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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쟁이 님의 서재입니다.

아프니까 마법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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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비밀쟁이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7
최근연재일 :
2022.09.2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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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64,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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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1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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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계승(2)

DUMMY

계승(2)


처음의 전투 이후로 세현이 빠르게 발전한 이유는 각오와 강박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날 병원에서 최지희에게 고했던 것처럼 생명의 위협을 느껴서. 그리고 이런저런 놓치기 싫은 것들이 생겨서. 그게 세현을 채찍질했고, 짧은 시간에 비숍급이 되게 만들었다.


염혼이 그런 성장의 원동력을 기준으로 말하니, 세현도 잠자코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염혼의 예측에 대한 반응이었을 뿐이다. 그는 대관식이 지금이어야만 한다는 말에 동의하지는 않았다.


대관이란 말은 결국 왕좌에 있던 자가 물러난다는 의미. 여기서 염혼이 왕좌에서 내려선다면, 그가 갈 방구석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세현은 그를 설득하기 위한 말을 빼 들었다.


“염혼. 네 힘은 다른 세상의 것이잖아? 그럼 네 힘을 내가 전해 받는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네가 쓰나 내가 쓰나, 힘이 소비되는 건 똑같잖아.”


“아니, 다르다. 그건 명백하게 달라. 너는 이곳의 인간이고, 나는 다른 세계의 인간이니까. 주체가 달라지면 힘의 성질도 달라진다.”


염혼은 세현의 말을 칼같이 잘랐다. 얼핏 맞는 것 같은 세현의 주장은 이미 그들의 경험으로만 봐도 틀렸음이 증명되었다. 바람족과 땅족, 그리고 불족. 세현이 만난 부족 사람들이야말로 이세계인들의 후손이며, 그 힘이 변화해 형상계에 적응한 증거물이었다.


“이둔이 가진 힘은 원래 다른 세상에서 넘어온 것. 그게 이곳의 사정에 맞게 성질이 바뀌었지. 그럼 그게 왜 바뀌었는지 생각해봐라. 너도 이미 알고 있겠지? 답은 힘을 담는 그릇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염혼이 가진 힘을 온전히 세현에게 담는다면, 세현은 염혼보다 훨씬 가벼운 제약을 받은 채 막강한 힘을 사용할 수 있다. 어떤 존재라도 막대한 힘을 소모하면 회복기를 가져야만 하지만, 이 경우엔 최소한 광음의 사도들보다는 빠를 터다. 어쩌면 평범한 마력처럼 비교적 빠른 회복 속도를 가질 수도 있다.


문제가 되는 부작용이라고 해 봐야 당사자들의 경지 차이와 적합성 여부에서 오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 부분은 이미 염혼과 최지희의 사전 작업으로 해결해둔 상태. 심지어 모든 손해를 염혼이 가져갈 계획이니 사실상 세현에게 생길 부작용은 없다.


“이런 모든 걸 고려하면 지금이야말로 가장 적기지. 그동안 이것저것 고민하느라 결심이 늦었지만, 이런 상황이 되니 오히려 결정이 쉬워졌다.”


“제길, 너만 마음 편하면 다냐? 나는 어쩌고?”


“하하하! 이미 죽었어야 할 생명이다. 세상천지에 어떤 인간이 자기 세계의 소멸을 넘어서 살아갈까? 의무로 살아온 생이니, 이젠 가야 할 때가 된 거다. 편하게 보내줬으면 좋겠군.”


그의 말은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 노인의 자학성 허세가 아니었다. 모든 동족을 잃고 끝내 자기 세계를 장례 치른 왕이었기에 실린 짙은 무게감. 긴 의무감을 벗어던지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었다.


그걸 세현이 무슨 자격으로 막을 수 있을까?


“···그래, 알았어. 받을게. 받으면 되잖아?”


