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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도 막내손자는 못 참지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판타지

Stay.
작품등록일 :
2023.11.03 16:19
최근연재일 :
2023.12.14 19:41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311,212
추천수 :
6,258
글자수 :
211,779

작성
23.11.13 21:13
조회
1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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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
글자
13쪽

밤하늘

DUMMY

아그네스에서 태어난 자.

강함과 재능으로 증명하라.


당대 최강이라 불리는 무신은 가문의 전통을 누구보다 충실히 따른다.

언제 어디서나 항상 시험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마다 과제를 내린다.

오늘 축하연도 마찬가지였다.

본인의 70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것보다 후손들의 성장을 시험했다.

첫째와 둘째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몇 걸음 옮기지도 못했다.

그것만으로도 대륙에선 천재라 불릴만한 재능이었지만 무신의 기준은 엄격했다.

칭찬 한 마디 들리지 않는 축하연에 싸늘함이 흐르고 있었다.

상상하지도 못한 녀석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6번째?’

‘파르반이 아니라 제이드?’

‘가주님의 기세를 견뎠다고?’


6번째 직계인 파르반의 아들이었다.

다시 가문으로 돌아온 것만도 놀라운데, 그 자식이 블레이크의 기세를 견뎠다.

심지어 직계 아이들 중 가장 어린 나이였다.

내력이라 부르기 민망한 기운으로 어떻게 블레이크 앞에 섰는지 경악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모두 놀란 말을 입 밖에 꺼내지 못했다.

직계의 분위기가 어긋나려 하고 있었다.


‘12살.....직계 후손 중에서 가장 어린 나이군.’

‘우리가 5살때나 가졌을 법한 내력으로 가주님의 기세를 뚫었어.’

‘아무리 가주님께서 그 경지에 해당하는 시험을 내린다고 하지만....’


다니엘이나 엘리스처럼 경지가 나뉘어진 사람에 따라 가주의 기세도 변한다.

마스터 급에는 마스터보다 살짝 윗단계의 기운을.

마스터가 되지 못한 자에게는 마스터 급의 기운을.

후손들의 경지에 맞춰 그보다 살짝 높여 상당한 기세를 조절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을 뛰어넘도록 매번 약하게 시험했지만, 그마저도 통과하는 자가 드물었다.

대부분은 몇 걸음 떼지도 못하거나, 다니엘과 엘리스처럼 기어야 겨우 블레이크 앞에 도착한다.


‘설마, 저 녀석.’


직계가 의아함과 싸늘함으로 얼룩질 때, 첫째 이든의 눈초리는 가늘게 좁혀졌다.


‘파르반의 정심을 이어받은 건가?’


그 외엔 달리 생각할 방법이 없었다.

이든이 고개를 돌리자, 눈치챈 직계들도 제이드에게 시선을 모은다.

제이드는 직계의 시선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도 블레이크의 시험을 매번 받았었다.

루인이 블레이크 앞에 선다는게 어떤 의미인지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불안했다.

블레이크가 어떤 말로 루인을 대할지.


“호흡이 정갈하고, 눈이 맑으니, 마음이 고요하다.”


침묵에 휩싸인 파티장에 블레이크의 목소리만 흘렀다.


“약자가 강자에게 대항하는 방법을 알고 있더냐?”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처럼 하면 된다.”


그 순간 직계들은 눈을 부릅떴다.

첫째 이든의 막내 아들이자, 후손들 중 최고의 재능이라 불리는 게빈 이후로 블레이크가 칭찬을 내린 건 오랜만이다.

다니엘도 받지 못한 칭찬을 루인에게 했다는 사실이 놀라워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토록 무신이라 불리는 남자의 평가는 까다로웠다.


“하나, 모든 일을 흘려버릴 순 없겠지. 유연함을 기르되, 꺾이지 않는 강함을 가져야 한다. 무혼식에 참가토록 하거라.”

“예! 할아버지!”

“할아버지라니!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블레이크가 이든에게 시선을 던지자 파티장에 무거운 기세가 내려앉았다.

이든은 입을 다물고 자리에 앉았다.

블레이크는 다시 루인을 바라보았다.


“무슨 선물을 가져왔더냐.”

“할아버지가 특별한 선물을 애장한다고 들어서 아버지와 제가 준비했습니다!”


블레이크가 선물 상자를 풀었다.

은색 테두리에 흑색 보석이 박힌 심플한 반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투박하구나. 장인이 만들었다곤 생각할 수 없어.”

“저와 아버지가 잡화점을 정리하면서 만든 선물입니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이 반지가 왜 특별하다고 하는 거지?”

“저와 아버지가 처음으로 만든 물건이니까요. 아버지는 다신 반지를 만들지 않겠다고 하셨으니, 그건 세상에서 더 이상 만들 수 없는 유일한 반지입니다.”


파티장의 모두가 당돌한 말을 듣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꿈보다 해몽이 크다는 말이 지금 이 상황을 두고 하는 뜻일 것이다.

