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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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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연재수 :
1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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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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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4.02.10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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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글자
22쪽

4. 고통을 먹는 자 (7)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7.

해적들을 이용해 바하르칼을 견제한다. 얼핏 들으면 이이제이(以夷制夷)같아서 제법 멋진 계획 같다. 하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득도 없는데 남의 싸움에 끼어들 멍청이는 없으니까.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전쟁광일 것이다.

“해적이 무법자인 건 맞지만, 그게 멍청이란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자들이 더 영리한 법이지요. 언제 치고 빠질지를 조율하고, 언제나 칼날 위를 걷는 것처럼 조심스러운 자들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해적질은 비즈니스지요. 요컨대 쉽게 꼬임에 넘어가진 않을 거란 말입니다.”

“당연히 그렇겠죠. 그래서 저는 해적이라는 사업가들 중에서도, 이윤추구는 뒷전인 자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돈으로 관직을 산 자들 있지 않습니까? 빌헬름텔님이 알고 계신 해적처럼 말이지요.”

“사략해적을 말하는 거로군요. 그들도 다른 해적과 다를 게 없습니다. 관직을 가지고 있으면 다를 줄 알았습니까?”

“그래도 다른 해적에 비해서는 이야기가 좀 통할 것도 같습니다만.”

“그건 착각입니다.”

해적면허를 가지고 활동하는 해적이 바로 사략해적.

상선을 털어서 국고를 채우고, 적대국가의 국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생겨난 해적의 변종.

하지만 더 오션의 사략해적은 거기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된다.

바로 국왕이 몰래 운영하는 작전세력이란 사실.

이들은 해군만으로 대처가 힘든 상황을 위해 준비된 히든 카드였다.

“항마전쟁으로 땅이 가라앉자, 바다에서의 활동이 크게 늘었습니다.”

특히 해군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각국의 스파이들이 해군의 동향을 살피는 건 당연한 일.

해군의 전함은 국가와 소속이 분명히 표시되어 있으며, 귀환하는 곳은 언제나 본부가 있는 모항(母港). 배라는 장비는 꾸준한 유지보수가 필요하기에, 반드시 근거지가 필요하다.

대략적인 움직임을 파악하는 정도는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근거지 근처의 야산이나, 마을에 잠복하여 군함이 오고가는 것만 관찰하는 것으로 충분했으니까.

이렇게 되니 배를 이용한 비밀작전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일반 항구 아무데나 전함을 정박시킬 수도 없다. 일반인들의 입은 가볍다. 삽시간에 어떤 나라의 배가, 어떤 도시에 정박했더라는 소문이 하루 이틀 사이에 퍼져나간다.

그렇다고 비밀 항구를 새로 건설하자니, 그게 또 돈이 만만찮게 든다. 입지조건이 맞는 곳도 없다.

그래서 등장한 게 사략해적이다.

신분을 속이고 몰래 빠져나간 자들이, 저마다 세력을 일으켜 해적이 된다.

그리고 노략질한 보물들을 바치며 작위를 산다.

짜고 치는 연극이었지만 효과는 좋았다.

일단 해적이기에 모항이 알려지지 않았다. 만약 이들을 감시하려면 가까이 접근해야 한다. 하지만 무법자들이 그런 자들을 곱게 살려둘 리 없다.

비밀유지 면에서는 일반 해군보다, 해적 쪽이 더 나은 것이다.

이것이 사략해적이 비밀임무 수행에 적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스파이가 신분을 숨긴 채 해적이 되면요?”

“범죄자들은 폐쇄성이 강합니다. 해적들이 새로 전투원을 뽑는 일은 매우 드물지요. 그래서 문제인겁니다. 이들이 폐쇄적인 건, 범죄자인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사소한 것이라도 위협으로 간주하면 반드시 피를 봅니다.”

