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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설 님의 서재입니다.

이번 생은 톱스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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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설
작품등록일 :
2023.04.10 13:31
최근연재일 :
2023.04.10 14:11
연재수 :
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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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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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0
글자수 :
5,995

작성
23.04.10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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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001화. 기연을 만나다(1)

DUMMY

“허, 허헛······. 젠장!”


가슴 한쪽이 싹둑 베어져 나간 것처럼 아렸다.

그럼에도 입에선 마치 나사가 서너 개는 풀린 것처럼 오히려 허탈한 웃음이 새나왔다.

더럽게도 아프게 차였다.

무려 6년이란 시간을 시종일관 제 몸처럼 아끼고 사랑을 쏟아 부었던 여자에게.


“하아~”


허탈한 웃음이 사라진 뒤로는 이제 절망의 그림자가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 있는 한숨이 절로 새나온다.

사실 몇 달 전부터 그런 기미는 느꼈었다.

뒷덜미를 간질이던 께름칙하고도 뒤숭숭한 조짐들.

그럼에도 설마, 설마 했었는데······.


- 오빠! 한번뿐인 인생이야. 그걸 이렇게 가치 없이 허비하며 살 거야? 한창 오빠 나이 좋을 때잖아. 그 나이에 뭔들 못해.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오빠가 세상에 뭐 하나라도 내세울 게 있기는 해?

- 예전엔 몰라도 지금은 내가 오빠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게 싫어. 올려다봐도 모자랄 판에 내가 내려다봐야하는 이 자체가 너무 혐오스럽단 말이야! 난 하루가 멀다 하고 쭉쭉 올라가고 있는데 오빤 뭐야? 여전히 처음 만났을 때랑 똑같잖아. 뭐 하나 특출한 것도 없이!


‘헷, 웃기고 자빠졌네!’


무려 6년의 세월이다.

오로지 세상에 둘도 없을 내 여친 오유경이 멋지게 성공하길 바라며 지니고 있던 모든 걸 아낌없이 퍼부으며 살아온 세월이.

한데 고맙다는 인사는 고사하고 내 꿈을 포기하며 힘들게 뒷바라지했던 사람에게 고작 퍼붓는다는 소리가 그거라니.

이 비참한 현실 앞에 딱 죽고만 싶은 심정이다.


“그래. 나란 놈은 앞뒤 잴 것도 없이 그냥 확 접시 물에 코 박고 뒈져야 해. 난 세상에 다시없을 상등신이 맞아.”


오유경.

그녀는 대학 후배이면서 모두가 부러워하던 캠퍼스커플이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했을 당시 그녀는 모델연기학과에 갓 입학한 신입생이었다.

사실 오유경은 패션모델을 꿈꾸기엔 키가 좀 작은 편이었다.

요즘 현역에서 뛰는 수많은 여성 패션모델의 평균 신장에도 훨씬 못 미치는 168센티에 불과했으니까.

게다가 딱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왠지 전체적인 신체 비율구성 면에서도 뭔가 2% 부족한 면이 있었고.

아! 맞다.

다만 한 가지 뛰어난 게 있긴 했다.

미모를 따져 순위를 매기라면 또래의 여학생들 중에선 그나마 최고라고 할 순 있겠다.

물론 모델연기학과 재학생들을 통틀어 그렇다는 것이지 현역에서 활발하게 뛰고 있는 여자모델들과 견주어서도 그렇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고.

그래, 뭐 가끔 사람 애간장을 녹일 정도의 애교와 여우 짓만을 따로 떼어놓고 경쟁시킨다면 아마 걔가 좀 더 나을 수도 있겠다만.


‘···하긴 끼 부리는 것도 천부적으로 타고는 나야겠다.’


그래서였을까.

오유경은 전반적으로 아쉬운 신체비율이란 핸디캡을 안고서도 입학 당시 실기면접에서 당당히 높은 합격점을 받았고, 그 결과 모델연기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반면에 자신은 어떤가.