말장난을 싫어하는 블레이크가 미간을 찌푸릴 거라 여겼다.

역시나 블레이크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루인을 응시했다.


“다신 만들지 않는다 해도 이름 없는 자의 물건을 어찌 보물이라 부를 수 있겠느냐.”

“제가 나중에 유명해진다면 그 반지 또한 유일한 보물이 될 것입니다.”


루인이 블레이크를 올려보며 싱긋 웃었다.


“아그네스답게 나아가겠습니다.”


아이의 치기 어린 말이라며 웃어 보일 법도 하지만 블레이크는 여전히 무뚝뚝했다.

블레이크가 입에 바른 말을 싫어하기에 사람들은 루인이 쓴소리를 들을 거라 여겼다.

한데, 블레이크가 반지를 상자에 넣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게 아닌가.


“네 말을 증명하는 날, 이 반지를 내 손가락에 끼우겠다.”

“감사합니다!”

“무혼식도 치르지 않은 네게 해 줄 말은 없다. 하니, 이 선물의 값은 비견될만한 다른 것으로 치러야겠지.”


사람들이 놀라는 순간, 블레이크가 자리에서 일어나 좌중에 고했다.


“오늘 내 6번째 아들이 돌아왔소! 여기 막내 손자를 데리고, 귀한 선물을 함께 줬구려!”


가주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제이드를 다시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했다. 난데없이 결정될 줄 예상도 못했던지라 다른 직계들은 당황했다.


“파르반! 앞으로 나오거라.”


제이드가 에이나의 손을 잡고 중앙에 나왔다.

부자의 시선이 부딪혔다.

케케묵은 감정들이 서로 얽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너는 어찌하여 제이드란 이름으로 살고 있었느냐.”

“가문을 버리고 행복한 삶을 추구했으니까요.”

“한데, 왜 돌아왔느냐.”

“가문의 족쇄가 가족을 위험하게 만들고 있으니까요.”

“하면, 가문에 머물 것이냐.”

“가주님께서 은혜를 내려주신다면 이곳에서 제 할 일을 바로 하겠습니다.”

“파르반으로 살겠느냐.”

“제이드로 불러주십시오.”


제이드의 눈망울에 옅은 슬픔이 깃들었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조부님의 애칭을 합쳐 제이드라 불렀습니다. 제게 이 이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각오입니다.”


한동안 말없이 제이드를 내려다보던 블레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드 아그네스. 너의 무위를 측정하여 일을 내려주겠다. 총관은 제이드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도와주도록.”

“예, 가주님.”

“무혼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쓸데없는 낭비 말고 가문의 전통에 집중토록 하라!”


파티장의 사람들은 그저 침음만 삼켰다.

고요한 파티장에 총관의 굽 소리가 울렸다.


“가시죠. 제가 모시겠습니다.”


총관이 직접 두 사람을 데리고 밖에 나왔다.

파티장의 문을 닫자 제이드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총관님, 루인이 아직....”

“루인 도련님은 받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

“제이드 도련님이 직계로 복귀하셨듯이, 루인 도련님의 기특한 마음에 보답을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가주님이 그 정도로 루인을 높게 봤다는 겁니까?”


총관이 잔뜩 긴장한 제이드와 에이나에게 차분히 답했다.


“글쎄요. 가주님의 생각은 읽기 어려워 속단하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가주님께선 기분이 좋아보이셨습니다.”


그 무뚝뚝한 얼굴에서 기쁨 한 자락을 봤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자식인 저보다 가주님을 더 잘아시는 군요.”

“도련님도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 주신다면 가주님이 보이실 겁니다.”

“...........”

“루인 도련님은 선물 이후에 제가 직접 집으로 모시겠습니다. 지금 파티장에 남아있어 봐야 제이드 도련님께 곱지 않은 시선만 갈 것이니, 이만 돌아가서 쉬십시오.”

“후.....가주님도, 총관님도 대체 무슨 속내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루인을 좋게 봐주신다는 것만은 알겠군요.”


제이드가 총관을 응시했다.


“무혼식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든 직계는 오늘 보인 루인의 모습을 잊지 않을 겁니다. 총관님께서 루인을 어여쁘게 여기신다면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내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총관은 대답 없이 미소를 지었다.


“밤이 깊군요. 더 늦기 전에 돌아가시지요.”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제이드가 에이나와 마차에 올라탔다.

힘찬 투레질 소리가 성을 떠났다.

총관은 어둠에 속삭였다.


“제이드 도련님을 감시하던 날파리가 누구냐.”


어둠 속에서 총관 직속의 암살 부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심문하기 전에 자결했습니다.]

“가주님께서 경고하셨다. 제이드 도련님을 다시 직계로 받아들였으니, 무혼식 전까지 쓸데 없는 잡음을 삼가토록 하라고.”


직계가 아니었다면 사람도 보내지 않을 감시였지만, 블레이크는 공식 석상에서 제이드를 인정했다.

혹시라도 제이드를 감시하는 자들이 살수로 돌변해서 부부를 죽이기라도 한다면?


