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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또 다른 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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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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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12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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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4. 고통을 먹는 자 (18)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18.

아쿠에리언이라는 종족은 인간에게 인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인어라고 하니 위즈는 하반신이 물고기고 상반신은 인간인 모습을 떠올렸다. 그러나 사샤의 말에 따르면 그런 자들은 극소수라고 했다. 대부분은 인간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물속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몸의 구조가 헤엄치기 좋게 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사샤가 속한 ‘소드피쉬’ 부족이 헤엄치는 속도가 가장 빨랐다.

『그래서 저는 마법사에게 잡히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었어요.』

“이건 헤엄치는 수준이 아니잖아.”

아쿠에리언이 사는 해구까지 가라앉은 시간은 대략 30여분. 게임임을 감안 해봐도 굉장한 깊이다. 사샤는 그곳을 단 10분 만에 주파했다. 그런 사샤가 겸손을 떤다.

『어른들은 저보다 더 빨라요.』

저게 겸손이면 위즈는 플랑크톤이었다.

‘설마 더 오션의 이종족들은 다 이런 건가?’

아직까지 다른 종족을 만나보지 못했으니 알 수 없는 일이다.

사샤가 정확히 방향을 잡은 덕에 섬이 지척에 보였다. 섬에 가까워질수록 바다가 잔잔했다. 위즈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다른 곳은 짙은 먹구름으로 뒤덮여 어둑어둑한데, 섬 주변만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폭풍의 눈이군.”

마침 대낮이라서 모래사장을 따라 걸어가면 십중팔구는 들키게 되리라. 패시브 적용된 이글아이의 힘으로 모래사장을 살펴보고 위즈가 내린 결론이다. 바람도 없는데 모래사장 뒤편의 숲이 가끔 흔들렸다. 누군가 숨어있었다.

『엄청 많네.』

“뭐가 많다는 거지?”

『계약으로 얻은 걸 써보세요.』

“계약이라고? 아! 마력을 보는 눈.”


<‘마력을 보는 눈’이 시전 되었습니다. 초당 1의 마력이 소모됩니다.>


위즈의 눈에 칙칙한 기운이 감돌며, 섬의 정경이 다르게 보였다. 전체적인 채도가 내려가서 약간 바래보어보이는 색감을 주었는데, 유독 선명한 빛을 내는 곳이 있었다. 발연탄을 터뜨린 것처럼 보라색의 연기가 흘러나오는 것이다.

“보라색으로……뭔가 보이는데?”

『그게 마력이에요.』

“보라색이?”

『꼭 보라색이 아닐 수도 있어요. 대충 학파에 따라 마력의 색과 모습이 달리 보이지만, 아직 초급이니까 색만 구별할 거예요.』

“흐음……그렇다면 저기 숨어 있는 사람의 숫자만……스무 명. 그들이 전부 마법사라 이거로구나.”

위즈는 골치가 아팠다. 모래사장으로는 잠입할 수 없다.

“일단 주변을 돌아봐야겠군. 사샤 너는 일단 어디 숨어있도록 해. 녀석들에게 잡히면 곤란하니까.”

『조심하세요.』

“걱정마라. 꼭 친구들을 구해낼 테니까.”

위즈는 녹슨 칼을 둘러맨 채 섬의 뒤편으로 잠수해 들어갔다. 사샤가 준 생명의 진주 덕분에 스태미나 아끼며 움직일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이쪽은 이끼가 많은 바위…….”

바다로부터 침입하는 경로로는 최악이었지만, 그만큼 경비가 허술할 가능성이 높았다. 위즈는 일단 이 경로를 기억해두고 섬을 따라 한 바퀴 돌았다.

“만만치 않군.”

동쪽은 배를 숨겨둔 장소로 가장 많은 인원이 배치된 곳이었다. 이곳 역시 보라색의 마력을 흘리는 자들이 득시글거렸다. 가끔 가다가 이들의 몸에서 둥근 테가 빛나며 넓게 퍼져나갔다. 그럴 때마다 위즈는 본능적으로 머리를 물속에 집어넣었다.

