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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안쪽의 책장

핀달릴 판타지 단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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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달릴
작품등록일 :
2019.09.15 21:38
최근연재일 :
2024.02.07 06:44
연재수 :
1 회
조회수 :
14
추천수 :
0
글자수 :
3,438

작성
24.02.07 06:44
조회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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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8쪽

어머니. 조국. 조미료. 용사. 마왕. 이세계.

DUMMY

조국.


조상 대대로 살아왔던 나라를 그렇게 부른다. 나를 나게 했다는 점에서는 그 태어남에 여성성을 더해 모국이라 부르고, 고국와 본국은 타향에 있는 자가 대상일 때 주로 쓰이는 말이다.




그러나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조국을 많이 쓰는 데에 비해 모국이란 말은 잘 쓰지 않는다.


솔직히 그 이유는 잘 알 수 없다. 어쩌면 발음하기 편하다는 간단한 이유일 수도 있겠고,


현대에 와서 가부장적인 태도가 사회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상술했다시피, 모국이란 단어는 여성성을 높일 수 있는 말이잖은가?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나는 위의 복잡다망한 이유는 다 집어치우고, 조와 모의 차이를 깨우쳤다.


조는 조미료의 조이며, 모는 어머니의 모인 것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 어머니는 미디어발 유사과학을 영접하사 자식들에게 MSG라는 사도를 금하셨으니.


식탁에 정갈하게 오른 음식들은 그 맛 하나가 모두 정순하고 깔끔하며 개운하다 할 수 있겠다.




"자고로 요리란 신선한 식재료를 건강하게 조리하는 것이 기본이니라."




이렇게 가내(家內)문 최고령 원로인 모(母)여사의 오의가 구전으로 설파되었으나, 이 세상 무림. 얼마나 정갈하지 않은 맛이 즐비하던가?




"호떡 사세요! 방금 구웠습니다. 맛있는 호떡이 개당 오백원~!"


"여기 떡갈비 한 번 먹어보고 가세요. 시식 드셔보고 가세요~. 지금 투 플러스 원 행사중이에요!"


"갈비가 먼저다. 수원 왕갈비통닭."




정갈하지 못한 맛. 그것은 수많은 마도의 정점에 선 존재들. '박사'들이 모여 만든 세계 최고의 화학물질로, 온 세상 사람들의 혀를 유린하는 MSG. 마(魔)시쪙인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께서는 속세 깊숙이까지 스며든 이 MSG를 멀리하셨다. 이 얼마나 지고지순한 결심이란 말인가. 마트 소스코너에서도 굴소스를 사는 대신 양조간장과 진간장을 사고, 신선한 야채와 채소 코너가 아니면 과자쪽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이 지고지순함에 나는 한창 어린 나이에 포카칩보다 감자 맛탕에 먼저 익숙해졌다(어린이 당뇨에 걸리지 않은 것이 뿌듯하다.)




그러나, 자고로 식사란 온갖 것을 먹어 몸을 견실하게 키우기 위해 먹는 일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저 음지에서 세치 혀를 놀리는 사마외도인 성대조사(聲帶釣士=VoicePhishing)들에게 당하는 건 멍청한 것들 뿐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그들에게 당하는 자들 중에는 '학력'을 쌓아올린 박사나 교수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결코 자신들이 당한다는 전제를 생각지 않기 때문에, 당하고도 당한 줄 모른다.




이렇게 무경험이 무서운 것이다. 알려면 해보고 당해봐야 한다. 똥밭인지 진흙밭인지 알려면, 가까이 가서 냄새라도 맡아봐야 한다.




그러니 이 명문 정파인 가내정갈식의 후지기수인 내가 마에 대해 관심이 들리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마를 체험해야 더욱 정순한 요리를 추구할 수 있지 않겠나?






"맛있게 드세요!"


"으음...!"




오픈 대기 끝에 들어선 요릿집에서 주문한 요리가 나온 순간, 나는 젓가락으로 젓가락을 저으며 향을 즐겼다. 매캐하게 비강을 훅 덮쳐오는 불향. 거기에 기름이 잘 조화된 국물의 맵쌀한 향이 식욕을 돋군다.




"이게.... 삼선 짬뽕?"




입에 대기도 전에 자신의 마기를 순도높은 화기로 드러내는 음식을 보며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과연 견뎌낼 수 있을까? 이 마기를.


하지만 이내 마음을 바로잡는다. 내가 바로 가내수공식의 후지기수다.




후루루루룩.




