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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악마 님의 서재입니다.

무한의 정령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깜냥현자
작품등록일 :
2020.04.20 20:44
최근연재일 :
2020.05.13 16:06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15,501
추천수 :
342
글자수 :
138,605

작성
20.04.30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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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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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글자
13쪽

고인 곳을 휘젓다

DUMMY

다치고 부상 입은 엘프는 그리 많지 않았다.


“케일 씨는 어디 다치신 데 없으세요?”


“딱히 다친 곳은······.”


없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리나는 다짜고짜 그의 옷소매를 걷었다.

크지는 않지만 가지에 쓸린 듯 붉은 상처가 보였다.


“가벼운 상처도 그냥 두면 큰일이라고요. 여기 앉아보세요.”


단호한 얼굴에 케일은 얌전히 시키는 대로 앉았다.


리나는 작은 가방에서 붕대로 쓰는 천과 빻은 약초 한 움큼을 꺼냈다.


“조금 쓰라릴 수 있으니까 참으세요.”


“아니, 아프다고 예고한다고 해서 아픈 게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


“남자가 돼서 뭐 그리 엄살이세요. 남자들은 다들 침만 바르면 괜찮다고 하는데.”


“그거야 허세지. 너한테 잘 보이려고.”


“그럼 제 앞에서 허세 좀 부려주세요.”


“내가 왜?”


“······.”


“아, 아아! 아퍼! 살살해!”


거칠게 상처에 약을 바르고 붕대를 두르는 리나.

이건 치료가 아니라 고문 아닌가?!


“너 진짜 치료사 맞아? 환자를 이렇게 막 대하는 게 어딨어.”


“눈치 없는 환자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정신 못 차린다고 해서요!”


누가 눈치가 없다는 거야?

아픈 걸 아프다고 한 거고, 허세가 없는 게 좋잖아.


속으로 불만이 가득한 케일이었지만, 엘프 마을 몇 안 되는 치료사답게 리나는 꼼꼼히 응급처치를 마쳤다.


실제로 팔을 움직였을 때 불편함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보통 붕대를 감고 나면 뻑뻑한 느낌이 나기 마련인데.


“······실력 좋네.”


“그걸 이제 아셨어요?”


뚱한 눈으로 쳐다보는 리나에게 어깨를 으쓱하는 사이 레이카가 다가왔다.


“인간, 일단 고맙다고 해두지.”


“고마우면 고마운 거지 고맙다고 해두는 건 뭔데. 너희 엘프들은 빙 돌려 말하는 게 취미냐?”


“크흠. 아무튼 그렇다.”


자신이 말하고도 아니다 싶었는지 애써 시선을 피한다. 그냥 솔직하면 될 걸 참 고생이 많다.


“그것보다 앞으로 어쩌냐.”


“······그렇군. 작업이 생각보다 더 걸리겠어.”


사고 이후의 작업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작업자들이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장비나 기구들 대부분이 망가지고 말았다.


엘프에게는 장비와 기구를 필요할 때마다 모여 수작업으로 만들기에 다시 장비와 기구를 확보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래도 작업 시간이 더 걸릴 듯 보였다.


“이렇게 해서는 언제 끝날지 모른다고. 그냥 내게 맡기지?”


“아무리 그래도 그건······.”


“상황이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군요. 그에게 맡기도록 합시다, 수호 대장.”


“촌장님, 그렇지만······.”


사고 소식을 듣고 나타난 린칸이 레이카에게 고개를 저었다.


“우리의 전통도 중요하지만, 케일 군이 아니었다면 주민들이 크게 다쳤을 겁니다. 그리고 앞으로 그런 일이 있지 말라는 법도 없지요.”


“그래도 인간 혼자서 해봤자······.”


“그건 걱정하지 마.”


혼자서 뭘 할 수 있냐가 문제라면 케일은 자신이 있었다.


“저택을 받치는데 필요한 녀석들 빼고 다 모여봐.”


삐빅.


명령하기 무섭게 저택에서 드론들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저, 저건······!”


“저게 다 뭐지······.”


갑자기 수백 가까이 되는 다양한 드론들의 등장에 린칸과 레이카를 포함한 엘프들이 크게 놀랐다.


