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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

가수로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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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
작품등록일 :
2022.12.13 02:05
최근연재일 :
2022.12.21 19:59
연재수 :
6 회
조회수 :
317
추천수 :
8
글자수 :
32,257

작성
22.12.16 22:13
조회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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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3쪽

[4] - 숫자가 오른다

DUMMY

머릿속에 떠올린 멜로디를 그대로 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문제가 있다면 코러스 부분 전에 들어갈 프리(pre - chorus)를 만드는 일이었다.


'최대한 비슷한 음율을 지켜야 하는데.'


곡의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는 없는 노릇. 더군다나 발라드라면 더더욱.


그렇지 않은 발라드 곡들도 더러 있겠지만 이 곡의 분위기는 바뀌어선 안 된다. '슬픔' 그리고 '어두움' 이 두 가지 분위기를 시작부터 끝까지 지켜내야만 한다.


'벌스에서 코러스로 넘아가는 사이를 조율 해보자.'


괜찮게 느껴지는 것들이 몇 개 떠오른다. 나는 서슴없이 떠오르는 그대로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거 괜찮은데? 이것도 나쁘지 않고····이 느낌도 은근 좋은 걸?


머릿속에 떠오르는 멜로디를 꺼내다 보니 중간중간 손가락이 멈추긴 했지만, 다시 건반을 누를 때까지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렇게 여덟 개의 프리 코러스가 만들어졌다.

이제 이것들을 한 번 씩 곡에 대입하여 가장 어울리는 걸 찾아내기만 하면 끝이ㅡ


툭툭.


어깨로부터 느껴지는 건드림에 건반에서 손을 떼고 시선을 돌렸다. 옆에서 덩친 큰 한 남성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기요. 남의 피아노를 함부로 치시면 어떡합니까?”

“네?”


내가 당황스런 표정을 짓자, 남성은 나를 따라 황당하다는듯 바라보며 말했다.


“저희가 버스킹 하려고 잠시 가져다 놓은 거라고요. 그거.”


남자가 피아노를 가리킨다. 그제서야 나는 남성의 뒷편에 쌓여진 장비들을 목격했다. 스탠딩 마이크와 엠프 등등. 갖가지 장비들. 그리고 앞서 내게 건넨 말까지.


'설마····.'


나는 두 눈을 꿈뻑이며 남자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이 피아노 공용 아니죠?”

“······.”


말이 되는 소릴 하라는 표정. 답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방금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를.


'공용이라며····하영아.'


볼이 사과 마냥 빨개지기 시작한다. 얼굴이 뜨거워지는 게 거울을 보지 않아도 느껴졌다.


“죄송합니다.”


변명은 필요 없다. 애초에 명백한 내 실수였으니까.

최대한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하며 고개를 숙였다.


“괜찮습니다. 표정을 보아하니 정말 모르셨던 것 같기도 하고.”


남성이 고개를 옅게 끄덕이며 말했다. 나는 재빨리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생각해보니 이 의자도 남의 거네. 어후···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나는 몇 번을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단 말을 덧붙여 사과를 전한 뒤 공원을 빠져나왔다. 아마 내 인생 최고의 달리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부끄러운 정도가 아니라 온 몸이 벗겨진 것 마냥 쪽팔렸으니까.


우사인 볼트 마냥 달려 도착한 집. 헥헥 거리며 도어락 문을 연 순간.


“아····내 샌드위치.”


기껏 사온 내 끼니를 두고왔단 사실을 깨달아 버렸다. 다시 가야하나?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해보지만 아무래도 그건 무리였다.


'포기하자.'


어떻게 다시 뻔뻔한 낮짝으로 거길 또 갈 수 있을까. 적어도 나는 못한다. 차라리 굶고 말지.

다시 카페에서 가서 사오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건 또 귀찮고.


그냥 굶어야지 뭐 어쩔 수 있나.


'해야 할 것도 많고.'


떠올린 8개의 프리 코러스를 한 번씩 전부 살펴보고 수정할 것들도 조금 건들이다 보면 저녁이 다가올 것이다. 그때까지만 참으면 될 일.


그리 생각하며 나는 물 한 잔을 들이킨 뒤 다시금 방으로 들어갔다. 미처 못다한 작업을 마치기 위해.


그렇게 컴퓨터 책상에 엉덩이를 붙이자 시야에 떠오른 하얀 숫자가 달라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1%]


'올랐네?'


정신이 없어 제대로 살피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 숫자가 올라간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뭐 때문에 오른 걸까.


빤히 숫자를 바라봐도 명확한 해답은 나오지 않는다. 분명 카페에서 나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0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공원에서 오른 건가? 아니면 집에 도착하고 나서?


여러 경우를 생각했지만 너무 다양했다.


'나중에 생각하자.'


