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시 오마카세2
하얀색 도자기로 된 둥근 달걀찜기가 나와 도지완 앞에 각각 세팅되었다.
역시 도자기로 된 뚜껑을 열어 보니, 잘 익은 달걀찜이 먹음직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와, 비주얼부터 심상치 않은데요.”
오물오물.
오물오물.
“아니, 이건 제가 이제껏 알던 달걀찜이 아닌데요. 으음, 혹시 단호박이 들어간 건가요?”
“역시, 강진우 셰프님 미각은 참··· 맞습니다. 달걀찜부터 예사롭지 않죠?”
오물오물.
도지완이 빠르게 대답을 한 뒤 달걀찜을 먹기 시작했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이다.
오물오물.
오물오물.
뭐랄까?
소프트 아이스크림의 부드러운 식감에 달짝지근한 단호박의 크리미함과 달걀의 고소한 풍미를 더한 맛?
한 마디로 입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근데, 저건 뭔가요?”
바 테이블의 다른 손님에게 스시를 만들어 건네는 셰프의 뒤쪽으로 잠금장치가 되어 있는 나무로 된 네모난 상자 같은 것이 보였다.
“아, 저거 말인가요? 커다란 얼음을 넣고 스시 네타를 저장해 숙성하는 빙장고예요. 유명한 스시집에 가면 있는.”
빙장고.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빙장고와 셰프의 손놀림만 보더라도 이곳이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파악이 됐기 때문이다.
셰프의 정확하고 신속한 손놀림은 스시를 가장 신선한 상태로 손님에게 세팅하였고, 그 스시 위에 올라가는 네타의 신선함은 빙장고가 확실히 책임지고 있었다.
한 마디로 이곳은 진정한 고수의 집인 것이다.
사악사악.
셰프가 고도의 집중력을 보이며 날렵하게 칼질을 했다.
금세 칼질된 사시미를 주황빛으로 빛나는 네모난 암염 위에 올린 후 바로 흰색 접시에 담아냈다.
우리에게 가장 먼저 세팅이 된 것은 제주 옥돔 사시미였다.
도지완이 주문한 것은 스시와 사시미 오마카세였던 것이다.
접시 가장자리엔 연둣빛의 고추냉이와 초생강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옥돔 사시미는 처음 먹어 봅니다.”
“아주 귀한 사시미지요. 흔하지가 않습니다.”
나는 옥돔에 와사비를 살짝 얹은 후 간장을 조금만 찍어 입안으로 가져갔다.
오물오물.
쩝쩝쩝.
오물오물.
“와, 식감이 정말 찰지네요. 암염 위에 올려 둬서 그런가요? 짭조름하면서도 살이 굉장히 탄력감이 있네요.”
“여기 온 것만 수십 번인데도 먹을 때마다 감탄합니다, 하하.”
첫 사시미의 강렬한 인상으로 나는 이 일식당에 무한 신뢰를 갖게 되었다.
“참돔입니다.”
두 번째 사시미였다.
오물오물.
오물오물.
탱글탱글한 식감에 고소함과 씹히는 맛까지 두루 갖춘 참돔의 맛은 최고였다.
“으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안에서 참돔의 식감을 만끽했다.
“이쯤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 해야 하지 않을까요?”
도지완이 나를 보며 말했다.
“조금 늦었습니다, 대표님. 진작에 마시고 싶었는걸요, 하하.”
짠.
호록.
풍부한 거품이 살아 있는 맥주 한 모금이 입안에 들어가자, 입안의 미각 세포들이 더욱 살아나기 시작했다.
“제주 홍삼 초회입니다.”
가쓰오부시 다시를 젤리로 만들어 홍삼과 함께 내놓은 홍삼 초회.
오도독.
오도독.
“와, 식감이 정말 살아 있네요.”
이런 식감은 정말 최고라는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홍삼 초회는 여름에 딱 좋은 음식이었다.
새콤한 맛과, 거기다 가쓰오부시 젤리의 감칠맛에, 홍삼의 오독오독한 식감까지.
짠.
맥주까지 곁들여 제대로 먹는 나와 도지완이다.
“이제 보니, 식성도 저랑 많이 닮은 것 같네요.”
도지완이 초회를 삼키며 말을 꺼냈다.
“저야 뭐든지 잘 먹으니까요, 하하. 근데 대표님께선 좀 까다로우실 것 같은데요.”
“후훗, 그래 보입니까?”
도지완이 생각에 잠긴 듯 다시 맥주잔에 입을 가져가더니 단숨에 원샷을 했다.
“캬, 좋네요, 하하. 까다로울 것 같다··· 사실 맞는 말씀입니다. 회는 조금만 비려도 먹지 못하니까요. 근데 그게 왜 그런 줄 아십니까?”
