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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9,313
추천수 :
927
글자수 :
790,487

작성
22.06.12 14:00
조회
80
추천
10
글자
12쪽

응급처치

DUMMY

인간이 아니라 누더기 괴물이 된 기분이었다. 흰이 마법을 써서 내 상처를 대충 땜질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걸어 다니는 데 아무런 지장도 없었다. 하지만 그 마법의 성능은 딱 거기까지였다.

빨리 제대로 된 의사를 만나지 않으면 안 되겠는데.


"저 아이들이 누구 아들들인지 알았습니다. 제 바로 위 누님이 보냈더군요."

"그럼···당신들도 아이가 있었더라면 저 나이 정도 됐겠네요."

흰은 고개만 까딱일 뿐이었다.


"둘 다 안 죽였습니까?"

"한 명은 죽을지도 모르지만, 운이 좋다면 살아나겠죠."

"왜 죽이지 않았죠?"

"저도 잘 모르겠네요. 애들이라서? 하지만 솔리들은 그런 걸 신경쓰지 않죠. 제가 북부인도 솔리도 아닌 애매한 존재라 그런 거 아닐까요."


우리는 짐을 챙겨 바로 내 차에 탔다.

이 여관도 위치가 드러났으니 또 거처를 옮겨야 하는 신세였다.

"아이들을 보낸 걸 보니 누님은 오시지 않겠죠. 나이가 있으니 그럴 만도 하겠습니다만."

"오지 않으면 찾아가서 죽일 겁니까?"

"글쎄요.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거기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도 노인에 가까운 상태라고 하지 않았나? 아까 잠깐 본 바로는 노인과는 너무 거리가 멀어 보이던데. 여기도 어지간한 청년들은 때려눕힐 정도로 강한 노인들이 많긴 하지만.

어쩌면 2세를 낳겠다는 내 의뢰인의 소망이 아직 헛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여자에게 왜 그리 매몰차게 대하는 겁니까?"

"누구, 실비나요?"

흰은 벨트조차 매지 않고 뒷좌석에 드러누워 있었다. 사고 나면 어디 한 군데 터지기 딱 좋은 자세인데. 나는 무턱대고 차를 몰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실비나에게 매몰차다고? 어쩌면 아까는 확실히 그랬을지도 모른다. 좋은 사람 만나라느니, 그런 말은 안 하느니만 못했겠지. 그건 실비나에게 분명한 도발이자 모욕으로 받아들여졌을 터였다. 뭐,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는 못 하겠지만.


"내가 실비나에게 어디까지 해 줘야 한다는 건지 모르겠군요."

"그런 의무가 있다는 건 아닙니다. 그냥 궁금할 뿐이죠. 더 잘 해줘도 될 텐데."

"착각하는 거 같은데, 나와 실비나는 당신이랑 당신 부인 같은 사이가 아니에요."

"그야 아니겠죠. 저와 레티샤 같은 사이는 이 세상 어디에도 또 없을 테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말을 하다니.

"그럼 당신이 좋아하는 건 그 여자입니까?"

"그 여자라니, 누구요?"

아주 잠깐 고민하다가, 이내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한밤중에 고함을 지르며 운전하는 택시 기사라니.


룸미러를 통해 살펴본 흰의 표정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온했다.

"설마 유리오를 말하는 건 아니겠죠? 설마?"

"그렇게 과하게 흥분하면 오히려 더 의심스러운데요."

그가 나를 놀리고 있다는 걸 모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건 인간으로서 용서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내가 유리오를? 차라리 유리오가 내 딸이냐고 물어봤을 때가 훨씬 나았는데.


적어도 그건 어이가 없었을 뿐 불쾌하거나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내가 준 사진 못 본 겁니까? 딱 봐도 어린애잖아요."

"전 여기 사람들 나이를 잘 분간하지 못하니까요."

거짓말쟁이 솔리 같으니라고. 지금 나는 늙은이 손바닥 위에서 쩔쩔매는 꼴이었다.


"뭐가 궁금한 겁니까, 대체? 할 말만 해요."

"그 유리오라는 사람이 대체 누굽니까?"

룸미러 너머로 나와 흰의 눈이 마주쳤다. 이상하단 말이지. 선글라스를 끼는 이유 중 하나는 다른 사람과 시선을 마주치는 게 거북해서였다. 하지만 저 남자는 언제나 선글라스 너머의 진짜 눈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이거 참, 북부인으로 살기 서럽네. 어차피 한배를 탄 거 전부 다 이야기하는 게 맞는 건지도 모르지만.

"스승님의 딸입니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네요."

"그런 건 또 어떻게 아는 겁니까?"

"인간은 아주 나약한 존재라는 걸 순순히 받아들이세요."