우선 급한 건 지금 만들고 있는 노래였다. 보이는 숫자가 무엇을 나타내는 건지는 아직까지도 모른다. 폴더에 적혀진 숫자와 똑같은 폰트인 걸 보면 연관성이 있긴 있을 텐데·····. 아 몰라. 일단 노래나 만들자.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작곡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따로 저장해 두었던 파일의 폴더를 클릭했다.


{내 생에 마지막 노래(수정)} [64%]


'64%?'


또다. 또 숫자가 달라졌다. 은색빛을 내뿜는 숫자는 아까 전까지만 하더라도 45%를 가리키고 있었는데. 지금은 19%가 오른 64%.


“건드려서 그런가?”


문득 든 생각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숫자가 오를 이유가 없었으니.


'확인해보자.'


새로 만든 폴더를 나가고, 모아뒀던 예전 파일들이 담긴 폴더를 열었다.


{우리} [14%]

{fire} [21%]

{염원} [18%]

{이별시} [37%]

{사랑, 너} [7%]

.

.

.

{내 생에 마지막 노래} [45%]


역시나 변함이 없었다. 수정하기 전 마지막 곡조차 똑같은 45%로 기록되어진 걸 보아하니 내 예상이 맞다는 게 증명이 된 셈이었다.


그 말인 즉슨····노래가 수치로 표현된다라는 건데.


“말이 돼?”


육성으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다. 머리가 빠르게 굴러갔다. 만일 이 수치가 객관적인 기준이라면, 이라는 가정을 세우고 상상한다.


아무리 봐도 화려하기만 할 뿐, 부정적인 미래가 전혀 그려지지 않는다.

당연하다. 이게 정말로 객관적인 기준이라고 쳤을 때, 게임으로 따지자면 혼자 치트키를 쓰는 것과 다름이 없었으니까.


'김칫국 마시지 말자····.'


우선은 확인을 해봐야했다. 김칫국이 맞는지 아닌지는 그 이후에 판별하면 될 일이니까.



()



“미쳤네····.”


가히 미쳤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확인하는 방법은 꽤나 쉬웠다.

곡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주관을 넘어 객관적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질만큼 곡을 망가뜨렸다.


그 결과.


{내 생에 마지막 곡} [9%]


9%라는 가장 낮은 숫자가 보인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음을 트랙에 넣는다던가 혹은 곡의 분위기를 망치는 가상 악기를 집어넣었다. 예를 들면 클래식 반주에 헤비메탈을 집어넣는 끔찍한 혼종처럼.


그 결과 무수히 쌓아올렸던 트랙을 건들 때마다 숫자는 더 없이 나락으로 떨어졌고 이어 9%까지 도달했다.


이 곡을 제외하고서도 달리 만들었던 곡들로도 손을 봤었고, 이어 똑같은 결과가 나왔다.


“허.”


힘 빠진 감탄을 내뱉었다. 이후 실성한듯 방에서 홀로 웃어댔다. 그럴 수 밖에.


예술이 힘든 건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객관성을 따지기 힘들다. 물론 '상업적이다' 로 구별할 수는 있겠지만 그걸 명확히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

아니, 어렵다.


제아무리 좋은 노래라고 한들, 그 노래가 뜰지 안 뜰지는 음반을 내는 회사 또한 확신을 하지 못하고 그렇기에 어느 정도 운에 맡기며 홍보를 하는 이유도 동일했다.


그런 상황에서 객관적으로 노래를 평가해 준다? 그것도 수치를 통해? 미친 거지.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나에게 벌어졌다. 회귀도 감지덕지인 상황에서 능력까지 얻었다. 마치 신이 내게 이번 생에선 꼭 꿈을 이루라는 것처럼.


하고 싶은 걸 주저앉고 하라는 듯이.


당연히 할 거다.

애초에 이런 능력이 없었어도 할 거였다. 그러기로 다짐했으니까.


나는 기지개를 한 번 쫙 펼치며 작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이제 슬슬 해볼까.”


수정했던 코러스에 맞춰 쌓아뒀던 음들을 그것에 맞게 바꿔야 할 차례였다. 더불어 공원에서 만든 프리 코러스들도 하나 하나 집어넣은 뒤 듣고 나서 택해야 했고.


딱히 시간이 촉박한 건 아니었지만 최대한 빨리 만들고 싶었다. 아니, 보고 싶었다.


100%의 결과물이 얼마나 좋을 지가.



()



저녁이 되자 공원에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강아지를 산책 시킨다던지 또는 연인들끼리 놀러 온다던지 등등. 여러 사람들이 한산했던 공원에 자리를 잡았다.


최수연은 그런 북적이는 인파를 둘러봤다.


“뭐 찾아?”


그런 최수연을 보던 매니저가 은근슬쩍 물었다. 수연은 매니저를 바라보더니 피아노 위에 놓여진 샌드위치와 커피가 담긴 봉투를 가리켰다.


“저거 놓고 가셨길래.”

“아까 그 사람 거구나.”


최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치우면 되지 뭐. 몇 시간이 지났는데 안 오는 거 보면 그냥 버린 걸 텐데.”