해적들은 수상한 자가 접근하면, 눈치 볼 것 없이 제거해버린다. 백주대낮이라고 망설이지 않는다. 어차피 그들의 목에는 현상금이 걸려 있다. 죄를 더한다고 달라질 건 없다.

반면 사략해적의 경우는, 그렇게 사람을 죽여도 죄를 묻지 않는다.

“아무리 히든카드로 쓸 거라지만, 살인을 눈감아준다고요? 그들은 카오틱NPC아닙니까?”

“사략해적에게는 적국의 스파이를 잡을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죽인 자들은 무조건 스파이입니다.”

“네?”

“해적은 범죄자입니다. 험악한 자들이니만큼, 겉모습이나 언행에서부터 가까이하기 힘든 분위기가 납니다. 일반인이라면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습니다. 설사 우연히 마주쳐도 도망 가버립니다. 그런데 도망은커녕, 얼쩡거리면 충분히 수상쩍지요. 사략해적이 죽이는 건 그런 자들입니다. 사실상 적국에서 보낸 스파이를 제거하는 과정이죠.”

“그렇다면 우리들이 접근하면 스파이로 몰아서…….”

“스파이로 몰리진 않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냥 죽일 겁니다.”

빌헬름텔의 말에 위즈는 황당해졌다. 스파이로 몰지 않는데, 왜 죽인다는 것인가. 그 의문에 빌헬름텔은 이렇게 대답했다.

“일반 해적은 스파이고 뭐고 상관 않고 죽이니까요.”

“저는 일반 해적이 아니라, 사략해적을 말하는 건데요?”

“일반 해적과 사략해적은 별 차이가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사략해적이 일반 해적처럼 행동한다는 거죠.”

일반해적은 사략해적을 변절자로 여긴다. 국왕에게 돈을 바치고, 관직을 얻은 시점에서 이미 해적일 수 없다. 게다가 해군의 특작부나 다름없는 포지션까지 맡고 있다. 그런 사략해적을, 다른 해적들이 가만둘 리 없는 것이다.

“정체가 밝혀진 사략해적이 공격받는 건 흔한 일이지요. 그래서 사략해적은 일반 해적과 똑같이 행동합니다.”

“그럼 결국 접근하는 건 불가능하네요.”

“보통은 그렇겠지요. 하지만 시에니투스라면 가능합니다. 중립도시에서는 함부로 살인을 저지를 수 없거든요. 그랬다간 모두의 공적이 됩니다.”

“결론은 문제없다는 거로군요.”

“그 전에 한 가지만 확인하겠습니다. 사략해적에게 줄 대가는 준비해놓으셨습니까?”

“대가요? 그게 왜 필요한데요?”

“제가 앞서 말했다시피, 해적질은 비즈니스고 해적은 사업가입니다. 그 점은 사략해적도 같습니다. 충분한 대가를 내놓지 않으면 절대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위즈는 빌헬름텔의 어깨를 짚었다.

“보수는 받았으니 알아서 해주실 거라 믿어요. 비록 게임이 초기화되었다지만, 레드오션에서 습득한 경험이 어디 가는 건 아니잖아요?”

“잠깐만요! 레드오션에서 써먹은 방법으로 친분을 쌓는 건 가능하지만, 그건 시간이 너무 걸립니다. 하루 이틀 만에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요.”

위즈도 어느 정도는 예상한 일이었지만, 해적들과 친분을 쌓는 방법은 다름 아닌 퀘스트였다.

난이도도 크게 높지 않았다. 특수한 경로를 통해 해적들과 어울리거나, 함께 사냥을 가주는 수준. 이런 자잘한 퀘스트를 틈틈이 깨주면, 친구가 되어 희귀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었다. 빌헬름텔이 해적과 신분을 쌓았던 건 이 때문이었다.

“설사 친분을 쌓았다 해도, 해적단 자체를 움직이는 건 힘들 겁니다. 제가 말했지요? 해적들은 사업가라고.”

