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폭렬천사의 셸터

또 다른 셸터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연재수 :
152 회
조회수 :
231,512
추천수 :
5,519
글자수 :
1,674,356

작성
14.03.13 18:51
조회
2,779
추천
112
글자
24쪽

4. 고통을 먹는 자 (19)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19.

“늦지 않아야 할 텐데.”

위즈는 학살자의 망령을 들고, 제단이 자리한 동굴까지 헤엄쳤다.

학살자의 망령을 놓아둔 곳으로 향하는데 2분, 찾는데 걸린 시간이 10분.

이렇게 늦은 데에는 만조가 되어 바다의 수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분명 위즈가 학살자의 망령을 버린 건 계단 근처의 바위그늘이었다. 그런데 기억을 더듬어 찾아간 곳에는 바닷물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이곳이 그곳 같고, 그곳이 이곳 같고. 위즈는 헷갈리기 시작했다.

물속으로 잠수해 살펴보니 구별하기 더 힘들어졌다. 만조와 더불어 바위 근처에 달라붙은 해초들이 물을 머금고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흐느적거리는 해초사이를 헤엄치다보면, 같은 곳을 몇 번이나 지나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운 좋게 해초에 돌돌 말린 덩어리를 발견해서, 학살자의 망령을 간신히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학살자의 망령 때문에 해초가 얽히지 않았다면, 위즈는 결코 찾지 못했을 것이다.

“응?”

머리위로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위즈는 지금 계단을 따라 헤엄치는 중이다. 만조상태의 바다는 폭풍우로 거칠어져 있어서, 바깥에서 보면 시커멓게 보인다. 위즈는 고개를 젖혀 수면을 향했다. 수면과 1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위즈이지만 들킬 걱정은 없었다. 반면 안에서 밖을 보는 것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었다.

사람들이 서둘러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마력을 보는 눈.”


<‘마력을 보는 눈’이 시전 되었습니다. 초당 1의 마력이 소모됩니다.>


계단을 내려가는 자들에게서 보랏빛 기세가 일렁거린다. 물속에서도 보일만큼 기세가 대단하다.

‘어째서 내려가는 거지? 저들은 제단을 지키려는 게 아니었나?’

위즈는 계단에 바싹 붙은 뒤 머리만 쏙 내밀었다. 그들의 대화를 엿듣기 위해서이다.

저들이 제단을 포기한 건지, 아니면 어쩌다가 핏스톤이 파괴해버렸는지, 일단 알아두어야 했다. 최악의 상황은 핏스톤이 당하고, 제단도 뺏겼을 때다. 이때는 아쿠에리언 아이들만이라도 구해서 섬을 빠져나가야만 한다.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했고,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면 탐지당할 위험을 무릅쓸 가치가 있다.

“조금만 더 하면 마력 충전이 끝나는데 별게 다 훼방을 놓네,”

“이젠 어떡하지? 폭풍만으로는 안티 바하르칼 군을 막을 수 없어.”

“별 수 없잖아. 제단도 없이 광역기상 통제마법을 어떻게 써?”

“걱정 마 잇페인님이 대체물을 준비하신다고 했으니까. 그보다 서둘러서 인어들을 꺼내놓자고. 오늘을 위해 어렵게 잡아온 거잖아?”

마법사들의 목소리가 멀어져갔다. 해안가를 때리는 파도를 얻어맞으며 위즈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이거 핏스톤이 선방한 것 같은데?”

제단이 단단하니 위즈에게 학살자의 망령을 가져오라고 한 게 핏스톤이다. 그러니 제단을 부쉈을 리는 없고, 땅속에 파묻어버린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마법사들이 저런 반응을 보일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핏스톤은 땅과 동화되어서 기다리고 있겠군. 걱정할 필요 없겠어.”

상황을 파악한 위즈는 일단 어린 아쿠에리언들부터 구하기로 결정했다.