“자, 오랜만에 일할 시간이다. 모두 자가 점검 시행!”


삐빅.


앞에 모인 수많은 드론이 케일을 보고 정렬했다.


각자 스스로 확인하고 문제가 있는 드론들은 저택으로 돌아가 공방에 대기했다.

추후에 케일의 수리를 기다리는 거다.


“좋아. 일단 잔해를 치우는 것부터 시작하자. ND-2을 중심으로 가벼운 잔해를 모으고, DD-1은 무너진 가지를 지탱하고 옮기는 걸 도와.”


명령이 떨어지자 같은 종류끼리 모인 드론들이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람 혼자 처리할 수 있는 자잘한 부산물은 ND-2가 맡았다.

기본적인 스팩이 평이해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만큼 이런 자잘한 작업에는 알맞았다.


무엇보다 스팩에 비해 포인트 소비가 적어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아 규모로 작업 속도를 배로 높일 수 있었다.


DD-1을 중심으로 커다란 가지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밑에 깔린 장비와 기구들을 ND-2가 빼냈다.


장비와 기구를 새로 만드는 것보다 망가진 걸 수리하는 게 빠르니 되도록 회수했다.


드론으로 전체적인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해도 세밀한 작업은 결국 엘프의 손을 빌려야 하니까.


“좋아. 잘 버티고 있어. 중심을 잘 유지해. 너무 세게 밀면 다른 쪽으로 넘어간다.”


자잘한 작업은 드론들에게 일임해서 맡겼지만, 커다란 작업에는 케일이 직접 지휘했다.


드론들이 명령 체계라는 게 말 그대로 시키는 대로 하므로, 세심한 조정이 필요한 작업에서는 상황에 따라 계속 명령을 내릴 필요가 있었다.


커다란 뿌리를 DD-1 무리가 몸으로 밀어내듯 들어 올렸다.


“자, 천천히. 조금만 더.”


너무 밀어내면 반대쪽으로 떨어진다. 들어갈 틈만 만들면 된다.


아래에는 엘프 마을이 있기에 무엇보다 가지가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도 떨어지듯 대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


필요한 정도로만 들어 올리고 그 사이로 ND-2를 집어넣어 작은 가지들을 제거해 최대한 무게를 줄인다.


이윽고 엘프에게 받은 밧줄을 ND-2 두 기씩 연결했다. 그리고 벌거숭이가 된 거대 가지를 밧줄로 받쳐 들어 천천히 작업장 쪽으로 옮긴다.


한 쌍으로 힘든 작업이지만. 30쌍, 총 60기를 이용하여 동시에 들어 올리니 거뜬했다.


근 엘프들이 며칠을 걸려야 할 일이 케일이 지휘하는 드론들에 의해 몇 시간 만에 작업이 끝났다.


이 과정을 본 엘프들이 놀란 표정으로 쳐다본다.


“대, 대단하군요. 그 많은 일을 어떻게 한 번에 처리를······.”


“그리 대단한 건 아닙니다. 단순 작업이라 할 수 있었던 거죠.”


아직 개선해야 할 사항이 많았다.


케일이 진정으로 원하는 드론은 그야말로 손발이 되어 움직여 줄 수 있는 그런 형태니까.


“케일 씨······.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건데, 얘들은 정령인가요?”


“굳이 따지면 그렇다고 할까.”


이 세계에는 이렇다 할 기계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도구나 기구에 가까운 것뿐이다.


아무래도 마법이라던가 정령이라던가 하는 게 있다 보니, 보다 나은 기계가 발명될 여지가 없는 거겠지.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마법과 정령이 있어 기계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하고 있는 거다.


하지만 염연히 마법이나 정령과는 다른 기계의 장점이 있다.


이처럼 대량으로 단순 작업에서는 최강의 효율을 보여준다.


“호오, 인간들은 이런 정령을 사용하는 건가?”


“아닙니다. 이건······ 저희 가문에서 비전으로 내려오고 있는 연구를 완성한 결과입니다.”


“대단하구만. 아주 신기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다른 엘프들과 달리 린칸이 유독 관심을 보였다.


대기 중인 ND-2을 유심히 살펴보기도 하고 조심스레 만져보기도 했다.