‘마법사의 탐지!’

서구 판타지 풍의 게임에서 마법사는 전장을 휩쓰는 대량학살마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더 오션도 마찬가지라서 50레벨부터는 별의별 광역주문이 다 튀어나온다. 따라서 그러한 마법사를 빨리 암살하는 게 승리를 위한 필요조건처럼 되었다.

그래서 마법사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주문이 탐지와 배리어이다. 이 두 가지를 배우지 않은 마법사는 없다. 한 대만 쳐도 픽 죽어버리는 마법사의 연약한 몸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특히 ‘탐지’는 마력 소모량이 5밖에 되지 않는다. 거기다 쿨타임도 없어서 마구 난사할 수도 있다.

‘저 많은 마법사들의 탐지를 피할 방법이 없다.’

몰래 숨어들어가겠다면, 동쪽만은 피해야 한다.

위즈는 섬의 서쪽을 살폈다. 이곳에는 바다 쪽으로 벙뚤린 구멍이 드러나 있었는데, 이 섬이 생겨날 때부터 존재한 동굴 같았다. 인위적인 흔적은 동굴과 연결된 계단이었는데, 난간도 없이 암벽을 끼고 오르내리게 되어 있었다.

이곳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염소 따위를 몰고 있었다. 동굴에 가까워질수록 염소들은 자꾸만 발버둥을 치며 움직이지 않으려했다. 계단을 벗어나 도망치려는 녀석도 있었다. 그러자 이들은 염소를 번쩍 들어서 동굴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 염소의 거친 울음소리가 울렸다.

잠시 사람들이 빈손으로 동굴을 빠져나왔다.

“도축장 비슷한 건가?”

위즈는 침투경로를 두 곳으로 좁혔다.

절벽에 가까운 바위들을 기어 올라가야 하는 북쪽과,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서쪽.

그중에서도 위즈는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서쪽을 골랐다.

북쪽으로 가지 않은 이유는 사람이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섬에 상륙할 때는 좋아도, 그 다음 행동에는 차질을 줄 게 뻔했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부터 내려온다면 의심받기 딱 좋지.”

위즈가 이 섬에 숨어드는 것은, 납치된 아쿠에리언 아이들을 구출하기 위해서이다.

단일 무력으로 납치범들을 제압할 수 없다면 들키지 않고 움직여야 하는데, 이들은 대부분이 마법사다. 그러니 카무플라주로 정체를 숨기고 일을 추진하는 게 성공할 확률이 높았다.

그런 점에서 서쪽 말고는 갈 곳이 없었다.

살아있는 짐승인 염소를 통제하느라 어수선한 분위기의 사람들이 일렬로 죽 늘어서서 움직인다. 난간도 없는 위험한 계단을 걸으니 다른 것에 신경 쓸 정신도 없다.

무엇보다, 동굴을 오가는 자들 중에는 마법사가 없었다.

“탐지의 부담이 없지만 혹시 모르니 조심해야겠다.”

위즈는 일단 낮은 포복으로 서쪽 해안의 바위그늘을 따라 기어갔다.

일단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10분을 관찰할 동안 모두 5명이 지나갔다. 그중 2명이 마법사였다.

‘마법사가 아예 안지나가는 건 아니로군.’

동굴로 들어간 마법사들은 다른 이들과 함께 다시 내려갔다.

‘2분 뒤 다시 사람들이 길을 오른다. 눈치를 봐서 마법사가 없다면 곧장 침투해야겠다.’

위즈는 계단과 가까운 바위그늘에 몸을 숨겼다. 등이 바위에 닿자 둔탁한 쇳소리가 났다. 그제서야 쇳덩이를 지고 있었음을 떠올린 위즈는, 무거운 칼을 풀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건 잠수할 때나 쓸모가 있지, 실제 들고 휘두르기엔 좋지 않았다.


<장비를 해제합니다.>

<아쿠에리언에게 원조 받은 무기는 ‘학살자의 망령’입니다.>

<‘아이들을 구하자’ 퀘스트의 보상을 모두 지급받았습니다.>


“뭐?”