도지완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후후, 어렸을 때 회를 못 먹어 봐서 그렇습니다, 하하.”
“네?”
나는 도지완이 그저 장난으로 말을 하는 줄 알았다.
엄청난 부를 소유한 도지완이 회를 못 먹어 봤다니···.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강진우 셰프님, 사람이 말입니다. 아무리 잘나고 부자라 해도 어렸을 적 몸에 밴 것은 못 고치는 법입니다. 저도 아주 어렸을 적에 가난했던 시절이 있었어요. 집에 먹을 게 하나도 없던 때가 있었단 말입니다, 후후. 그래서 회를 늦게 접했습니다. 먹어 봤어야 맛을 알지, 후후. 아직도 회가 조금만 비려도 거부감이 있어요.”
뜻밖이었다.
탑 파이브 안에 드는 프랜차이즈 대표인 도지완도 가난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잠시 말을 끊은 도지완이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아마 제가 유치원 때였을 겁니다. 어머니와 함께 옆집에서 밀가루를 조금 구해 오는 길에, 제가 그걸 그만 실수로 바닥에 쏟아 버렸지 뭡니까? 그걸 손으로 쓸어 담고, 흙을 골라내고··· 가루 하나라도 더 건지려고 어머니와 내가 쭈그리고 앉아서 정신없이 담아냈었죠. 집으로 돌아와서 그걸로 수제비를 뜨는데··· 어머니가 처음으로 눈물을 보이셨어요. 그렇게 가난했습니다. 밀가루 조금으로 냄비 한가득 수제비를 만들어 며칠을 먹곤 했었으니까요. 말이 수제비지, 뿌연 국물만 가득했죠. 하아, 아버지가 성공하기도 전에 젊어서 너무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 그 뒤로 수제비라면 학을 뗍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한동안 수제비를 먹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참 희한하죠? 그렇게 사무치고 징글징글하던 수제비를 결국은 언제부턴가 앉아서 미친 듯이 먹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겁니다. 웃기죠? 몸에 밴 건 절대 없어지지 않아요.”
도지완은 술이 한 잔 들어가면 두서없이 말을 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뭐 어떤가?
그게 술자리의 매력 아닌가?
오히려 꾸밈없이 말하는 도지완에게서 인간미가 느껴졌다.
나는 도지완이 말을 하는 동안 간간이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그 어떤 말도 추임새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의 도지완의 감정을 묵묵히 들어주는 것.
지금은 그게 가장 필요한 때인 것이다.
“다금바리입니다.”
3일 숙성 다금바리라고 했다.
오물오물.
쩝쩝쩝.
우리는 다금바리 사시미를 입안으로 가져갔다.
숙성을 해서 그런지 확실히 질긴 식감이 없었고 맛이 좋았다.
다음으로 세팅된 것은 전복이었다.
전복 내장을 풍부하게 휘핑을 한 녹색을 띄는 소스에 먹기 좋게 썰려 나온 전복.
전복 내장으로 만든 소스는 흡사 거품기로 풍부하게 거품을 만든 말차를 연상시켰다.
그 소스를 듬뿍 묻혀 입으로 가져간 전복의 맛은.
오물오물.
찹찹.
“으음.”
사무치게 맛있다.
“와, 이 소스가 너무 아까운데요.”
전복을 먹고 난 후 남은 소스를 아까워하던 바로 그때.
“주먹밥에 함께 드십시오.”
앙증맞은 사이즈의 주먹밥을 소스 위에 올려 주는 셰프.
역시 클라쓰가 다르네, 클라쓰가.
나는 주먹밥을 입안에서 오물거렸다.
정말 만족스러운 맛이다.
“진짜 맛있는데요, 이거?”
“맛있다마다요. 제가 강 셰프님을 그저 그런 곳에서 대접하겠습니까? 앞으로 호형호제할 사인데 말입니다.”
호형호제?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지요?”
나는 조심스럽게 도지완의 나이를 물었다.
도지완의 얼굴은 무척 동안이었기 때문에 나보다 어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살짝 품으면서 말이다.
“스물일곱입니다, 강진우 셰프님은요?”
저런, 예상이 빗나갔네.
“아, 저는 스물둘입니다, 대표님.”
“뭐, 그럼 제가 형이 되는 셈인가요? 하하하.”
도지완이 통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섣불리 말을 놓거나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내 눈치를 살살 보았다.
혹시나 자신이 실수를 한 건 아닌지 하는 표정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내가 나설 차례지.
“형님, 맥주 한 잔 더 하시겠습니까?”
도지완의 표정이 아주, 아주, 아주 밝아졌다.
“그럴까, 동생? 하하하. 이거 어색하네요, 하하하.”
“하하하, 말 편하게 하십시오.”
“하하하하.”
나와 도지완이 함께하고 있는 일식당에선 즐거운 시간의 포문이 활짝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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