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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상] 오늘 떠난 아이(건강아 잘가...)

오늘 아이가 떠났다.

6년 전, 무더운 8월의 어느 날.
느닷없이 나타나 다른 아이들이 먹는 밥을 빼앗아 먹던 녀석.
몰골이 너무나 형편없었다.
아니, 이건 형편이라는 단어보다 처참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던 아이.
지금 당장 쓰러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태로 나타나 먹을 것에 머리부터 디밀었다.

이 아이는 그날 나에게 숙제를 던져줬다.
당장 구조할 수 있는 장비도 없어서 어떻게 해볼 도리도 없었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병원비와 사무실 공간.
하루의 유예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같이 있는 친구는 대책 없이 무조건 구하자고 한다.
논쟁 끝에 내가 졌다.
내 마음도 그렇게 기울어 가고 있었나 보다.

다음날 아침부터 수소문 끝에 구청에서 장비를 대여해준 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포획 들을 가져와 먹을 것을 넣어 놓고 들어왔다.
매일 아침 주차장을 청소해 준다는 약속을 하고, 건물주에게 허락을 얻어 고양이 집을 제작해 놓은 후  CCTV를 설치 했으므로 달려나가면 되니까.
그날 아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아...죽었나 보구나.’
‘불쌍한 것.’
나와는 인연이 안되는 아이라 생각하고 그냥 그렇게 푸념 삼아 속 풀이를 했다.

다음날 새벽, 주차장을 청소하고 있는데 놈이 비틀거리며 나타났다.
먹을 것을 먹어야 하는데 고양이 집의 계단을 올라갈 힘도 없는지 두 번을 굴러 떨어졌다.
부랴부랴 사무실에 있는 포획 틀을 가져 와서 캔을 풀어놓고 기다렸다.
경계심이 가득하지만 결국에는 먹을 것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는지 포획 틀로 들어갔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의 주치의가 있는 병원은 10시나 되어야 문을 여는데.....

김밥을 사오라 해서 바나나 우유와 함께 먹으며 머리를 굴려봤다.
인터넷을 통한 서툰 지식으로 얻은 병원비의 결론은 대략 잡아 기백만원 정도.(중략)

병원에 도착해서 피 검사와 X-Ray를 찍어보니 소생이 가능하다는 수의사 소견이 나왔다.
그러나 문제는 적혈구가 생성되지 않는 단다.
조혈모세포에 문제가 있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지만 알아듣는 건 절반 정도다.
그래도, 서로 한국말을 하는 지라 의사소통은 되었다.
이리저리 전화해서 서울로 원충 검사를 보내고 일단 아이의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입원 결정.
입안에 구내염과 치아 염증으로 인해 송곳니를 제외한 나머지 이빨 전부를 발치 하기로 결론 내고 돌아왔다.

3일 후, 서울로 보냈던 원충 검사 결과에서는 이상 없다는 검사보고서가 도착했다.
그러나 수의사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은 적혈구가 전혀 늘어나지 않는 거였다.
다행히 성의 있는 수의사를 만난 것인지 기본 소견을 ‘재생 뷸량성 빈혈’이라 내려놓고 수의학 사전과 논문 검색, 그리고 전화 몇 통화 끝에 확진 판정을 했다.

아이의 체력이 올라오지 않아 3주 넘게 시간을 보내고 마침내, 마취와 발치를 견뎌낼 수 있는 검사 결과가 나와 수술에 들어갔다.
그렇지만 수술 후, 다시 떨어진 적혈구 수치로 인해 데려오지 못하고 병원에 놓고 올 수밖에 없었다.

매일 매읿, 동물병원으로 출퇴근을 하다가 2달하고 1주일 만에 퇴원을 했던 아이.
왜 그렇게 사나운 건지.
대형 철장에 격리해 놓고 음식을 넣어주면 하악질에 냥펀치를 바닥에 먹이며 위협해 댄다.
화장실 청소라도 해주려고 손이 들어가면 영락없이 손으로 펀치가 날아온다.
2년 만에 순화 되어서 꺼내 놓았고, 다행스럽게도 아이들과의 합사는 대성공.
그로부터 1년이 더 지나서야 손을 타기 시작한 아이.
편안한 모습으로 밥을 먹고 잠을 자는 모습만 봐도 마음이 뿌듯해지던 아이.
쓰다듬어주면 턱을 들고 더 긁으라며 거드름을 피우던 놈.
‘냐옹’보다는 앵앵거리며 아는 척을 하고 애교를 부리던 놈.
손을 대주면 이빨도 없는 것이 물고, 빨고, 핥아 대다가 꾹꾹이를 하던 놈.