◇◇◇◇◇◈◇◇◇◇◇◇◈◇◇◇◇◇◇◈◇◇◇◇◇


섬 전체가 들끓었다. 서쪽 동굴에서 벌어진 마나번 현상 때문이 아니다. 그것을 감지 할 수 있는 건 마법사에 한했다.

회색망토를 걸친 자들이 섬에서 쏟아져 나와 배에 오르기 시작했다.

“출항명령이 떨어졌다!”

“꿈지럭거리지 말고 서둘러라! 10분 남았다!”

이 섬에는 마법사들 말고도 전투 병력이 있었다. 그 숫자는 모두 합해 4천에 달했다. 배를 조종하는 자들은 배에 상주하고 있을 테니 실제 병력은 더 많았다. 준비를 마친 순서대로 작은 배들이 어두운 바다를 헤치고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배들은 기함으로 보이는 중형선박을 에워싼 채 어두운 바다로 미끄러져갔다.

항구에 남은 마법사들은 건물들을 해체해 한데 모으기 시작했다. 원래 조립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라, 여기저기 툭툭 쳐대는 대로 기둥이며 널빤지가 쑥 뽑혀 나왔다. 건물이 자리한 공간이 휑하게 변했고, 건물이었던 부속품들은 한곳에 차곡차곡 쌓였다.

그러자 기술자로 보이는 자들이 나타나, 그것들을 끼워 맞추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건물이 차지하고 있던 곳에 널찍한 나무더미가 생성되었다. 그동안 마법사들도 놀고 있지만은 않았다. 거대한 청동화로를 가져다가 주변에 늘어놓고 불을 붙였다.

마법사들까지 동원되어 일하는 중이다. 많은 인원이 뒤섞여 있어 난잡하기까지 했다.

“누가 인어들 좀 데려와라.”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몇 명의 마법사가 무리를 이탈하여 북쪽으로 향했다.

처음 위즈가 인적이 드물 것으로 예상했던 곳이었다.

바다에서 올려다 볼 때는 경사진 바위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항구로부터 이어진 완만한 경사로를 통해 오갈 수 있는 지형이다. 그 경사로는 높이 자란 나무들로 가려져 있어서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제길. 왜 꼭 의식용 제기는 청동으로 만드는 거야? 팔 빠질 뻔했잖아?”

마법사 하나가 투덜거렸다. 다른 자가 그 말을 받았다.

“그럼 돌로 만들라고?”

“그게 아니지 멍청아. 나무도 있잖아. 가볍게 만들면 편하고 좋겠구먼.”

“나무는 베어낸 지 일주일이 지나면 마력이 안 통하잖아? 게다가 나무는 불에 타잖아?”

“축복받은 정령목인가를 쓰면 되지.”

“그거 금보다 비싸다. 그리고 제물을 바쳐 마력을 만드는데 축복은 무슨 얼어 죽을 놈의 축복이냐?”

“하긴 그것도 그래.”

이는 마법사라면 다들 아는 내용이다. 하지만 입을 꾹 다물고 산길을 오르는 것만큼 심심한 건 없으니, 대충 장단을 맞춰주는 것이다. 저 아래에 있었다면, 이런 시시껄렁한 잡담조차 나누지 못했을 것이다.

“금보다 비싸긴 개뿔. 나도 하나 가지고 있구먼.”

누군가 한 박자 늦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마법사들은 일제히 소리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허름한 갈색로브를 뒤집어 쓴 자였다. 마법사치고는 어깨가 넓은 게, 이런 저런 잡일에 주로 동원된 자인 것 같았다.

“그 귀한 걸 가지고 있어? 어디 좀 보여줘 봐.”

그러자 마법사는 로브를 뒤적거리더니 활을 꺼냈다. 활시위가 걸려 팽팽한 나무가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휘어져 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나무 활이다. 하지만 정령목이라는 소리를 듣고 다시 보면 왠지 모를 기품이 느껴진다.