위즈는 잠시 얼떨떨한 표정을 짓다가, 황급히 퀘스트 창을 열었다.


§§§§§§§§§§§§§§§§§§§§§§§§§§§§§§§§§§§§§§§§§§§§§

[히든 퀘스트/ 아이들을 구하자]

어린 아쿠에리언이 납치되었습니다. 납치범들의 소굴로 보이는 섬으로 가서 구출해 오십시오.


난이도: D / 레벨제한: 없음.

임무: 아쿠에리언 아이들을 바다에 풀어줄 것.

보상-A: ‘신의 사자가 세상에 남긴 것’ 퀘스트를 할 수 있습니다.

보상-B: 아쿠에리언의 무기를 골라 가질 수 있습니다.

[보상 A, B는 미리 지급 됩니다.]

[보상 지급 완료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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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때 경비대들만 안 왔어도 이것보다 좋은 걸 얻었는데…….”

단순히 사샤의 헤엄치는 속도에 견디려고 지지대 삼아 들고 온 건데, 이것도 무기랍시고 보상이 완료되어버리자 위즈는 허탈감에 빠졌다.

좋은 무기는 전투를 보다 유리하게 이끌어가는 중요한 변수. 무기 덕을 보면 혼자서도 이번 퀘스트를 깰 수 있겠다고 생각한 위즈다.

“어쩔 수 없지.”

위즈는 인벤토리에서 단검을 꺼내들었다. 녹이 슬어서 날이 무디어진 칼로 기습을 하다간 소란만 키울 뿐이다.

잠시 후 계단을 걸어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혹시 마법사가 있을지 몰라서 위즈는 마력을 보는 눈으로 재차 확인했다.

‘다행이도 마법사는 없다.’

이들이 위즈의 머리 위를 지나쳐갈 때, 위즈는 슬쩍 몸을 일으켜 계단으로 기어올랐다. 이곳은 완만하게 길이 꺾이는 지점이라, 일순간 앞사람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위즈는 맨 뒤로 쳐진 사람이 모퉁이를 넘어가기 전에 상대의 목을 휘어 감았다. 목을 휘어감은 손길에 따라 단검이 비스듬히 목을 그었다. 위즈에게 습격 받은 남자는 크게 입을 벌렸지만, 위즈는 놀고 있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기습에 성공하여 치명타를 입혔습니다.>

<일격에 적을 해치워 민첩 스탯이 1 오릅니다.>

<380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위즈는 도망가려는 염소를 보고 밧줄을 밟았다. 염소들은 전부 목에 줄을 매어둔 상태였다. 남자의 사체에서 망토를 빼앗아 두르며, 위즈는 즉시 카무플라주를 사용했다. 이미 앞 사람과 간격이 벌어져 있었다.

삽시간에 2미터 가까이 되는 키가 줄면서 중키로 변했고, 위즈의 턱에는 복슬복슬하게 수염이 돋아났다.

‘어차피 잠시 후면 사라지겠지만, 일단은 숨겨두는 게 좋겠지.’

위즈는 남자의 시체를 계단 아래의 바위그늘에 놓아두고는, 염소를 들쳐 매고 종종걸음으로 계단에 올랐다. 다행히 시간을 지체했음에도 위즈를 의식하는 사람은 없었다. 실제로도 간간히 염소가 말썽을 일으켜서 이동이 지체되는 일이 빈번히 발생했다. 그렇다고 매번 들고 갈만큼 가볍지도 않으니, 어르고 달래어 염소를 몰아가는 것이다.

‘엉겁결에 들쳐 맸더니 이게 더 눈에 띄는군.’

위즈는 슬그머니 염소를 내려놓고, 목줄을 꼭 쥐었다. 잠시 후 동굴에 도착한 위즈는 예상 밖의 상황에 직면했다. 동굴에 마법사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2명이나.

‘조금 전 올라갔던 자들은 모두 내려 왔을 텐데? 그렇다면 단순히 교대해준 것?’

