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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7th 님의 서재입니다.

인류는 3명만이 남았다.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Mar.7th
작품등록일 :
2021.12.19 19:58
최근연재일 :
2023.03.15 21:56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903
추천수 :
155
글자수 :
43,677

작성
21.12.20 12:05
조회
446
추천
97
글자
10쪽

1화

DUMMY

종말이 다가온다.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결말을 저지하기 위해 인류는 끊임없이 발버둥쳤고, 끝내 99%의 종말을 소멸시켰지만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조심스레 무너진 잔해를 밝으며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았다.


하늘은 검붉고, 도시는 폐기물 쓰레기처럼 처참히 무너졌다. 남자는 쓰라린 고통과 들이닥치는 두려움을 감내하고 마지막 방어선으로 이동하기 위해 서둘러 몸을 움직였다.


“허억.. 허억...”


거대한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장벽 앞에선 남자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벽에 붙어 있는 사다리를 발견하곤 위로 올라가자 시간이 많이 지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검붉은 하늘이 사라지고,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이 빛내며 존재감을 발했다.


‘...아름답네.’


“아름답네.”


흠칫.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남자는 몸을 떨었다.


고개를 돌리니 장벽 끄트머리에 앉아 다리를 흔들고 있는 아이가 보인다. 진홍색 머리카락에 붉은 눈동자, 저런 특징을 가진 사람은 연합군에 한 명뿐이었다. 인류 최고의 기술자인 동시에 전략가라 불리는 천재 소녀 베로니카.


“생존자는 3명이 끝인가..?”


소녀가 중얼거린 소리를 듣고 주변을 살펴보니 순간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


거대한 체구에 흰머리가 듬성듬성 자라있는 사내는 어딜 가나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존재감일 텐데 마치 카멜레온처럼 주변 사물과 동화되어 자연스러웠다.


“한스 어쩔 거야?”


한스. 연합군의 괴물이라 불린 그분이었나.


“인류의 희생을 위해서라도 우린 살아남아야 한다.”


“...유예된 한 달의 시간 동안 방법을 찾으라는 거지?”


“그렇다.”


“좋아. 방법은 있어.”


짐작할 수 없는 대화 내용을 들으며 남자는 생각했다.


나는 왜 살아있는 걸까. 마지막 공성전의 치열함을 생각하면 죽었어야 정상인데 천운이라도 따른 건가..? 먼저 가버린 친구들이 미웠다. 나를 이런 지옥 같은 곳에 남겨두다니.


한편으론 죄책감이 기어 올라왔다. 무엇 하나 지키지 못하고 살아남은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어이.”


미안합니다. 살아남...


-딱!


“아악..!”


따끔거리는 이마를 부여잡은 채 그제야 남자는 눈앞까지 다가온 거대한 사내를 볼 수 있었다.


“사람이 말하면 대답을 해줬으면 좋겠군.”


“...죄송합니다.”


“아무튼,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지?”


“...”


“생존에 대해서 긍정적인가 물어보는 걸세.”


나란히 선 베로니카와 한스를 나를 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방금까지만 해도 자살 충동을 느낀 나와 다르게 그들의 눈빛은 타오르는 장작처럼 의지가 가득했다. 힘들고 지쳤지만, 저들이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것이다.


나약함을 버리자.


“살고 싶습니다.”


둘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한스 일세.”


“베로니카.”


마주 잡은 두 손을 느끼며 이름을 말하려는 순간, 끔찍한 고통이 머리를 자극했다.


-주르륵.


얼굴을 타고 흐르는 따듯한 열기와 땅을 적시는 붉은 피를 보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위험해 보이네.. 살고 싶다고 했지?”


코앞까지 다가온 붉게 물들어 보이는 소녀와 눈이 마주치자 섬뜩함을 느꼈다. 마치 순수한 어린아이가 처음 보는 장난감을 발견했을 때와 같은 흥미로움이 동공에 아른거린다.


“살려줄게.”


그것은 말로 허용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베로니카로부터 뿜어져 나온 막대한 무언가가 어둠을 밝히며 나를 관통했고, 부드럽고 편안한 기분이 드는 그것은 내 몸을 몇 번이나 순환하고 나서야 다시 돌아갔다.


“아직도 아파?”


흐르던 피는 멈췄고, 피곤했던 몸은 전과 다르게 활력이 넘쳐흘렀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존댓말 싫어해. 앞으로 베니라 불러. 그래서, 너 이름이 뭔데?”


“하인즈.”


“그래 하인즈.”


베니가 웃으며 내민 조그마한 손을 보다가 하인즈는 천천히 손을 붙잡았다.


“잘 부탁해.”


“잘 부탁합니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하인즈는 악수를 하며 순간적으로 일그러진 베니의 표정을 보았다.


“...이만 가볼게.”


하인즈는 베니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다 옆으로 다가온 한스를 보고는 흠칫 놀랐다.


“베로니카와 친하게 지내 주게. 항상 책임감에 짓눌려 딱딱한 표정만 보다가, 저런 표정도 보니 새롭군.”


“....”


“하인즈. 나랑 대련 한번 하지.”


“대련 말입니까..?”


“너무 당황하지 말게. 그냥 이런저런 테스트하려는 것 뿐이니. 같이 일해야 할 동료의 능력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나?”


전쟁이 막 끝난 지금 싸울 기분이 아닐 뿐더러 이 어두운 곳에서 무슨 대련을 하겠다는 걸까.


“거절하겠습니다.”


불안하다. 빠르게 벗어나야...


-촤아악!


행동보다 빠르게 눈앞에 화염이 일며 순식간에 퇴로가 차단당했다.


“이게 무..슨. 읍! ..으읍!”