“그 활이 정령목으로 만들어 졌다고? 한번 만져보자.”

가까이에 있던 마법사가 손을 내밀었다.

“나도. 나도 한 번 보자.”

“그 다음은 나다.”

마법사들이 앞 다투어 몰려들었다.

“내가 먼저 말했다고.”

앞서 말을 꺼낸 마법사가 으스댔다. 그는 정령목으로 만든 활에 손을 뻗었다.

민간에서는 정령목을 한번이라도 만지면, 그 사람은 무병장수한다는 속설이 있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정령목의 썩은 가지라도 한 번씩 만져보려고 했다. 여기 있는 마법사들 역시 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다.

“어떠냐? 진짜 정령목 맞아?”

“만져본다고 알겠냐?”

활을 만지던 마법사의 몸이 움찔하더니 무릎을 꿇었다.

“어? 진짜인가보다. 저 녀석 여간해서는 놀라지 않는 놈인데.”

“이 멍청아 그게 아니잖아! 배리어!”

뒤늦게 발사된 화살이 배리어에 맞고 튕겨나갔다. 무릎 꿇은 마법사가 배를 보이며 벌러덩 넘어졌다. 목에 화살이 박혀 있다.

그때서야 사태를 파악한 마법사들이 매직스틱을 꺼내들었다.

“웬 놈이냐!”

푹 눌러쓴 로브 밖으로 드러난 입이 미소를 그렸다.

“나? W라고 하면 알아보려나?”

“W! 크레센토에서 에제키엘님을 골탕 먹인 이방인!”

“역시 난 유명 인사였네.”

위즈가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모자손에 저장된 윈드커터가 날아갔다. 그것은 전혀 엉뚱한 방향의 나뭇가지를 자르고 지나갔다.

“어딜 공격하는 거냐? 아이스 스피어!”

용병 마법사들의 매직스틱에서 튀어나간 얼음조각들이 회전을 일으키며 위즈에게 날아들었다. 위즈의 몸을 뚫고 날아간 얼음창이 바닥에 꽂혔다. 얼음창은 아무런 위즈의 털끝도 건드리지 못했다. 진각을 밟아 옆으로 피해낸 위즈가 뒤돌아서서 자신의 엉덩이를 두들겼다.

“눈은 장식이냐? 뵈는 게 없지?”

“브레이크!”

바닥에 꽂힌 얼음창이 폭발하며 파편을 날렸다. 당연한 거지만, 얼음창은 커다란 고드름 크기에 불과했다. 몸에 박힌 채 터지면 모를까, 몸 밖에서 터지는 정도로는 방어구조차 뚫지 못한다. 위즈는 뒤집어 쓴 얼음조각을 털어내며 몸을 부르르 떠는 시늉을 해보였다.

“어이쿠! 무서워라!”

“이놈이!”

용병마법사들이 발끈하여 다시 공격을 날렸다. 이번에는 위즈도 피하지 않고 뒤돌아서서 활을 쏘았다. 당연히 화살은 배리어에 맞고 튕겨나갔다. 그 무의미한 공격의 대가로 위즈 몸은 갈기갈기 찢어졌다. 하나도 빗나가지 않은 주문들이 몸을 헤집었기 때문이다. 헌데 그 모습을 보면서도 마법사들은 기뻐하지 않았다.

“쥐새끼 같은 놈!”

용병 마법사들은 숲 속으로 도망치는 위즈의 모습을 발견했다. 조금 전 자신들이 맞춘 건 일루전이었다. 마법사들은 탐색 스킬을 사용하면서 혹시라도 숲 속에 숨어 있는 자가 있는지 확인했다.

“깨끗해. 저놈 혼자야. 대체 뭘 믿고 기어 나온 거지?”

“문제는 그게 아니라고. 빗나갔다고. 전부!”

