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넛지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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넛지
작품등록일 :
2021.07.06 19:35
최근연재일 :
2021.08.09 22:29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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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수 :
80,942

작성
21.07.28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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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종말의 시작

DUMMY

난 언젠간 세상이 망하길 바랐다. 인생의 긍정적인 곳을 볼 줄 아는 이들에겐 정말 미안한 소리지만, 급하게 살아내는 인생에서 모든 게 편협했다. 이해는 바라지 않는다. 지금 망해가는 세상에 도착했다. 내 잘못도 아니다. 강단 위에 손을 올리고 다행스럽게도 다시 이성적으로 파악 가능한 세상에 도착했지만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었다. 공중에 떠 있던 사람들은 디펜더의 먹이가 되고 있었고. 도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불타오르고 있다. 모두가 울고 있었고 기회주의자들은 약탈하며 무리하게 많은 물건을 안고 달리고 있었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모두의 얼굴에서 두려움이 읽혔다. 그와 반대로 나는 여유롭고 세세하게 망해가는 세상을 둘러본다. 내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내 잘못이 아니야.”


“진정으로 누군갈 사랑했다면 자괴감에 빠졌겠지.”


지성이었다.


“어디에 있었어?”


“중앙서버엔 난 들어갈 수 없어.”


오랜 세월이 지난 듯 반가웠다.


“이게 뭐냐?”


난 손에 새겨진 원을 들어 보이며 물었다.


“액세스키.”


“액세스키? 그게 뭔데?”


“나도 몰라. 내 임무는 중앙서버까지 널 안내하는 역할까지였어.”


“그럼 너도 떠나는 거야?”


“네가 원한다면.”


“내가 원한다면? 넌 내 친구 아니냐?”


“임무가 종료됐어. 관리자 권한도 만료됐고.”


갑자기 슬퍼졌다. 고마운 돼지 새끼.


“갈 거야?”


“네가 원한다면.”


“그럼 있어. 네가 필요할 거 같아.”


지성은 반응이 없다.


“살만했는데.”


지성이 두툼한 허리에 양손을 괴고 씁쓸한 표정으로 무너진 풍경을 본다.


“기분이 안 좋냐?”


“어 나도 지각 이란 게 있거든.”


지성이 몇 번 검지로 머릴 두드리며 다시 팔을 허리에 괸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지성은 한참을 불길이 번지는 곳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나도 몰라. 조심해.”


지성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뭘?”


지성이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한쪽을 가리킨다. 고개를 돌려 그곳을 본 순간 디펜더 한 마리와 눈이 마주친다. 곧이어 하던 일을 멈추고 내게 달려오기 시작한다.


“액세스키 올려.”


지성은 다시 감정 없는 말투로 말했다.


“도망가야지!”


난 급하게 달리기 시작한다. 지성은 그 자리에 체념한 듯 서 있다. 나의 달리기는 생각보다 느렸고 인생의 어느 부분과 일치했다. 디펜더는 내 등가를 덮치고 옷을 물고 흔들었다. 순간 디펜더가 한쪽으로 날아가 약탈당한 상가 건물 유리를 뚫고 사라진다.


지성이 손을 내밀어 부축하고 옷을 털어준다.


“아키텍처가 뭐래?”


“세상은 밖으로부터 무너지고 있다고, 내가 세상을 구해야 한다고.”


“다른 건?”


“힘들 거라고.”


“액세스키 들어.”


지성이 다시 말했다. 난 아까 지성의 말이 생각나 긴장하며 오른손을 들어 올린다. 디펜더가 상가 안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난 무언갈 발사할 것처럼 팔을 조준한다.

디펜더가 뛰어올랐다. 나도 팔을 들어 올린다. “죽어 개새끼야!”


한참을 눈을 감고 있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인증되었습니다.”


여성 톤의 말소리에 난 감았던 눈을 떴다. 난 기겁하고야 말았다. 얼굴 없는 여자가 내 앞에 서 있었다.


“감당할 수 있을까?”


지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원하는 옵션을 설정하십시오.”