“······아니. 겉은 생각보다 차갑구만.”


너무나도 차가운 기체 감촉에 좀 놀란 듯 보였다.

아무래도 정령과 비슷해 보이기는 해도 근본은 아예 다른 거니까.


자신의 아버지가 하는 걸 보고 리나도 궁금했는지 케일 옆으로 다가왔다.


“그럼 얘들은 케일 씨가 만든 거네요.”


“뭐 그렇지.”


“정령은 자연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이어주는 것인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만들 수도 있는 거였군요.”


리나도 ND-2 하나를 쓰다듬었다. 애완동물을 다루는 듯하다.

옆에 있던 리에도 만지고 싶어 했지만, 리이나가 경계하며 막았다.


아니, 만진다고 큰일 나는 건 아니라고.


드론들이 해야 할 일이 끝나자 모두 모았다.

작업 중에 망가진 녀석은 없어 보였다.


마무리는 엘프들이 하기로 했다.


세심하게 살아 있는 가지를 가꾸고, 어머니 나무의 다친 부분을 치료하는 작업이라 케일과 드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케일은 저택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일이면 다시 출발할 수 있겠군요.”


“그렇겠구만. 이거 벌써 헤어지게 되어 아쉽게 됐구만.”


엉킨 가지에서 벗어난 부유 저택을 뒤로 물러나게 했다.


지면 일부가 떨어져 나가긴 했지만, 저택 자체의 손상은 거의 없었다.

바로 출발해도 괜찮을 정도였다.


옆에서 같이 지켜보던 린칸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내일 바로 출발할 생각인가?”


“그래야겠죠. 누구누구 씨는 제가 여기에 오래 머무는 걸 바라지 않을 테니까요.”


“······.”


슬쩍 레이카 쪽을 보며 케일이 말하자 그는 시선을 피했다.

린칸이 씁쓸하게 웃었다.


케일이야 농담 삼아 한 이야기지만, 엘프 중에는 여전히 경계하는 사람이 많았다. 단지 레이카만이 그런 건 아니다.


“너무 마음에는 두지 말게. 오랜 시간 동안 이렇게 지내다 보니, 세상에 우리만 있다고 당연하게 여겨서 그런 거네.”


“앞으로도 외부와 차단하고 사실 생각입니까?”


“아무래도 그렇겠지. 갑자기 사는 방식을 바꿀 수는 없으니 말이지.”


대표라고 해도 모든 걸 바꿀 수는 없다.


아마 린칸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현재 폐쇄적인 엘프 상황에 변화를 주고 싶었을지 모른다.


갑자기 나타난 케일을 환대하고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한 것도 그 때문이겠지.


짧은 기간이지만 조금은 외부인을 마을 주민 모두가 익숙해지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러나 실상은 드론을 보는 것과 같았다.


새로운 것보다는 기존 것에 감사한다.


변화보다는 안정을 바란다.


‘딱히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케일은 묘하게 이해가 되면서도 린칸이 느끼는 안타까움도 알 것 같았다.


어떤 것도 고이면 썩기 마련이니까.


“두 사람 다 무슨 얘기를 그리 심각하게 나누고 있는 거예요?”


“하하, 별거 아니란다. 그저 세상 얘기를 좀 나눈 거지.”


어느새 다가온 리나에 물음에 린칸은 애써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케일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묘하게 말을 돌리는 느낌에 리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금세 흥미를 잃었다.


“자, 이쪽 정리도 끝났으니 이제 식사라도······.”


“수호 대장님!!!”


이제 다 같이 돌아가려는 차에 멀리서 엘프 전사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뭔가 심상치 않은 걸 느낀 레이카가 얼굴을 굳혔다.


“무슨 일이냐?”


“크, 큰일입니다! 지금 당장 방벽 쪽으로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자세한 사정을 이야기하기보다 숨찬 어조로 엘프 전사가 말했다.

레이카는 더는 묻지 않고 급히 움직였다.


“아버지, 저도 가겠습니다.”


“그래······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조심하거라.”


“······네. 리나, 리에를 부탁하마.”


“응. 알았어, 언니.”


리이나는 리에를 리나에게 맡기고 레이카의 뒤를 쫓았다.