아무래도 그건 사실 같았다. 이 동굴에는 마법사 말고도 다른 이들이 더 있었는데, 염소를 가져온 자들과 교대하여 내려갔다.

‘위험해. 이러다간 들킨다.’

일단 위즈는 다른 자들처럼 염소를 끌고 마법사를 따라갔다. 입구와 달리 동굴 깊숙이 들어갈수록 벽에 걸린 횃불의 숫자가 늘어났다. 그만큼 어두운 곳이었다.

마법사는 동굴 끝에 다다르자 벽에 기대놓은 칼을 집어 들었다.

구불구불거리는 칼날을 가진 크리스였다. 일단 생긴 건 단검과도 닮아 있었지만, 사이즈가 엄청 컸다. 마법사는 낑낑거리며 굵은 손잡이를 양손으로 거머쥐었다. 확실히 인간이 쓰는 문기는 아니었다.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라!”

마법사의 명령에 맨 앞에 서 있던 자가 염소의 다리를 밧줄로 묶었다. 그리고 높이 솟은 바위에 올려두었다. 바위는 원래 이곳에 있던 게 아닌 듯, 우윳빛의 돌로 이루어져 있었다. 위즈는 그 바위에서 인위적인 손길을 느꼈다. 조금 더 가까이 가보니 바위에 음각으로 무언가가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바위 위에 놓인 염소, 크리스를 든 마법사.

위즈는 이 상황이 제물을 바치는 의식임을 알아차렸다.

그것을 깨닫자 주변에 쌓인 뼈 무더기가 눈에 들어왔다. 그 뒤로는 차곡차곡 쌓아둔 뼈로 벽까지 만들어져 있었다.

‘이미 수백 마리의 제물을 바쳤구나. 대체 뭘 하려고 이러는 거지?’

마법사는 크리스를 들고 한발 한발 제단으로 다가갔다. 다른 마법사는 주머니에서 하얀가루를 꺼내 뿌려댔다.

메에! 메에에!

염소가 버둥거리며 구슬프게 울어댔다. 마법사는 크리스를 들어 염소의 목을 찔렀다. 그 동작에 망설임은 없었다. 염소의 목에서는 대신 검붉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그것은 높이 올라가지 않고 고스란히 제단에 흡수되었다. 위즈는 잠시 제단이 붉게 물든 것을 보았다. 그것은 생명을 받아먹고는 흡족해하며 빛났다.

염소는 살점하나 없이 뼈만 남아서 바닥에 뒹굴었다.

여러모로 섬뜩한 모습이다.

“다음.”

염소들이 차례차례 죽어갈 때마다, 제단은 연기를 머금고 요사스럽게 빛났다.

마지막으로 위즈가 데려온 염소가 뼈만 남았을 때, 마법사가 위즈를 지목했다.

“너. 내가 올 때까지 바닥이나 치워놓아라. 난 밖에 나가 있겠다.”

크리스를 벽에 기대놓은 마법사는 그대로 나가버렸다. 남은 마법사 역시 손에 묻은 가루를 털어내고는 함께 나가버렸다. 위즈와 함께 들어온 자들은 제물로 바칠 염소를 가지러 내려갔다. 투덜거리는 말을 들으니 밥 먹고 이 짓만 한다는 것 같았다.

‘다행히 날 의심하는 눈치는 아니다. 빨리 끝내고 나가서 아이들을 찾아야겠다.’

제단 근처에 사람이라곤 위즈 홀로 남겨져있다. 위즈는 이틈에 펫 인벤토리를 열었다.

“핏스톤. 움직일 수 있겠어?”

『충분히 쉬었다.』

펫 인벤토리에서 튀어나온 울퉁불퉁한 바위조각이 입을 열었다.

시에니투스에서 밤새도록 창고공사를 했던 핏스톤은 한동안 가수면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이 섬을 정찰할 때도 핏스톤을 이용하지 않고, 위즈가 직접 섬을 돌아본 것이다.

『그나저나 너저분한 곳이로군. 음? 이건?』

핏스톤은 우윳빛 제단에 다가갔다.

