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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파람 님의 서재입니다.

[단편] 두 번째 기회 : 우리가 잊고 있던 것

웹소설 > 일반연재 > SF, 로맨스

미파람
작품등록일 :
2022.02.10 19:55
최근연재일 :
2022.02.1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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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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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067

작성
22.02.13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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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4. 조약돌

DUMMY

*


“자, 아스파라거스.”


윤시온은 자신의 접시 위에 있는, 버터에 구운 아스파라거스를 정은솜의 접시에 옮겨주었다.


“고마워. 대신 윤 팀장은 이거 더 먹을래? 배양육 싫어하지 않으면···.”


정은솜이 자기 접시에 있는 스테이크를 반으로 뚝 자르고 나서 윤시온의 눈치를 보자 윤시온은 냉큼 그녀의 접시에 있는 반쪽을 자기 접시로 가져왔다.


“아직도 모르냐. 나 아무거나 다 잘 먹잖아. 아, 아스파라거스는 아니지만.”

“신기해.”


정은솜이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귀한 도련님이 이런 것도 잘 먹고.”


배양육은 보통 시민 계층의 사람들이 먹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그나마도 돈 없는 하층민들은 배양육조차 먹기 힘들고.

여유 있는 귀족이라면 배양육이 아닌 진짜 고기를 먹는 게 자연스럽다. 윤 팀장은 귀족 중에서도 상류에 속하는 귀족이니 어려서부터 진짜 고기만 먹어왔을 텐데.


“몰랐어? 나 어릴 때는 귀족 아니었어. 그냥 보통 시민이었지. 이름도 윤시온 아니고 원래는 이시온이었는데.”

“그랬어?”


정은솜의 눈이 동그래졌다.


“남편을 사별한 어머니가 아내를 사별하신 전 후작님하고 결혼했지. 내 생부는 로봇 공장에서 나온 고철을 파는 고물상을 하셨었는데.”


윤시온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배양육 스테이크를 씹으며 말했다.


“뭐, 그래서 돈은 좀 있었지만 후작댁에 들어가기 전까진 그렇게 고급스럽게 살지도 않았어. 그러니까 귀하다는 말 좀 그만해.”


너랑 나 사이에 벽이 생기는 거 같으니까.

윤시온은 마지막 말을 꼭꼭 씹어 배양육과 같이 꿀꺽 삼켰다.


“그랬구나. 어쩐지···”

“어쩐지 뭐?”

“···그냥, 왠지 친근하고 그랬어.”

“친근하기만 해?”

“어, 친근하고, 좋고, 그랬지. 다들 윤 팀장 좋아하잖아.”

“다는 아닐걸?”

“윤 팀장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


귀엽게 동그랗기는. 눈을 크게 뜬 정은솜을 보며 윤시온은 픽 웃었다.


“너는 생각도 못 할 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는지.”


윤시온은 낮에 만났던 제 형 윤수국을 떠올렸다.


- 나라고 네가 좋아서 집으로 들어오라고 하는 줄 아냐? 어머니 생각 좀 해. 어머니께서 걱정하시잖아.


생모도 아니면서 윤수국은 자신보다도 어머니에게 잘했다. 덕분에 친자인 자신은 어디서 굴러온 돌처럼 지내다가 결국 밖으로 뛰쳐나왔지만.


- 그러니까 거기서 빨리 나와. 내가 끌어내기 전에.


윤수국은 전쟁이 더 길어질 것 같으니 ㈜진을 나오라고 했다. 스스로 나오지 않으면 윤수국은 억지로라도 자신을 끌어낼 것이다.


“정은솜. 너는 언제까지 회사에 있을 거야?”

“나보고 승진하라면서? 승진할 때까지 있어야지?”


정은솜이 킥킥 웃었다.


“내가 비켜줄까? 내가 비켜주면 네가 팀장할 수 있을 텐데.”

“윤 팀장 없으면 다음은 백기영이 팀장 아니야? 나이가 제일 많잖아.”


정은솜이 킨을 죽인 공로로 영업부장을 달았을 때, 같이 전투에 참여했던 백기영은 팀장이 되었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진 등급이 나 다음으로 높은 게 넌데. 게다가 12팀 중에 너랑 나만 반투명 진을 가지고 있잖아.”

“됐거든. 나 팀장할 생각 없어. 승진하려면 영업부장 정도는 돼야지. 근데, 윤 팀장.”


정은솜은 아까부터 마음에 걸리던 말을 물었다.


“비켜준다는 게 무슨 뜻이야? 어디 가?”

“아니. 그냥 해 본 소리야. 내가 12팀을 두고 어딜 가.”

“진짜로 어디 가면 안 돼? 약속해.”


정은솜이 진지하게 눈을 또르르 굴리며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윤시온은 거기에 손가락을 거는 대신 주머니에 있는 걸 꺼냈다. 말려있던 그녀의 네 손가락을 모두 편 다음 그녀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불 꺼진 조명처럼 어두운 조약돌 두 개.

그것보다 더 새까만 정은솜의 눈이 커졌다.


“이건···?”

