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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영JY 님의 서재입니다.

아공간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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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잔영JY
작품등록일 :
2024.05.08 10:28
최근연재일 :
2024.05.08 13:35
연재수 :
2 회
조회수 :
241
추천수 :
14
글자수 :
10,276

작성
24.05.08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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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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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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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프롤로그

DUMMY

#프롤로그




금수저라고 불릴 만큼 유복한 집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는 잘 자랐다고 누구에게나 자부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누구보다도 아껴주셨고, 두 분의 사랑스러운 결실인 나 역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아니 어머니와 반씩 나누며 성장했다.

그렇다고 마냥 사랑만으로 버릇없게 기르지도 않으셨다.

내가 잘못하면 때로는 엄한 가르침도 주셨다.

가끔은 회초리도 때리셨는데, 나는 내게 회초리를 때리는 아버지가 맞는 나보다도 더 고통스러워하셨다는 걸 여전히 기억한다.

아버지는 내게 단순한 아버지가 아니라, 나의 스승이었고, 나의 친구였고, 때로는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술만 마시면 하시던 말씀은 항상 비슷했다.


“현승아.”

“네, 아빠.”

“너는, 나중에 커서 결혼하면 네 가족은 끝까지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빠처럼요?”

“그래, 이 아빠처럼.”


아버지께서 왜 아버지의 책임감을 항상 강조하셨는지를 성인이 되어서야 알았다.


“네 할애비는, 이 할미가 어릴 때 도망쳤다. 네 애비만 남겨놓고.”


왜 우리 집에는 친할아버지가 안 계시는지도 알았다.

아버지께서는 아마도, 나에게 강조하던 책임감의 몇십 배를 본인 자신에게 되새기고 있으셨으리라.

자신의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지 않겠다는, 철저한 다짐과 책임감 속에 평생을 살아가신 분이었다.


그런 내 아버지가 이제 돌아가신단다.

만취해서 운전대를 잡았던 놈에게 당한 사고였다.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취업 시즌에 바쁜 와중 걸려 온 전화를 받고 아버지께서 수술에 들어가신다는 이야기까지 들었을 때는, 머릿속이 하얗게 질렸다.


“혀, 현승아! 네 아버지가! 아버지가!”


얼마나 우셨는지, 거의 기진맥진해 계시던 어머니가 나를 붙잡고 통곡하고 계셨다.

정작 나는 실감이 나질 않았다.

언제나 나와 어머니를 책임져주실 것 같던 든든한 산이 눈앞에서 무너진 것이었다.


아버지의 발인 날에야 비로소 나까지 무너졌다.

한 번 흐른 눈물은 주체할 수가 없어서, 주저앉아 몇 시간을 흐느꼈다.

더는 눈물을 흐를 수 없을 정도까지 울고 나서야, 내 눈에 어머니의 모습이 들어왔다.

아버지의 ‘책임감’이 고작 스물다섯의 내게로 오는 순간이었다.


발인을 마치고야 사고를 낸 놈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현인그룹의 3세, 그 중에서도 내놓은 자식이라고 소문난 막내였다.

당연히 당사자는 사과하러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고, 그룹 비서실에서만 회유를 위해 몇 차례나 찾아왔다.

얼마를 제시해도 받을 생각은 없었는데, 형사 공탁이라는 제도가 생겼다.

유가족 대신에 법원에 합의금을 공탁하면, 내가 받지 않아도 법원에서 알아서 감형해주는 좆같은 제도였다.


─일금 5억 원을 공탁하는 등, 피해자와 합의에 힘쓴 점을 미루어, 법원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다.


불구속 재판으로 구치소 하루도 가지 않고서 집행유예, 사실상 법원이 인정해준 면죄부를 받은 놈을 보았을 때, 속에서 천불이 끓어올랐다.

우리 가족을 위해 아버지가 보였던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노력은, 그냥 저 판사의 망치 몇 번에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



망자(亡者)는 사라지지 않는다.