“예전 용병생활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데, 거칠고 투박하다는 건 그만큼 순수하다는 뜻이더군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말이지요.”

“그 말은 틀리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저도 다른 게임에서 용병을 해본 적이 있으니까, 위즈님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압니다. 하지만 이 게임-더 오션은 최신 가상현실게임입니다. 기존에 해온 3세대와는 비교도 안 되는 리얼리티를 가지고 있다고요. 이제까지 다른 게임에서 쌓은 경험을 너무 믿어선 곤란하지요.”

“4세대만의 차별화된 리얼리티. 그게 사실이라면 해적은 제 생각대로 움직일 겁니다. 실제 현실세계에서 용병생활을 해왔기에 확신합니다.”

“진짜 용병이었다고요?”

“이걸 보시면 이해할지도 모르겠군요.”

위즈는 카무플라주 상태를 완전 해제시켰다. 갈색 단발머리의 여자아이의 모습이 크게 부풀며 살집이 붙었다. 머리카락은 캐릭터 고유색인 은색으로 바뀌었고, 키도 쑥쑥 자라 2m에 가까운 장신이 되었다.

빌헬름텔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졌다. 야광초가 피어 있는 던전을 배경으로 서 있는 거인. 그 거인이 쭉 찢어진 눈을 떴다. 무슨 보스몬스터 등장하는 것처럼 으스스한 분위기가 흘렀다.

“이게 진짜 제 모습입니다.”

“그…얼굴도 진짜?”

“진짜입니다.”

“……굉장히 터프해 보이시네요.”

표현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무표정 상태인 저 얼굴은 곧 폭발할 것만 같은 짐승의 냄새를 풍긴다. 게다가 덩치까지 한 몫 해서, 덤비면 최하 사망일 거라는 사실을 강제로 인지시킨다. 좋게 말하면 카리스마고, 나쁘게 말하면 악당. 그것도 빌런.

“저도 압니다. 어린애들도 무서워할 얼굴이란 걸.”

위즈는 억지로 입매를 비틀어 미소란 걸 만들어냈다. 그러자 범죄자 특유의 살벌한 분위기가 부드럽게 바뀌었다. 이것이 현실세계에서 실실 웃고 다닐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카무플라주 스킬을 쓰는 동안은 얼굴근육이 참 편안했는데 말이지요. 어쨌든 실제 용병을 했던 건 맞습니다.”

“네……왠지 진짜일 것 같네요.”

위즈는 그 말에 가슴이 아릿해졌다. 얼굴값이란 게 이런 건가.

“나쁜 뜻이 아니라……그냥 그럴 것 같다고 생각을……상처받은 건 아니죠?”

빌헬름텔이 조심스레 물었다.

“뭐 생긴 게 이런 걸 어쩔 수 없지요.”

“힘내세요.”

“그만하죠.”

“네…….”

위즈는 다시 카무플라주로 모습을 바꾸었다. 처음처럼 단발머리의 여자의 모습을 취한 위즈는 다시금 빌헬름텔을 설득했다.

“아무튼, 친분만으로 해적단을 움직일 수 있을지 없을 지는 해보지 않고는 모를 일입니다.”

“일단 시도는 해보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하나만 더 물어봐도 됩니까?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 게 있어서요.”

“뭔데요?”

“대뜸 사략해적을 입에 올린 것도 그렇고, 이 일을 위해 정확히 저를 지목한 것도 그렇고. 알고 계신 정보의 수준을 보면, 꽤나 고급 정보원에 선을 대고 계신 것 같은데……그런 것 치고는 묘하게 구멍이 많아 보인단 말이지요. 사략해적의 존재는 알지만, 그들의 성질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거나. 사략해적으로 바하르칼을 막을 생각을 했으면서도, 그 실행방법이 전무한 것도 그렇고.”

