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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카네 님의 서재입니다.

하드코어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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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카네
작품등록일 :
2019.04.01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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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4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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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08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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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DUMMY

아무리 페니가 작게 쪼그라들었더라도 명색이 과거엔 초월체였다. 안 좋은 예감을 읽어내는 것은 할 수 있었다. 굳이 페니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빤히 보이는 상황에선 민감한 사람이라면 그 솜털 끝에 걸려오는 끈끈한 불안감을 느낄 수 있었다. 허나 지금 루히는 그런 끔찍한 결과마저도 감수하고 아래로 뛰어들려하고 있었다.


페니의 말에 대답하는 것은 “우하하.”하는 웃음소리였다.



“괜찮습니다! 이 던전은 저희들의 앞마당이나 다름없지요. 그저 저희들 뒤만 제대로 따라오시면 됩니다. 하하하.”



얼굴이 길고 광대가 도드라져서 마치 비쩍 골은 말처럼 생긴 사내가 호언장담했다. 그러자 그의 옆에 서 있는 남자가 “그럼요, 그럼요.”하고 대답했다. 일단 동의하고 난 뒤에 생각하는 타입이다. 아니, 생각하지 않고 입으로만 내뱉는지도 몰랐다.


경박했다. 그것이 자신감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인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것은 루히가 가진 가벼움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그렇기에 불안감이 또다시 스친다.


루히는 어떤 장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허리에 무기를 차고 등 뒤엔 큼지막한 배낭이나 방패, 화살통과 같은 것을 짊어진 모험가들이 일제히 향하는 곳이다. 그의 시선이 닿는 끝에는 틀에 박힌 것처럼 생긴 건물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한 아름 정도 되는 기둥들이 삼각뿔 모양의 지붕을 받치고 있는 덕분에 그리스의 신전을 연상케 했다.


지상 층은 텅 비어 있었기에 기둥 너머의 모습까지 훤히 보였으며 지하로 통하는 계단의 모습 또한 시야에 들어온다. 커다란 괴물이 입을 벌리고 있는 느낌의 어두운 구멍이었다. 마치 일전에 마주쳤던 《아킴케르벨크(akim-kerbelk)》의 아가리를 떠올리게 만든다. 쩍 벌린 입으로 모험가들을 집어삼키고 피와 목숨으로 목구멍을 적시려 들고 있었다.


브리타니안의 던전들 가운데 하나. 고정 던전, 31번. 마치 유명한 아이스크림의 이름처럼 들려온다. 도시 인근의 것들을 약함의 정도에 따라 줄을 세워놓은 것으로 고정 던전들 가운데에선 31번째에 해당했다.


정확한 명칭은 수서형 던전, 아크벨베리아(aq-velberia). 완전히라곤 말하기 힘들지만 물 속성의 몬스터들이 대거 출몰하는 장소였다. 몬스터의 평균 레벨은 20전후. 브리타니안 인근에서도 가장 강한 축의 몬스터가 등장하며 그 위로 번호가 두 개밖에 없는 것을 감안한다면 확실히 초보자용 던전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페니가 걱정스런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루히는 던전 입구 주변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자들의 휴대용 천막들을 눈으로 훑었다. 무기에서부터 도구, 식량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물건들을 사고팔면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긴장을 한 모험가들도, 소풍을 나가는 것 같은 모험가들도, 때론 주변에 여자를 여럿 끼고 데이트를 하는 것 같은 모습을 풍기는 모험가들도 하나같이 모여서 왁자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한참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입을 연다.



“그래도 할 수밖에 없잖아. 렉스와 함께 돌았던 고대유적하고 다르지 않아. 쫓아다니면서 아이템을 줍는 거지.”


“그건 그렇지만, 우움.”



페니는 턱을 좌로 올리면서 걱정하는 목소리를 냈다. 그녀는 걱정이 많았다. 루히도 어느 정도 이해하는 얼굴이다. 하지만 길고 짧은 것을 따져봤자 의미가 없었다. 기회가 온다면 그 기회를 잡아야했다.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서도 기회를 잡기 위해서 허우적대야하는데 오히려 지금의 기회는 그가 원했던 것보다 더 좋았다. 너무 좋아서 과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페니는 불안해하고 있었지만.


당초 두 사람이 일찍부터 움막을 나선 것은 파티플레이를 하기 위해서였다. 중간에 길드에서 시간을 좀 빼앗겼긴 했지만 그 대신 자신이 원했던 파티원들을 구할 수 있었다.