대신에 고통스러운 그리움으로, 추억으로, 기억으로 남아 가슴 속에 살아간다.

펫 로스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던가.

사람이 아니라 오래 키운 애완동물조차 ‘증후군’을 일으킬 정도의 고통을 남긴다.


가족의 죽음에 붙는 증후군 따위가 없는 것은, 그 단장(斷腸)의 고통을 증후군이나 어떠한 병증 따위로 정의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일 터다.


힘들어하는 어머니 대신에, 아버지 서재는 내가 정리하기로 했다.

아버지는 나보다도 훨씬 많은 세월을 살아오신 분이었지만, 내가 방에 가지고 있는 물건보다도 더 적은 물건만을 서재에 보관하고 계셨다.

개인적인 무언가가 왜 필요하지 않으셨겠는가.

아버지에게도 취미가 있으셨을 터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의 취미를 알지 못한다.


아내와 아들, 그리고 어머니를 위해 책임감만으로 살아오신 아버지의 인생을, 나는 감히 평가할 수가 없어서 다시금 한동안 끅끅대며 눈물을 쏟았다.

슬픔이 전염된다는 것을, 스물다섯의 나이에 알게 된 것이 이른 것인지 느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안 이후에는 차마 어머니 앞에서 내 슬픔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조용히.

숨죽여 울었다.


한참을 울다가 아버지 서랍의 마지막 칸을 열었다.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아서 다시 닫으려는데.

덜그럭, 무언가 소리가 들렸다.


“... 뭐지?”


다시 몇 번을 여닫아도 서랍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서랍장을 아예 빼서 확인하자, 서랍 밑에 붙어 있는 무언가가 보였다.


“... 열쇠?”


그것도 노란색의, 황금 같은 재질의 아주 고급스럽고 고풍스러운 열쇠였다.

주변에는 각종의 휘황찬란한 색깔의 보석으로 치장되어 있기까지 했다.

대체 열쇠가 이 정도라면, 이 열쇠로 여는 건 무엇일까 궁금하기까지 할 정도.

거기에, 왜 아버지가 이런 열쇠를 찾기도 힘들 장소에 숨겨두셨을까. 하는 곳까지 생각이 닿자, 더 열쇠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그저 비싼 물건이라 숨겨두셨던 걸까?


의문을 안고 테이프로 서랍 밑에 붙어 있는 열쇠를 만졌을 때.

시야의 구석에서부터 세상이 다른 세상으로 덮어씌워지기 시작했다.

불과 몇 초도 지나지 않아, 거기는 내가 있던 서재가 아니었다.


대신에 펼쳐진 세상은.

셀 수조차 없이 수많은 책장과 책들로 가득한 전당(殿堂).


놀라 열쇠에서 손을 떼자, 전당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순식간에 서재가 나타났다.

아버지의 죽음에 너무 큰 죽음을 받아서 미쳐버리기라도 한 걸까?

다시 열쇠에 손을 가져다 댔을 때, 역시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환각이라기엔 너무 생생한 광경에, 자연스럽게 책장 쪽으로 다가갔다.


“환각이... 아니야?”


명백하게 현실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책의 촉감.

몇 차례 더 책장을 만지다가, 마침내 한 권의 책을 뽑았다.


“이게 뭔 글자야?”


지구에 있는 모든 글자를 아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내 지식 속에 있는 지구의 문자 가운데 이와 비슷한 건 전혀 없었다.

그래도, 여기가 더는 내 방이 아니라는 건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열쇠가 일종의... 열쇠... 같은 건가?”


열쇠에 손을 대면 새로운 공간이 열린다.

그러면, 대체 이 열쇠는 무엇이며 이 공간은 어디고, 아버지는 이런 걸 왜 가지고 계셨던 걸까?

의문을 가득 품고 손 위의 열쇠를 뚫어지라 바라볼 때.


“맞다.”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를 바라보니, 아무도 없었던 공간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런데 어딘가 낯익은 모습이었다.