뭔 일인지 몰라도 꽤나 심각해 보였다.


“큰일이 난 걸까요?”


“모르겠구나. 사정을 말하지 않고 급하게 움직이는 걸 보면 요즘 몬스터들이 마을 주위에 나타나는 것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럼 저도 갈래요! 혹시 다치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잖아요.”


마을에 몇 안 되는 치료사인 리나다.

누가 다칠지 모르는 상황에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린칸은 곧바로 그러라고 할 수 없었다.


아무리 마을 안이라고 해도 위험한 곳이다.

무슨 몬스터가 나타났을지도 모르는데, 거기에 전투 능력이 없는 리나를 혼자 보낼 수는 없었다.


‘말린다고 안 갈 얘도 아니고.’


세 딸 중에 유독 호기심이 왕성하고 활동력이 대단한 딸이기에 린칸은 대충 예상이 되었다.


“케일 군. 미안하지만 부탁 한 가지만 해도 되겠나?”


“혹시 이 말괄량이 아가씨 때문이라면 상관없습니다.”


“누가 말괄량이라는 거에요?!”


유독 활기찬 엘프 소녀가 발끈했지만, 케일은 듣지도 않았다.


“······하하, 딸애를 잘 좀 부탁하겠네.”


“네. 뭐 위험하다 싶으면 들고 튀겠습니다.”


케일이 쓴웃음 지으며 대답하자 린칸은 안심했다.

모르긴 몰라도 레이카와 엘프 전사를 제압했던 실력이라면 믿고 맡겨도 괜찮을 거라 여겼다.


뒤를 케일에게 맡기고 린칸은 남은 막내 리에를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그럼 가볼까요!”


“그래. 네 아버지 말대로 위험한 데까지는 가지 말자고.”


“에~ 솔직히 케일 씨도 궁금하잖아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리나가 케일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툭 쳤다.

살짝 얼굴을 찡그리긴 했어도 케일은 부정하지 않았다.


솔직히 리나를 따라가지 않아도 몰래 가볼 생각이었다.


‘몬스터가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일 테니까.’


왠지 기분 좋아 보이는 리나를 데리고 케일은 문제의 현장으로 향했다.


작가의말

부처님 오신날이네요. 연휴의 시작입니다~

평온한 연휴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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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의 정령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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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원고 수정 일지 공지 2020. 05. 13 20.04.24 533 0 -
25 적 속에서 만난 아군 20.05.13 177 6 12쪽
24 제국군 20.05.12 171 8 13쪽
23 공작가 도련님 마린 +2 20.05.11 198 7 14쪽
22 예상외의 동행 +2 20.05.09 250 9 12쪽
21 드론 vs 몬스터 20.05.08 263 7 12쪽
20 키메라 +2 20.05.07 282 10 12쪽
19 기습 +2 20.05.06 297 9 14쪽
18 단서 20.05.05 354 9 12쪽
17 엘프 자매와 한 인간 (2) +2 20.05.04 386 10 12쪽
16 엘프 자매와 한 인간 (1) 20.05.03 425 10 12쪽
15 오우거 (2) 20.05.02 478 14 13쪽
14 오우거 (1) +2 20.05.01 494 12 13쪽
» 고인 곳을 휘젓다 +2 20.04.30 496 14 13쪽
12 사고 +2 20.04.29 526 11 13쪽
11 환대와 경계 +4 20.04.28 553 15 12쪽
10 세계수 원주민 조우 (2) +2 20.04.27 552 17 13쪽
9 세계수 원주민 조우 (1) +4 20.04.26 616 17 12쪽
8 UP +10 20.04.25 698 22 13쪽
7 이에는 이, 눈에는 눈 (2) +2 20.04.24 985 17 12쪽
6 이에는 이, 눈에는 눈 (1) +6 20.04.23 994 22 12쪽
5 반갑지 않은 손님 (2) +4 20.04.22 1,020 16 13쪽
4 반갑지 않은 손님 (1) +6 20.04.21 1,146 21 13쪽
3 제일 잘하는 걸 하자 +2 20.04.20 1,258 20 13쪽
2 유산에서 찾은 꿈 +2 20.04.20 1,389 19 12쪽
1 프롤로그 +4 20.04.20 1,485 20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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