“어째서이지? 일루전을 끼워 넣는 타이밍이 아무리 정확해도, 주문을 피할 수 없어야 정상 아닌가?.”

바하르칼의 용병마법사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위저드 마크를 먼서 사용하고 주문을 쓰도록 훈련받는다. 그냥 눈으로 보고 쏘게 되면, 적이 피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자드 마크를 사용하면, 주문의 방향이 위자드 마크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을 쫒게 된다. 사실상 명중률이 100%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그건 손으로 만지거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을 쐬었을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이 아이스 스피어를 먼저 날린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 주문은 맞추려고 사용한 게 아니라, 얼음창을 폭발시켜 위즈에게 얼음조각을 뒤집어씌우는 게 목적이었다. 얼음조각을 뒤집어 쓴 위즈는, 온몸에 이들의 마력을 덕지덕지 처바른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주문이 빗나간 것이다.

“별 수 없다. 명중률이 떨어진다면 물량으로 승부할 수밖에.”

“동료를 더 부르는 게 낫지 않을까?”

“저놈 하나 때문에 작업을 중지했다간 우리들 모두 잇페인님께 죽을 거다.”

“그래. 우리끼리 어떻게든 저놈을 해치울 수밖에 없다.”

용병마법사들은 유리병을 꺼내 내용물을 매직스틱에 고루 뿌렸다. 그들의 마력에 반응한 마법시약이 환하게 빛났다.

“가자!”


◇◇◇◇◇◈◇◇◇◇◇◇◈◇◇◇◇◇◇◈◇◇◇◇◇


위즈는 숲속을 천천히 거닐었다. 어차피 이 작은 섬에서 숨바꼭질을 할 생각은 없다. 어린 아쿠에리언을 구하려고 왔으니, 구하고 나면 더 이상 이 섬에 볼일은 없는 것이다. 잡혀간 아쿠에리언이 어디 있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뻔한 것이었어.”

위즈의 눈동자는 검푸른 빛에 감싸여 있었다. 마력을 보는 눈을 사용하면, 아무리 카무플라주로 다른 색깔의 눈을 하고 있어도 검게 물들고 만다.

그 눈이 향하는 곳에는 엄청난 양의 마력이 안개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쿠에리언은 물을 떠나서는 오래 버티기 힘들다. 그런데 이런 산중에 데려다 놓았다?”

위즈의 발밑이 질척거렸다. 이 섬은 폭풍의 눈에 위치했기 때문에, 비한방울 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 근처는 방금 비라도 내린 것처럼 곳곳이 진창이었다.

땅의 상태. 물과 떨어질 수 없는 아쿠에리언의 약점.

사샤가 말하길 마법사는 어린 아쿠에리언을 얼려서 배에 실었다고 했다.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얼음조각을 녹이지 않고 통째로 가져다 놓으면 해결되지.”

위즈의 눈앞에 정육면체의 얼음덩이가 나타났다. 뿌연 얼음덩어리 속에 사람의 형체가 갇혀 있었다. 그 숫자는 정확히 둘.

“제대로 찾아왔군. 그런데 어떻게 데려가지? 뒤로 굴려 바다에 빠뜨려야 하나?”

위즈는 고개를 삐죽 내밀고 바다 쪽을 살펴보았다. 파도가 칠 때마다 바다 속에 숨어있던 암초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하얀 물거품을 헤치고 삐죽 솟아오른 암초는, 침을 질질 흘리는 괴물의 이빨 같았다.

“안 되겠군.”

뒤쪽은 무리다. 그렇게 판단한 위즈는 다시 얼음조각으로 돌아왔다.

“음?”

위즈는 주변이 보랏빛 마력으로 가득차 있음을 깨달았다. 원래 얼음조각에서 끊임없이 마력이 새어나오고 있었으니 당연한 거였지만, 그런 것 치고는 농도가 너무 짙다.

“이것 봐라?”

