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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9,348
추천수 :
927
글자수 :
790,487

작성
22.06.06 14:00
조회
112
추천
14
글자
12쪽

격발

DUMMY

"엄호를 부탁합니다."

흰은 이엘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그가 안으로 들어선 솔리 남자를 살벌한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누구냐, 넌."


남자는 등에 커다란 망치를 하나 메고 있었다. 평범한 북부인은 휘두를 수 없을 만한 크기였다.


흰이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더니 문득 허공에 손가락을 세로로 그었다. 기다란 손가락이 그은 공간은 마치 지퍼처럼, 혹은 찢어진 상처처럼 벌어졌다.

이엘은 별 생각 없이 그 안쪽을 들여다보고는 한기가 느껴져 그만 숨을 삼켰다.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정확히는 아무것도 없었다기보다는 무(無)가 있었다. 이내 그 틈새에서 기다란 검 하나가 튀어나왔다. 먹물을 부은 것처럼 새카만 검이었다.


남자가 처음으로 휘두른 망치를 흰이 칼등으로 막았다. 오히려 충돌을 견디지 못하고 뒤로 밀린 쪽은 그 남자 쪽이었다.


"과연 세구나, 아버지께서 조심하라고 하신 이유가 있었네."

"얼굴을 보니 네가 구름의 아들이군. 왜 본인이 오지 않고 덜 자란 아들을 보냈지?"

남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그는 분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어린 것, 미숙한 것, 덜된 것. 빠르게 자라는 솔리들은 그런 취급을 가장 큰 모욕으로 느꼈다.


그가 다시 망치를 고쳐 들고 흰에게 달려들어 팔을 휘둘렀다. 흰이 옆으로 몸을 틀어 피하며 칼등으로 그의 허리께를 세게 쳤다.


이엘은 몇 걸음 떨어져 주위를 경계하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남자의 몸놀림을 보고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저 정도로 무거운 물건을 들고 저렇게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니.


하지만 역시 망치보다는 검을 휘두르는 쪽이 조금 더 유리했다. 이내 몇 합을 나누는 동안 흰은 남자를 거의 가지고 놀듯 요리했다. 그의 몸은 자잘한 상처들로 뒤덮였고, 그는 금방 무릎을 꺾고 주저앉았다.


흰은 남자와 거리를 두어 몇 발짝 물러서고는 이내 호통을 쳤다.

"한심한 녀석. 새파랗게 모자란 게 여기는 뭘 하겠다고 온 거지?"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가 이엘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무언가를 웅얼거렸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흰이 그 중얼거림을 한 마디로 일축했다. 그러고는 제 팔을 내려다보며 팔찌를 확인했다.


"유성호텔에 솔리 한 명이 가고 있군요. 그쪽을 부탁합니다, 이엘. 여기는 내가 정리하죠."


이엘이 어깨를 으쓱했다. 의뢰인이 위험에 처하면 구해 주기로 약속했으니까.

흰이 아주 짧은 주문을 외우며 손가락을 들어 다시 세로로 그었다. 이번에는 그 너머에 익숙한 소파와 테이블이 보였다.


이엘은 그 안으로 뛰어들며 눈을 감았다. 눈을 뜨니 유성호텔의 스위트룸에 와 있었다. 그의 의뢰인, 레티샤는 창가의 소파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주변의 경호원으로 보이는 인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마리포사가 호텔에 보내 놓은 인력이리라.


"어머, 이엘 씨. 여기는 무슨 일로······?"

이엘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마법의 후유증인지 머리가 약간 어지러웠다.


"아이에버 씨를 노리는 사람이 오고 있습니다."

"제 남편이 갑자기 사라진 것과도 관계가 있는 거겠죠?"

"네."


그들은 레티샤에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주려 할 것이다, 흰은 그렇게 말했었다. 이엘이 경호원 무리를 향해 턱짓했다.


"마리포사가 보낸 거지?"

그러자 짧은 머리의 여자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이리스입니다."


"지배인에게 연락해서 방을 옮겨. 제국 사냥꾼의 의뢰인이고, 당장 위험한 상황이라고 설명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이 방은······."


"여기는 내가 막지. 어차피 솔리의 마법 수준으로 이 방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는 없을 테니까."

그는 제 의뢰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레티샤는 처음 만났던 날보다 훨씬 차분해 보였다.


"너무 걱정할 일은 없는 거겠죠?"

"저를 믿으신다면요."


그래서, 이엘은 결국 스위트룸에 혼자 남아서 몰래 올 손님을 기다리게 되었다. 소파에 앉아 천장을 올려다보는데 천장에 그려진 그림이 눈에 띄었다.

"천장에도 그림이 그려져 있었을 줄이야···미술관이 따로 없네."


