라. 역겨운 사령술사!"


보급품을 위해 들린 변경의 마을.

심부름을 위해 스승과 잠시 떨어져 가게를 들렀던 한은 창문 너머 광장에서 스승의 목이 달아나는 것을 목격했다.


콰직!

양손검이 번뜩이고-

텅- 데구르르.


"퉤."


드높은 정의 교단의 성기사들이 스승의 달아난 목에 침을 뱉었다.

변방의 주민들은 성기사들과 정의의 여신을 칭송하며 소리질렀다.


"리베라! 리베라!"

"오직 정의를!"


그렇게 광기에 찬 군중들 사이에서 중년 하나가 혀를 끌끌 찼다.


"허 참. 거 영감 운도 없지."

"······도대체 무슨 일이었죠?"

"뭐야? 청년도 외지인이야? 조심하라구. 저 영감처럼 목이 달아나기 싫으면."


광장에서 스승은 우연히 성기사들에게 시비가 걸렸다.

성기사 중 하나가 스승이 사령술사임을 알아보았고 그걸로 끝이었다.


"성기사 나리들도 참. 아무리 사령술사라지만 다 늙어빠진 영감 아닌가? 무슨 죄가 있는 지도 모르면서."

"바보 같은 소리. 사령술사라면서요? 그 자체가 죄 아닙니까? 거기다 이런 마을에 기어들어오다니. 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었는지."

"허? 하하. 하긴 그렇지. 우리 청년도 신앙심이 대단하구만?"


물론 한은 스승과 같은 사령술사였으며 저 미쳐 날뛰는 군중들처럼 보이지 않는 신에 대한 신앙심따윈 쥐뿔도 없었다.

그럼에도 한이 태연히 지껄인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는 자연스레 주변 사람들의 의심을 풀었다.

성기사들이 떠난 뒤, 한은 장의사를 사칭하며 저 불쌍한 노인의 장례를 치루어주겠다고 했다.


"장례? 변경에서 장례는 무슨 놈의 장례? 언데드가 되지 않도록 태우면 그만이지."

"망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시오. 죽은 자를 심판할 수 있는 건 오직 이름없는 죽음의 신뿐. 이 오갈 데 없는 악당의 재는 내가 거두겠소."


한은 의심받기는 커녕 박수 갈채까지 받아내며 스승의 시체를 회수했다.

스승의 분리된 목과 몸을 노새에 싣고 한참을 달려 마을을 벗어났다.


"스승님. 스승님!"


당연하지만 스승은 대답이 없었다.

벌써 파리가 꼬이기 시작한 몸은 차갑고 얼굴은 푸르죽죽했다.


"아니······ 마을에서 그렇게 조심하라고 가르친게 자기면서. 겨우 이 따위 일로 목이 달아나요?"


우습게 말했지만 원망, 그동안 쌓인 정. 온갖 감정이 소용돌이치며 울컥 쏟아졌다.


"우웩! 우웨엑!"


속에 든 것을 한없이 게워낸 다음 한은 소매로 입을 스윽 닦았다.


'이제 어떻게 하지?'


스승은 삼류였을 지언정 변경에서 평생을 살아남은 베테랑이었다.

그런 스승이 없으니 그저 멍하기만 했다.

도대체 뭘 해야할 지 몰랐다.


그때였다.


"응?"


툭!

널부러진 스승의 로브 품 안 주머니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스승이 늘 몸에서 떼놓질 않던 마법서, 그리고 끼워진 쪽지 하나였다.


- 보거라 제자야······


그런 상투적인 말로 시작한 유서는 상투적이지 않은 내용으로 끝났다.


'빌어먹을 영감. 유서는 죽으면서 남긴 사람들을 챙기는 거잖아. 이건 대체 뭐야.'


스승이 남긴 유서는 오히려 남은 자에게 하는 죽은 자의 부탁이었다.

마법사, 그것도 사령술사만이 할 수 있는 부탁.


- 나를 부활시켜다오!


스승이 감히 사령술사 주제에 신의 기적 따위를 바라고 쓴 말은 아니었다.

부활이란 건 바로 언데드로의 부활을 뜻했다.


'이런 미친 영감이 그냥 언데드도 아니고 뭐? 자기를 리치로 부활시켜 달라고?'


리치.

사령술의 최고 경지.

육신이 진토되고 타락한 괴물 언데드가 될 지언정 정신만큼은 이어가겠다는 마도의 극한.

그야말로 대마법사나 가능한 고대마법.


- 황제도 영웅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그러나 마법사는 달라! 죽음 따윈 극복하면 그만이다!


삼류 마법사의 허황된 꿈이었다.

얼굴에 검버섯이 필 때까지 변경에서 늙었으나 운도 재능도 없었던 스승의 꿈.


마찬가지로 삼류인 한에게는 그 꿈을 이루어줄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역시 미친 영감이야. 끝까지 허튼 소리만."


화가 나서 유서를 찢어버리려던 한의 손길이 순간 멈칫했다.


'이건 또 뭐야?'


유서의 접혀진 뒷 부분에는 지도가 있었다.

스승의 꿈은 그저 허황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나름의 상세한 계획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 지옥 구덩이.


근방의 미개한 야만족들이 그런 이름으로 부르는 던전.

그 안에 고대 싸이클롭스 제국이 남긴 유적. 그것도 진짜 중의 진짜인 고대 사령술의 마법이 잠들어 있다고 했다.


- 몇년 전 우연히 얻게 된 정보다. 이야말로 내가 평생 찾던 고대 사령술의 진수지.


그렇단 말이지.


거기까지 읽은 한이 첫번째로 떠올린 생각은, 이 정보를 어디다 잘 팔아 돈부터 벌어보자는 생각이었다.


'정말이라면 인생을 바꿀 만한 정보다. 지옥 같은 변경 생활도 이젠 끝이야.'


그 돈이면 이런 비참한 삶따윈 끝낼 수 있다.

어디 지방 도시에 가게를 내거나 제국 수도 근처에 농지를 살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여우 같은 마누라에 토끼 같은 자식.

그런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삶도 어쩌면 가능하겠지.


그러나 잠시 후 한은 피식 웃었다.


"······지랄."


다 망상에 불과했다.

사령술사는 변경만이 아니라 어느 세상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이루말할 수 없이 귀중한 이 정보를 큰 돈을 주고 사줄만한 인간은 떠오르지 않았다.


'도둑길드? 뒤통수 맞아 죽겠다는 거지. 다른 마법사? 그거야말로 미친 소리다. 마법사는 다른 마법사를 믿지 않아.'


무엇보다 한은 자기가 한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삼류라도 한은 마법사.

모든 마법사에게는 그 누구와도 타협할 수 없는 자기만의 마도가 있는 법.


- 강해져라! 마도야말로 진리!


"그래. 그랬지. 할배."


어린 시절 한은 스승을 그렇게 불렀었다.

한은 추억을 떠올리며 스승의 죽은 몸에 랜턴 기름을 뿌리고 불을 던졌다.


화르륵!

한은 한쪽 무릎을 꿇고 스승의 죽은 머리를 회수했다.

이제는 비어버린 랜턴의 빈 공간에 기름통 대신 꾹 눌러담아 채웠다.


'좋아. 할배."


뭐가 됐든. 기회를 낭비하지는 않겠다.

한은 망설임없이 뒤돌았다. 목표를 향해 노새를 몰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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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경의 삼류 (1) +1 22.09.08 44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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