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트가 아이언 앤트 서식지로 들어갔을 때.
바깥에 남게 된, 아벨은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긴 저희끼리는 너무 위험합니다.”
“그런가요?”
하지만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는 아벨과는 다르게 리첼은 여유롭게 바닥에 있는 아이언 앤트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상당히 노련하게 단검을 움직이면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껍질을 떼어냈다.
껍질을 떼고, 더듬이를 뽑고.
그러면서 한쪽에 차곡차곡 쌓아 올리기 시작하는 그녀는 무방비했다.
“리첼님, 최소한 언제든 도망칠 수 있도록 대비는 하시는 것이..”
“괜찮지 않을까요? 알베르트님께서 그 슬라임을 믿으면 된다고 했으니까요.”
“슬라임..”
아벨은 슬라임에게 시선을 던졌다.
핑크색 슬라임은 뽀용뽀용하면서, ‘슬라임만 믿으라고!’라며, 온 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거 같았다.
‘하찮고, 귀엽다.’
생긴 것이 하찮으면서도, 뽀용뽀용하는 것이 귀여웠다.
이런 슬라임을 믿으라고?
슬라임은 몬스터 중에서도 최하위급에 속한다.
이제 막 용병이 된 F급 용병도 조금만 공략법을 알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는 것이 슬라임이다.
약하고 약한, 그런 슬라임을 믿으라고?
‘알베르트님은 강하다, 당연히 그 소환수도 강할 수 있지, 하지만..’
뽀용~ 뽀용~
저 슬라임은 아무리 봐도 강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
‘저건 솔직히 겉모습으로 판단할 만하잖아.’
슬라임인걸.
그래도 알베르트의 소환수이니, 어느 정도 강하기야 하겠지만, 완전히 믿고 맡길 순 없었다.
‘아마 알베르트님도 슬라임을 시간 벌이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슬라임이 시간을 벌면, 그 사이에 본인이 나와서 구해주는.
대충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을 터.
‘슬라임이 강해봤자, 얼마나 강하겠어.’
“내가 지키는 수밖에 없겠구나.”
아벨은 검을 들었다.
아무리 알베르트의 소환수라고 해도, 슬라임이라는 카테고리에 들어가 있을 터이니, 자신보다는 약할 터.
‘내가 저 슬라임보다는 강하겠지.’
자신 있었다.
자신은 A급 용병이었다.
슬라임 따위에게 질 수 없었다.
이건 그 나름대로의 자존심 싸움이었다.
그렇게 검을 든, 아벨은 주변을 경계하며, 리첼을 지키기 위해서 최대한 기감을 열었다.
그때였다.
“...”
그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타고 흘러내렸다.
‘이게 도대체 몇 마리야?’
기감에 걸려든 몬스터의 수가 상당했다.
30마리? 아니, 40마리는 넘었다.
적의와 살기가 한데 어우러진 기세가 그를 공격하는데, 전신을 작은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언제 이렇게 온 거지?’
“시체.. 냄새인가?”
아이언 앤트가 죽으면서 흘린 피 냄새가 바람을 타고 흘러, 몬스터 랜드에 퍼졌고, 그 냄새를 맡고 굶주린 몬스터가 온 것이다.
“리첼님, 몬스터입니다.”
“아, 그래요?”
“조심하셔야 해요, 아시잖아요, 여긴 몬스터 랜드라는 걸..”
“알고 있어요, 하지만 알베르트님이 슬라임을 믿으라고 했잖아요.”
아벨이 진지하게 경고했지만, 리첼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리첼은 알베르트의 강함을 신뢰를 넘어서, 신봉하고 있는 수준이었다.
그녀는 이미 글렀다.
도망치고 싶어도, 이제 늦었다.
몬스터가 포위하듯이 오고 있었다.
‘도망갈 구석은 없다, 최소한 시간은 벌자.’
알베르트가 올 때까지 버티면 되겠지.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때.
뽀용뽀용~
슬라임이 앞으로 나간다.
슬라임도 몬스터의 접근을 눈치 챈 모양이다.
‘그래도 알베르트님의 소환수잖아? 최소한 시간 벌이는 할 수 있을 정도는 강하겠지.’
과연 얼마나 강할지.
딱히 기대는 되지 않았다.
슬라임이 강해봤자, 도대체 얼마나 강해질 수 있단 말인가.
저 핑크빛 몸을 봐라.
밟으면 터질 것 같은 연약하면서도, 하찮은 몸으로 도대체 뭘 할 수 있다고.
믿을게 되지 않았다.
‘거의 나 혼자 한다고 생각하자...’
“후우..”
검을 쥔, 아벨은 호흡으로 마나를 통제하며, 끌어 올렸다.
리첼을 지키기 위해서.
그는 최선을 다해서 시간을 벌 생각이다.
‘과연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알베르트님이 나오실때까지 최대한 버틴다!’
그는 각오를 다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리첼을 보호하겠다는 굳은 신념을 앞세운 그의 검에서 희미하지만, 푸른 마나가 맺혔다.