“아……그거야 전 ‘레드오션’은 하지 않았으니까요. 이 게임을 시작하게 된 건 ‘더 오션’부터에요. 단지 여기저기서 자료를 긁어모아, 급하게 훑어보았을 뿐이라 이해는 못한 상태인 거죠.”

“그렇다면 말은 되네요.”

납득한 표정을 짓는 빌헬름텔을 보며 위즈는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다.

위즈가 얻은 정보는 솔티 워터에서 얻은 걸 빼면 전부 불법이다.

‘그걸 드러낼 수는 없지.’

파이오니어 빌딩이 테러 당한 날.

셸터에 내장된 프로그램 ‘네메시스’는, 현실의 콜로니와 ‘레드오션’이란 가상현실 게임을 융합시켰다. 그것이 지금의 ‘더 오션’.

그래서 융합의 주체가 된 ‘네메시스’는 게임데이터의 카피본을 가지고 있다. 위즈가 필요로 할 때마다 수시로 요구해 얻을 수 있는 건 그 때문이다.

예를 들면, 어떤 퀘스트의 최종보스의 특수기술이나, HP수치 등등을 미리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외의 것들, 특히 NPC의 성향 같은 건 미리 알 수가 없다.

게임속의 환경, 세력관계에 영향 받아 수시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현재 네메시스가 가진 데이터는 융합당시 생성된 베이스데이터의 복사본.

‘하루에도 새로이 NPC가 생겨나고 죽는 일이 수 없이 이루어지니까, 베이스데이터 속의 NPC항목은 큰 의미가 없다.’

혹시라도 역추적 당할까봐 마도로스 社의 서버에 접속할 수 없는 지금에 와서는, NPC의 데이터를 얻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부족한 점을 메우기 위해, 솔티 워터에서 구입한 정보를 합쳤다. 이런 정보는 유저를 통해 입수되어 가공되었기에 자의적인 해석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위즈가 사략해적을 일반해적보다 접근하기 쉽다고 착각했던 것이다.

빌헬름텔이 느낀 위화감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그래도 약점을 잡아 협박한다거나, 음모를 꾸며서 움직인다는 발상을 하지 않은 건 칭찬해드리죠.”

“왜죠?”

“카오틱NPC일수록 함정에 빠뜨리기 힘든 법입니다. 역으로 당하기 십상이죠.”

“크레센토 왕국에서 일어난, 인육만두 사건은 성공했잖아요.”

인육만두는 ‘암살자였던 던컨’의 딸을 납치해, 던컨을 조종하려 했다.

친딸의 목숨이 걸려 있기에, 던컨은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그게 위즈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빌헬름텔은 고개를 저었다.

“그거야 협박당한 NPC가, ‘전직’ 암살자였으니 가능했던 거죠. 손 씻었다면서요? 게다가 가정까지 꾸렸고. 즉, 현재 카오틱도 아니고 선량한 NPC라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 당했던 거지요.”

“성향에 따라 다른 반응을 했을 거란 얘깁니까?”

“카오틱이라면 애초에 딸을 쉽게 납치당하지 않았을 겁니다. 근처에 트랩을 잔뜩 설치하거나, 절대 딸을 혼자 두지 않는다거나 했겠죠. 뒷골목 양아치도 아니고, 암살자니까 그만큼 조심성이 몸에 뱄을 테지요.”

“아……범죄자의 심리.”

“그러니까 친분으로 접근하려한 위즈님의 방식과, 물질적인 대가를 지불하는 방식만이 가능한 겁니다. 그럼 퀘스트의 방식에 대해…….”

“잠깐만요. 잠깐만 정보를 검색하면 안 될까요?”

“안될 것도 없지요.”

빌헬름텔의 허락을 구한 위즈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더니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게임에 접속한 상태로 외부링크를 열어 팬사이트를 둘러보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위즈가 입을 열었다.

