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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상] 반달

3년 전, 5월 5일.

여느 때처럼 길에서 방랑하는 아이들 밥을 주기 위해 나갔다가 만난 아이.

머리 쪽으로 털 무늬가 나뉘어 있는 것을 보는 순간, 이름을 주었다.

‘반달’이라고.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면 반 토막.

아직 다 자라지 않아서 그런 줄만 알았던 아이.

아주 깨끗한 모양새를 보아 버려진 지, 잘 해야 2~3일 전이다.

포획할 도구가 없어서 사무실에 들렸다가 나와보니 사라졌다.

근처 식당 아주머니에게 전화번호를 주고 부탁해 놓았다.

아이가 나타나면 전화 좀 해 달라고 말이다.


다음날, 오전,

아이를 잡아 놓았다고 연락이 왔다.

불나게 뛰어나갔더니, 그 사이에 박스를 열고 도망갔다는 이야기에 얼마나 낙 심을 하였던가.

사무실로 돌아와 앉아있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아이가 다시 밥을 먹으러 온 사이에 잡아놨단다.

꼭 잡고 있으라며 신신당부를 하고 다시 뛰어나갔다.

아이가 너무 순했다.

사람 손을 타고 버려진 지 얼마 안되어서 야생성이 나타나지 않은 거다.

너무나 다행이다.

길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은 구조할 때 여러가지를 생각해야 하지만 이렇게 버려진 아이들은 무조건 구해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다른 수놈들이 받아 주지를 않아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다가 대부분 1년 이내에 죽으니까. 

병원에 데려가서 예방접종을 시킬 때, 성묘가 다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정말 반 토막 밖에 안되었으니까.

유전자를 그렇게 타고 났다니 할 말 없다.

이런 아이를 버린 사람에 대한 원망만 빼고.


그 반 토막이 지금도 반 토막인데 덩치 큰 놈들을 이겨 먹는다.

오기와 곤조로 똘똘 뭉쳐서 작은 덩치의 핸디캡을 극복하는 거다.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 것이 비결이다.

그런 놈에게 별명을 여러 개 붙여 놓았다.

이름은 반달, 그래서 반달이.

다가와서 눈 키스를 해 대고 머리를 박으며 애교를 부릴 때는 달달이.

더러운 짓하고 눈꼽에 코딱지까지 껴있을 때는 똥달이.

낚시대를 들고 놀아주기 시작하면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니다가 마치 귀신을 본 것 처럼 허공에 발길질하며 난리부르스를 출 때는 광달이.

혹여 손님이라도 와있으면 거침없이 다가가서 냄새를 맡고 시크하게 돌아갈 때는 개달이.

먹을 것이 있으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그 높은 곳을 뛰어 올라가 가져온다.

가장 좋아하는 츄르를 숨겨 놓으면 기어코 찾아내 물고 다니다가 발로 차며 축구를 해대고는 마지막 이빨로 구멍을 내서 대충 먹고 버릴 때는 먹달이, 


우리집 먹쇠과장이 요놈이다.

덩치로 두 배가 넘는 놈보다 많이 먹는다.

아무거나 주면, 주는 대로 먹는다.

주지 않아도 알아서 찾아 먹는다.

지금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아 자세를 잡는 순간 또, 먹을 것 내놓으라며 훼방질이다.

나쁜 새끼라고 욕을 하고 싶어도 눈 키스에 마음이 녹아 예쁜 새끼라며 안아주고 츄르를 대령했다.

할딱대며 설거지까지 해놓고는 똥꼬냄새를 풍기며 시크하게 사라진다.

그래서 문득, 내 서재가 떠올라 이렇게 글을 남긴다.


아주 오래도록, 내가 살아있는 순간까지는 무지개다리 건너서, 고양이별로 가지 말아 달라고 부탁 아닌 부탁을 해본다.

알아들었냐고 엉덩이를 ‘툭’ 하고 치니 놀아주는 줄 아는지 광달이로 변하려 한다.

무서운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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