"그냥 조용히 하고 따라오게나."


다가온 두 손을 저지하지 못한 채 나는 끌려갔고.


-털썩!


“크으윽...”


“이곳이 적당하겠군.”


-화르륵!


내동댕이쳐진 나와 한스를 중심으로 둥글게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실력 한번 보자고.”


“왜 이러십니...!”


하인즈는 얼굴을 향해 날아온 주먹을 간신히 고개를 틀어 피한 뒤 소리쳤다.


“아까 무시한 것 때문입니까!”


“아니다. 흐흐!”


아찔하다. 주먹 한 방 한방이 무서우리 만치 무거웠다.


“하아..! 하아..!”


거리를 벌리자 하늘로 도약한 한스가 양손을 쥔 채로 허리가 활처럼 휘더니 한순간 지상을 향해 내리 꽃는다.


쿵!


폭음이 들림과 동시에 눈앞을 덮치는 조각들. 한껏 몸을 감싸고 옆으로 뛰어올랐지만 소용없었다. 코앞까지 다가온 주먹을 면상을 향해 정확히 파고든다.


우드득.


코뼈가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벌어진 입술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다. 이런 씨발.


“사실, 자네 눈알이 마음에 안 들었다네.”


“아아이아악!”


죽여버리겠어.


터져버릴 것 같은 심장도, 코뼈가 부러진 고통도 이젠 느껴지지 않는다.


떠오르는 것은 오직 분노.


“정신 차리게나. 허점이 너무 많아.”


“커어억...!”


명치에 꽂힌 주먹을 보면서 분노를 표출할 새도 없이 하인즈는 쓰러졌다.


“커억.. 커억...!”


“눈알이 마음에 안 든다는 말은. 그 빌어먹을 정신상태가 마음에 안 든다는 소리다. 당분간 숨도 쉬기 힘들 테니 가만히 듣고만 있어. 왜 죽을 날만 기다리는 병든 노인 같은 표정을 짓고 있나? 하인즈. 생존에 대해서 물어봤을 때, 너는 무어라 대답했지? 살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내가 보기엔 너는 죽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원하는 대로 죽여주지.”


하늘 높이 치솟은 주먹이 보인다.


고통, 분노, 다음은 죽음인가.


천천히 다가오는 주먹을 부릅뜬 눈으로 바라보며 생각한 것은 단 하나.


살고 싶다.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생존 욕구에 처절하게 입을 열었다.


“삻..고..시퍼..!!!”


“....”


묘한 정적과 동시에 주먹에 가려졌던 세상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겪은 걸 기억하게. 살고 싶다는 것을.”


-저벅. 저벅.


멀어져가는 발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나는 살고 싶었구나.


생각 따위에 좁먹혀 방황하던 내가 바보 같았다.


인류가 그토록 저항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괴물을 물리치고 살아남아 다시 한번, 평화로웠던 그 시절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자살을 생각했던 것 자체가 지금까지 살아남고자 했던 모든 인류를 모욕하는 행위였던 것이다.


“살았다...!”


볼을 타고 흐르는 투명한 액체를 느끼며 하인즈는 잠들었다.




* * *




기분 좋게 불어온 산들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하인즈! 여기서 뭐 해?”


“바람을 느끼고 있었어.”


“으응? 같이 느끼자!”


옆에서 헤실헤실 웃고 있는 아이는 나와 같이 보육원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다.


점심때가 되어 언덕에서 내려온 우리는 급하게 보육원으로 향했다. 손을 닦은 뒤, 식당에 들어서자 차례차례 테이블에 음식이 올려지고 식탁에 앉은 21명의 아이들은 선생님의 말씀을 경청했다.


“음식을 남기면 나쁜 거란다. 특히나 우리 보육원에 막대한 후원금을 내주신 체이니스님에게도 감사함을 담으며 먹으렴.”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체이니스님 감사합니다!”


짤그락 거리는 소리, 허겁지겁 먹는 아이들, 모든 걸 눈에 담으며 빵 한 조각을 깨작거리던 나는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들어차는 걸 느꼈다. 비록 진정한 가족은 없지만, 그보다 더욱 행복한 가족이 곁에 있었다. 따뜻한 온기와 다정함 속에서 모두가 웃고 떠들며 살아간다. 이 작은 행복이 깨지질 않기를 나는 소망할 뿐이다.


그러나.


불행은 갑자기 찾아오는 법.


-퍼어엉!

-삐이이이익...!


갑작스럽게 문짝이 날아가며 귀가 먹먹해졌다.


“꺄아아아아악!!!”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이 귀를 난잡하게 헤집어 놓으며, 문 안쪽으로 빠르게 들어오는 철저히 무장한 괴한들이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어온 괴한이 사형 선고를 내렸다.


“저 아이 빼고 모두 죽여버려.”


또다시 울려 퍼진 익숙한 목소리의 비명은 점차 들려오지 않더니 이제는 고요함만이 감돌았다. 옆에서 피거품을 흘리며 죽어가는 소녀가 보인다. 무기력하게, 가장 절친한 친구가 나를 보며 죽어간다.


고개를 돌리고, 돌리고, 돌려도. 보이는 것은 오직 붉은 피와 드러누운 시체들.


새하얗게 물들어 버린 뇌가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멈춰버렸다.


“이게 뭐야... 거짓말이지..?”


악몽이다.


자고 일어나면 사라져버릴 단순하기 그지없는 악몽.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눈앞에 보이는 괴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가만히 있어 꼬맹아.”


퍽!


“으으윽...”


두껍고 무직한 발길질에 입에서 무엇인지 모를 녹색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오감이 점차 마비되는 가운데 하인즈는 이 모든 것이 그저 악몽이길 소원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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