“흠……빌헬름텔님. 조금 전 중립도시의 암묵적인 룰 말입니다. 만약 시에니투스에서 싸움이 벌어진다면, 그러니까 사상자가 발생했을 때 말입니다. 가해자가 특정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경우, 그 사람만 단죄하는 겁니까?”

“그럴 리가요. 이들이 당사자 간의 결투로 좋게 풀겠습니까? 같은 패거리도 불벼락을 피하지 못할 겁니다.”

“이거 사략해적이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길 것 같군요.”

위즈의 눈이 번뜩였다. 조금 전 핏스톤이 근방을 정찰하다가 알려준 정보가 영감을 자극했다.


◇◇◇◇◇◈◇◇◇◇◇◇◈◇◇◇◇◇◇◈◇◇◇◇◇


주둥이가 길게 튀어나온 날렵한 사냥개가 같은 자리를 맴돌며 끙끙거렸다. 그러자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풀피리를 입에 물었다. 짧고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의 무기와 복장은 다양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회색망토를 두르고 있다는 것.

흔한 컬러였지만, 같은 컬러가 한곳에 모여 있으니 그것도 분명한 특징이 되었다.

이들은 바하르칼 용병이었다.

“이번엔 진짜겠지?”

“그, 그럼요…….”

약간 자신 없는 목소리로 테이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탐탁지 않게 바라보던 남자를 누가 불렀다.

“머슬가이, 그렇게 닦달한다고 잡히는 게 아니다.”

“그 일 이후로 내 승급심사가 보류되었다. 적어도 이번에 공을 세우지 못하면, 난 삼류 용병에 머물러야만 한다고.”

머슬가이. 그는 마지막으로 남은 이글아이 스킬북 탐색을 위해, 바하르칼 용병단이 제로니스 섬으로 보낸 유저다. 하지만 ‘한스’라는 NPC의 수작에 넘어가 스킬북을 놓치고 말았다. 그 때문에 그는 용병등급이 오르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이었다.

게다가 나중에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한스’라는 NPC와 ‘W’라는 요주의 인물이 연관이 있었다.

머슬가이가 지금 쫓는 것은 ‘W’.

바하르칼 용병단의 탑 매지션인 에제키엘의 부 캐릭터, ‘인육만두’를 잡은 자다. 게임 초반부터 바하르칼과 악연으로 엮인 존재. 그래서 더더욱 놓칠 수 없었다.

“네 기분은 잘 알지만, 그럴수록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라. 그 많은 유저들의 눈을 속이고 사기를 친, ‘한스’와 관련 있는 유저다. 유유상종이라고 했다. ‘W’ 역시 무슨 간계를 쓸지 몰라.”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이 명령을 받는 순간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이야기였다.

“알겠다. 자중하도록 하지. 불량식품.”

머슬가이는 한발 짝 물러섰다. 불량식품이 테이머에게 다가섰다.

“탐색능력에서만큼은 테이머가 사냥꾼보다 월등히 우월하다. 그런 테이머가 애먹었다면 이유가 무엇일 것 같나?”

“저처럼 개를 데리고 올 경우, 개의 후각을 차단하는 아이템을 쓰면 간단히 해결될 일입니다. 하지만 개는 멀쩡합니다.”

“그렇다면 남는 건 스킬이로군.”

“W가 더 이상 무능력자가 아니란 건가?”

“무능력자라 해도 습득할 수 있는 스킬은 존재한다. 각 나라로 퍼져나간 이글아이처럼 말이지.”

“공통스킬 중에 추적을 뿌리칠 만한 게 있다고?”

“공통스킬은 아냐. 일정 조건만 갖추면 배울 수 있는 것이지. 바로 사냥꾼의 ‘간파’다.”

“간파? 그건 단지 정보를 얻는 용도잖아?”