여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정신을 추스르고 공중에 정지된 디펜더를 본다. 털 없이 매끈한 피부 호랑이만 한 덩치 금방 사람을 헤친 듯 입가에 묻은 피. 공중에 매달려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몇명이나 죽였을까? 디펜더의 얼굴은 기괴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디펜더는 무방비 상태로 공중에 멈춰 취약해 보였다. 순간 수없이 반복된 박탈로 인한 인생의 후유증인억눌러왔던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한다. ‘정당한 이유로 넌 죽어야 한다.’


“죽어버려 개새끼야!”


압축된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들리며 몸이 뒤로 빠르게 밀리며 푸른 광선이 액세스키에서 뻗어 나오며 디펜더에 닿자 괴물은 증발하며 사라진다.


“기본 옵션으로 설정되었습니다.”


음성이 끝나는 동시에 여자는 사라졌다. 그리고 흥분이 가시지 않는지. 소리를 듣고 몰려드는 디펜더들을 본다.


“이제는 할 수 있어.”


정신없이 디펜더에서 광선을 쏘아댄다. 그와 동시에 광선에 닿은 건물들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정신 차려 다른 것에도 피해가 가잖아.”


난 지성의 말을 들을 겨를이 없었다.


“이제는 네 잘못이야!”


지성의 고함에 순간 멈칫하며 주변을 둘러본다. 건물이 무너지며 먼지가 일어 주변이 뿌옇다. 사람들은 저마다 비명을 질렀고 몇몇은 휴대폰으로 나를 촬영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디펜더를 볼 수 없다는 걸 넌 기억해야 했어. 이제 넌 이곳에서 모든 문제의 근원이야.”


모든 것이 잘못되어 버렸다. 모두를 구한다는 나의 착각이었다. 난 나를 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상을 파괴하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내 얼굴로 향한다. ‘모두가 웃으면 널 놀리는 거야.’ 머릿속에서 누군가 속삭였다. 급하게 어디론가 숨고 싶어진다.


“가자. 여긴 진짜가 아니야.”


지성이 내 팔을 붙잡고 잡아당긴다. 가는 내내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하며 가까이 다다르면 도망치며 어디론가 숨어버린다.


“내 새끼 살려내 나쁜 새끼야!”


여자 목소리가 들렸지만 어떻게 해줄 수가 없다. 순전히 내가 오기 전의 사건이 낳은 결과였다.


“야 이 새끼야. 죽어 이 새끼야.”


집에서 방금 나온 듯 얇은 옷차림의 중년의 여자가 괴력을 발휘하며 자신의 머리 보다 큰, 파괴의 부산물인 시멘트 돌을 들고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올라가는 오른팔을 지성이 잡아 억누른다.


“넌 아직 이걸 사용할 줄 몰라. 맞지?”


난 지성의 얼굴을 본다. 날 말리려는 듯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아니야. 난 네가 오해한 거야. 난 죽이려는 의도가 아니야.”


“알아. 그러니까 가자. 침착하고.”


여자는 곧 내 앞에 다다라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주변의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동요한다.


멀리서 돌 하나가 날아든다. 그리고 빗나가듯 머리 옆을 스쳐 지나간다. 곧이어 몇 개가 날아들고 비처럼 쏟아진다. 몇 개가 이마와 몸에 맞는다. 지성의 팔은 내 오른팔을 누르고 있다.


“의인아. 뛰자.”


지성의 침착한 목소리가 들리고 난 뛰기 시작한다.


“내 잘못이 아닌데.”


“알잖아. 인생이 원래 그렇다는 거.”


돌덩이는 우린 뒤 쫓으며 우릴 맞췄지만 이내 따라잡지 못하고 바닥으로 굴러 힘을 다하며 멈춰 서 우리의 뒷모습을 노려본다.



얼마나 달렸는지 모르겠다. 앞만 보고 달렸으니 뒤의 상황은 몰랐다. 그리고 앞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슬픔에 빠져 죽은 사람을 안고 울고 있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얼이 빠진 듯 먼지를 뒤집어서 쓰고 유령처럼 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울고 있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천천히 그들의 고통이 눈에 들어온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곳에 다다른 풍경. 원하면 먹을 수 있고 쉴 수 있는 모든 것들이 파괴되었다. 중요한 건 나에게도 해당하는 상황이었다. 갈증이 밀려왔지만, 쉽게 물을 얻을 수 있는 풍경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원인이 궁금해진다. 전쟁이라도 났을까? 주변은 전차나 군인들이 보이지 않는다. 미사일일까? 건물이 무너지고 불이 붙어 자욱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풍경은 미사일에 폭격당한 듯 보인다. 핵폭발일까? 아니다. 그랬다면 다 죽었어야 했다.