그가 몸을 일으켜 앉았다. 여전히 벨트는 매지 않은 상태였다. 교통경찰을 마주치게 된다면 바로 벌금 행이다.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유리오 알첸브라임. 내 스승님의 하나밖에 없는 딸이라니까요."

"보통 이런 이야기에 나오는 딸은 늘 하나밖에 없더군요."

"그야, 보통 우리는 솔리들처럼 자식을 여덟 명씩 낳지 않으니까요."


흰이 내 콘솔박스에서 유리오의 사진 한 장을 꺼내 들고는 살펴보았다.

"사진 속 모습으로부터 다섯 살 정도 더 먹었을 거라고 했었나요."

"네."

"아이들은 빨리 자라는데. 이제 못 알아볼지도 모르겠는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유리오라면 나를 알아보겠지만 나를 외면할지도 모른다.

"왜 스승님 딸을 당신이 찾습니까? 당신 스승은 어디 가고요."

"저도 모릅니다."

"모른다고요?"

"몰라요."

죽었는지, 살았는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어느 날 아무 흔적도 없이 말 그대로 증발해 버렸으니까요."

그리고 유리오는 제멋대로 제국 사냥꾼의 길에 뛰어들었다. 제 엄마를 따라가겠답시고 말이다.

"열두 살이었나, 열세 살이었나. 그런 애한테 계시가 내려오리라는 생각조차 못 했죠."

"세상에는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은 법이랍니다."


유리오는 정말 계시를 받았고 정말 사월을 뛰쳐나가 버렸다. 그리고 그 뒤로 돌아오지 않았다. 자기 엄마처럼.

어딘가에서 살아 있다는 건 알겠지만, 그 이상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택시를 몰며 유리오의 사진을 뿌리고 다녔다. 누군가가 정보를 물어다 주기를 기대하며.

"이상한 이야기네요."

"어디가 이상하다는 거죠?"

흰은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였지만, 대화를 더 이어 나가지 않았다. 대신 주제를 슬쩍 돌렸다.


"이런 질문을 하면 불쾌할지도 모르지만, 그 아이가 살아 있을 거라 생각하는 이유가 뭡니까?"

전혀 장난을 치거나 놀리는 기색이 아니었다. 이 질문은 진지한 그의 본심이었다. 학교를 막 졸업하자마자 혼자 집을 뛰쳐나가 버린 여자애. 어디에서 어떻게 죽었거나 어떤 험한 꼴을 당했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 상식적이긴 하지. 문제는 유리오가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유리오의 아버지 역시 사냥꾼이었죠. 나와는 그리 잘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당신이 그 애 아버지일 가능성은 아예 없습니까?"

"여기다 내려 줄까요?"


유리오가 내 딸일 가능성은 그야말로 0퍼센트, 북부에 유채꽃이 필 확률보다도 낮았다. 그야 아예 없으니까.

"내 스승님이 몇 살인지는 압니까?"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내 스승님은 우리 엄마랑 나이가 비슷해요."

"당신은 엄마가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분명 그렇게 말했었지. 사람의 아픈 곳까지 공격하는 잔인하고 비정한 솔리 영감탱이 같으니. 과연 나는 엄마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스승님을 엄마처럼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게 결코 나에게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기 전까지였지만.


스승님의 가족은 결국 내 가족이 될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엄청나게 강합니다. 아마 당신 같은 솔리도 반으로 갈라 죽일걸요."

"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네요."

스승님의 얼굴을 떠올리면 아직도 소름이 오싹, 돋고는 했다. 계시를 받기 전까지 지나쳐 온 지옥 같은 나날들이 다시 떠올랐다.


"그래서 유리오도 강한 아이였죠. 그 나이대 여자애들에 비해서긴 하지만······."

"그 나이대 인간 여자애들에 비해 강하다는 건 낯선 곳에서 몸을 지켜 주지 않잖아요."

"그렇지만 마법 총은 몸을 지켜 주니까요."

제국에 단 두 자루밖에 없는 마법 총. 한 자루는 내가 가지고 있고, 다른 한 자루는 유리오가 가지고 있었다.


"사월을 떠날 때 제 엄마의 서랍장에서 그걸 훔쳐 갔죠."

"그 마법 총이 그 여자애를 제 주인으로 인정합니까?"

이런 것까지 알고 있다니. 나는 또 새삼 놀랐다. 마법 총은 오직 그 총의 정해진 주인만이 다룰 수 있는 무기였다.


그러니까 내 총은 나밖에 쓸 수 없고, 유리오의 총은 유리오밖에 쓸 수 없었다. 유리오가 그 총의 주인으로 인정받았는지 확실히는 알 수 없지만. 만약 인정받지 못했다면 그 총은 애물단지나 다름없을 터였다.


"아마도요. 아직까지 살아 있는 걸 보면."

"살아 있다는 걸 아는 것도 그 총 때문이군요."