위즈는 손가락을 까딱여서 모자손에 저장된 마력포션을 사용했다. 그리고 로브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 위즈의 검푸른 마력이 옷 속으로 파고들어오는 보랏빛 마력을 밀어냈다.

타인의 마력이 몸을 휘감고 있으면, 그것이 일종의 표식처럼 작용한다. 이게 마법사의 공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임을 위즈는 이미 알고 있었다.

마력을 보는 눈 덕분에 그런 의도는 진즉 간파했다.

또한 아쿠에리언에게 ‘마력을 보는 눈’을 배우기 전부터 위즈는 마법사와 싸우는 법을 연구 해왔다. 바하르칼 용병의 핵심은 뭐니뭐니 해도 용병마법사라는 것을 알고부터다.

각 직업별로 마법사에 대응하는 방법을 찾아보았고, 경험이 많은 빌헬름텔과 함께 충분한 토론과정을 거쳤다.

그 결과, 위즈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을 사용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자신이 가진 마력을, 마력이 부여된 장비에 불어 넣는 것.

원래 이건 방패전사들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방패란 물리적인 공격을 막아내는 장비. 하지만 주문은 제대로 막아내지 못한다. 마력을 품은 공격을 막는 건, 마력에 의한 방어뿐이다.

그래서 방패전사들은 자신들의 방패를 개조했다. 학자계열의 직업인 연금술사나 인챈터에게 부탁해 마력회로를 새겨 넣는 것. 그 정도로도 주문에 의한 피해를 줄이는 건 충분했다.

위즈의 경우는 걸치고 있는 로브에 스톤스킨 주문이 영구적으로 걸려 있었다. 방패보다 방어 면적이 넓으니, 마력을 불어 넣는 즉시 위저드 마크 정도는 흔적도 없이 지워버릴 수 있다. 조금 전 용병마법사들이 아이스 스피어를 터뜨렸을 때도, 위즈에게 보랏빛 마력이 덕지덕지 달라붙었지만, 이 방법으로 저들의 마력을 흩어내고 몸을 빼낼 수 있었던 것이다.

마력을 볼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용병마법사들은 의기양양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들의 마력이 위즈를 표적 삼았으리라고 생각해서인지 이들은 성급하게 공격해왔다.

“이번에는 절대 못 피한다!”

마법시약을 잔뜩 먹인 매직스틱에서 연거푸 주문이 발사되었다. 조금 전 이들이 사용했던 아이스 스피어보다 작은 얼음조각이다.

“아이스 애로우!”

위력은 훨씬 떨어졌으나 연사속도가 지나치게 빨랐다. 위즈는 이들이 마법시약을 사용했음을 깨달았다.

‘발동 속도를 올리는 종류였겠지.’

위즈는 학살자의 망령을 뽑아 옆으로 눕혔다.

학살자의 망령은 폭이 넓은 도(刀)였기 때문에, 작은 방패처럼 효과적으로 주문을 막아주었다. 학살자의 망령은 너무 무거운 무기이고, 위즈는 전사가 아니었기에 힘 스탯이 낮았다. 이렇게 방어 용도로나 쓰는 게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두껍고 무거운 쇳덩이도, 아이스 애로우의 물리적인 충격만을 막아낼 따름이었다. 마법 데미지는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진각을 펼쳐 벗어나려고 해도, 젖은 땅이 미끄러워서 제대로 쓸 수 없다.

게다가 학살자의 망령까지 꺼내든 이상, 한번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는 게 힘들다.

‘이건 핏스톤이 제단을 부술 목적으로 가져오게 한 무기다. 마법검이었던 크리스로도 못 부순 제단을 부술 수 있다면, 학살자의 망령에도 어떤 숨겨진 내력이 있을지도 모른다.’