상황을 이해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들렸고 사람들이 겁에 질려 우왕좌왕하고 있다.


“아저씨 얼른 피해!” 하얀 민소매에 회색 반바지 차림의 몽땅한 중년 사내가 소리쳤다. 비행체의 공기 가르는 소리가 들린다. 폭탄이다! 소리 나는 곳으로 고개를 들어 본다. 혜성처럼 빛줄기를 달고 어딘가로 떨어지는 포탄을 본다. 뒤이어 천둥소리가 연달아 들린다.


“피하라니까!”


남자는 우릴 놔두고 서둘러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난 지성의 손을 뿌리치고 오른팔을 올린다. 그리고 멀리 지면으로 떨어지는 곳을 조준한다. 첫 번째 포탄이 명중하고 공중에서 폭발한다. 뒤이어 여러 개가 동시에 떨어지고 있다. 다시 조준하고 쏜다.


“하지 마! 여긴 진짜 세상이 아니야.”


지성이 나를 말려 세우려 팔을 붙잡는다. 그와 동시에 빗나간다.


“놔! 이 새끼야. 사람들 죽게 놔둘 거야?”


“너는 네가 할 일이 있어. 그게 이곳을 위한 진짜 일이야.”


난 지성을 뿌리친다. 그리고 빠르게 지면으로 닿는 포탄에 빛을 발사한다.


“여긴 고장 났어! 고치려면 네가 진실을 받아 들여야 해.”


“평생을 이곳에서 살았어! 지금 저 사람들 고통은 진짜야.”


또다시 연달아 천둥소리가 들렸다. 난 서둘러 소리 나는 곳으로 오른팔을 향한다. 하늘 위의 포탄이 연달아 터지며 흔적이 정체되어 있다.




마지막 포탄을 맞추고 팔을 내린다.


“게임 속의 몹을 죽였다고 그게 진짜 살아있던 것일까?”


“몰라 지금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야.”


“넌 지금 쓸모없는 일을 한 거야.”


“우리가 함께 살아온 세상이야.”


“더는 존재 하지 않는 세상이 될 수도 있어.”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까치였다. 까치무리는 우리 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곧이어 우리 주변을 돌다 지성을 쪼기 시작한다.


“스파이웨어야.”


지성이 팔로 까치를 내려친다. 한 마리가 땅으로 곤두박질치며 미세한 진동을 내다 이내 멈춘다.


“내 친구야!”


난 팔을 휘두르던 지성을 제지한다.


“넌 아무것도 몰라!”


지성이 화를 낸다. 내가 보지 못한 지성의 모습이다.


“그만해! 재들도 아무것도 모르는 새일 뿐이야!”


“과연 그럴까?”


지성이 격한 몸짓을 멈추고 나를 노려본다. 까치 한 마리가 허공에서 맥없이 추락한다. 까치들은 대열이 무너지며 흩어진다. ‘딱’ 소리와 함께 벽에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뒤를 돌아보니 건물 안으로 들어갔던 사람들이 나와 까치에게 돌을 던지고 있었다. 까치들은 돌이 닿지 않는 곳까지 날아올라 우리 머리 위를 돌고 있다.


“물 드세요.”


얼굴에 눈물 자국이 길게 늘어진 젊은 여자가 물병을 내게 내밀었다. 사람들이 하나둘 우리 주변으로 몰리기 시작하며 군집하기 시작한다. 여자의 얼굴엔 끝을 알 수 없는 공포 속을 헤매듯 작은 떨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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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세상의 시작 21.07.21 28 0 11쪽
5 공중에 멈춰진 시람들 21.07.12 33 0 12쪽
4 원 드라이브 21.07.09 36 0 13쪽
3 검역소 21.07.08 41 1 11쪽
2 정기 점검 21.07.07 49 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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