처음 보는 남자에게서 아버지의 모습도 보였고 내 모습 역시 보였다.

나와 아버지를 닮은 남자.

그리고 곧, 기시감의 이유를 떠올릴 수 있었다.


“하, 할아버지?”


나와 아버지를 닮은 남자란 말은 틀렸다.

나와 아버지가, 그를 닮은 것이었다.

할머니가 지니고 있던, 평생 원망하면서도 버리지 못하셨던 빛 잔뜩 바랜 한 장의 흑백사진 속의 남자.

그가 내 눈앞에 있었다.

그것도 하나도 늙지 않은, 그 모습 그대로.


“할아버지 맞아요? 정말로?”

“그렇단다.”


나와 거의 나이 차이도 없는 모습이었지만, 할아버지는 연륜이 한껏 묻어나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을 줄 알았다.

그의 푸근한 미소가 무너진 내 가슴에 다가와 스며들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건만, 왜 나는 사진으로만 보았던 이 남자의 미소에 위로받는가.

그게 혈육의 의미였다.


“할아버지... 어떻게...”


할 말이 많았는데,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버버 거리는 나에게 다가와 등을 토닥인 할아버지가 앞장서며 말씀하셨다.


“잠깐 걷자꾸나.”


그와 동시에, 공간이 다시금 바뀌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나무가 우거지고, 새가 지저귀는 숲길이었다.


“거기 계속 서 있을 게냐?”

“아, 아뇨.”


앞장서서 걸으시던 할아버지를 황급히 뒤따랐다.

옆에 나란히 걷기 시작한 나에게, 할아버지는 다짜고짜 물었다.


“현수는... 어떻게 갔더냐.”


아버지의 이름이 나올 줄은 예상치 못하고 있었기에, 잠시 당황하다가 간신히 울컥 올라오는 무언가를 억누르며 말했다.


“아,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어떻게 아셨죠?”

“네가 이 공간에 있으니.”


할아버지가 턱짓으로 내가 오른손에 꽉 쥐고 있는 열쇠를 가리켰다.


“그건 본디 네 아버지에게 보낸 게다. 그 아이는 끝까지 내게 마음을 열지 못하여 이 공간에 들어오지 못했다만... 계승된 너라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로구나.”

“이 열쇠는 역시 할아버지께서 보내신 게 맞았군요.”


다시 차오르는 눈물로 흐려진 시야로, 할아버지를 향해 짐짓 원망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아버지께서, 할아버지를 많이 보고 싶어 하셨어요. 평생.”

“그래, 그랬겠지.”


할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네 아버지와 할머니, 그러니까 내 아들과 아내를 다시 보는 것. 내 일평생이 그걸 위해 바친 길이었다면, 믿겠느냐?”

“믿습니다.”


주저 없는 나의 답에, 할아버지가 놀란 듯 눈을 치켜 뜨셨다.


“아버지의 가족에 대한 책임감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닐 테니까요. 할아버지 역시 가족을 버리고 싶어서 버린 것이 아니고, 찾고 싶지 않아서 찾지 않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고맙구나.”


잠시 벅찬 듯 말을 잇지 못하고 계시던 할아버지가, 얼마나 지났을까? 천천히 입을 열어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해주는 옛날이야기처럼.


“어느 날 눈을 떠보니... 다른 세상이었다.”


믿기 힘든 내용으로 시작하는 것까지, 정말 옛날이야기 같았지만, 그건 할아버지의 인생이었다.

이계(異界)에 떨어져 세상에 없던 처음 보는 동물들과 괴물, 그리고 야만스러운 인간들과 싸우며 평생을 보내셨다.

그런 와중에도, 할아버지는 지구로 돌아올 방법을 악착같이 찾으셨다.

그 결과 할아버지가 배우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마법’이었다.