위즈는 시험 삼아 마력을 불어 넣어 날아드는 아이스 애로우에 가져다 댔다. 휘둘렀다간 무게에 휘둘릴 테니 이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위즈로서는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이려고 시도한 것이었지만, 그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가드에 박힌 큼지막한 구슬이 붉은빛을 토해냈다. 그 모습은 잠자고 있던 존재가 눈을 뜨는 것처럼 강렬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둥둥.


<학살자의 망령에 깃든 영혼이 깨어났습니다.>

<이 영혼은 강렬한 전의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싸움의 목마른 영혼이 당신의 몸을 잠식합니다.>

<이 영혼은 당신의 몸을 빌려 적을 섬멸할 것입니다.>

<영혼이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50의 마력이 소모되고, 일반 공격을 할 때마다 100의 스태미나가 소모됩니다.>

<근성과 집중력 스탯의 영향으로, 영혼을 다시 잠재울 수 있습니다.>


“뭐, 뭐야?”

위즈의 허리가 저절로 휘어지며 날아드는 아이스 애로우를 모두 피해냈다. 물에 먹어 미끄러운 땅바닥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위즈의 등에 차가운 얼음이 닿았다. 어린 아쿠에리언이 갇힌 얼음이었다. 위즈의 몸은 얼음을 박차고 10여 미터나 쏘아져 나갔다. 곧 충돌이 일어났고, 용병마법사는 코피를 흘리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단지 녹슨 쇳덩이를 앞세우고 부딪쳤을 뿐인데도, 용병마법사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숨겨둔 한수였나!”

갑자기 녹슨 칼에서 붉은 빛이 번쩍이고 위즈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속도와 힘 모두 조금 전과 천지차이! 용병마법사들이 놀라는 것도 당연하다.

반면 위즈는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조금 전의 돌격으로 50의 마력과 100의 스태미나가 사용되었다.’

마력의 경우는 얼마를 사용하든 아쉽지 않았다. 마력은 원래 그러라고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스태미나의 경우는 이렇게 펑펑 써대도록 놔둘 수 없다. 스태미나가 고갈되면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적의 본거지나 다름없는 곳에서 그렇게 된다? 이보다 바보짓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나 싸워댔으니, 항구의 마법사들도 눈치 챘을 거야. 저 많은 수를 혼자서는 감당 못해.’

위즈는 영혼을 다시 잠재우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건 내 몸이야! 꺼져!”

그러는 동안에도 학살자의 망령에 깃든 영혼은 쓰러진 용병마법사에게 무자비한 공격을 퍼부었다. 마력을 모조리 쏟아 부은 끝에 기어코 하나의 목숨을 거둬가 버렸다.

“이 자식! 죽여 버리겠다!”

동료의 죽음을 본 용병마법사들은 더 열이 올라 위즈를 공격해댔다. 아예 마력포션을 입에 퍼부으며 주문을 뽑아냈다. 그것을 피하느라 위즈의 몸이 정신없이 바닥을 굴렀다.

“멈춰! 에퉤퉤!”

위즈는 입에 들어간 진흙을 뱉으며 다시 한 번 명령했다. 그동안 소모시킨 스태미나양이 장난 아니었다. 이대로 두 번만 더 용병마법사를 공격하면, 행동불능 상태에 빠질 것이다.

“빌어먹을! 싸울 필요 없다고! 아쿠에리언만 구하면 끝나는데!”

잔잔한 울림이 학살자의 망령에서 일어났다.

『아쿠에리언……』

몸을 억압하는 힘이 느슨해져갔다. 위즈는 크레센토 왕국에서 인육만두의 꼭두각시술에 당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도 이렇게 안간힘을 다해 저항했었다. 비록 약물의 힘을 빌린 것에 불과했지만…….

그에 비하면 지금은 맨몸으로 저항하는 거다. 그런데도 몸의 통제가 돌아오려 한다.

‘아쿠에리언이라는 단어에 반응하고 있어!’

위즈는 다급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 아쿠에리언! 저기 뒤에 얼음 보이지? 거기에 아쿠에리언 아이들이 갇혀 있어!”