『아직도 이런 게 남아 있었는가.』

“조금 전 마법사들이 염소를 잡아 바치던데 혹시 짚이는 데라도 있어?”

『제단과 한 쌍을 이루는 도구를 이용해 제물을 바치면 그 힘은 마력으로 전환되어 제단에 저장된다.』

“나 마력을 보는 눈을 배웠는데, 지금 내 눈에는 마력 같은 게 전혀 느껴지지 않는 걸?”

『이제 막 배운 주제에 건방진 소리를 하는군. 일단은 비활성마력이라서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최소한 마스터정도는 되어야 겨우 알아차릴 거다.』

“마스터라면 네 주인인 Witch?"

『당연한 소리.』

“너도 마력을 보는 눈을 익힌 거야?”

『내 경우는 마력을 양식 삼는 존재이기 때문에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뿐이다. 위즈, 혹시 최근 이 근처에서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진 적이 없나? 하늘에서 불의 비가 떨어졌다거나, 거대한 회오리바람이 불었다거나.』

“바다에서 거대한 소용돌이가 생겨나서 배들을 침몰시켰던 일은 있어. 아! 물이 회오리치면서 하늘까지 타고 올라가며 생긴 물기둥도 있어.”

『역시 그랬군. 위즈, 그 정도 규모의 주문을 발동시키려면 대형 엘리멘탈 스톤이 필요하다. 문제는 그렇게 큰 엘리멘탈 스톤은 쉽게 구하지 못한다는 것이지. 그래서 여러 가지 대체물이 개발되었는데, 이 제단도 그런 물건 중에 하나다.』

둥둥.


<핏스톤에게서 중요한 단서를 전해 들었습니다.>

<돌발 퀘스트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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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발 퀘스트/ 울부짖는 바다]

당신은 이곳에 오면서 지나치게 난폭해진 바다를 경험했습니다. 핏스톤은 그게 광범위한 기상통제 마법 때문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만약 제단을 파괴하면, 더 이상 거대한 소용돌이가 배를 집어삼키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난이도: C / 레벨제한: 30.

임무: 제단을 파괴하십시오.

보상: 없음.

[제단을 이루는 재질이 제법 단단합니다.]

[퀘스트를 포기해도 패널티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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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린 아쿠에리언들을 납치한 건, 바하르칼 용병?”

위즈는 제단을 바라보았다. 저것 때문에 폭풍이 더욱 거세져서 안티 바하르칼의 배들이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저것만 파괴하면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위즈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핏스톤. 너 사이테리아의 핵을 먹는 이유가 마력을 얻기 위해서였지?”

『그렇다.』

“이 제단도 먹을 수 있어?”

제단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핏스톤은 연분홍 혓바닥을 내밀어 입가를 핥았다.

『먹고는 싶지만 겉을 감싼 껍데기가 문제다.』

“껍데기?”

『제단의 내부에는 사이테리아의 핵과 닮은 수정체가 들어 있다. 마력을 저장하는 용도지. 반면 겉 부분은 마력을 뽑아내는 구조로 되어있다. 나처럼 마력을 먹고 사는 존재는 저걸 삼키는 순간, 모든 마력이 빨려 죽고 만다.』

“그럼 저것만 부수면 되는 거야?”

『부술 수만 있다면 문제없겠지. 하지만 저건 어지간해서는 흠집도 나지 않을 것이다.』

“해보지 않고는 모를 일이지!”

위즈는 구석에 놓인 크리스를 집어 들어들었다. 낑낑대며 들어 올렸던 마법사와 달리, 위즈는 훨씬 수월하게 들어올렸다. 마법사는 양손으로 잡고 들어 올렸지만, 위즈는 손잡이를 겨드랑이에 끼웠기 때문이다.

『그건 제식용 단검 같군. 하지만 크기가 너무……잠깐! 위즈! 대체 그걸로 뭘 하려는 것이냐?』

“당연히 제단을 부수려는 거지!”