걱정하지 말라는듯 매니저가 말했지만 수연은 저걸 치우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무슨 노래였지?'


좋은 노래라고 하기엔 짤막하게 들어서 뭐라 단정 지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기억에 남는다는 것이었다.


매니저가 오고나서 남자는 부리나케 도망치듯 공원에서 사라졌다.


'물어보고 싶었는데····.'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방금 치던 게 무슨 노래냐, 라고 묻고 싶었지만 내향적인 성향이 강한 수연에겐 불가능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남자가 연주하던 멜로디가 당최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점심 때부터 지금까지 쭉.

수연은 혹시나 그가 놓고간 음식을 찾으러 다시 오지 않을까란 기대를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매니저 말대로 지금까지 오지 않은 거면 버린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수연은 그 사실에 내심 아쉬움을 토했다.


차라리 멜로디라도 제대로 들었다면 모르겠지만 피아노를 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인지 중간중간 손가락을 멈추더니 점점 연주가 이상하게 흘러갔다.


이윽고 후반에 접어선 악보를 까먹은 건지 한 구간에서 여러 번을 치기도 했고.


비슷하지만 자세히 들으면 멜로디가 조금씩 바뀌었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피아노를 쳤던 수연으로선 그 미세한 차이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 사람이 만든 곡인가?'


잠시 수연은 원작자가 그 남자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지만 이내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손이 멈추던데 뭘.'


자신이 만든 곡도 제대로 못 칠 리가 없잖은가. 수연은 그리 생각했다.


그녀의 말마따나 자신이 만든 곡이었으면 후반에 악보를 까먹고 같은 구간을 반복하며 칠 일이 없었다.

그래서도 안 됐고.


다만, 최수연은 한 가지 사실을 간과했다. 김하늘은 피아노 앞에서 연주를 한 게 아닌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당연했다. 도대체 누가 공원 한 가운데에 놓여진 피아노에 다가가 멜로디를 만들까.

원래 알고있던 곡을 치는 건 또 몰라도 그 자리에서 만들 생각은 하지 않았으니까. 적어도 일반인이라면.


최수연은 하늘을 딱히 특별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고, 미처 그 생각까지 하지 못한 것이었다.


“수연아. 셋팅 끝났다. 이제 올라가면 돼.”

“네.”


수연은 매니저의 말에 대답한 뒤, 준비가 끝난 작은 무대로 천천히 올라섰다. 그녀를 둘러싼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수연을 향했다.


그러나 수연의 정신은 버스킹이 아닌 하늘이 쳤던 멜로디에 가 있었다.

본디 긴장을 해야하는 순감임에도 여전히 그녀의 머릿속을 뒤척이고 있던 것이다.


그렇게 반주가 시작됐고, 수연은 연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정신은 그 남성이 치던 멜로디를 떠올린 채. 서슴없이 입술을 열고 노래를 불렀다.


“뭐야····.”


작은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수연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녀의 매니저인 국진이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수연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떨지 않고 제대로!


'갑자기?'


최수연은 곧 데뷔를 앞둔 연습생이었다. 이미 멤버까지 전부 짜여진 상태였고 곡도 작업중인 상황이었다.

허나,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바로 리더인 최수연이었다.


수연은 포텐이 뛰어나다. 이를 해석하자면 노래와 춤 그리고 성격까지도 전부 아이돌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란 소리였다. 그렇기에 리더로 택한 것이고.


허나 그녀에겐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그녀에게 무대 공포증이 있다는 것.

그래서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게 바로 이 버스킹이었다.


'수연이에겐 팬덤을 쌓으려는 목적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실은 그녀의 공포증을 없애기 위한 게 가장 큰 연유였다. 솔직히 이번이 첫 버스킹이라 한 번에 고칠 수 있단 생각은 추호에도 없었다. 당장에 고치리란 욕심도 없었고.


그저, 이 짓을 몇 번 하다보면 데뷔 전까지는 어느정도 고칠 수 있겠지. 라는 막연한 바람을 간직하며 시행한 것이었을 뿐.


그러나 이국진이 바라보고 있는 현재 수연의 모습은 공포증 따위 언제 있었냐는듯 편안하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환장할 노릇이군.'


선뜻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나쁜 소식은 아니었기에 국진은 구태어 더 깊이 의문을 삼지 않았다. 일단 고쳐지긴 했으니까.


“문자 드려야겠네.”


국진은 노래를 부르고 있는 수연에게서 시선을 뗀 뒤, 전화를 걸었다,

데뷔로 가장 골머리를 앓고 있는 사람에게.


간만에 전하는 좋은 소식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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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 숫자가 오른다 22.12.16 44 1 13쪽
4 [3] - 그래, 이거였어 22.12.15 43 1 12쪽
3 [2] - 한 번 해봐? +1 22.12.14 51 3 13쪽
2 [1] - 하고 싶으면 해야지 22.12.13 55 1 14쪽
1 [0] - 후회 +1 22.12.13 97 1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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