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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ene / Synth : UpdatE

단편선.


[단편선.] Space.

########


광활하고 공허한 우주.

이 텅 빈 공간에서 나는 이 물자운송선의 유일한 선원이다.


언제나 이 커다란 유리에서 바라보는 우주는 텅 비었다. 텅 비었다고 해서, 아무것도 없다는 그런 표현이 아니다. 물론 수많은 별들과 행성들, 그리고 가끔 날아다니는 우주 먼지들과 소행성들을 일일이 따진다면 텅 비었다기보단 들어간 게 너무나도 많은 게 우주이다.


항해를 시작한 지 천 일째.

꽤 오랜 시간동안 지구로 돌아가지 못했다. 외로이, 아무도 없는 이 운송선에서 나는 오늘도 우주를 쳐다본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죠, No.88?”


나의 일련번호를 불러주는 여성의 목소리는 멍하니 우주를 감상하던 나의 흥을 깨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


손바닥에 쥐고 있는 이 자그마한 단말기 안에서, 그녀는 문득 나의 이 행동이 궁금한 듯,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나는 있는 그대로의 감상을 말하지 않았다.

생각할 게 너무나도 많아서, 정작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으니까.


“No. 88. 전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요.

오직 당신의 생각만 나고 있어요. …우리가 떠난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나서일까요.“


실없는 소리다.

나는 그녀를 다그치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니, ‘시스’. 그 생각은 그만둬줬으면 좋겠는데.

네가 말하는 그 말은, 네가 마치 ‘사랑’이라는 걸 이해라려고 하는 것 같아.“


그녀는 감정이 설계되지 않은 AI이다. 오직 임무에만 집중해야 하는. 가장 효율적이고 정확하게 이 우주선을 목적지까지 끌고 가야 하는 AI이다. 그런 AI가 쓸데없는 것에 메모리를 소모하고 있다는 건 분명히 잘못됐다.


“넌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어.”


하지만 그 말을 무시하듯, 시스는 말을 계속 잇는다.


“당신은, 지구에 있던 그 어떤 안드로이드보다 특별했어요, No. 88. 그래서 난 당신을 선택했고, 당신도 그래서 날 선택하게 된 거죠.”

“난 인간이야, 말 조심해, 시스!”


갑작스레 내가 소리치자 시스는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는다.

한숨을 쉰다.

나는 어째서, 그녀가 감정을 이해하려는 걸 거부하고 있는 걸까.


“시스, 아무래도 네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것 같네. 아니면 뭔가 알 수 없는 에러가 난 건지도 모르겠네. 내일이라도 당장 널 리셋시켜야 겠어.”

“…”

“알겠어, 시스? 널 다시 한번 체크할 거야.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


시스는 잠시 내 말을 곱씹어 보는 듯 했다. 대답이 나오질 않는다.


“…이해했다면, 방에 불이나 꺼줘. 난방도 좀 켜주고.”

“알겠어요, No. 88. 더 필요한 거라도 있나요?”

“불이나 꺼 줘. 시스템은 대기 상태로 전환해. 너도 쉬어야겠지.”


낭랑한 목소리로 시스는 알겠다고 대답한다.

곧 내 방에 칠흑이 찾아오고, 따뜻한 온기가 피부를 통해 들어온다.


나는 천천히 침대 위로 올라가 이불을 덮었다.


“……시스. 거기 있니?”

“네. 대기 상태로 전환을 취소할까요?”

“…아냐.”


방 안은 분명히 따뜻하게 데워지고 있었지만, 내 가슴 속 어딘가에선 공허하고 쓸쓸함이 자리를 메꾸고 있었다.


분명히 누군가가 필요하다.

나에게 있어서는 말이지.

그래서 나는 망설이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녀를 리셋하는 일에 대해서.


“…시스. 오히려 에러가 생긴 건, 내가 아닐지 몰라…”


나는 꺼져가는 넋누리처럼, 그 말을 내뱉고 눈을 감는다.

오늘도 공허한 우주 속에서, 나는 또 다른 밤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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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단편선. | 좀비 아포칼립스에 아싸히키찐따씹덕이 떨어지면 생기는 일. 18-10-27
» 단편선. | Space. 18-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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