그 아이가 오늘 떠났다.
구조 당시 9살 정도로 추정되었는데 ‘재생 불량성 빈혈’과 3년 전부터 관절염을 달고 살던 놈.
아침이면 눈을 뜨지 못한 채 떠나버릴까 봐 항상 노심초사 하던 놈이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3일 전부터 심장비대증으로 인한 혈전에 의해 뒷다리를 쓰지 못해서 병원 응급실 행.
초음파 검사 후, CT촬영과 MRI초차 해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120만 원 짜리 혈전용해 주사라도 맞추면 살아날까 하였지만, 수의사 소견으로는 흉수까지 차있고 폐와 심장에 혈전이 가득하니 보낼 준비를 하라는 거였다.

간호사의 품에 안겨서 울어대며 검사실을 나오다가, 얼굴을 대하고 목소리를 듣자 반갑다는 듯이 아는 척을 하며 안겨 들었던 놈.
옆에 앉혀 놓으니 안정을 찾고 두리번거리며 마지막 호기심을 불태우던 놈.
마약성 진통제를 맞히고 3일 동안 뜬눈으로 지켜보며 속을 태웠다.
15년을 살았고 마지막 6년은 그래도 편안한 곳에서 추위와 더위를 잊은 채, 잘 먹고 잘살았던 아이라며 스스로를 다독거려 보지만 떠난 아이를 생각하면 슬픔이 밀려온다.
앞으로 열 두 놈을 더 보낼 생각을 하니 이건 슬픔이라는 단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방법이 없다.

굵고 말랑말랑하며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맛동산 대변상태를 보면, 10년은 더 살아 줄 줄 알았는데.....
2022년 3월 15일 08시 55분.
아이가 나로부터 사망선고를 받았다. 
장례를 치러주고 나니 허망함과 슬픔이 배로 몰려왔다.
아이가 항상 자리 잡고 있던 전기장판 위에 누워서 잠시 잠을 청했다. 
추억에 젖어 눈물을 흘리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나마 다시 만날 줄 알았건 만.
매정한 놈은 고양이 별로 간 것이 너무 편하고 좋아서 인지 나타날 줄 모른다.
그래서 욕을 뱉으며 투덜거리다가 다시 복 받쳐 오르는 눈물로 인해 입술이 떨리며 입이 다물어졌다.

그래...편하면 되었지!!
어디에 있건 편하면 된 것이지!!

숨이 넘어가는 아이에게 다시는 고양이로 태어나지 말라고 귓속말을 해주었다.
아니, 아무것으로도 태어나지 말라고 따끔하게 잔소리도 퍼부어 주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고양이로 다시 태어나게 되면, 꼭 어린 나이에 아빠를 만나서 같이 살자고 부탁도 해두었다.

간신히 몸과 마음을 추스리고 책상에 앉아, 멍하니 노트북을 바라보다가 문피아의 서재 생각이 떠올랐다.

누군 가와 이야기를 하며, 이놈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데....
팔불출이 되어도, 마지막까지 기특하게 손을 핥아주다가 숨을 거둔 아이라고 자랑질을 하며 추억하고 싶은데....
이 순간이 지나면 기억이 퇴색 되어 제대로 우리 건강이를 추억하지 못할 까봐 이렇게 마음을 부여잡고 독백처럼 읊조린다.

건강아!! 아빠 보이지?
보고 있는 중이지? 그렇지??
평생 건강하라고 아빠가 지어준 이름 마음에 들었지??
그래서 네가 그 몸 가지고 15년이나 살았잖아!! 
그러니까 거기 서도 건강하게 잘 살고 있어라.

이제 아빠는 남아있는 놈들을 위해서 화장실 치워야 해.
그리고 남아있는 놈들 과자 값이라도 보태려면 책 완결 지어야 해.
앞으로는 네 놈 생각하면서 슬퍼하지 않을 테니까 너도 기억 한구석에만 남겨두렴.

‘아빠, 엄마가 있어서 행복했었다’ 고..... 
아빠도 네 놈 만나서 무지무지 행복했었거든....

잘 가~ 건강아..... 
그리고 잘 지내라. 건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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