랠리 이어가기
태어난 지 두 달 된 강아지 한 마리가 문 밖을 나섭니다. 다른 두 녀석은 문턱에 두 발을 올렸다가 내리고는 내 눈치만 살피고 있습니다. 나는 녀석들을 거들어주지 않고 밖으로 나가라고 손짓을 합니다. 하지만 두 녀석은 좀처럼 문턱을 넘지 못합니다.
그런데 저만치 밖으로 나갔던 녀석이 돌아와서는 머뭇거리는 두 녀석에게 각각 입맞춤을 합니다. 내게는 들리지 않았지만 무슨 말을 건넨 듯도 합니다. 알아들었다는 듯 두 녀석도 따라서 문턱을 넘습니다.
세 녀석이 골목 밖으로 나와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난생 처음 세상 구경을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자동차가 부웅 소리를 내며 지나가자 후다닥 되돌아옵니다.
일요일, 은행나무 약수터에서 미아가 되었다가 나를 따라온 지 일 년 만에 어미가 된 ‘행운이’와 앞산을 오릅니다. 오늘도 한쪽 다리에 폐타이어를 매달고 나무 계단을 오르는 사람을 만납니다. 뇌졸중으로 마비가 된 반신을 풀어보려고 일년째 애를 쓰는 중입니다.
언덕 위 작은 운동장에는 사람들이 저마다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나무 밑에서 맨손체조를 하는 사람, 무릎을 조금 구부린 채 두 손바닥으로 배 두드리기를 하는 사람, 평행봉 위에 다리를 걸치고 있는 사람, 가로놓인 통나무에 등과 배를 굴리는 사람…….
그리고 배드민턴을 하는 30대 부부도 보입니다. 숙련된 솜씨의 남편은 어설픈 아내에게 부드럽고 유연하게 공 배급을 해줍니다. 하지만 공을 받는 아내는 반 박자가 늦어 자꾸만 땅에 떨어뜨립니다. 받아내더라도 방향이 제각각입니다. 남편이 보내는 공이 몸에서 한두 발짝 떨어질라치면 잘 좀 보내라고 아내가 투정을 합니다.
“얍” 저 아래 배드민턴장에서 힘찬 기합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들은 네트를 경계로 상대의 허를 찌르기에 온힘을 다합니다. 서로 웃다가도 경계선이 그어지면 금세 상대를 대하는 법이 달라집니다.
언덕 위 운동장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아내의 공 받는 소리가 탱탱해집니다. 아내는 쑥쑥 늘어가는 자신의 실력에 스스로 대견스러운지 ‘아싸~’ 추임새를 섞어가며 좋아합니다.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남편은 랠리가 몇 번이나 이어지는지 숫자를 세기 시작합니다. 처음 몇 번은 열을 넘기지 못하더니, 한 번은 스물까지 버팁니다. 스물하나, 스물두울……. 스물두 번째에서 아내의 자세가 구겨지고 맙니다.
“미안.” 사과를 하는 쪽은 아내가 아니라 남편입니다. 남편이 보낸 공이 너무 아내의 가슴 정면으로 간 것입니다. 남편은 눈을 흘기는 아내에게 박수를 쳐줍니다. 그만하면 아주 잘한 것입니다.
언덕 아래 배드민턴장에서는 함성과 함께 박수가 터집니다. 내기를 해서 한 쪽이 이긴 모양입니다.
그쪽으로 잠시 고개를 돌리던 부부가 다시 랠리를 시작합니다. 그들 앞에는 넘어야 할 네트도 없고 무너뜨려야 할 상대도 없습니다. 오늘의 관심은 둘이서 함께 랠리를 몇 번까지 늘릴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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