그러나 요리를 입에 댄 직후. 아찔함은 빠르게 찾아왔다. 정순한 식도와 위장을 가지고 살아왔던 몸에 마기가 침투하기 시작한 것이다. 좀 더 극적인 전개라면 바로 이쯤에 암습이 시작될 터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협지라면 점소이겠지만, 한국에서는 그저 점원이다. 맥락은 똑같다. 중국 영화에서는 이층에서 사람이 떨어져 테이블을 부시지만, 한국 영화에선 직접 의자를 집어던진다. 그리고 중국 영화에서는 점소이가 우는 소리를 내지만, 한국에서는 개쩐다며 스마트폰을 꺼내 동영상을 찍고, 사장이 피눈물을 흘린다는 점이 다르다.




"음식 맛은 어떠신가요. 손님?"




하지만 현실은 현실일 뿐. 나는 내게 마교 요리의 정수를 대접한 이 요릿집의 점원에게 대답해주어야 한다.


맛에 대한 평가를.




"사장님 대박. 미쳤나봐...졸라 맛있어요..."




점원의 조마조마한 입가에 웃음이 핀다. 신장개업한 요릿집의 첫 손님이 끗발을 좌우할 테니 기분이 좋기도 하겠지만, 정말 맛있다.




이것이... 마교의 맛?




나는 신들린 듯이 눈앞의 접시를 비웠다. 맛있다. 입에 쫙쫙 달라붙는다. 마교의 맛을 알아버린 지금. 문득 정갈함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한다.




"잘 먹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아, 그날 먹었던 한그릇 삼선 짬뽕의 맵쌀얼큰함이여!




*




"그게 그렇게 맛있다고요?"


옆에서 마법사가 피운 불에 사슴고기를 불에 굽던 마법사가 물었다. 어렵게 구한 동료로, 마왕하고 무슨 척을 졌는지, 현실의 단위로는 감히 측량할 수 없는 차원무덤에 처박아버리겠다면서 날 돕고 있다.


"그렇다니까."


"아니 어떻게 사람이 매운 맛을 즐길 수가 있지...? 게다가 매번 '요리'를 한다고요?"


상상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렇겠지. '영원의 스튜'같은 걸 끓이면서, 요릿집의 솥이 비는 건 죄악으로 분류하는 사람들이니 오죽할까?


"한 번 먹어봐라. 만약 마왕군이 그런 음식을 할 줄 안다면 너희도 마왕군으로 전향할걸?"


"에이... 저희 국왕 충성도를 뭘로 보시구..."


"너 왕이 마법사 사냥할때 모가지 따버리겠다고 반군 수장에 붙었었잖아."


"그,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아?"


"임마. 도둑 길드장이 내 사촌 동생 친구야. 그 정도야 당연히 알지."


"엥? 당신 천애고아라면서...? 그런데 사촌 동생이 어디 있어요?"


"들켰네?"


"야이 사기꾼아...!"


"어쨌든, 그 뭐냐. 우리 이거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거잖아."


"그쵸."


"그럼 잘 먹고 살게 해주면 마왕군 전향할 수 있는 거 아냐?"


"어, 거기서 정론 펼치면 제가 할 말이?"


"없지?"


"...용사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어쨌든, 뭐. 짬뽕도 그렇고, 하여튼 우리 세상 음식들 맛있는 거 진짜 산더미처럼 많아. 야, 장담하는데 너 우리 세계 음식 몇 개만 먹어보잖아? 여긴 생각도 안 날 거다."


"...그러니까 지금 이거, 이세계 사람이 이세계로 와서 이세계 음식 맛있으니 이세계 가면 이세계가 된 우리 세계는 생각도 안 날 거다. 라고 하는 거죠?"


"오, 이세계 좋아하나 보네. 입에 달고 사는 거 보니까. 야, 너는 애초에 넘어갈 운명이었나보다."


"거, 넘어가면 사람 살만하게 챙겨는 줍니까?"


"여기서 얻은 아르베이 금화들만 들고가서 종종 처분하면, 살만하게가 뭐야. 평생 먹고 사는 것도 될 거다."


"오늘부터 마왕님 하시죠."


"어?"


"아니, 거 왜. 이세계 음식은 다 마교라면서요? 거 마왕이 세운 교단인가본데. 마왕하세요. 여기 마왕 쓸어버리고, 아예 음식으로 세계정복 해보자니까?"


"...난 네 말이 가끔 진담으로 들려서 무서워."


"잉? 농담으로 한 소리 아닌데...?"




-용사가 마왕으로 전향하기 하루 전의 이야기.-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단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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