“저번에 너 부상당해서 병원에 실려 왔을 때 네 손에 있던 거야. 네가 주먹을 하도 꼭 쥐고 있어서 빼내는 데 애먹었다고 간호사가 그러더라. 퇴원할 때 주려고 했는데 잊어버렸어. 네 거 맞지? 그런 건 왜 갖고 다닌 거야?”

“그러게. ···누가 행운의 상징이라고 그래서. 윤 팀장이 저번에 그랬잖아. 잘 살라고. 그래서 가지고 다녔던 거야.”

“내가?”


정은솜은 멋쩍게 웃고는 조약돌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아스파라거스를 얼른 한 토막 잘라 입안에 넣고 우물거렸다.


- 이거 가져가렴. 너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줄 수 있을 거야. 네가 백기현 밑에 있는 한. 언젠가, 반드시.


죽은 킨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 조약돌은 킨이 그녀에게 준 것이다. 이게 뭔지 제대로 설명하기도 전에 그는 죽어버렸다. 대신 그가 말한 ‘기회’라는 말 때문에 정은솜은 두 번째 기회에 대해 생각해 보곤 했었다.


정은솜은 주머니 안에서 손으로 조약돌을 굴렸다. 시간을 돌아온 게 이거 때문이었나? 그래서 처음 받았을 때는 흰색이었던 게 검게 변했나?


그녀는 마지막 전투에서 킨을 만났을 때를 회상했다.

킨은 저택의 응접실에서 손님을 맞이하듯이 앉아 있었다. 여유로워 보였던 그의 얼굴은 정은솜을 보자마자 흐트러졌다.


“은솜아, 은솜아, 은솜아···.”


킨은 늙어가면서 자신의 몸을 하나하나 기계로 바꾸었다고 했다. 그래서 인공 피부를 붙인 얼굴만 보면 이십 대의 젊은 청년 같았다. 그런 킨이 뭔가 애절하게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내 이름은 어떻게 안 거야? 그렇게 이름을 부르면 내 마음이 약해질 거라고 생각했나 본데, 어림도 없는 소리야.”


백기현이 그랬다. 킨은 워낙 악랄해서 척 보면 그 사람이 뭐가 필요한지 파악한다고. 굶주린 사람에게는 밥을, 온기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난로를, 사랑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인정을 준다고 했다.

역시 그랬다. 자신을 한 번도 그렇게 이름으로만 부른 사람이 그때까지 한 번도 없어서, 킨이 부르는 자신의 이름은 이상하게 다정했다. 그래서 정은솜은 단번에 그를 죽이지 못했다.


[정은솜. 어떻게 됐어?]


손목이 살짝 찌릿했다. 밖에서 지키고 있던 백기영이 진 워치를 통해 상황을 물었다. 상대의 메시지가 진 워치에서 특별한 진동을 만들고, 그 진동이 그녀의 피부를 타고 귓속으로 들어와 소리로 전달했다.


[기다려.]


정은솜은 백기영에게 전했다. 곧 끝내고 갈 테니 기다려.

킨이 그런 정은솜을 물끄러미 보다가 손을 내밀었다. 정은솜이 총으로 그를 겨누고 있었기에 내미는 손길은 아주 느렸다. 천천히, 킨의 손이 앞으로 나왔다.


“은솜아. 한 번만 안아봐도 되겠니?”

“미친.”


미친 거 아냐? 지금 로봇들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왕국과 전쟁을 일으킨 지하 도시 룬드를 세운 사람이 나에게 뭐라는 거야? 로봇이 아닌 인간 여자를 처음 본 것도 아닐 텐데. 이게 지금 뭐 하자는 거지?

정은솜은 욕을 내뱉었다. 킨이 옅게 웃었다.


“잘 자라고 있었구나. 다행이다. 그래도 이건 너한테 주고 싶어.”


내밀었던 손을 거두며 그는 흰 조약돌 두 개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이거 가져가렴. 너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줄 수 있을 거야.”

“웃기시네. 소형 폭탄 같은 거지? 내가 건드리면 폭발하는?”

“아니. 너는 이게 필요할 거야. 네가 백기현 밑에 있는 한 언젠가, 반드시.”


뭔지는 몰라도 킨은 백기현을 알고 있었고, 그게 그렇게 좋은 감정이 아니라는 걸 정은솜은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도 백기현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으니까.

적의 적은 친구라고 하지 않았나. 정말로 도움이 될지도 몰라. 윤 팀장이 봤으면 섣불리 사람을 믿는다며 경악했겠지만, 그녀는 지금 혼자였다.

정은솜은 손을 뻗어 조약돌을 집었다. 킨이 계속 들고 있던 거라 그런지 은근한 온기가 돌았다.


“정말로 도움이 될 거야.”


킨이 말했다.


“너를 뭘 믿고.”

“너는 나와 백기현의 관계를 모르지. 백기현은 사실-”


피슉-!

킨은 갑자기 말을 멈췄다.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 손에 붉은 피가 묻어 나왔다. 툭, 그의 상체가 테이블 위로 쓰러졌다.