『……구할 것인가?』

“그러려고 여기 온 거야!”

『마력……이 부족하다.』

뭔가 대단한 스킬이라도 사용할 모양인지 영혼이 마력을 요구했다. 위즈는 용병마법사들의 공격을 쳐내며 인벤토리를 열었다.

“지금 채워줄게!”

마력포션을 연거푸 들이켜 마력을 채우자, 영혼은 다시 몸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위즈의 몸이 잠깐 움찍거리며 회피동작을 멈췄다. 그 잠깐의 틈을 노리고 용병마법사들이 얼음족쇄를 사용했다. 발부터 잡아놓고 공격할 속셈이었다.

얼음족쇄에서 흘러나온 냉기가 질척거리는 땅을 얼렸다. 위즈의 발에 걸린 얼음덩이는 땅과 연결되어버렸다.

“절대 도망 못 간다!"

“끝내주지! 프로즌 스피어!”

매직스틱에서 튀어나온 얼음기둥이 회전하며 주변의 습기를 빨아들였다. 아이스 애로우 크기의 얼음조각은 삽시간에 커지며 위즈의 몸을 꿰뚫었다. 삽시간에 체력게이지가 떨어지며 위즈는 빈사상태에 몰렸다. 관통된 부분으로부터 서리가 번져나갔고, 위즈는 차가운 숨결을 토해냈다.

“허억!”


<몸이 얼어붙고 있습니다. : 빙결효과>

<근성스탯으로 인해 효과가 반감됩니다.>


일반 아이스계열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프로즌계열 주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상체는 완전히 얼어붙지 않았다는 점이다.

위즈의 몸이 뻣뻣해지며 고꾸라졌다. 앞쪽으로 튀어나온 얼음창이 바닥에 박히며 완전히 쓰러지지 않게 지탱해주었다. 빙의된 영혼이 덜렁거리는 어떻게든 해보려고 팔을 움직였지만, 학살자의 망령을 놓치지 않게 하는 것도 힘들었다.

“이거 너무 쉽잖아?”

“별거 아니로군.”

“마지막은 화려하게 장식해주마.”

마법사들은 배리어를 거두고 서로의 매직스틱을 한데 엇갈렸다.

마력의 파장을 동조시켜서 위력을 키운 주문을 사용하려는 것이다.

위즈의 눈에 보랏빛의 마력이 한데 뭉치며 어두워지는 게 보였다. 마력을 보는 눈을 사용하니 마법사가 아님에도 저것의 원리가 대충 이해되었다.

‘크큭. 만약에……지금 저것의 흐름을 망가뜨릴 수 있다면…….’

위즈는 얼어붙어가는 왼손을 들어 올렸다. 왼손에 착용한 건틀릿-모자손에는 쓰지 않고 남겨둔 일루전 스크롤과 윈드커터 스크롤이 있었다.

‘윈드커터는 공격용이다. 하지만 빗나가면 그걸로 끝.’

경련 때문에 정확한 조준은 기대할 수 없다. 위즈는 일루전을 사용했다. 위즈와 똑 닮은 허상은, 용병마법사들이 한데 모은 매직스틱을 덥석 움켜쥐었다. 실체가 없는 허상이었기에 그 손은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위즈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허상이 위즈의 마력으로 이루어진 존재였기 때문이다.

“어헉!”

이들이 모은 마력은 임계점을 넘어 주문의 형태로 발사되는 일만 남은 상태였다. 그런데 전혀 다른 설질을 가진 마력이 침입하자, 마력이 역류하며 용병마법사들을 덮쳤다.

“크아아악!”

마력의 제어에 실패한 용병마법사 하나가 온몸에 불이 붙어 날뛰다가 엎어졌다. 나머지는 겨우 통제에 성공했지만, 마력의 폭주 때문에 1시간동안 마법을 쓸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대지는……내…말을 따를 지어다.』

위즈의 몸을 조종하던 영혼이, 학살자의 망령을 바닥에 내리찍었다.

