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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교 님의 서재입니다.

CCTV 훔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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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교
작품등록일 :
2017.12.26 22:29
최근연재일 :
2018.01.2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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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2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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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프롤로그

DUMMY

CCTV 훔쳐보기


프롤로그


우리 아버지는 막노동꾼이었다. 배운 건 없지만 그 누구보다 성실했다.

하나뿐인 아들 배 곯리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매일 아침 새벽이슬 맞으며 나가서 밤이슬 맞으며 집에 돌아오시던 분.


그날은 내 열 번째 생일이었다.


‘오늘은 치킨을 사 오마. 우리 아들, 양념 치킨 좋아하지?’


하지만 그날 밤, 아버지는 양념 치킨을 사오는 대신 새하얀 유골함이 되어 돌아왔다.

내게 유골함을 전해준 아버지의 동료라는 사람들은 저마다 얼굴을 찡그리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하지만 난 아버지의 유골함을 끌어안은 채, 그대로, 계속해서 돌아오지 않을 아버지를 기다렸다.

삼일이 흐르고, 일주일이 흘렀다.


“네가 정휘니?”

“아저씨는 누구세요?”


텅 빈 방 안에 홀로 남은 열 살 남자아이는 그즈음엔 거의 빈사상태가 되어 있었다. 일주일 만에 열린 현관문 사이로 스며드는 환한 햇살에 눈이 멀어버릴 것 같아, 난 고개를 푹 숙이며 안고 있던 아버지의 유골함만 더욱 끌어안았다.


문이 열리며 아버지가 나타나길, 잠시나마 기대했지만 그 곳에 서있던 사람은 아빠 또래로 보이는 낯선 아저씨였다. 날 발견한 아저씨는 측은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일어나. 데려다 주마.”


무뚝뚝한 목소리. 하지만 내밀어진 손은 크고 따뜻했다.

왈칵 울음이 나왔다. 이제야 앞으로 더 이상 아버지를 볼 수 없을 거란 사실이 실감났다.


한참을 끅끅대며 우는 날 쳐다보던 아저씨는 내 양 겨드랑이 사이로 두 손을 단단하게 집어넣었다.


“사내자식이, 임마. 그렇게 울면 꼬추 떨어진다.”

“아빠는요? 아빠가 보고 싶어요. 어엉..”


아저씨는 말없이 날 안고 밖으로 나섰다. 집 앞에는 봉고차 하나가 서 있었다. 봉고차 옆구리에는 텔레비전에서 보던 익숙한 로고가 콱 박혀 있었다. SBC.

나를 조수석에 태운 아저씨는 한참을 운전하더니 ‘세인트 폴 보육원’이라고 쓰인 건물 앞에 서 차를 멈추었다.


“아저씨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이 정도밖에 안 돼서 미안하구나. 혹시나 어려운 일 있으면 연락하렴.”


나에게 명함 한 장을 건넨 아저씨는 그대로 봉고차에 시동을 걸었다.


멀어져가는 봉고차의 꽁무니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가만히 서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숙여 명함을 바라보았다.


[SBC 시사다큐팀 PD 이정석]


그날 밤. 낯선 고아원 구석에 앉아 쳐다본 텔레비전 안에서, 나는 다신 볼 수 없을 줄 알았던 아버지를 보았다.


‘···해명 건설의 아파트 재개발 공사 현장에서 거푸집 장비가 무너지며 현장에 있던 인부 강 모씨(40)가 즉사하는 사고가··· ···더 이상 부실공사로 인한, 이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그것을 알고 있다]


사회의 각종 부조리함을 고발하는 시사프로그램이었다. 방송이 모두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연출 이정석.


거기까지 본 나는 바지 주머니에 고이 넣어 둔 명함을 꽉 쥐었다. 내 세상의 전부였던 아버지는 이제 없었다.


열 살은 어린 나이였지만, 사회의 부조리함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이 더 이상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소망은 무럭무럭 자라나 새로운 내 세상의 전부가 되었다.


**



“으.. 으악! 헉..”


몽롱하던 정신이 번쩍 드는 걸 느끼며, 식은땀으로 축축해진 뒷머리를 쓸어내렸다. 습관처럼 머리맡에 둔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반 지하 원룸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빛 한 톨 없이 껌껌한 방 안.


벽에 걸린 시계가 새벽 다섯 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오늘 잠 다 잤네.”


지끈대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하필 오늘, 그 꿈을 꾸게 되었는지.