“···정은솜! 빨리 나와!”


백기영이었다. 어느샌가 그가 들어와 킨의 심장에 은색 총알을 박아넣었다.


“백기영! 이건 원래 내가 하기로 했잖아!”

“시간이 없어. 빨리 와! 로봇들이 온다고!”


백기영은 정은솜의 손을 잡아끌었고, 정은솜은 쓰러진 킨을 한 번 더 돌아보고는 그대로 그의 저택을 나왔다.

즉, 킨을 죽인 건 백기영이었는데 그는 정은솜이 킨을 죽였다고 보고했고, 정은솜에게도 부탁했다. 간절하게. 네가 죽인 걸로 해 달라고. 이유는 묻지 말고.


그래서 그녀는 영웅이 되었고, 영업부장으로 승진했고, 죽었고, 시간을 돌아왔다. 그때를 기억하는 건 자신의 오른쪽 팔뚝에 있는 상처와 이 색이 변해 버린 조약돌 뿐이다.




*


로봇과의 전쟁이 발발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로봇의 암살이었다. 지하에 있던 로봇 하나가 지상으로 몰래 올라온 후 국민의회에서 전쟁 여부를 투표하고 돌아가던 의원 하나를 살해했다.


- 로봇이 사람을 죽였다!


전쟁 찬성 여론은 바람이 심한 날의 들불처럼 거칠게 일어나 번졌다. 전쟁에 반대하던 일부 여론조차 순식간에 찬성으로 돌아섰다.


- 인간형 로봇이 처음으로 양산되었을 때 우려하던 일이 일어났다! 로봇이 인간을 공격한다! 로봇 3원칙 때문에 인간은 로봇으로부터 절대 안전하다고 했던 건 진실이 아니었다! 저 로봇에 미친 킨 박사와 로봇들이 인간을 멸망시키고 자신들의 세상을 만들려고 한다! 싸우자! 로봇들을 없애자!


살해당한 의원은 전쟁 반대에 투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론은 더욱 확고해졌다.

- 로봇들조차 전쟁을 원한다! 이 전쟁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어떻게 인간이 로봇과 싸운단 말인가? 킨이 지하 세계로 넘어간 다음, 왕국은 로봇을 배척했다. CCTV 벌레처럼 꼭 필요한 것들을 제외하고는 로봇 생산은 중단됐다.


그나마 왕궁에서 보유하고 있던 전투 로봇들이 있긴 했으나 전투에 나간 게 언제인지 기억도 못 할 만큼 낡아빠진 구형이었다. 킨이 지하에서 만든 신형 로봇들을 제압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때 구세주처럼 나타난 게 ㈜진의 사장 백기현이었다. 그는 자신의 회사 ㈜진에 진 능력자가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그래서 알았다. 인간들 중 ‘진’을 가진 자들이 있으며 그 진의 능력을 개발해서 훈련시키면 로봇들과 싸울 수 있다는 걸.


그는 왕에게 자작위를 받았고, 곧 로봇과의 전쟁을 책임지게 되었다. 왕과 고위 귀족들의 투자도 받았다. 그동안 자신의 회사에서 키워왔던 진 능력자들을 영업 사원이라는 이름으로 전쟁에 내보냈다. 왕과 귀족과 보통의 시민들과 하층민들조차도 그 사실을 기꺼워했다. 전쟁은 오로지 진 능력자들의 몫이 되었으므로.


진 능력자들은 마치 레지스탕스처럼 지하 도시 룬드의 구역 구역으로 침투해 전투를 벌였다.


지하 도시 룬드는 킨이 세웠다.


10년 전, 로봇의학공학자이자 로봇의 아버지라고 불리던 킨이 로봇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인터뷰를 진행하다가 그걸 못마땅하게 생각한 왕이 군사들을 보내 그를 체포하러 오자 그의 저택은 통째로 지하로 내려앉았고, 그 이후 그는 지하 도시 룬드를 만들었다.


그 모든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는 게 나중에 밝혀졌다. 그는 지하에서 몰래 인간형 로봇들을 생산해 왔으며, 로봇들을 인간처럼 대우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는 자신과 로봇들만의 도시를 건설하고자 지하로 숨어들었던 것이다.


지하 도시 룬드를 파괴하고 킨을 없애는 것. 그것이 ㈜진의 영업사원들의 목표였다.


전투의 시작은 항상 같았다.

진 사용자들과 대치한 로봇은 큰 소리로 묻는다.


“너희는 보통 인간인가?”


진 사용자들은 당연히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진’을 가지고 있으니 보통의 사람들과 다른 존재다.

백기현 사장은 사원들에게 항상 말했다. 진 사용자들은 언제나 특별하고 특별하며 특별히 특별한 존재라고. 보통 사람들과 다르니 대우도 다르고, 월급도 다르다.

그들은 인간들과 다르다는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영업 팀장 중 한 사람이 대답한다.


“아니다.”


그 말과 동시에 전투가 시작된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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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두 번째 기회 : 우리가 잊고 있던 것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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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 진 워치 22.02.12 2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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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회귀 22.02.10 3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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