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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곡박사님
작품등록일 :
2022.01.11 13:10
최근연재일 :
2022.01.15 16:40
연재수 :
3 회
조회수 :
106
추천수 :
4
글자수 :
16,261

작성
22.01.15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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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새로운 사람들

DUMMY

손이 저릿하다는 걸 느꼈다.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내뱉었다. 가슴팍과 뒷통수가 얼얼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정신이 없었다. 나는 지금 어디론가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눈을 꿈뻑이다가 흐릿한 시야가 점점 밝혀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제야 방금의 일이 떠올랐다. 어떻게 됐더라. 우리는 도망쳤고, 가까스로 추격에서 벗어났다. 쓰러진 추격자들을 처리하고, 고장난 타이어를 보며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지 고민 중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거대한 모래폭풍이 무리를 덮쳤다.


사실 모래폭풍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름만 거창하지 모래섞인 거센 비바람일 뿐이었으니까. 다만 시야가 더 가려지고, 공기가 텁텁해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주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제일 큰 문제였다. 일행은 각자의 이름을 부르며 서로의 위치를 애타게 찾았다.


나는 영식이를 불렀고, 민영이는 할머니를 찾았으며, 명구네 아저씨네는 두 아이를 그리고 철민이 형은 우리 모두를 하나씩 찾아 모았다.


“따라와요!”


모두 손을 잡은 채로 나아가 곧장 숨을 곳을 찾았다. 바로 옆이 톨게이트 였기에 숨을 건물이 있었다. 과거 도로교통공사에서 사용한 건물 말이다. 어서 폭풍이 멎고 지나가길 빌며, 우리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건물 안은 생각만치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가장 먼저 안을 살핀 민영이가 말했다.


“어 ···? 아저씨, 여기 인기척이 있어요.”


“당신들 겁도 없군.”


그림자 속에서 낮고 위협적인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장소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았는데, 그것이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 후로 정신을 잃어버렸으니까.




“그 녀석들인가?”


“아뇨, 머리에 거미 문신이 없어요. 그 개자식들은 아닌가봐요. 슬쩍보니까 밖에 사람이 죽어있던데. 걔네들하고 싸운 것 아닐까요?”


정신이 점점 또렷해진다. 이젠 어디엔가 묶여 있다.


귓가 좌우로 여성 하나와 남성 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어를 쓰는 쪽이 남성이었고, 권위적인 투로 말하는 것이 여자 쪽이었다.


“아무튼 살인에 익숙하다는 거네.”


“그럼 어떡하죠?”


“우선은 냅둬. 필요한 걸 가졌을지 모르니까.”


“글쎄요, 거지꼴이긴 한데.”


“보통내기는 아닐거야. 이런 세상에 고속도로 위를 나돈다는 건.”


“하긴 이 근방엔 인간 사냥꾼이 한 둘이 아니니까요. 잠깐, 대장? 얘 정신 차렸나본데요?”


하아, 세상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다. 앞에 사람의 얼굴이 보인다. 나를 살피는 건가? 남자의 두꺼운 손가락이 느껴진다. 억지로 눈을 뜨게 만든다.


“··· 아파요.”


“흐음, 잘 됐네. 재훈씨 불러와.”


여전히 약간의 몽롱함 속에 헤맬 때, 재훈이라는 사람이 부름을 받고 나타났다. 그는 훤칠한 키에 안경을 써 지적이게 보이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어딜 다쳤습니까?”


무언가 딱딱한 말투. 자신의 쓰임에 집중하겠다는 듯이 냉철하다. 그래, 그는 의사였다. 이런 세상에서 귀중한 대접 받는 직종. 사람 살리는 사람.


아프다는 감각은 후두부가 가장 심했다. 그러나 나는 입만 뻐끔 거리다가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힘 없이 축 쳐지는 팔. 곁에 있던 높임말 쓰던 남자가 대신 말했다.


“제가 머리를 가격했어요. 뒷쪽입니다, 선생님.”


“그건 위험한 방법이라고 말씀 드렸을 텐데요.”


“하지만 기절엔 효과적이죠. 내 명령이었어요. 확실히 하고 싶었거든요. 그자들이 보낸 사람일 지도 몰랐으니까.”


“의사로서 이런 폭력에 절대로 용납할 수 없습니다. 약속 잊으셨습니까?”


“설마요. 다만 난 이곳 사람들을 지킬 의무가 있어요. 밖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요?”


“ ··· 오후 내내 진료 하느라 바빴어서 모르겠습니다. 비바람이 그치니 공기가 안 좋다는 걸 알겠더군요. 별이 보이지 않아요 ··· 기침하는 사람도 많고요.”


“이 사람들, 사람을 죽였어요.”