소녀의 얼굴을 한 여신이 활을 쏘아 사슴을 사냥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그림에 문외한이었지만, 유화 물감으로 그린 듯한 그 그림은 꽤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등을 기대고 목을 위로 꺾어 한참이나 그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위에는 그림, 앞으로는 사월의 전경이 내다보이는 큰 창. 평화로운 한때였다. 커다란 창이 산산이 조각나며 유리 파편들이 그를 향해 달려들기 직전까지는.


이엘은 소파의 등받이를 타고 한 바퀴 굴러 소파 뒤로 몸을 피했다.

"어떤 자식이 이딴 데로 들어와?"

"오, 인간 여자가 아니잖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이야기가 다른데."


소파 등받이 너머에서 젊은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그가 내뱉는 말은 어쩐지 어색했다. 발음이나 억양이 자연스럽지 않고 과장된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건방진 자식, 이 창문이 얼마짜리인지 알고 막 깨부수는 거냐?"

창문을 깨고 들어온 상대방과 이엘은 커다란 소파를 사이에 두고 대치했다.

"거기서 안 나오고 뭐 하는 거야? 우리 할 일이 있지 않아?"


이엘은 상대방이 서 있을 법한 자리를 대충 가늠해 바닥에 놓여 있던 화분을 집어던졌다. 화분이 바닥에 떨어져 깨지는 소리가 났다.


"이런 건 위험하잖아.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하는 게 어떨까?"

"너, 뭐 하는 놈이냐?"


남자가 고요함을 밟으며 소파 쪽으로 한 걸음씩 다가왔다. 그가 소파 시트에 무릎을 대고 상체를 기울여 등받이 너머를 내다보았다. 또 이 보라색 눈동자군.


그 솔리 남자의 주변에는 파란색의 인공 나비 한 마리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엘은 그 나비를 단숨에 찢어 버릴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그 나비로부터는 아무런 위협적인 기운이 감지되지 않았다. 공격 마법은 아닌 것 같은데, 저건 도대체 뭐 하는 거지?


"왜 인간 여자가 아니라 네가 이런 곳에 있는지 설명해 줄 수 있을까?"

그는 다시 교과서 읽는 듯한 말투와 억양으로 말했다. 마치 고장 난 로봇을 보는 것 같았다.

"네가 뭐 하는 놈인지부터 설명해."


"음, 나는 말이지. 달부르미의 푸른이라고 한단다. 달부르미의 흰과는 형제 사이가 되지."

흰과는 전혀 닮지 않은 남자였다. 그 선명한 보랏빛의 눈동자만 빼고.


그는 등에 아주 기다란 검을 메고 있었는데, 척 보기에도 다루기 쉬운 물건은 아니었다. 이엘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총 위로 손을 올리고 있었다. 남자가 그 총을 알아보았다.


"오, 그 총은 아주 특별한 물건이구나. 제국 전체에 마법 총은 단 두 자루밖에 없다고 하지."

"도대체 왜 그렇게 관심이 많은 거냐?"

"그렇지만 실제로 보게 될 줄은 몰랐어. 이런 총을 가지고 있는 걸 보니 너는 제국 사냥꾼이구나?"


그의 미묘하게 어색한, 고장이 난 로봇 같은 말투에 이엘은 서서히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래, 그래. 내가 바로 제국 사냥꾼님이시다. 이제 됐어?"

"그렇다면 너에게 다시 물어볼 게 있어. 이 방에 있었던 인간 여자는 어디로 갔는지 혹시 알아?"

"그 여자를 만나면 뭐 어쩔 셈이지?"

"글쎄, 솔직히 말하자면 난 북부 여자 취향이 아니라서 말이야."


북부 여자 취향이 아니다, 라. 이제 이 솔리가 레티샤의 방을 찾아온 이유는 명확하게 설명된 셈이었다.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의 부인을 취하는 풍습을 따르는 사람들도 있다지. 달부르미 가문은 그 풍습을 따르기로 결심한 모양이군."


의뢰인이 위험에 빠질 가능성은 완전히 없애야 했다. 여기서 이 남자를 죽일 수밖에 없겠군. 그것도 가능한 한 빠르게 해야 한다. 이 남자가 차고 있는 팔찌를 추적해서 다른 솔리들이 모여들지도 모르니까.


그가 몸을 일으키자 남자는 반사적으로 두 걸음 정도를 물러서 소파 아래로 내려섰다.

"난 제국 사냥꾼 제2호 이엘 알체이라다, 달부르미의 푸른."


그 말을 들은 남자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이전까지는 다소 풀어져 있는, 어쩌면 천진난만하다고도 말할 수 있는 얼굴이었는데. 그 얼굴에 아주 미세하지만 분명하게 긴장감이 주입되어 있었다.


"네 형의 부인을 찾는 거라면 안타깝게 됐구나."

이런 말을 한 번 정도는 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을 찾으려면 먼저 나를 죽이고 가야 할 거다."