세현은 착 가라앉은 눈빛을 한 채로 애써 웃었다. 가족도 지인도, 처음 떠나보내는 것도 아닌데. 나름대로 이별의 고통을 겪어 온 세현이지만 지금의 헤어짐은 너무 아팠다.


하지만 염혼은 그가 말했던 것처럼 이미 갈 준비를 마친 사람이었다. 단순히 삶이 괴로워서 생을 놓으려는 젊은이도 아니었다. 갖은 고생을 하며 삶의 목표를 이룬 뒤 휴식하고자 하는 왕이었다. 그렇다면 보내주는 게 맞았다.


“뭘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나? 왜, 평생 나랑 놀면서 살려고 했나?”


“미쳤냐? 너 간다니까 속이 다 시원하다.”


“하하! 잘 됐군. 나도 후련하거든. 그간 너무 오래 버텨왔어. 이 의무만 마치면 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


“미친놈.”


세현이 투덜거리는 모습을 웃으며 바라본 염혼은 오른손을 뻗었다. 세현은 그 손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뭐하나. 악수를 모르는 건 아니겠지?”


“······.”


세현은 말없이 오른손을 마주 내밀었다. 서로 붙잡는 손. 정신상태였기에 온도가 느껴질 리 없었지만 따뜻함을 느꼈다.


“마지막 가는 길에 충고 하나 하지. 다른 사람 말에 휘둘리지 마라. 그게 누구라도.”


“그래. 그럴게.”


“하하하! 좋아. 다른 말은 필요 없겠지. 내 기억과 정보는 힘이 승계되면 안전하게 열어볼 수 있을 거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열어보도록.”


“거 마지막이라면서 잔소리는? 알아서 할테니까 걱정 붙들어 매라.”


“마지막이니까 하는 소리지. 아, 제사 같은 건 필요 없다. 기일이라고 굳이 챙기지 말고.”


“가기나 해, 멍청아.”


“그래. 고생 좀 하다가 천천히 와라. 딱히 기다리진 않고 있을 테니.”


“나도 한 200살 넘게 살다가 갈 거니까 심심하다고 보채지나 마라.”


“하하하. 이쪽을 기준으로 하면 천 년 정도인가? 이제야 쉬겠군. 잘 있어라, 한세현. 그동안 재밌었다.”


그 말을 끝으로 염혼이 사라졌다.


“미친 새끼. 그렇게 오래 살았으면서 왜 나한테 붙었냐고. 하, 제사라. 그런데 이세계인이 죽으면 영혼은 어떻게 되는 거지?”


세현은 투덜거리면서 정신세계를 벗어났다.


* * *


세현이 정신세계에 머물렀던 시간은 굉장히 짧았다. 현실 시간으로 치자면 약 1분. 다행히 팀원들은 아직 무사했다. 세현은 급히 그들의 모습을 확인하고 안심한 채 자기 몸을 살폈다.


염혼과 맞잡았던 손에서 넘어온 힘이 어느새 그에게 안착했다. 투귀에게 얻어맞은 몸은 완전히는 아니라도 멀쩡히 움직일 정도가 됐다.


염혼의 힘은 이미 그가 가진 마력과 융합했다. 안정된 마력이 기세 그대로 몸을 더 보강했다. 말하자면 저수지의 물이 오히려 댐을 더 굳건하게 만든 셈이었다.


세현은 여태 보기만 했던 힘의 크기에 전율했다. 방금까지 비숍에 불과했던 그가 다룰만한 양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느낀 순간, 염혼의 지식이 그의 뇌에 녹아내렸다. 힘을 다루는 방법과 그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것들이 세세하게 기록됐다.


최지희가 했던 설명. 우주를 자기 계산대로 사용하라는 그 말이 자연스레 체득됐다. 순식간에 커져가는 세현의 인지능력이 본인의 공간을 확인했다. 너무나도 넓은 공간. 지구나 달 따위로는 비교할 수 없을 크기의 공간이 그의 제어 하에 놓였다.