이걸 굳이 제 입으로 말한다는 게 좀 쑥스럽긴 해도 패션모델로서는 나름 완벽한 몸매라고 할 수 있다.

188센티란 훤칠한 장신에 초등학교 시절부터 꾸준히 닦아온 태권도 등 몇 가지 무술로 다져진 몸매는 그야말로 예술···이라고 말하긴 좀 그런가?

암튼 비주얼만큼은 남에게 많이 꿀리지 않은 편이다.

사실 그런 이유로 재학 중에 벌써 선후배들보다 먼저 모델에이전시에 캐스팅이 되었고, 국내 톱모델들과 함께 유명 디자이너들의 패션쇼에도 여러 번 오를 수가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국내 대형 연예기획사들로부터 배우가 돼볼 생각이 없느냐는 러브콜 또한 숱하게 받았다.

자신은 톱모델을 넘어 배우가 궁극적인 꿈이었던 터라 개중 조건이 가장 좋은 골든 크로스와 계약을 맺었다.

그곳은 배우만을 전문으로 케어하는 엔터테인먼트였는데 당시 자신이 내건 요구사항을 거의 다 들어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다른 기획사들보다는 약간 마음에 차지 않은 곳이긴 했다.

하지만 제 조건을 무조건 수용하겠다는 약속이 마음에 들어 곧바로 도장을 찍었다.

요구사항이란 다름 아닌 오유경도 함께 받아 달라는 것.


- 오빠! 나도 골든 크로스에서 오빠랑 같이 케어를 받으면 안 될까?


어느덧 서로가 죽고 못 사는 사이로 발전했다.

해서 그녀가 ‘나도 오빠가 차려놓은 그 밥상 위에 수저를 올리면 안 돼?’라고 간절한 눈빛을 보내오자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오케이 했다.

당시엔 그녀가 원한다면 밤하늘의 별이라도 따다주는 시늉을 할 만큼 사랑에 푹 빠져 있던 때였으니까.

그러니 오유경의 부탁이 없었더라도 자신이 먼저 그렇게 해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중엔 저를 위해 나를 포기했는데······. 저를 위해 과감히 내 오랜 꿈을 접었던 거였는데······.’


유세준은 그때를 떠올리며 회한이 담긴 탄식을 길게 흘렸다.


- 물론 오빠가 내게 많은 것을 양보했다는 거 잘 알아. 오빠가 배우의 꿈을 포기하면서까지 나를 성심성의껏 뒷바라지 해줬다는 건 평생 잊지 못할 거야.

‘······.’

- 하지만 난 누구보다 야망이 커. 지금보다 몇 배는 더 넓은 세상에서 훨훨 날아다니고 싶다고. 그래서 꼭 최정상에 서보고 싶단 말이야. 근데 갈 길이 바쁜 와중에 이건 아니다 싶어. 이렇게 별 볼일 없는 연애나 하면서 내 소중한 시간들을 덧없이 허비할 순 없는 거잖아. 안 그래?


‘하, 씨~ 말이나 못하면!’


오유경의 말 같지도 않은 궤변을 떠올리던 유세준은 분한 듯 속으로 냉소를 퍼부었다.

그녀가 저리 말하며 자신과의 결별을 준비했던 이유를 이제는 알게 됐으니까.

얼마 전 오유경을 일약 스타의 반열에 올려준 미니시리즈에서 합을 맞췄던 조연배우와 현재 활발히 썸을 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니, 모르긴 몰라도 둘은 이미 갈 데까지 간 사이일 게 분명했다.

여자만 특유의 촉이 있나.

왜 이래, 남자도 나름 촉이라는 게 있다 이거야.


‘후우~’


하지만 그녀가 변심을 하게 된 이유는 그런 거 말고도 아마 다른 이유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화려한 그 남자배우의 집안배경과 스펙.

그 남자배우의 아버지가 유명 영화감독이라고 했던가?

암튼······.


투둑.

투두둑.


아까부터 습기 머금은 바람들이 살랑살랑 나부낀다 싶더니 급기야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기분도 꿀꿀한데 확인사살을 하듯 비수까지 꽂아대는 이 지랄 맞은 상황이라니.

