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에어조던 (1)
1. 에어조던 (1)
내 이름은 김조던이다.
얼핏 영어이름 같지만 그냥 한국이름이다.
내 아버지는 흑인이었다. 아, 흑인이다. 공사판에서 노가다 일 하는 흑인이었는데 길거리 농구에서는 미국에서 탑을 찍었던 분이었다
다니엘. 여자이름 같지만 놀랍게도 내 아버지 성함이었고, 여튼 미국 길거리 농구에서 내 아버지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거의 전설이었으니깐.
내 어머니는 한국인이었는데, 상당한 미인이시다. 젊었을 때는 말이다. 태권도 선수 출신으로 지금은 태릉에서 코치를 하고 계신다.
점심먹고 쉬는시간.
난 체육관 의자에 앉아 농구부 경기를 구경하고 있었다.
“야, 김조던.”
날 부르며 내 옆자리에 앉는 김소희. 우리 학교 얼짱이다. 이런 얼짱하고 어떻게 친구가 됐냐고? 농구 구경하다가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응 안녕.”
“넌 맨날 밥 먹고 농구 구경만 하니.”
“너도 마찬가지잖아.”
“난 헤헷.”
수줍게 웃는 김소희. 그리고 난 그런 김소희를 슬쩍 쳐다보고는 흥 거렸다. 저기 스몰포워드로 뛰고 있는 방지훈. 김소희가 저 방지훈을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질투하냐고? 아니 전혀. 난 김소희를 좋아하지 않거든.
“우리 지훈 오빠 너무 멋있지 않냐.”
“흥. 별로.”
난 영혼없이 대답했다.
“별로라니. 너 눈은 데코니? 잘 봐봐. 우리 오빠 완전 개멋있잖아!”
“그래. 느그 오빠 멋있으니깐 조용히 좀 해줄래?”
“뭐야. 왜 또 질투하고 그래.”
김소희가 자신의 어깨로 내 어깨를 툭 밀치며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순간 설렘의 감정이.
‘내가 왜 이러지.’
김소희를 좋아하지 않지만 한 번씩 이렇게 스킨쉽을 할 때면 그렇게 설렐 수가 없었다.
“울 오빠 이번 전국대회엔 우승해야 하는뎅.”
“매번 꼴찌잖아.”
난 팩트를 말했다. 전국대회 나가면 항상 가장 먼저 탈락하는 팀이 우리 한국고등학교였다. 뭐 놀랍지도 않은 일. 이번에도 그럴 거다.
“그니깐! 울 오빠는 탑 레벨인데 하...너무 억울하지 않니?”
“별로.”
난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내가 김소희 오빠도 아닌데 뭐.
“근데 야.”
“응.”
“내 말에 리액션 좀 잘 해봐. 왜 자꾸 찬물 끼얹냐구.”
“무슨 리액션.”
“내 감정과 텐션에 맞춰보라구.”
“그니깐 내가 왜.”
“에이 꺼져.”
다시 내게 어깨빵하는 김소희. 순간 또 강한 설렘이 내 온몸을 휘젓고 지나갔다.
“농구 좀 보자.”
“야, 근데 너 농구 왜봐? 농구 못하잖아.”
김소희가 궁금해하며 말했다.
“왜. 농구 못하면 보면 안 되냥.”
“그건 아닌데. 좀 의외라서.”
김소희가 말했다. 그래. 내가 좀 농구와 안 어울리는 외모이긴 하다. 엄마 닮아서 이쁘장하게 생겼거든. 엄마 닮아서 키도 평범하다. 엄마 닮아서 마른체형이기도 하고 말이다. 아, 아빠가 흑인이지 않았냐고. 맞다. 아빠가 흑인인데 이상하게 난 한국인처럼 생겼다. 그것도 아주 이쁘장하게 말이다. 비주얼은 엄마 유전자가 압도적으로 제압한 듯. 그럼 아빠한텐 뭘 물려받았냐고? 민망하긴 한데 거기는 정말 크다. 탈아시안급. 서양야동에 나오는 그 정도 크기? 뻥 안 치고. 여튼 친구들과 같이 샤워만하면 다들 내 앞에서 절로 고개를 숙인다. 날 깔보던 덩치 큰 녀석들조차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체형은 분명 말랐지만 강골이다. 부딪혀서 밀린 적이 없다. 몸싸움에서 밀린 적이 없다. 게다가 미친 탄력. 운동신경이 그냥 미쳤다. 지금 내 친구들은 아무도 모르지만 내가 한국에 오기 전 중학생 때까지는 미국 길거리 농구에서 탑이었다. 대회 나가면 항상 1등 했었으니깐. 난 항상 MVP였고. 길거리 농구 전설이었던 아빠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았던 것이다.