자기 안에 놓인 세계관이 강제로 넓혀지고, 힘이 그 길을 따라 내달렸다. 육체가 부들부들 떨리며 체온만으로 기온이 10도 이상 상승했다.


당연히 찾아온 격통은 지금까지 겪었던 그 어떤 통증보다 심각했으나, 비대해진 의식은 이를 찍어 눌렀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 세현은 먼 우주에서 직접 자기 몸을 관조하며 이상적인 형태로 주물렀다.


“아, 그래. 여기 이름이 그래서 시작의 무덤이었군?”


비대해진 의식이 바라본 이 우주의 일대. 세현은 거기서 어떤 형상을 확인했다. 아직도 남아있는 힘의 잔향과 약간의 의지. 그건 먼 과거 이 지역에서 강적을 맞이해 스러진 마법사들의 유해였다.


그리고 동시에 광음 놈들이 왜 이곳을 목표로 삼았는지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이곳에 남은 유해는 마법사들의 것만이 아니었으니, 놈들은 자기들 이전에 넘어온 광음의 유해를 노리고 달려든 게 틀림없었다.


그는 이 모든 내용을 이전까지 전혀 알지 못했다. 우주를 관조하는 능력이 없다면 결코 알아차릴 수 없었으리라. 반대로 말하면, 그게 가능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세현의 몸에 떨림이 잦아들고, 체온이 점점 안정됐다. 완연한 은색이 된 눈동자가 찬란한 광채를 내비치고 근처에서 싸우는 이들에게 향했다. 싸움을 좋아해 사고를 치고 다니던 다른 차원의 투귀는 곧바로 전의를 상실했다.


“어, 어떻게?”


수많은 싸움을 겪고 발달한 짐승의 감각. 강자를 포착하는 능력이 놈의 투지를 앗아갔다. 광음에서 본 사도들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의 압력이 방금까지 빌빌대던 평범한 마법사에게서 느껴졌다.


“우리 세계에선 그 물음에 이렇게 답하지. ‘죽을 놈이 알아서 뭐하게?’라고.”


세현이 널브러진 창을 띄웠다. 강력한 마력이 창을 타고 흐르며 회전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마법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투박한 힘의 응용. 그러나 거기에 들어간 작업은 인간이 흉내 낼 수 없을 정도로 복잡했다.


창이 막강한 인력을 발휘해 주변 공간을 빨아들였다. 여차하면 근처 우주의 구성을 파괴할 정도로 강력한 흡입력이 발생하자 세현은 다음 공정을 더했다. 창 주변의 공간이 격리하고, 현실의 공간과 막대한 거리를 부여했다. 공간 사이에 다시 공간을 만들어 완충제로 삼은 다음, 창의 인력을 그 핵으로 삼았다.


창에 담은 힘, 강력한 인력, 격리, 공간의 중첩, 그리고 안정화. 총 다섯 번의 공정이 숨 쉬듯 이뤄졌다. 세현은 피식 웃었다.


다른 마법사였다면 힘을 받았다고 해도 바로 사용하지는 못했을 터였다. 오히려 과도한 힘에 폐인이 되거나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오래전부터 염혼이 후계자로 점찍어 육성한 세현은 이를 굉장히 편안하게 다룰 수 있었다. 그간 겪은 정신과 성격의 무수한 변화가 완전히 달라진 힘에 쉽사리 적응했다.


세현의 팀원들은 하나같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겉모습은 그들의 팀장인 한세현 그대로였지만, 그 외의 모든 게 바뀐 느낌. 거의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은 위화감과 기세였다. 세현은 그들의 안위를 확인하고 투귀를 향해 서서히 다가섰다.


“야, 쇳덩이. 내가 궁금한 게 있는데.”


“뭐냐?!”


“이제 그 으하하 웃는 건 그만 둔거냐?”


“뭐야?”


세현의 말에 발끈한 투귀. 그러나 그의 몸은 이미 세현의 기세에 짓눌렸다.