오유경이 야외로케 때문에 며칠 집을 비운 사이 그녀의 오피스텔에 들러 전에 미처 챙겨 나오지 못한 옷가지 몇 개를 대충 집어 들고 나오는 길이다.


“하, 씨!”


오피스텔을 생각하니 또 다시 짜증과 함께 억울함이 밀려든다.

사실 오유경이 현재 살고 있는 그 오피스텔은 엄밀히 말하면 100% 다 그녀의 소유는 아니었다.

오피스텔을 매입할 당시 자신이 살고 있던 빌라 전세보증금을 전부 빼서 거기에 절반 이상을 보탰다.

하니 그 오피스텔은 당연히 두 사람의 공동소유여야 마땅했다.

하지만 공동소유로 등기를 해놓는다면 혹시라도 기자들이 냄새를 맡고 하이에나 떼처럼 달려들지 모른다는 오유경의 걱정과 한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명의로 돌려놓았던 거다.

결국은 지분 주장도 못하고 이리 쫓겨날 줄은 꿈에도 모르고.


“젠장! 분위기 깔며 주룩주룩 소낙비까지 내려주시고! 청승 떨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날이 없네.”


이건 일기예보에도 없던 갑작스러운 소낙비였다.

사위가 순식간에 어두워지며 거리엔 왠지 모를 부산함까지 느껴졌다.

거리는 비를 피해 전력 질주하는 사람들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어리바리한 모습으로 서있다 보니 어느새 강하게 몰아치는 비바람에 옷이 그만 흠뻑 젖었다.


‘하, 진짜. 되는 게 하나도 없네!’


그래, 기왕 젖은 몸이다.

가뜩이나 기분도 꿀꿀한 터에 차라리 잘 됐다 싶은 생각이 든다.


‘이참에 7~80년대 촌티 팍팍 나는 흑백 드라마 속 비련의 남자주인공이나 돼보지, 뭐.’


그냥 빗속을 뚫고 태연히 걸어가기로 했다.

뚜벅뚜벅 걷다 생각하니 다시 또 불쑥 화가 치밀어 오른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렇듯 처량한 뚜벅이 신세는 아니었다.

비록 값비싼 대형세단은 아니었지만, 신박한 중형세단을 한 대 뽑아 소유하고 있던 자신이었다.

한데,


“오빠! 나 이번 드라마 오디션은 그냥 포기해야 할까봐.”

“왜애? 이번 드라마에 캐스팅만 되면 오유경이란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잖아. 조연치고는 비중도 꽤나 크고.”

“알지. 나도 잘 아는데 보나마나 이번 오디션에 요즘 난다 긴다 하는 여배우들이 몽땅 다 몰려들 거잖아. 한데 난 그 사람들과 경쟁할 자신이 없어.”

“아니, 왜? 연기연습 엄청 많이 했잖아. 넌 분명 그 배역을 따낼 거야. 그니까 걱정하지 말고 도전해봐, 유경아.”

“쳇! 오디션에 입고 갈 제대로 된 옷 한 벌도 없는데 도전은 무슨! 오빠도 알다시피 이번 오디션에서 뽑을 배역이 패션회사에 다니는 유학파 커리어우먼이잖아. 한데 내가 집에 있는 후줄근한 옷을 그냥 걸치고서 오디션에 나가봐. 그럼 감독님이랑 제작사 관계자들이 날 뭐라 하겠어? 보자마자 패션 감각이 많이 떨어지는 애로 취급하면서 준비해온 대사를 치기도 전에 바로 퇴짜 놓을걸!”


그러니까 잔말 말고 그럴싸한 새 옷 한 벌만 사달라는 소리였다.

할 수 있나.

그때만 해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그녀 외에 세상 그 누구도 안 보이던 시절인데.

하지만 당장 수중에 지닌 돈이 없었다.