16년 전, 하나뿐인 아버지를 잃고 고아원에 들어가던 날. 그 날은 나에게 하나의 트라우마처럼 자리 잡았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꿈에 나왔고, 꿈을 꾼 날은 어김없이 가위에 눌려 잠을 설쳤다.


아버지의 유골함, SBC봉고차, 이정석PD, 세인트 폴 보육원, 그리고 반짝이던 구형 핸드폰 하나.


‘음? 핸드폰?’


그 당시 내가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을 리 없는데. 평소와 조금 달랐던 꿈의 내용에 잠시 갸우뚱했다.


하지만 잠깐의 의문은 곧 사라졌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더 자면서 컨디션을 최상으로 끌어올리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


한 시간 정도 다시 침대에 누워 잠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정신만 더 말똥말똥해 질뿐이었다. 나는 결국 다시 잠드는 걸 포기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오늘을 위해 곱게 다려서 걸어둔 정장을 걸쳤다.


고아원에 들어간 그 날부터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 달렸다.

시사 프로그램 PD.

죽을 듯이 공부했고, 그 결과 지방 4년제 국립대 신문방송학과에 4년 장학생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하면서도 성적은 쭉 상위권을 유지했고, 그간 노력의 결과를 드디어 보상 받는 날이 오늘이었다.


어느덧 내 나이 스물여섯. 솔직히 아무리 성적이 좋았어도, 지방 국립대 출신이 언론고시에 합격하는 건 대단한 빽이라도 있지 않는 이상 불가능했다. 그래서 난 현실적인 방법으로 눈을 돌렸고, 작은 외주제작사나마 입사에 성공할 수 있었다.


에이플러스. 비록 규모는 작지만 시사, 다큐 프로그램 쪽에서는 꽤나 끗발 날리는 외주PD들이 즐비한 곳이다.


첫 출근인데 조금 일찍 도착해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어느새 떠오르는 아침햇살에 기분이 상쾌해진다. 지난 밤 악몽 따위는 잊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지하철에 몸을 맡긴 지 30분.


[이번 역은 강남, 강남역입니다···]


도착 안내멘트에 나는 잔뜩 구겨져있던 몸을 폈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움직였다.


“어이쿠!”


갑작스레 입구로 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단발마의 비명이 새어나왔다. 무심코 뒤를 돌아보니, 흰 한복을 곱게 차려 입으신 할머니 한 분이 몰리는 인파 속에 넘어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작은 짐 보따리와 할머니가 짚고 계셨을 지팡이가 한 쪽 구석에 널브러져 있었다.


모두들 할머니를 힐끔대면서도, 정작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발길을 돌려 할머니를 일으켜 세웠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고마우이.”


다행히 크게 다치시진 않은 모습. 팔을 부축해서 일으켜드리자 할머니가 내 손등을 한 번 두드리면서 허둥지둥 일어나신다.

어느새 지하철 문이 닫히기 시작하는데, 그 사이 노인네답지 않은 민첩함으로 입구를 향해 뛰는 할머니.


“어, 하, 할머니!”


어영부영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지하철에서 내릴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지팡이와 짐 보따리까지 날쌔게 챙겨 내리다니.

혹시나 할머니께서 뭐 놓고 내린 건 없나, 지하철 바닥을 두리번대고 있을 때였다.


“저게 뭐야?”


할머니의 짐 보따리가 떨어져 있던 자리에서 무엇인가 반짝이고 있었다.

휘휘 주위를 둘러보니, 이 정도 소동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각자의 할 일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


바닥에 떨어진 건 족히 십 년은 되 보임직 한 하얀 폴더폰이었다. 어딘가 낯이 익은 것 같아 핸드폰을 주워 들었다. 이렇게 구형 핸드폰을 어디에서 봤더라?


“···꿈?”


순간적으로, 오늘 새벽에 꾼 꿈이 머릿속에 퍼뜩 스친다. 분명, 10년 동안 꾼 꿈의 레퍼토리가 오늘은 조금 변해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핸드폰이 출연했었지.


“돌려드려야 되는데.”


하지만 우연일 뿐일 테다. 이건 이름도 모르는 할머니의 것이었으니.

핸드폰 액정이 깜박이며 문자가 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폴더를 열었다. 혹시나 할머니의 가족, 친지 분들 연락처라도 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액정을 열자마자 큼지막하게 보이는 알림. 잠시 망설이다가 확인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


‘2018년, 2월, 13일, 21:03분 '다미일식 camera one' 서버에 admin 계정으로 연결하시겠습니까?’


핸드폰 화면을 가득 채우는 문장을 확인하는 동시에, 세상이 온통 캄캄해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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