‘니가 뭘 알겠냐.’
난 김소희를 쳐다보며 속으로 말했다.
“우왕!”
그때 김소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방지훈이 덩크를 한 것이다.
“우와! 야! 방금 너 봤어?! 울 오빠 덩크 한 거 봤냐궁!”
김소희가 방방거리며 말했다.
“흥.”
그리고 난 피식 웃어줌. 저 정도 덩크는 나도 한다. 아니 그냥 한다.
“뭐야 너 반응. 비웃는 거임?”
김소희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날 쳐다보며 말했다. 니가 뭔데 울 오빠 비웃는 거냐 라는 표정.
“아니다.”
“너 덩크 할 줄도 모르잖아.”
“그래.”
“키도 작으면서.”
“그래.”
“링에 닿이기는 하니?”
“흥.”
지금 당장 내려가서 덩크하는 걸 보여주고 싶다. 내 별명이 에어조던이었다. 키는 작지만 미친 점프력으로 밥 먹듯이 덩크를 했다고.
“니가 뭘 알겠냐.”
난 김소희를 쳐다보며 웃으며 말했다.
“뭘 알기는 우씨!”
다시 자리에 앉으며 내게 어깨빵하는 김소희. 어깨빵 할 때마다 묘한 감정이 들어서 미치겠다.
“야. 너 마치고 집에 바로 가?”
“응.”
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나랑 같이 좀 가자.”
“어딜?”
“나...”
“응.”
“사실...”
“왤케 몸을 베베꼬냐. 오줌 마렵냐.”
“아니 븅딱아.”
김소희가 날 밀치며 말했다. 얼굴이 수줍게 발그레 달아올라 있었는데.
“나 사실 방지훈 오빠 좋아한단 말야!”
라고 수줍게 외쳐보는 김소희.
“알고 있어.”
난 별 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엉? 알고 있었다궁? 어떻게?”
“그렇게 티 내고 다니는데 모르는 사람이 어딨냐.”
“헤헷.”
수줍게 웃는 김소희. 근데...김소희가 수줍게 웃는데 왜 내 심장이 빨딱빨딱거릴까.
‘어우씨...’
난 속으로 말하며 심장을 살며시 움켜쥐었다. 너무 빨리 뛰는데...터질 것만 같다. 그래서 난 고개를 돌려 다시 농구장을 쳐다봤다.
“야, 사람 말하는데 어디 봐. 날 보라궁.”
라고 말하며 내 턱을 붙잡고는 다시 돌리는 김소희. 그렇게 난 다시 김소희를 정면으로 쳐다보게 되었고.
“쿨럭!”
기침을 했다.
“쿨럭! 쿨럭!”
“아씨 침 튀잖아 새꺄!”
김소희가 다시 날 밀쳤다. 다행이다. 내 설렘의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 있었거든. 그래서 기침을 하며 회피한 것이다.
김소희한테 내 감정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날 얼마나 놀리겠는가. 김소희는 지가 이쁜 걸 안다. 지가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꼬실 수 있다 자신하고 있는 여자다. 이런 김소희에게 내 감정을 들켰다간...절대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
“아...사레걸렸네. 그래 뭐.”
“아 내 얼굴 보라고.”
“아니 그냥 말해. 또 기침 할 거 같아서.”
“그니깐 나 오늘 고백할 거라궁.”
“뭐?”
난 깜놀해서 김소희를 쳐다봤다. 잔뜩 수줍어하고 있는 김소희. 귀까지 빨개져서는 무슨 홍당무냐.
“나 방지훈 오빠한테 사귀자고 고백할거라궁...”
“그래서.”
“같이 가자.”
“뭐?”
“같이 가자고. 혼자 가면 민망하니깐...헤헷...”
김소희가 말했고, 난 살짝 어이가 없었다. 고백하러 가는데 왜 나한테 같이 가달라 하는 거지.
“니 혼자 가.”
“아 같이 가자고 씹새끼야.”
“하. 니가 이렇게 욕하는 걸 방지훈이 들어야 할 텐데.”
“아 닥쳐. 알겠지? 마치고 같이 가는 거다. 야, 그리고 방지훈 오빠가 너보다 선배야. 반말하지 말라고.”
“에휴. 뭐 옆에만 있으면 되는 거지?”
“응.”
김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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