"당신같이 아는 게 많은 솔리는 제국 전체를 뒤져 봐도 없을 겁니다."

"뭐, 저만큼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이것저것을 본 솔리가 없을 테니까요. 그 두 자루의 총은 서로의 존재를 인지한다죠?"

"고등 마법 무기들은 대체로 그렇죠. 더구나 마법 총 두 자루는 짝으로 만들어진 물건이니, 서로 인식하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다. 마치 자아가 있는 물건처럼."


분명히 말하자면, 이 마법 총에 자아 같은 건 없다. 그냥 아주 오래된 고급 마법들이 몇 겹이나 떡칠되어 있을 뿐. 그래서 고대 마법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 총을 보면 환장하고는 했다.


"나는 그 총의 주인이 살아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냥 알 수 있는 거죠. 어디에서 뭘 하는지, 죽은 거나 다름없는 상태인지, 그런 건 모르지만······."

"살아만 있을지도 모르는 거 아닙니까?"

"그런 끔찍한 소리는 안 하면 안 되나요?"

"하여튼 됐습니다, 그냥 궁금했을 뿐이에요. 유리오라는 여자애가 살아 있다는 건 나도 압니다."


그건 그렇겠지. 유리오의 정보를 나한테 물어다 준 게 흰이니까. 나중에 그 정보통에 대해서도 반드시 물어봐야지.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합시다. 우선 다음 행선지는 내가 정할게요."

"좋은 생각입니다. 전 여기를 모르니까요. 어디로 갈 생각이죠?"


뼈 부러진 상태로 차를 몰고 오랜 시간 돌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이야 임시로 응급처치했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니까.

하루라도 안전하게 숨을 수 있는 곳, 그리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가야겠지.


"알고 지내는 마법사가 실비나 말고 또 있어요."

"저 여자 같은 성격입니까?"

"그런 사람 두 명만 있었어도 나는 진작 죽은 사람이겠죠."


사월 최고의 부촌인 만월 지구와 인접한 월면 지구라는 곳이 있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아주 평범한 동네, 사월에서 가장 사건사고가 없는 동네. 평범하게 착한 사람들이 살고 평범한 학교들이 있고 평범한 가게들이 있다.


"월면 지구에서 학교 선생을 하는 친구가 한 명 있는데요."

"사건사고 없는 평범한 곳이라면 더더욱 우리가 가선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사실 흰의 말이 맞긴 했다. 나와 흰은 지금 사고를 몰고 다니는 재앙과 같은 존재들이었다. 평범하고 사고 없는 동네에 쳐들어가 굳이 그 사고가 되어 줘서는 안 됐다.


"그렇긴 하지만······.저도 쉬고 싶어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하루, 딱 하루만 나와 흰을 완벽하게 숨겨 줄 사람이 간절했다. 그리고 아주 다행스럽게도 나는 그럴 적임자를 딱 한 명 알고 있었다.


"평범하게 식사하고 평범하게 잠을 자고, 좀 씻고 간식도 먹고 싶다고요."

그런 욕심도 가지면 안 되나?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지만.

"뭐, 또 헤어진 여자친구를 찾아가려는 게 아니라면 마음대로 하시죠."

가능하다면 이 솔리 남자 입도 좀 꿰매 줬으면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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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한밤의 전투 +2 22.06.13 80 10 12쪽
21 숨 고르기 +1 22.06.12 79 10 12쪽
» 응급처치 +1 22.06.12 81 10 12쪽
19 두려움 +2 22.06.11 90 10 12쪽
18 생명의 은인 +2 22.06.11 83 10 12쪽
17 붉은 옷을 입은 마법사 +2 22.06.10 91 11 12쪽
16 아름다운 족쇄 22.06.10 88 11 12쪽
15 뒷골목의 의사 +1 22.06.09 104 11 12쪽
14 재합류 +2 22.06.08 101 12 13쪽
13 두 번째 기회 +2 22.06.07 118 12 12쪽
12 격발 +2 22.06.06 112 14 12쪽
11 전사와 사냥꾼 +1 22.06.05 119 15 12쪽
10 눈과 비 22.06.05 113 12 12쪽
9 만월 지구 사기녀 +1 22.06.04 129 14 12쪽
8 한 자루의 총, 한 명의 소녀 22.06.04 152 13 12쪽
7 첫 번째 기회 +3 22.06.03 185 13 12쪽
6 계시 22.06.03 204 12 12쪽
5 달부르미의 흰 +1 22.06.02 234 18 12쪽
4 호텔 유성 22.06.02 267 20 12쪽
3 실비나 카잔치카 22.06.02 311 22 12쪽
2 세 번째 눈동자 22.06.02 486 30 12쪽
1 사월의 택시 기사 +2 22.06.02 1,058 4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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