『잠깐! 그건…….』

핏스톤이 말리는 것보다 위즈가 제단을 크리스로 내려치는 게 더 빨랐다. 순간 붉은 번개가 일어나더니 위즈의 마력이 홀라당 타들어갔다.


<마나번 현상 발생! 소실된 마력만큼 데미지를 입습니다.>

<마력간섭이 일어나 400의 마력이 태워 없어졌습니다.>

<400의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윽!”

위즈는 크리스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한꺼번에 많은 데미지를 입어 붉게 물든 시야가 점차회복 되었다.

“이게 뭐야?”

『마나번이다. 강한 마력이 서로 충돌할 때 벌어지는 현상이지.』

“어째서 이런 일이?”

『그거야 그 제식용 단검이 마력을 머금은 마법검이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지금의 마나번 때문에 주변이 소란스럽군.』

아니나 다를까, 동굴이 시끄러워지면서 마법사들이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대체 뭘 건드린 거냐!”

핏스톤은 제단 근처에 두꺼운 암반을 세워서 그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위즈는 제단을 확인했다. 엄청 세게 내리쳤음에도 흠집하나 남지 않았다. 바닥에 떨군 크리스 역시 부러진 곳 없이 멀쩡하다.

밖에서는 마법사들이 주문으로 암석을 해체하는지 요란한 소리가 난다.

위즈는 초조해졌다. 부수긴 부숴야 하는데 마땅한 장비가 없다.

가진 무기라곤 단검 몇 자루가 전부고, 그밖에 쇠붙이는 모자손 밖에 없다. 혹시나 싶어서 모자손으로 제단을 긁어보려던 위즈의 팔을 핏스톤의 혀가 거세게 쳐냈다.

『조금 전 내가 한말을 허투루 들었나? 그 건틀릿에 내장된 마력회로가 망가질 거다.』

위즈는 거칠게 머리를 흔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학살자의 망아지인가 망령인가 하는 쇳덩이를 들고 올걸 그랬어.”

팔에 감긴 핏스톤의 혀가 위즈의 몸을 거세게 끌어당겼다. 그 바람에 위즈는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뭐라고 했나?』

“뭘 말이야?”

『학살자의 망령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래 학살자의 망령이라고 했어. 그게 왜?”

『어디 있지?』

“여기 오면서 버리고 왔는데.”

『찾아와라.』

“이봐 입구가 막혔는데 어떻게…….”

핏스톤은 기다렸다는 듯이 동굴 옆쪽에 비스듬히 구멍을 뚫어주었다. 점토에 손가락을 박아 넣은 것처럼 손쉽게 뚫린 구멍 너머로 넘실거리는 바다가 보였다.

『시간이 없다. 학살자의 망령을 찾아서 가지고 와라. 그거라면 충분히 제단을 부술 수 있다.』

“마법사들이 몰려올 거야. 혼자서 괜찮겠어?”

『문제없다. 얼마 전 네가 준 어둠의 열매 덕분에 마력은 충분하다.』

“그럼 다녀올게. 버티고 있어.”

위즈는 핏스톤이 뚫어준 구멍으로 달려가 바다로 입수했다. 그와 동시에 핏스톤이 세워놓은 암반이 잘게 부서져나갔다. 마법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감히 저주받은 고대의 힘에 손대다니. 살려두어선 안 될 놈들이로구나!』

“저게 뭐지?”

마법사들은 말하는 바위덩어리를 손가락질 했다. 핏스톤을 처음 본 사람의 반응은 대동소이했다. 핏스톤은 사람들의 반응 따위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천장을 이루는 돌조각을 뾰족하게 만들어 마법사들을 내리찍었다. 마법사들은 미리 쳐놓은 배리어로 공격을 막아냈다.

“큭! 저게 뭔지는 중요하지 않다! 제단을 지켜라!”

매직스틱을 꺼내든 마법사들이 연거푸 주문을 쏟아내었다.

“헤비 워터 스트링!”

