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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곡 님의 서재입니다.

내 일상


[내 일상] 자이언트의 행복 찾기


자이언트의 행복 찾기


  자이언트는 서울에서 가장 큰 제본소에서 태어났습니다. 호화로운 외투에 속옷도 색상이 화려한 명품들로 꾸며졌습니다. 같은 날 태어난 문고판이나 수필집 따위와는 핏줄이 다른, 이른바 로열족입니다.


  자이언트는 쌍둥이 형제들과 함께 어느 중소기업 사장 집의 2층 거실에서 새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거실이 어찌나 큰지 달리기를 해도 될 정도였습니다. 수입 원목으로 만든 고급 책장에 앉아 사방을 둘러보니 가구든 인테리어든 귀족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집에는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지만 자이언트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은 아주 드물었습니다. 눈길을 주더라도 “음, 쓸 만한데. 나도 한 질 장만해둘까?” 하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더욱 참기 힘든 건 주인이 한 번도 자신을 살펴보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이언트는 트럭에 실려갔습니다. 사업에 실패한 주인이 변두리로 이사한 것입니다. 반지하 주택의 창고에 처박힌 자이언트는 숨이 막힐 것 같았습니다.


  이사하던 날 밤, 창밖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앗, 창틀 위에 있던 생쥐가 자이언트의 외투에 오줌을 갈기고 달아났습니다. 자이언트의 자존심에 씻지 못할 얼룩이 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자이언트는 이곳에서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리어카에 실려 헌책방으로 팔려갔습니다. 그 헌책방에는 출신을 알 수 없는 온갖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며칠 후 가난한 티가 절절 흐르는 청년이 와서 자이언트를 천 원에 사갔습니다. 청년은 밤을 새워 읽었습니다. 자이언트의 마음이 차츰 편안해졌습니다. 새벽이 되어서까지 자신을 관심 있게 보아주는 것에 처음으로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자기의 이름이 그 유명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전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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