그라빗슈는 모험가 길드에서 대기해야 한다고 했다. 마물의 범람이니 뭐니 하는 위험천만한 이야기들과 마계가 어쩌고 마족과 마물이 어떻고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관심 없었다. 각국의 경제 수석들이 모여서 세계 경제가 어쩌고저쩌고 떠들어봤자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까마득한 단계가 지난 이후였다. 위기니, 멸망이니하는 거창한 소리를 내봤자 자신과는 상관없는 차원의 이야기다.


누군가가 지킬 수 있으면 지키는 거고 아니면 다 같이 망하는 거지. 그리고 이딴 세상 망하라지, 어차피 난 망했으니까.


하지만 모험가 길드에서 허비한 시간이 헛수고는 아니었다. 아침밥 대신 집어먹은 풀을 다 소화하고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을 즈음하여 그라빗슈가 그 기나긴 이야기들을 끝내고 파티원들을 구해다 준 것이다. 그럭저럭 오가면서 알게 된 사이라는데, 모험가들의 교류란 거의 대부분 그런 식이었다. 그래도 아마 그의 기준에서 가장 믿음직한 이들을 붙여주긴 했을 거라 믿는다.



“그렇죠. 저만 잘 따라오면 됩니다. 어차피 짐을 맡길 사람을 한 사람 고용할까 했는데, 잘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얼굴이 긴 남자의 이름은 오돌보르(odolbor), 탄탄한 근육을 자랑하는 전사이며 무기는 등 뒤에 착용한 양손 도끼다. 등판을 다 가리는 저 넓적한 도끼날이 전투에 과연 유용성이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접어두자. 빠르고 정확하게 동맥에 상처만 낸다면 조각칼 하나로도 사람이 픽픽 죽어나가던 현실과는 다르게 여긴 쓸모없는 부분에선 현실적이면서 또 병신 같은 부분에선 게임 같으니까.



“오돌보르님과 함께 던전에 가고 싶은 짐꾼들이 줄을 설 정도로 많으니까, 영광으로 알라고.”



은근슬쩍 무시하는 티를 내는, 키가 매우 작은 남자의 이름은 호윰(ho-yum), 하플링(halfling)인지 하프링(harfling)인지 하는 종족이다. 야비하고 얍삽하단 성격이 틀에 박혀있다는데, 개개의 차이는 있겠으나 확실한건 호윰은 그런 전형적인 성격 그대로였다. 하긴, 남들보다 절반정도, 혹은 그보다 더 낮은 자리에서 매사를 올려다보며 살아가면 싫어도 그런 성격을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혼자 생각해본다.


대신 시선이 땅과 가까우니 함정 해체와 같은 일은 잘한단다. 그거 그냥 키만 작으면 가능한 거 아닌가 싶으나, 그렇다는데 어쩌겠는가.



“이때까지 짐꾼에게 위험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긴장하지 마시죠.”



오돌보르와 효움의 뒤를 따르는 남자는 지펠트(ziphelt), 옷깃에 자주색의 띠가 들어가 있는 신관복을 입은 사제(priest)였다. 봉사와 헌신의 신을 믿고 있으며 2등급의 신성력을 사용한다는데, 솔직히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 그런 신이 있다면 제일 먼저 나를 도우러 왔겠지.


어쨌건 루히는 그라빗슈의 도움 덕분에 이들의 사냥에 함께할 수 있게 되었다. 효움이 말 한대로 짐꾼의 역할로. 그 덕분에 루히는 등 뒤에 어깨를 파고들 정도로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있었으며 허리에도 여러 가지의 도구들이 잔뜩 담긴 주머니를 차고 있었다.


누군가는 짐꾼이 매우 안 좋은 직업이라고 하는데, 직업에 귀천은 없다고 말할 만큼 순진한 루히는 아니었다. 일은 힘들고 보상은 크지 않으며 더군다나 위험하기까지 하다. 잘못하면 죽는 일도 허다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짐꾼 같은 일을 할 바엔 차근차근 모험가 생활을 하는 편이 나았다.


말 그대로 3D업종이나 마찬가지다. 다들 기피하려고 하지 일부러 찾아서 하고자 하는 사람은 없는.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었다. 등산용 배낭을 짊어지고 몬스터와 싸우다보면 분명 배낭 옆에 덜렁덜렁 걸려있는 후라이팬에 머리통을 얻어맞고 저승체험을 할거다. 자신과는 다르게 편도티켓을 끊어버리는 거지.


이 짐꾼의 일은 성인 남자라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레벨 1에 머무르는 루히라도 충분하다는 거다.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 않으니 경험치가 오를 일은 없지만 강해지는 것은 일단 뒷전이다.


사람은 말이야, 일단 눈앞에 있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벌써부터 꼬르륵 거리는 배를 채워 넣을 저녁식사가 기대된단 말이야.