거대한 손으로 내 뒷머리를 살피던 의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마쪽에 경멸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다행이 힘을 세게 준 것은 잠시였다. 의사는 한숨을 한 번 쉬곤 손을 내려놓았다. 다만 목소리가 더 낮고 차가워졌다.


“죽은 쪽이 감시자 입니까.”


“아마도요. 그래요, 이 사람들 악한 느낌은 없어요. 살기 위해 그런 걸 순 있죠. 큰 규모의 일행이에요. 가족 단위로요. 노약자 넷에 건장한 성인 다섯.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겠더라고요. 제대로 된 이야기는 들어야 알겠지만.”


‘다른 사람은 어딨어요?’


속에 있던 외침. 기운 없어 꺼내지 못하고 있을 때 의사가 비슷한 내용을 대신 물었다.


“다들 이런 식으로 기절 시켰습니까? 노약자들도요?”


“아니요. 건장한 사람들만 그랬습니다. 공격할 수도 있으니까요.”


높임말 쓰는 남자가 황급히 대답했다. 그나마 올바른 대답이었는지 의사는 그 부분에 대해 다시 대꾸하지 않았다. 의사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많아보였다.


“기절시키지 않은 다들 이들은 겁에 질려서 아무말도 하지 않아요. 특히 어린 애들은 울고만 있고요. 열댓살 되는 여자 아이도 하나 있던데 감기에 걸렸는지 열이 나는 중이에요. 혹시 몰라서 격리 시켜놨습니다.”


“감염된 흔적은요?”


“없었어요.”


“그건 다행이네요. 이 친구, 별 탈은 없을 겁니다. 충격이 커서 회복하는 데 조금 걸릴 뿐이에요.”


의사는 일어났다. 일어나기 전 영혼 없는 눈빛으로 날 내려보았는데, 그 눈빛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마치 내게 속삭이는 듯한.


‘그 사람들 고통스럽게 죽였나?’


그에게 차가운 분노가 느껴졌다. 내 속으로 무의식적으로 만든 그의 이미지가 아니었을까.


“좋아 그럼 이제 우리 대화좀 해볼까?”


대장이라 불렸던 여성의 얼굴이 위로 드리웠다. 눈 밑에 진한 칼자국 상처가 나있는 단발 여성이었다. 나이는 나보다 살짝 많아보였고, 형보단 살짝 덜해 보였다.


“걱정마, 나쁜 사람 아니니까.”




대한민국은 지금 크게 네 가지 세력으로 돌아가고 있다. 구정부, 인간 사냥꾼, 이름 없는 각개 생존 세력 그리고 좀비. 구정부 세력은 미지의 존재이다.


적어도 이곳에서 터를 잡고 있는 이들에겐 그렇다. 이름 없는 무리의 리더 박지선은 나와 철민형이 이야기하는 부산행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망할 세상에 아직 군대가 남아있다고? 웃기지도 않는 소리.”


그래, 철민 형이 곁에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무섭게 쏘아보는 이들의 시선을 그가 감당하고 있었으니까. 여기에 둘만 있는 이유는 나 때문이었다. 내가 형이 리더라고 솔직하게 말해버렸기 때문이다. 이들이 나쁜 사람이든 좋은 사람이든, 대화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형이었다.


다행이 이들은 우리를 그렇게 나쁘게 생각하진 않는 것 같았다. 박지선의 추궁에 내가 철민 형이 어떤 사람인지 소상하게 말해준 후로 더 너그러워진 분위기었다.


이들은 우릴 공격한 것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혹은 밖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정보를 대가로) 일행끼리 만나게 해주는 것을 약속했다. 또 먹을 것도 주고, 옷을 말리게 해주겠다고도. 다친 사람을 치료해준 것 역시 빼놓을 수 없고. 여긴 무언가 거대한 규모를 가진 생존 집단이었다.


철민 형은 이들을 믿기로 한 것 같았다. 특유의 덤덤한 말투로 우리가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려고 하는 지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아마, 그 편이 살아남는 데 유리했거나, 적어도 우리를 인간답게 대우했기 때문 아닐까 생각했다.


“바깥에 라디오가 있으니까 확인시켜 드릴 수 있습니다.”


“라디오 같은 건 우리에게도 있어. 쓸모가 없을 뿐이지. 항상 지지직 거리는 소리만 나오거든. 당신네들이 들었다는 그 방송. 주파수가 뭐지?”


철민 형은 주저없이 주파수 알려주었다. 그러자 박지선은 형이 말하는 대로 라디오를 맞추게끔 사람을 시켰다.


나는 눈을 굴려 포동포동한 몸집을 가진 남자를 바라봤다. 저자가 내 눈을 뜨게 만든 사람이었다. 아직 이름은 몰랐고, 나랑 또래가 비슷해 보인다.


남자는 끄응거리며 형이 말한 주파수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약간의 시간이 지나도 라디오에선 지지거리는 소리만 나왔을 뿐.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그였다.


