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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기에 관하여] 인상적인 작법서들

소설 쓰기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면서 꽤 많은 작법서를 읽었다. 각자 나름의 장단점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내 기억에 남는 작법서를 남겨 본다. 웹소설 작법 보다는 종이책/대중문학 작법이라는 점을 미리 밝힌다. 웹소설은 비록 이런 소설들과 스타일은 많이 다르지만 결국 서로의 방법을 계속 차용하면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 STORY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 로버트 맥키


딱히 순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첫 손에 꼽으라면 역시 이 책을 꼽아야 할 것 같다. 소설은 아니고 영화 시나리오에 대한 책이지만 정해진 형식 안에서 어떻게 인물들의 갈등을 통해 사건을 구성하고, 캐릭터를 만들고, 주제를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교과서같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맥키는 사람들이 음악 좀 들었다고 "자, 교향곡을 작곡해볼까?"라고 덤비지 않으면서, 이상하게 영화 좀 봤다고 "시나리오나 한 편 써볼까?"라고 덤벼든다고 한탄한다. 시나리오는 대단히 기술적인 형식으로 짜여졌고, 수천년 전부터 이어온 이야기의 전통적인 형식에 통탈해야 정말로 재미있는 시나리오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600쪽이 넘는 책이지만 한 챕터, 한 챕터가 무척 재미있다. 게다가 글쓰기란 바로 작가 자신을 깨달아가는 것이라는 아주 기초적인 진실을 깨우치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소설이든, 만화든, 영화든, 어떤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라도 이 책은 꼭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가능하다면 여러 번.


2. 임팩트 있는 장면을 만드는 스토리 기법 / 조던 E. 로젠펠드


이 책은 확실히 "소설"에 대한 책이다. 소설 쓰다보면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설명하지 마라. 장면으로 보여줘라.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인물의 입을 빌려 대사로 주절주절 쓰지마라. 장면으로 보여줘라.’


소설을 쓰는 사람치고 멋진 장면을 쓰고 싶지 않은 작가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장면이 그냥 툭 튀어나올리는 없다. 그동안 쌓아올린 캐릭터와 충격을 주는 사건이 교차할 때 멋진 장면이 나온다. 이 책의 장점은 여러 가지 소설에서 그런 멋진 장면들을 추출해 그것이 왜 멋지고, 어떻게 그런 멋진 장면이 나왔는지를 설명해 준다는 점이다. 실제로 쓰는 방법보다는 그런 장면들의 예시를 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3. 문체, 소설의 몸 / 황도경


문체는 소설을 쓰는 사람의 가장 크고 높은 벽 중 하나다. 이 세상에 문장이 없는 소설은 없다. 문장은 소설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다. 이 책은 또다른 점에서 문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흔히 소설을 이야기 그 자체라고 생각하지만, 이 책에서는 소설을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본다. 즉, 소설이란 이야기 그 자체가 아니라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며, 그 전달의 매개체가 바로 문체이기 때문에 문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공기 없이는 소리가 전달되지 않듯이, 문체 없이도 이야기가 전달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사실 웹소설에서 문체는 거의 소외받는 것 같다. 재미있는 이야기와 매력있는 캐릭터를 고민하지, 좋은 문체를 고민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 하다. 웹소설에는 대부분 "필력"을 이야기하지 아무도 문체를 이야기 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필력은 너무나 광범위한 것이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진짜 재미있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작가만의 스타일, 작가만의 문체에 대한 고민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한국 소설(소위 말하는 순문학들)에서 문체가 어떻게 이야기와 주제를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고 있는지를 잘 풀어서 보여주고 있다.


4. 미저리 / 스티븐 킹


응? 왠 뜬금없이 미저리가 인상깊은 작법서야?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라는 작법서를 냈잖아? 라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유혹하는 글쓰기>가 스티븐 킹이 쓴 작법서는 맞지만 이 책의 절반은 자기 살아온 이야기고, 나머지 절반은 망할 놈의 부사를 쓰지 말라는 조언 밖에 없다. (근데 그 살아온 얘기가 진짜 재미있다.)


나는 <미저리>야 말로 스티븐 킹이 소설로 쓴 숨겨진 작법서라고 생각한다. 주인공 폴은 미저리라는 로맨스 모험 시리즈로 최고의 인기를 구사하는 작가다. 그렇지만 언제나 비평가한테는 까이기만 한다. 그래서 비평가들 코를 납작하게 해 줄 소설을 호텔에 처박혀 완성하고 신나게 음주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당해 애니라는 사람에게 구조 된다. 그런데 애니는 미저리 시리즈의 광팬이었다. 그녀는 폴을 자기의 외딴집에 감금하고 자기만을 위한 새로운 미저리 시리즈를 써내라고 한다.


처음에는 대충 써내려던 폴은 "편집자" 애니의 요구에 벼락을 맞은 듯 하다. 그녀는 폴이 죽여버린 미저리를 살려내면서 그 방식이 허무맹랑하다면서 독자를 속이지 말라고 협박한다. 미저리를 살리기만 한다고 생각했던 폴은 개연성을 요구하는 의외로 깐깐한 독자이자 편집자 애니의 요구에 따라 소설을 고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지금껏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자신의 소설쓰기에 대해 완전히 다시 깨닫는 계기가 된다. 


이처럼 <미저리>는 그 자체도 정말 재미있는 소설이지만, 소설을 쓰는 입장에서 보면 세 배로 재미있는 소설이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폴이 ‘돌아온 미저리’를 쓰는 과정을 한 번 세세하게 살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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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스트는 언제든 업데이트 될 수 있습니다.

*. 작법서를 재미있고 감명깊게 읽는 것과 자기 소설을 잘 쓰는 것과는 때로 아무런 상관이 없기도 합니다.

*. 지금 당장은 효과가 없는 것 같아도 언젠가 내 안에 쌓여서 좋은 소설로 이어지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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