남자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주먹으로 제 주변을 날아다니던 인공 나비를 세게 쳤다. 인공 나비가 조각조각 바스러지더니 소파 여기저기로 흩어져 떨어졌다. 이엘은 그제야 나비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는데, 그 생김새가 정말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불꽃으로 만든 것 같아.


"나는 ――다. 너―――."

그 나비가 사라지자, 이엘은 남자가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 통역기 같은 거였나. 남자가 나비를 부숴 버렸으니, 더 이상 두 사람 사이에 대화의 여지는 없었다.


문득 그가 날아오르듯 소파를 뛰어넘어 이엘의 얼굴 쪽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고개를 숙여 피했지만, 스치기만 했어도 정수리가 벗겨질 정도의 위력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다음으로 내지른 주먹은 이엘의 배를 향해 날아왔다. 그는 그 주먹이 배를 뚫고 빠져나가기 직전에 간신히 붙잡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그 상태로 잠시 동안 힘겨루기를 했다.


확실히 나에게 비하면 압도적인 무력이군. 이엘은 자신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대략 가늠했다. 삼십 초 이상 버틸 자신이 없었다.

그가 다리를 들어 남자의 무릎 아랫부분을 아주 가볍게 걷어찼다. 남자는 그 발차기에 맞지 않았지만, 공격을 피하려고 아주 짧은 찰나 자세를 무너뜨렸다.


왼쪽 주머니에 들어 있던 단검 세 개 중 하나를 남자의 얼굴 쪽으로 던졌다. 남자가 단검을 피하는 틈에 그의 아랫배를 무릎으로 걷어찼다. 이엘은 무슨 사람이 아니라 무슨 통나무를 걷어찬 것 같은 감각에 당황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가 그리 싸움에 능한 솔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아주 쉽게 이엘이 의도한 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힘만 믿고 사냥꾼에게 덤벼들면 안 돼, 달부르미의 푸른."

치명타는 아니었을지언정 그에게는 예상치 못한 공격이었을 터였다. 한 대를 얻어맞은 그는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그게 바로 이엘이 노리고 있던 일이었다.


"가까이서 싸워야지, 총을 든 사람 상대로는."


이엘이 허리춤에 꽂혀 있던 마법 총을 꺼내 남자의 머리 쪽에 겨누었다. 남자는 순간 명백히 당황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에게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미안하게도, 이 총에 이길 수 있는 무기는 제국 전체에 단 하나뿐이었으니까.


이엘은 순간의 틈을 노려 망설이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총에 맞은 솔리 남자는 모든 동작을 멈추었다.


그는 굳어진 채 산산이 부서져, 셀 수도 없을 정도로 작은 먼지로 화해 사라졌다.

"아, 총은 가능한 한 쏘지 말라고 했었는데."


이엘은 입맛이 써 혀를 찼다. 의뢰인의 안전이 최우선이니 어쩔 수 없었지만, 총을 너무 쉽게 쏴 버렸다. 시간적인 여유만 있었더라면 한 번 정도는 싸워 봐도 좋을 법한 상대였는데.


그는 바닥으로 시선을 돌렸다. 솔리 남자가 서 있던 곳에는 보석처럼 보이는 작은 돌 조각이 하나 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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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돌이킬 수 없는 +1 22.06.14 79 10 12쪽
22 한밤의 전투 +2 22.06.13 81 10 12쪽
21 숨 고르기 +1 22.06.12 80 10 12쪽
20 응급처치 +1 22.06.12 82 10 12쪽
19 두려움 +2 22.06.11 90 10 12쪽
18 생명의 은인 +2 22.06.11 83 10 12쪽
17 붉은 옷을 입은 마법사 +2 22.06.10 91 11 12쪽
16 아름다운 족쇄 22.06.10 88 11 12쪽
15 뒷골목의 의사 +1 22.06.09 105 11 12쪽
14 재합류 +2 22.06.08 102 12 13쪽
13 두 번째 기회 +2 22.06.07 118 12 12쪽
» 격발 +2 22.06.06 113 14 12쪽
11 전사와 사냥꾼 +1 22.06.05 119 15 12쪽
10 눈과 비 22.06.05 113 12 12쪽
9 만월 지구 사기녀 +1 22.06.04 129 14 12쪽
8 한 자루의 총, 한 명의 소녀 22.06.04 152 13 12쪽
7 첫 번째 기회 +3 22.06.03 185 13 12쪽
6 계시 22.06.03 204 12 12쪽
5 달부르미의 흰 +1 22.06.02 234 18 12쪽
4 호텔 유성 22.06.02 267 20 12쪽
3 실비나 카잔치카 22.06.02 311 22 12쪽
2 세 번째 눈동자 22.06.02 486 30 12쪽
1 사월의 택시 기사 +2 22.06.02 1,060 4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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