돈도 받고 밥도 얻어먹고. 이미 그 시점에서부터 이 짐꾼은 최고의 직업이었다. 힘들고 위험하다지만. 아니, 돈도 주고 밥도 준다잖아? 아주그냥 전문적인 짐꾼으로 전직(?)을 해도 좋을 것 같다. 그만큼 루히의 처지엔 이정도의 일도 감지덕지였다.


괜히 혼자서 뭘 하겠다고 나대던 30여 일간의 시간이 조금 바보스러워지기까지 할 정도였다.



“봐. 저렇게 자신만만해 하는데 뭔 일 터지겠어?”



루히의 말에 페니는 흥 하면서 가벼운 콧소리를 냈다.


분명히 말할 수 있지만, 루히니까 장담할 수 없었다. 두고 보라지. 이딴 던전은 도는 것이 시간 낭비다고 말할 수 있었던 렉스니까 별 탈 없이 루히를 데리고 다닐 수 있었다. 자신의 수준에 맞춰서 던전을 돌고 있는 이 세 사람에겐 언젠가 루히가 큰 걸림돌이 될 거다.



‘나중 가서 후회하면 한 마디 해줘야지.’



페니는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걱정하는 것을 멈췄다. 사람은 겪어봐야 깨우친다. 초월체인 그녀이기에 마음먹자 감정의 전환이 빨랐다.


루히는 성장이 더디다는 저주를 끌어안고 있었으나 동시에 죽어도 계속 부활한다는 은총이라는 이름의 족쇄도 달고 있었다. 잃을 게 아무것도 없었다. 빚을 더 늘리지 않는 편이 좋다는 루히의 생각에는 적극 찬동한다만 그가 죽음의 궤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건 선택의 폭을 넓혀주었다.



‘차라리 영영 죽었으면.’



감추고 있던 생각을 몰래 꺼내어본다.


이것이 신이 되기 위한 시험이라고 해도 지금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작금의 상황을 순전히 루히의 탓으로 돌리기 힘들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창조주와 약속했던 시험과 조금 달랐다. 어디에서부터 혼선이 빚어졌는가를 따져보면 결국 루히의 존재다.


그가 저주받음 특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그가 없었다면, 시험은 진즉 끝났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기에 그간 많은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외형적인 변화보다는 무형적인 변화. 그 가운데에 하나는 그녀가 지금의 ‘개체’에 적응하고 있다는 거다.


하지만 그것은 시험을 포기한다는 뜻이었다. 다시금 초월체로, 그리하여 영원히 정체되어있는 세계로. 진화를 포기한 자들이 그저 무한하게 존재하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더 이상 죽음이 탈출구가 되지 않을 수도 있어.’



루히와는 공유할 수 없는 오직 그녀만의 생각이었다.


어쨌건 루히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도 포기하지 않는다. 무엇을 포기하느냐에 대한 관점은 달랐으나 결국 어떻게든 이 세계에서 서로 원하는 바를 성취해야했다.



***



“이얏!”



오돌보르가 기합을 내지르면서 앞을 향해 달려 나갔다. 무릎까지 잠기는 물이 주변으로 튀어 올랐다. 진흙으로 된 바닥은 발이 쑥쑥 빠지고 다리를 붙잡아서 걸음을 늦추고 있었다. 약간 굼뜬 동작이지만 진흙마저도 발로 차면서 뛰었다.


그가 향하는 앞에는 글룸 캣피쉬(groom catfish)라는 이름의 메기같이 생긴 커다란 물고기가 있었다. 양서류의 앞다리가 두 개 붙어있었으며 꼬리가 있었기에 개구리가 되다만 올챙이 같이 생기기도 했다.


고무타이어나 검은 케이블의 표면과 비슷한 질감의 새까만 비늘은 몬스터가 움직일 때마다 숨을 쉬듯 슬쩍슬쩍 움직이고 있었다. 커다랗게 벌린 입의 주변엔 기다란 수염이 꿈틀거렸다. 수염은 총 여섯 개. 그 수염이 마치 손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관절이 없으니 채찍처럼 휘둘러지고 또는 휘감으려 들었다.


오돌보르는 손에 든 거대한 도끼를 휘둘러서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두 개의 수염을 쳐냈다. 베이지는 않았으나 맞은 자리가 움푹 파이면서 튕겨져 나갔다. 이어서 몇 걸음을 더 내딛으면서 다음 수염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휘두른 도끼가 수염을 쳐내고 재차 거리를 좁힌다. 가까워질수록 메기 같은 몬스터가 휘두르는 수염의 움직임도 빨라졌으나 동시에 오돌보르의 움직임도 그에 맞춰 속도를 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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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2. 초급 퀘스트도 안심할 수 없다 19.04.02 98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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