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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곡 님의 서재입니다.

내 일상


[내 일상] 영선이의 비밀


영선이의 비밀

 

 

  작은 섬에 사는 영선이는 생일에 맞춰 온 엄마의 편지를 꺼내 들고 천천히 집 주위를 돌기 시작합니다. 

영선이의 버릇입니다. 편지를 전해 준 할머니는 손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한숨을 쉽니다.

  집을 한 바퀴 다 돌고 나서 영선이의 발걸음이 멈췄을 때는 편지 읽기가 끝나 있습니다.


  저녁을 먹고 난 영선이는, 서울로 돈 벌러 가셨다는 엄마에게 답장 편지를 씁니다. 편지를 다 쓰고 우표를 붙이는 영선이의 눈은 금세 눈물이 맺힐 듯합니다.

  영선이는 엄마를 언제 보았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엄마의 얼굴을 그려보지만, 그럴 때마다 모습이 바뀝니다.


  엄마에게서 처음 편지가 온 건 영선이가 학교에 들어가고 막 한글을 깨우칠 때였습니다. 그 후로 가을에 한 번, 이듬해 봄에 한 번... 계절이 두 번 바뀔 때마다 편지가 왔습니다.

  그런데 편지의 내용은, 영선이를 한집에서 지켜보기라도 한 것처럼 영선이의 고민을 풀어주고 용기를 북돋워 주는 것이었습니다. 편지가 오기 전 갖고 싶은 걸 할머니에게 말하면 엄마는 편지와 함께 선물을 보내주었습니다. 


  사실 영선이는 엄마가 서울 어디에도 계시지 않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영선이의 이 비밀은 할머니의 비밀이기도 합니다. 아무도 엄마의 죽음을 알려주지 않았지만, 영선이는 아홉 살 때 동네 어른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고 알았습니다. 하지만 영선이는 울지 않았습니다. 할머니 말씀대로 어딘가 엄마가 살아 계실 거라고 믿고 싶었던 겁니다.

 

  영선이는 지금부터 가을 편지를 기다립니다. 편지를 기다리며 엄마를 그려보는 시간은 영선이만의 행복이니까요. 

그리고 영선이가 편지를 포기하지 않는 한, 할머니는 누군가에게 계속 편지를 쓰게 하시겠지요. 영선이는 그때마다 갖고 싶은 걸 말할 겁니다. 할머니가 힘들어하지 않을 만큼 작은 것으로...

                                                            (전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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