“으흠. 확실히 처음 쓰는 힘이라 조절이 쉽지 않네. 너한테 쓰기엔 좀 과분한데?”


세현은 창과 투귀를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창의 모양이었지만 담긴 힘은 이미 평범한 냉병기라고 볼 수 없었으니, 비교하자면 가축이나 다름없는 자에게는 확실히 아까운 힘이었다.


닭을 잡기 위해 쓰는 힘이 소를 잡는 것보다 과도하면 앓아눕는 건 도축자가 된다. 그는 절약의 필요성을 느꼈지만, 다행히 이 창도 쓸모가 있었다.


세현은 하늘 너머의 우주에서 이 별을 지키는 룩 클래스를 확인했다. 그가 상대하는 광음의 괴인은 대식가였다. 놈은 광음에서도 사도를 제외하면 손에 꼽히는 강적이다.


“저쯤 되면 좀 큰 소쯤은 되겠지?”


“자꾸만 무슨 헛소리냐?!”


“너한테 한 말 아니니까 신경 꺼라. 아, 아니지. 아예 신경 쓰지 못하게 해주면 되겠네.”


세현은 왼팔을 뻗어 자신의 주력 마법을 사용했다.


<멸염>


화르륵 타오르는 불길도 잠시, 놈의 몸이 재조차 남기지 못하고 소멸했다. 잠깐 타오른 불이 아니었다면 화염 계통의 마법인줄도 몰랐을 것이다. 놀랍도록 향상된 마법의 성능에 만족하던 것도 잠시, 그는 조금 낭비된 힘에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적응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듯싶었다.


세현은 팀원들의 경악을 뒤로하고 하늘을 노려봤다. 어차피 오늘이라면 힘을 테스트할 대상이 지천에 널렸으니, 하루면 바로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말

아침이라면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저녁이라면 좋은 꿈 꾸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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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vs 한울(완결) 22.09.27 112 2 11쪽
96 최지희와 한세현 22.09.27 89 2 11쪽
95 vs 요타 22.09.26 82 1 12쪽
94 100년의 계획 22.09.25 81 2 11쪽
93 멀린(4) 22.09.24 74 1 12쪽
92 멀린(3) 22.09.23 77 1 12쪽
91 멀린(2) 22.09.22 83 1 12쪽
90 멀린(1) 22.09.21 90 1 12쪽
89 계승(4) 22.09.20 90 1 12쪽
88 계승(3) 22.09.19 88 0 11쪽
» 계승(2) 22.09.18 86 1 12쪽
86 계승(1) 22.09.17 84 1 11쪽
85 시작의 무덤(4) 22.09.16 83 1 11쪽
84 시작의 무덤(3) 22.09.15 81 1 11쪽
83 시작의 무덤(2) 22.09.14 86 1 10쪽
82 시작의 무덤(1) 22.09.12 90 1 10쪽
81 룩 클래스로 향하는 길(4) 22.09.09 87 1 10쪽
80 룩 클래스로 향하는 길(3) 22.09.07 89 1 10쪽
79 룩 클래스로 향하는 길(2) 22.09.05 86 1 9쪽
78 룩 클래스로 향하는 길(1) 22.09.02 90 1 9쪽
77 휴식(3) 22.08.31 90 1 10쪽
76 휴식(2) 22.08.29 91 1 10쪽
75 휴식(1) 22.08.26 93 1 10쪽
74 염혼 vs 쉐바 (2) 22.08.24 96 1 9쪽
73 염혼 vs 쉐바 (1) 22.08.22 97 1 9쪽
72 vs 일곱 머리의 용(4) 22.08.19 94 1 11쪽
71 vs 일곱 머리의 용(3) 22.08.17 97 1 10쪽
70 vs 일곱 머리의 용(2) 22.08.15 105 1 10쪽
69 vs 일곱 머리의 용(1) 22.08.12 99 1 10쪽
68 vs 쉐바(3) 22.08.10 97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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