마력에 반응한 동굴 속의 수분이 가늘게 꼬아졌다. 그것은 실제 크기에 비해 많은 양의 물이 압축되어 생긴 것으로, 엄청난 절삭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핏스톤을 때렸다. 평범한 돌이라면 단번에 두 동강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핏스톤은 평범한 돌이 아니다.

핏스톤은 원래 마계의 생물이라 특유의 강인함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witch의 소환수가 되면서 몇 단계나 격이 높아졌다. 그런 핏스톤에게 지금 마법사들이 때려 붓는 주문들은 간지럽지도 않았다.

여기엔 대지속성과 암흑속성을 타고난 핏스톤의 방어력도 한 몫 했다.

“뭐, 뭐야? 수계열이 전혀 안 먹히잖아?”

“전뇌속성도 마찬가지야!”

『재롱은 다 부렸나?』

핏스톤이 입을 벌렸다.

『밤하늘 아래 어둠 가시……』

핏스톤이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스킬이 터져 나오려던 그때.

마법사들의 뒤쪽에서 보랏빛 광선이 쏘아졌다. 그것은 핏스톤을 스치고 지나가 동굴의 벽에 시커멓게 그을린 자국을 만들어냈다. 단지 살짝 스쳤을 뿐이지만, 핏스톤의 상태는 위중했다. 단단한 암석으로 이루어진 표피가 깨져, 검푸른 기운이 뭉클거리며 새어나왔다. 그동안 공급받은 마력이 흘러나오며 핏스톤은 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큭! 이건 디스트로이어 레이? 어떤 놈이냐!』

마법사들을 헤치며 누군가 나섰다.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을 치렁치렁 늘어뜨린 자가 푹 눌러쓴 로브를 걷었다. 깡마른 얼굴에 푹 꺼진 눈가엔 검게 기미가 낀 남자였다. 남자는 즐거워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핏스톤을 내려다보았다.

“혹시나 해서 와봤는데 반가운 얼굴을 보게 되었군.”

『난 널 모른다.』

“이건 내 얼굴이 아니니까 못 알아보는 것도 당연하지. 이렇게 말하면 알아들으려나? 난 네 고민을 들어준 최초의 지기이자, 너의 악몽이다.”

핏스톤의 입에서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잇…페인…….』


작가의말

연참 3일 째.

고통을 먹는 자 등장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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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4. 고통을 먹는 자 (13) +3 14.03.04 1,799 43 25쪽
63 4. 고통을 먹는 자 (12) +3 14.02.28 1,201 25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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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4. 고통을 먹는 자 (10) +5 14.02.20 1,014 40 22쪽
60 4. 고통을 먹는 자 (9) +3 14.02.17 1,167 32 18쪽
59 4. 고통을 먹는 자 (8) +6 14.02.15 995 21 22쪽
58 4. 고통을 먹는 자 (7) +6 14.02.10 1,030 47 22쪽
57 4. 고통을 먹는 자 (6) +5 14.02.06 891 27 26쪽
56 4. 고통을 먹는 자 (5) +4 14.02.02 799 21 24쪽
55 4. 고통을 먹는 자 (4) +3 14.01.30 959 21 21쪽
54 4. 고통을 먹는 자 (3) +5 14.01.25 852 24 21쪽
53 4. 고통을 먹는 자 (2) +4 14.01.22 1,097 38 21쪽
52 4. 고통을 먹는 자 (1) +2 14.01.20 1,091 28 21쪽
51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ED) +1 14.01.14 893 21 22쪽
50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20) +3 14.01.13 1,181 33 35쪽
49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19) +4 14.01.06 808 21 23쪽
48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18) +5 13.12.31 1,088 22 28쪽
47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17) +3 13.12.28 1,325 40 20쪽
46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16) +2 13.12.26 1,156 25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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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12) +3 13.12.19 1,178 26 13쪽
41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11) +3 13.12.17 1,395 76 24쪽
40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10) +4 13.12.14 1,332 28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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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8) +2 13.12.10 1,216 30 19쪽
37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7) +3 13.12.07 1,250 34 17쪽
36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6) +2 13.12.06 1,236 59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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