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 예정 금액
0G |
보유 골드 0골드 |
구매 후 잔액 0G |
*보유 골드가 부족합니다.
선조수정실록 제25권 5월 1일 을축 9번째 기사에 따르면 기축년(1589년) 10월부터 신묘년(1591년) 5월에 이르기까지 20개월 동안 죽은 자가 수백 여 명에 달했으며, 조신이나 명관 중에 죽은 자가 10여인이며 연좌로 유배된 자들도 몇 백 여 명이라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선조수정실록 자체 옥사를 일으켰던 서인이 집권했을 때 작성되었다는 점, 근왕사상으로 인해 임금에 대한 음모론을 언급하기 어려웠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이조차도 축소되었다는 게 중론입니다(김재영, 정여립 정치사상의 재정립, 정치정보연구 제3권1호, 한국정치정보학회, 2000년)
그리고 류성룡이 위관이었다는 주장도 동인의 핵심 인사였던 이발의 죽음과 관련해 서인 측에서 내세운 주장이라 솔직히 신빙성은 의심됩니다 애초에 실록에 따르면 위관을 맡았던 것도 처음엔 우의정 정언신이었다가 나중에 정여립과 9촌 친척이라는 이유로 정철, 유홍 등으로 바뀌기만 했을 뿐 류성룡이 맡았다는 기록은 없거든요.
실제로 선조실록 및 선조수정실록을 뒤져봐도 류성룡이 위관으로서 활동했다는 기록은 기축옥사 때는 전혀 없으며, 임진왜란 발발 이후에나 도주한 장수들에 대한 처벌 등을 논의할 때만 등장합니다. 즉 기축옥사 당시 류성룡이 위관이었다는 주장은 당시 이발의 죽음과 관련해 책임을 회피하고자 했던 서인 측의 일방적인 주장이라는 게 중론입니다.
마지막으로 선조의 의지가 들어갔다는 건 저도 나름 신빙성이 있다고는 봅니다만 당시 기축옥사에 대한 조사 기록이 임진왜란으로 모두 소실되어 지금은 송익필 주도설, 정철 주도설, 선조 주도설 등등으로 나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목 | 날짜 | 구매 | 추천 | 글자수 | ||
---|---|---|---|---|---|---|
5 | FREE 제1장 - 한량 정인환(5) +14 | 19.10.26 | 15,066 | 297 | 15쪽 | |
4 | FREE 제1장 - 한량 정인환(4) +8 | 19.10.26 | 15,715 | 280 | 15쪽 | |
» | FREE 제1장 - 한량 정인환(3) +11 | 19.10.25 | 17,199 | 331 | 15쪽 | |
2 | FREE 제1장 - 한량 정인환(2) +10 | 19.10.24 | 20,363 | 362 | 15쪽 | |
1 | FREE 제1장 - 한량 정인환(1) +27 | 19.10.24 | 25,946 | 402 | 15쪽 |
Comment '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