“거봐, 소음 밖에 안 나잖아. 방송 같은 건 잡히지 않아.”


“설마.”


“혹한 내가 바보네. 하, 바깥 세상 같은 건 이제 거의 잊고 있었는데···.”


순 잠잠코 있던 철민형이 갑자기 일어났다. 그리곤 직접 라디오로 향했다.


“괜찮다면, 제가 맞춰보겠습니다.”


“해봐.”


하지만, 한참을 라디오와 씨름하던 형은 창백해진 얼굴이 되었다. 방송은 시간이 지나도 잡히지 않았다. 지직거리는 소리를 배경으로 긴 정적이 흘렀다.


“그런데 그게 무슨 소리죠? 잊고 있다는 게.”


조용함을 참을 수 없던 내가 용기 내어 물었다. 박지선은 내쪽을 흘겨보더니 쌀쌀맞게 대답했다.


“어느덧 이 세상에 도로 위 무법자와 고통받는 우리네 밖에 남지 않았다 생각했거든.”


내가 궁금했던 것은 ‘바깥 세상’이라는 단어가 담은 의미였다. 바깥 세상이 있다면, 안쪽 세상도 있는 법. 무법자와 고통받는 이들의 세계. 맥락상 두 세력의 충돌이 이들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인 듯 싶었다.


“저희와 마주한 사람들을 감시자들이라고 부른다고요?”


“우리가 그렇게 부르는 게 아냐. 자기들이 정한 이름이지.”


왠지 들어본 것 같다. 감시자들. 우리 같이 떠돌이 무리 하나의 이름이 아닌, 거대한 집단의 총칭. 대표적 인간 사냥꾼 집단이다. 라디오에서 들었다. 이들에겐 계급이 존재한다. 마치 과거의 시대로 돌아간 것 처럼. 힘에 지배 받는 시대 말이다.


“당신들 벌집을 건드린 거야. 아주 기똥 찬 방법으로.”


박지선은 어린 아이에게 겁주는 선생님 같은 표정을 지었다.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걔들은 일꾼 죽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거든. 당신들이 차를 세웠던 터널 앞 말야. 거기가 그 새끼들의 수확처였어.”


‘그리고 우리의 가족이 묻힌 곳이기도 하고.’


아앗. 또 다시 환청같은 것이 귓가를 강타했다. 나는 헐레벌떡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실제로 말한 건지 내 환상인지 혼란 스러웠다.


“네들이 ‘죽인’ 녀석들. 꽤나 굶주렸었을지도.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을 거거든. 일꾼들에겐 목표치라는 게 있어. 사냥감을 조달하지 못하면 그들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지 못해. 그 말은 곧 본진도 식량 공급에 차질을 빚는다는 거지.”


철민 형의 시선이 오로지 라디오를 향해 있을 때, 그 모습이 재미 없었는지 박지선은 내게 완전히 고개를 돌렸다.


“이게, 우리가 당신들에게 호의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야. 우리의 작은 전쟁에 큰 도움 주었어.”


“작은 전쟁···?”


“우린 감시자들을 처단할 거야.”


나는 두 가지 대답을 섞어서 내뱉었다.


“왜요? 어떻게요?”


박지선은 코웃음치며 자신의 눈 쪽 흉터를 가리켰다.


“이짓 해놓은 애들이 저 새끼들이거든. 어떻게 처단할 거냐고? 싸워야지. 싸워서 얻어내야지.”


“무엇을요···?”


“먹을 것. 잠잘 곳. 우리의 인생.”


나는 보았다. 그녀가 손바닥에 자국이 남을 정도로 세게 주먹 쥐는 모습을.


“그리고 전기.”




배정 받은 방으로 안내 받은 우리. 그곳엔 이미 다른 일행과 영식이가 있었다. 찬 기운에 추워 온 몸을 웅크리고 잠들어있는 모두들. 그 모습에 왠지 모르게 눈물이 돌았다.


“고생했어.”


누구보다 고생했을 철민 형. 근심이 많아 보인다. 형은 아직 부산행에 대한 의지를 버리지 못한 듯 했다. 떠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형과, 말릴려고 하는 박지선. 그녀는 우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녀의 세력에 합류 할 것을 제의했다.


“어때? 우리도 감시자들 만큼이나마 세력이 커. 여긴 작전 구역이야. 감시자들을 감시하는 망루라고 해야할까? 근처에 괜찮은 거처를 마련했어. 여기와 비교하면 쨉도 안될 정도로 큰. 부산행? 생존자캠프? 그런 것 필요 없이 합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우린 좀비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 지 알고 있거든. ”


형은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


“어떻게 할 거에요?”


내 물음에 철민이 형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것이 그날 밤의 마지막 대화였다. 그리고 아침이 밝았다.


“이제 결정 해.”


아침부터 박지선이 찾아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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