그리고 막, 몬스터들이 격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일제히 이쪽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막는다.’
그의 두 눈에는 결사의 각오가 깃들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뽀용~ 슈슈슈슉!!
슬라임의 몸에서 수십 가닥의 촉수가 튀어 나왔다.
가느다란 촉수는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움직이더니, 눈에도 보이지 않는 속도로 어딘가로 뻗어 나갔다.
그리고 다시 회수 되었을 때, 촉수는 무언가를 휘감고 있었는데, 그건.
‘몬스터...?’
수십, 수백 마리의 몬스터가 촉수에 묶여서 끌려오고 있었다.
묶인 모습이 상당히 특이하면서도 다양했다.
‘저건 귀갑 묶기? 저놈은 목을 휘감고? 다른 놈들은...’
순식간에 끌려온 거라, 전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묶인 놈들은 제대로 저항도 못하고, 끌려와 그대로 슬라임에게 먹혔다.
왕그작!
“...!”
그것을 본, 아벨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40마리가 넘는 몬스터를 묶어서 끌고온 것도 놀라운데, 그 엄청난 수를 단숨에 집어 삼켰다.
“..그 많은 걸 먹었다고?”
끌려온 몬스터 중에는 오크와 고블린이 태반이고, 그 중에 트롤도 두 마리 정도 끼어 있었다.
아벨 혼자였다면, 결사의 각오를 했어도, 절대 막을 수 없었을 정도로 강한 놈들이다.
한데, 슬라임은 그런 놈들을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
“...슬라임이 저렇게 강한 건, 사기잖아..”
저렇게 강한 슬라임이 있어도 되는 걸까?
심지어 그렇게 엄청난 수의 몬스터를 먹었으면서도, 슬라임의 부피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아니, 슬라임이 왜 강한거지? 아니.. 슬라임은 원래 강한가? 하지만..”
혹시 자신이 잘 못 본 게 아닐까?
슬라임이 그렇게 강할 리가 없잖아.
‘그래.’
“아마, 내가 너무 긴장해서 잘 못 본..”
것이 겠지라는 말을 잇기도 전에, 아벨은 슬라임의 먹방을 지켜보고 있었다.
촉수가 뻗어나갔다가, 돌아올 때면, 몬스터가 한 마리씩 묶여 있었고, 슬라임은 아아앙~ 하면서 크게 한입에 몬스터를 삼켰다.
지독한 한입충이었다.
“...무슨, 미친.”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저 슬라임은 강했다.
그것도 터무니없을 정도로.
“슬라임이.. 저렇게 강한데.. 나는 뭐지..?”
리첼을 지키겠다, 그렇게 결심을 했건만.
결사의 각오도, 결의도 슬라임 앞에서는 의미가 없었다.
앞으로 슬라임을 발견하면, 피해 다녀야 할 지도 모른다.
저런 괴물이 섞여 있을 수도 있으니까.
“어머, 슬라임이 몬스터를 먹고 있네요? 혹시 이것도 먹어줄 수 있니?”
리첼이 껍질을 떼어내고, 남은 아이언 앤트의 속살을 가리키자, 슬라임은 뽀용~ 뽀용~ 하고 오더니.
왕그작! 하고 속살을 집어 삼켰다.
아이언 앤트를 먹으면서도 촉수는 쉴틈없이 움직이면서 몬스터를 낚아왔다.
‘뷔페인가?’
뷔페 음식을 집어 먹듯이, 슬라임은 여기저기서 몬스터를 집어 먹고 있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접근을 금할정도로 위험한 몬스터 랜드가.
슬라임에게는 음식이 많은 식당에 불과했다.
“슬라임이 나보다 강하잖아...”
그는 묘한 자괴감에 빠졌다.
그토록 무시했던 슬라임이 자신보다 강하다니.
“아벨님.”
“아.. 네..”
“죄송하지만, 이거 해체하는 것 좀 도와주시겠어요?”
“하지만 저는 경계..”
“딱히 필요없지 않나요?”
순진무구하게 고개를 갸우뚱하는 그녀의 모습에 아벨은 가슴에 커다란 검이 꽂히는 통증을 느꼈다.
그 모습은 마치.
‘슬라임이 너보다 강한데, 약한 네가 경계 할 필요가 있나? 슬라임보다 약한 네가?’
물론, 리첼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이미 네거티브 마인드가 되어버린, 그의 눈과 귀에는 이상한 필터링이 장착되어 있었다.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알겠습니다.”
시무룩해진 아벨은 리첼을 지키기 위해서 들었던 검으로 아이언 앤트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아벨은 슬라임을 발견하면, 자신도 모르게 피하는 그런 버릇이 들고 말았다.
특히 핑크빛 슬라임을 발견하면, 발작을 일으키며, 최선을 다해서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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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에 넣기는 좀 그렇고..
그래서 외전 격으로 공지에 올립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용! 헤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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