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중 제일 값나가는 걸 팔아서라도 오디션에 입고 갈 옷을 장만해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뽑은 지 1년도 채 안 된, 거의 신차나 다름없는 세단을 중고시장에 내놨고 그걸로 나름 명품 소리를 듣는 옷을 아낌없이 사주었다.


“유세준! 야, 이 빌어먹을 호구 자식아! 너 같은 등신은 아마 세상에 다시없을 거다!”


유세준은 헛웃음과 탄식을 반반씩 섞은 채 마치 비 맞은 중처럼 구시렁거렸다.

그리고 이제 막 파란 불로 바뀐 건널목을 건너가려고 할 때였다.

뒤에서 돌연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불난 집에다 기름을 아예 통째로 갖다 끼얹는 소리였다.


“그래, 맞아. 나도 살다 살다 너 같은 상등신은 첨 봤다, 인석아!”


맑고 낭랑하긴 한데 다른 한편 가을서리처럼 차갑게 느껴지는 여성의 목소리였다.


“아, 씨! 뭔데?”


순간 짜증이 확 일어 매서운 눈초리로 고개를 홱 돌렸다.


“어머!”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을 겪었다는 듯 화들짝 놀라는 모습을 보여 왔다.


‘뭐야? 그럼 나의 이런 반응조차 예상 못하고 겁 없이 씨불였던 거야?’


유세준이 짜증난 표정 그대로 퍼부었다.


“뭐요, 당신? 뭔데 처음 보는 나한테 상등신이니 뭐니 시비를 터는 건데?”


거칠게 내뱉는 유세준의 독한 눈빛에도 그녀는 여전히 빤히 쳐다보며 고개만 갸웃했다.

그러더니 곧 기묘한 표정으로 변해갔다.


“너 혹시··· 내가 보이니. 그런 거니?”

“아니, 이 여자가 정말! 딱 봐도 나보다 훨씬 어린 것 같은데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그리고 내가 뭐 눈 뜬 장님이야? 눈앞에 있는 사람도 안 보이게?”


당신이 뭐 투명인간이라도 되냐는 듯 톡톡 쏘며 째려보았다.

하지만 곧 ‘헛!’하며 코웃음을 쳤다.


‘머리에 꽃만 꽂지 않았을 뿐이지 ‘레’ 다음에 곧바로 ‘미’를 칠 것만 같은 딱 그런···?’


한데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을 마치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그녀가 또 다시 요상한 말을 내뱉었다.


“하, 참! 내 존재를 알아차린 건 참으로 오랜만이네, 그려. 지금으로부터 약 천오백 년 전쯤 됐나? 세월이 하도 오래 되다 보니 이젠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네. 암튼 그 무렵에 온달이라 불리던 아이도 나를 단번에 턱 알아봤었느니라.”


별 미친······.

에라~ 얼굴이 아깝다, 얼굴이.


아닌 게 아니라 눈앞에 있는 이 여성은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이런 미모를 가진 여자가 어쩌다가 이리 실성을 했을까 싶어 차라리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그나저나 웬 사극 같은 말투?

사극 마니아야, 뭐야?

그거에 너무 깊이 빠져서 이렇게 실성하게 된 건가?


“하, 씨! 내가 지금 뭐 하는 짓거리냐. 이렇게 정신 나간 여자랑······.”


가슴이 움푹 팰 정도로 아프게 채인 날이다.

거기에 장단을 맞춰 비를 뿌려주는가 싶더니 급기야 이런 미친 여자까지 선물로 안겨주나 싶어서 유세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이제 더는 상대하기 싫다는 것처럼 그녀를 무시하며 어느새 다시 녹색불로 바뀐 건널목을 건너려고 했다.

한데 그 순간이다.


덥석.


다시 또 음역대가 높은 소프라노 같은 가히 찢어지는 듯한 음성과 함께 그녀가 돌연 유세준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이놈아, 어딜 가. 거기 서!”

“에이, 씨~ 이 여자가 정말!”


더는 참지 않겠다고 눈을 크게 부라리는 순간이다.


끼익, 끽.

끼이익, 끼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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