드드드드드.

학살자의 망령이 박힌 곳을 중심으로 땅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뾰족뾰족한 암석들이 튀어나오고, 갈라진 틈의 테두리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용병마법사 몇 명이 갈리진 틈으로 떨어졌다.

“내손을 잡아!”

“손이 닿질 않……으아아악!”

나무뿌리에 간신히 매달려 있던 용병마법사는, 무너지는 토사에 휩쓸려 사라졌다.

“이러다간 우리까지 말려든다.”

“일단 피해!”

용병마법사들은 더 이상 싸울 엄두를 못 내고 도망쳤다.

섬의 북쪽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깎여나가고 있었다. 막대한 양의 바위와 토사가 바다로 쓸려나갔다. 흡사 산사태가 나서 바위며 나무가 함께 쏟아지는 모양새였다.

『아쿠에리언들을 챙겨라.』

그 말을 끝으로 위즈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스태미나가 0이 되었습니다.>


“야 이씨!”

위즈의 몸은 얼음덩이와 함께 토사에 휩쓸렸다. 혹시나 해서 스태미나 포션을 모자손에 넣어 두었지만, 이렇게 손가락 하나 까닥 못하면 사용조차 못한다.

“평소에는 그놈의 근성으로 잘만 이겨내더니 왜 이럴 때는 몸이 말을 안 듣는 건데!”

위즈의 몸은 바다에 처박혔다.


작가의말

연참 4일 째.

살짝 힘들어지는군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또 다른 셸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4 4. 고통을 먹는 자 (13) +3 14.03.04 1,800 43 25쪽
63 4. 고통을 먹는 자 (12) +3 14.02.28 1,201 25 24쪽
62 4. 고통을 먹는 자 (11) +3 14.02.27 1,106 29 25쪽
61 4. 고통을 먹는 자 (10) +5 14.02.20 1,014 40 22쪽
60 4. 고통을 먹는 자 (9) +3 14.02.17 1,167 32 18쪽
59 4. 고통을 먹는 자 (8) +6 14.02.15 995 21 22쪽
58 4. 고통을 먹는 자 (7) +6 14.02.10 1,030 47 22쪽
57 4. 고통을 먹는 자 (6) +5 14.02.06 891 27 26쪽
56 4. 고통을 먹는 자 (5) +4 14.02.02 799 21 24쪽
55 4. 고통을 먹는 자 (4) +3 14.01.30 959 21 21쪽
54 4. 고통을 먹는 자 (3) +5 14.01.25 852 24 21쪽
53 4. 고통을 먹는 자 (2) +4 14.01.22 1,097 38 21쪽
52 4. 고통을 먹는 자 (1) +2 14.01.20 1,091 28 21쪽
51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ED) +1 14.01.14 893 21 22쪽
50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20) +3 14.01.13 1,181 33 35쪽
49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19) +4 14.01.06 808 21 23쪽
48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18) +5 13.12.31 1,088 22 28쪽
47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17) +3 13.12.28 1,325 40 20쪽
46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16) +2 13.12.26 1,156 25 22쪽
45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15) +4 13.12.25 1,417 27 17쪽
44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14) +4 13.12.23 2,057 35 26쪽
43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13) +3 13.12.20 1,169 27 23쪽
42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12) +3 13.12.19 1,178 26 13쪽
41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11) +3 13.12.17 1,395 76 24쪽
40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10) +4 13.12.14 1,332 28 23쪽
39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9) +1 13.12.12 1,080 24 26쪽
38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8) +2 13.12.10 1,216 30 19쪽
37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7) +3 13.12.07 1,250 34 17쪽
36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6) +2 13.12.06 1,236 59 20쪽
35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5) +2 13.12.05 1,449 27 2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