“그렇지만도 않아. 우리들은 너무 숫자가 많다. 만약 간파를 익혔다면, 주변을 배회하는 자가 있다는 것쯤은 쉽게 눈치 챈다. 그리고 몇 분 간격으로 배회하며, 주로 어떤 진형을 유지하고 있냐만 알아도 빈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다. 실제로 W는 갑자기 길을 벗어나는 돌발행동을 했다. 미행중인 우리들은 내놓고 추적하지 못하고 당황했다. 그리고 놓쳐버렸다.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동안 말이지.”

“함께 있던 아처가 파티채팅으로 알려준 게 아닐까?”

“그들은 길을 걷는 동안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누었다. 일상대화를 나누면서 파티채팅을 동시에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지. 그런데 길을 이탈하고부터 앞장선 것은 W였다. W의 감지능력이 뛰어나다는 상황증거로 충분하다. 아마 W는 우리를 피해, 숨겨진 동굴이나 던전으로 몸을 피신했을 것이다.”

“그럼 어떡해야 하지?”

“머슬가이. 우리가 맡은 주 임무가 뭐지?”

“비밀 회담에 앞서 주변을 정리하는 것.”

“그래. 굳이 W를 찾아 죽이거나, 내쫓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W의 추적에 성공한다면, 그것 역시 공을 세운 게 되겠지. 하지만 지금은 회담 쪽이 더 중요하다.”

불량식품이 테이머들을 돌아보았다.

“우리들은 지금까지 하던 일을 계속한다. 다만, W가 사라진 근처는 인원을 3배로 늘려서, W가 밖으로 돌아다닐 엄두를 못 내게 해야 한다. 회담이 끝날 때까지 얼씬도 못하게 만들면 되는 거다. 알겠나?”

“넵!”

불량식품의 지시에 테이머들은 크게 대답했다, 개의 입에 씌운 입마개도 거뒀다. 홀가분해진 개들이 짖어대자,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회담이 이루어질 장소로부터 반경 200m를 무인지대로 만든다.

그것이 이들에게 내려진 명령이었다.


◇◇◇◇◇◈◇◇◇◇◇◇◈◇◇◇◇◇◇◈◇◇◇◇◇


“누군가 우리를 쫓고 있습니다.”

“압니다. 바하르칼 용병이지요?”

빌헬름텔은 다 알고 있다는 듯 놀라지 않았다. 길을 벗어나는 돌발행동을 해도 가만히 있었던 건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추적이나 탐지와 관련된 스킬을 가지고 계셨습니까?”

“사냥꾼NPC에게 배웠습니다. 레벨이 낮긴 하지만요.”

“이상한 점을 못 느꼈습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저들은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도망치는 사람을 잡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미 형성된 포위망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이때 숫자가 많아야 포위망을 형성하기가 좋은 건 당연한 사실. 그런데 위즈는 그런 상식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숫자가 많을수록 우리들을 발견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들은 진즉 잡혔어야 합니다. 그런데 잡히질 않았어요. 즉 저들은 우리들을 잡기 위해 동원된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방금 들어온 따끈따끈한 정보에 의하면, 이 근처에서 바하르칼의 주요인물들이 모이는 모양입니다.”

“야외에서…그것도 시에니투스 인근인데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저 많은 인력들은 엿듣는 이들이 없게 하려고 동원된 겁니다. 우리가 나타나기 전부터 이곳에 진치고 있었던 이유지요.”

“그렇다면 잘된 일이로군요. 저들의 모임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빠져나가면 될 테니까요.”

위즈는 고개를 저었다. 빌헬름텔의 말대로 하면 무사히 빠져나올 수는 있지만, 손에 쥐는 이득이 하나도 없다.

“저는 그들의 회합을 한바탕 휘저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바하르칼 용병을 좋게 보진 않습니다. 그렇다고 단 둘이 상대하는 건, 솔직히 무모하지 않습니까?”

빌헬름텔이 부정의 뜻을 내비쳤다.