“오직 마법만이, 나를 고향으로 되돌릴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나는 목숨을 걸고 노력했고, 전인(前人)들이 개발한 모든 마법을 통달했으며, 그를 나아서 미답(未踏)의 영역을 개척했다. 그리고 그 끝에 알아냈다. 차원을 일방으로 넘어갈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예? 그렇다면...”

“누군가 반대편에서 문을 열어줘야 했다. 그걸 알아차렸을 때는 내가 이곳에 떨어지고 50년이 지났을 시점이었다. 이미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지구는 내가 있는 곳과 시간 배율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겐 50년이란 시간이었지만, 지구에서는 불과 5년 정도 지났을 뿐이었단다. 다행히도 나는 제법 오래 살 수 있었다.”


긴 수명과 1/10이라는 시간 배율까지.


“이미 늦었다는 절망이 아직 늦지 않았다는 희망으로 바뀌었을 때. 나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면서, 할아버지가 손을 뻗어 공간 전체를 가리켰다.


“어떻니, 내 마지막 깨달음이.”

“이게...”


자신의 모든 걸 걸어 고향으로 돌아오고자 했던 한 남자의 집념이 만든 공간.


“이 공간을 창조하기 위해 187년, 공간을 모두 채우기 위해 21년, 마지막으로 그 열쇠를 만들기 위해 133년, 열쇠를 네 아버지에게 전달하기까지 17년이 걸렸다. 그리고... 그 후로 150년이 지나 네가 이 공간에 들었구나.”


합계 500년이 넘는 아득한 시간.

대체 한 인간의 책임감과 집념이 어느 정도에 도달해야 저 세월을 한 가지 목표를 위해 매진할 수 있을까?


“지구로 온전히 넘어갈 수 없다면, 중간에 완충공간을 형성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내 핏줄들에게 마법을 가르쳐서, 두 세계로 통하는 통로를 연다. 그것이 내 목표였다.”

“여기가 완충공간이군요.”

“정상적 공간과는 거리가 있으나, 이 또한 공간을 닮아 있는 공간이니, 아공간(亞空間)이라 부르면 될 게다.”


아버지의 죽음이 가장 큰 충격일 줄 알았는데, 그에 버금가는 충격이 계속해서 날 강타해서 제대로 된 판단이 되질 않았다.

그러나 그 와중에 할아버지의 말씀 중 하나가 내 뇌리를 스쳤다.


“자, 잠깐만요. 할아버지! 저한테 마법을... 가르치신다고요?”

“그를 위한 아공간이지.”


할아버지의 손짓 한 번에, 다시금 숲길이 거대한 도서관을 방불케 하는 전당으로 변했다.

내가 처음 이 ‘아공간’에 들어와서 보았던 그 광경이었다.


“그러면 제가 진짜로 마법을...”

“여기 너 말고 배울 다른 사람이 있겠느냐? 싫으냐?”

“아, 아뇨. 싫은 게 아니라요...”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편이 맞았다.

솔직히 이 아공간 내부가 이 정도로 현실적이지 않았더라면, 마법의 존재 따위를 믿을 수 없을 터였다.

그런 내 걱정을 모조리 꿰뚫고 있다는 듯한 시선으로 날 바라보시면서, 할아버지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셨다.


“이 최현철의 손자라면, 꼭 해낼 수 있을 게다.”


할아버지께서 웃으시던 그 순간이었다.

혹시라도 놓을세라 오른속에 꽉 쥐고 있던 열쇠가 덜덜 진동하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왜...! 할아버지! 이거 괜찮은 거 마, 맞죠?”

“그럼, 괜찮고 말고.”


서서히 녹아내리는 열쇠가 액체로 화하여 팔을 감고 타올랐다.

녹은 금이라면 엄청난 온도일 텐데도, 다행히 전혀 뜨거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안도하는 것도 잠시.

몸 전체를 거미줄처럼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휘감은 열쇠, 아니 열쇠 녹은 무언가가 그대로 빛을 발했다.


“끄으으으아─!”


괜찮다면서요!

순간 비명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통증이 전신을 강타했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며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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