바하르칼 용병들은 회담이 이루어지기 전부터 사람들을 몰아내고 있다. 비밀로 해야 할, 중요한 이야기를 나눌 거라는 건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밖에 없다. 어지간한 각오로 그런 자들을 상대할 수 없다. 그게 빌헬름텔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카무플라주를 이용하면요?”

위즈는 제로니스 섬에서 했던 일을 알려주었다. 필사를 해주던 NPC 한스의 정체를 밝히자, 빌헬름텔은 눈을 부릅떴다.

“유저인데 NPC처럼 될 수도 있다는 겁니까?”

“퀘스트는 못 주지만요.”

“그것만 해도 굉장한 겁니다.”

곧 이어 위즈는 자신이 세운 계획을 알려주었다. 간간히 빌헬름텔이 끼어들어, 세세한 부분은 고쳐주었다. 잠시 후 빌헬름텔이 단언했다.

“이건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빌헬름텔님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 같아 죄송하네요.”

“괜찮습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라니, 안 시켜주셨으면 서운했을 겁니다.”

빌헬름텔은 활을 고쳐 매며 일어서려다가, 턱을 긁적이더니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까부터 신경 쓰이는 게 있는데……저 구석에서 떨고 있는 저건 뭡니까?”

“곰입니다.”

“어……더 신경 쓰이는 게 있는데요. 설마 저 곰, 지금 우는 겁니까?”

위즈는 곰을 돌아보며 주먹을 들어보였다. 그러자 곰이 앞발로 머리를 가렸다. 그 모습을 본 위즈는 상큼하게 웃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작가의말

1.

이전 연재분인

고통을 먹는 자 (7)편에 빠진 내용을 추가 했습니다.


“별말씀을”

부터~

네이쳐스 아크를 얻는 장면까지입니다.



2.

이 글이 리메이크 된 이후의 글입니다.

그리고 제 서재의 글목록에 떠 있는 ‘리메 전1’은...제목 그대로 리메이크 이전의 글입니다.

사실상 전부 뜯어 고쳐버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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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4. 고통을 먹는 자 (10) +5 14.02.20 1,016 40 22쪽
60 4. 고통을 먹는 자 (9) +3 14.02.17 1,168 32 18쪽
59 4. 고통을 먹는 자 (8) +6 14.02.15 996 21 22쪽
» 4. 고통을 먹는 자 (7) +6 14.02.10 1,032 47 22쪽
57 4. 고통을 먹는 자 (6) +5 14.02.06 892 27 26쪽
56 4. 고통을 먹는 자 (5) +4 14.02.02 802 21 24쪽
55 4. 고통을 먹는 자 (4) +3 14.01.30 960 21 21쪽
54 4. 고통을 먹는 자 (3) +5 14.01.25 853 24 21쪽
53 4. 고통을 먹는 자 (2) +4 14.01.22 1,099 38 21쪽
52 4. 고통을 먹는 자 (1) +2 14.01.20 1,092 28 21쪽
51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ED) +1 14.01.14 894 21 22쪽
50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20) +3 14.01.13 1,182 33 35쪽
49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19) +4 14.01.06 809 21 23쪽
48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18) +5 13.12.31 1,090 22 28쪽
47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17) +3 13.12.28 1,326 40 20쪽
46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16) +2 13.12.26 1,157 25 22쪽
45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15) +4 13.12.25 1,418 27 17쪽
44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14) +4 13.12.23 2,058 35 26쪽
43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13) +3 13.12.20 1,171 27 23쪽
42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12) +3 13.12.19 1,179 26 13쪽
41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11) +3 13.12.17 1,396 76 24쪽
40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10) +4 13.12.14 1,333 28 23쪽
39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9) +1 13.12.12 1,081 24 26쪽
38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8) +2 13.12.10 1,218 30 19쪽
37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7) +3 13.12.07 1,251 34 17쪽
36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6) +2 13.12.06 1,237 59 20쪽
35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5) +2 13.12.05 1,450 27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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