‘후계 구도가 이미 삼파전으로 굳었다. 굳이 경계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가주 님의 마음을 얻을 것인데, 어찌하여 이다지도 속들이 좁단 말인가.’


상상만으로도 구역질이 치밀어 올라서 총관은 싸늘하게 말했다.


“제이드 도련님께 접근하는 불미스러운 상황을 차단해라.”

[계속 머물러야 합니까.]

“무혼식이 끝나면 확실해지겠지.”

[예.]


다시 고요한 어둠이 찾아왔다.

총관이 사라지는 암살 부대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루인을 떠올렸다.

눈을 감고 블레이크의 기세를 흘려넘기던 당찬 모습이 자꾸만 눈가에 아른거렸다.


“올해 무혼식엔 게빈도 참가한다고 했었나.”


파티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수련에 전념하는 무공광.

마찬가지로 총관이 가르침 하나를 내린 현 최고의 재능이 무혼식에 참가한다.


“숙제를 먼저 끝내는 아이가 누구인지 기대되는군.”


파티장이 소란스러워지고 있다.

루인을 데려가는 블레이크의 기척을 느끼며 총관이 은은한 미소를 머금었다.


***


“그럼 이제 네게도 선물을 줘야겠구나.”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간 뒤에도 무신을 나를 내려다보며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무혼식에 쓸 무기는 구했더냐?”

“예. 무쇠 골목에서 철검 하나 샀습니다.”

“철검.......”


무신이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문의 직계가 어찌 저잣거리에서 구한 검 하나를 들고 무혼식을 치른단 말이냐. 아그네스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 내 너에게 무기를 하사하마.”

“가주님!”


무신이 힐끗 쳐다보자 당황한 직계들이 입을 다물었다.


“본디, 직계와 그 후손에게 가주된 자가 무기를 내렸었다. 너희들도 모두 내게서 받아 갔다. 설마, 잊은 것이냐?”


당연히 직계들은 찍소리도 못했다.

난 가만히 있었다.

굳이 무기를 준다는데 함부로 입을 놀려서 기회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오늘 이 축하연에서 아주 값진 선물을 받은 것 같구려. 여기까지 와준 그대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하는 바오. 모쪼록 남은 시간 유익하게 즐기다 가시오.”

“예, 가주님!”


가자꾸나, 라며 낮게 말한 무신이 나를 데리고 파티장을 나섰다.

안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신은 개의치 않는 듯했다.

어느 순간, 발자국 소리가 천둥처럼 들리는 고요한 밤이 찾아왔다.

한참을 걷던 무신이 가문의 인장이 크게 새겨진 원판에 멈췄다.


[제법 괜찮은 놈들이 지키고 있구나.]


주위에 누군가가 숨어 있는 듯한데, 나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이 원판이 뭐라고 검귀가 흥미를 보내는 자들이 지키고 있는 걸까.


“눈을 감거라.”


무신이 나를 데리고 원판에 서자 새하얀 빛이 터져나왔다.

황급히 눈을 감으니 속이 울렁거려 주저앉고 말았다.

그런데 엉덩이가 폭신하다.


“이곳은 도화원이라 불리는 곳이다.”


눈을 뜨자 그곳엔 아름다움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오직 가주와 허락된 후손만이 들어올 수 있지.”


달빛이 환한 밤 아래, 형형색색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그 사이마다 다양한 무기들이 꽂혀 있었다.

놀랍게도 무기의 날은 전혀 상하지 않았다.


[오, 어디서도 구하기 힘든 명품들이군. 아티펙트까지 뒤섞여 있다!]


천금을 줘도 구하기 어렵다는 아티펙트가 이곳에 널려 있었다.


“가문의 대장장이가 해마다 바치는 무기 혹은 위대한 업적을 이룬 무사들의 애병이 이곳에 모인다. 그리고 이 무기들은 다음 세대에 계승되지.”


마른 침을 꼴깍 삼키며 무신을 바라보았다.


“네가 원하는 무기를 고르거라.”


종류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아티펙트도 상관없다는 뜻이다.


“하나를 네게 허락하마.”


그 순간, 도화원을 돌아다니며 온갖 무기들을 살피던 검귀의 눈빛이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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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격돌 +12 23.12.08 7,137 167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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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격돌 +7 23.12.06 7,144 146 13쪽
24 격돌 +11 23.12.05 7,836 140 14쪽
23 쟁탈전 +9 23.12.04 8,595 148 16쪽
22 쟁탈전 +7 23.12.02 9,094 161 15쪽
21 쟁탈전 +17 23.12.01 9,703 18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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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무신의 가르침 +12 23.11.29 9,768 192 15쪽
18 무신의 가르침 +8 23.11.28 10,261 197 17쪽
17 무신의 가르침 +16 23.11.27 10,723 216 15쪽
16 무신의 가르침 +23 23.11.24 11,352 242 17쪽
15 깨달음 +14 23.11.23 10,999 240 13쪽
14 깨달음 +11 23.11.22 10,984 246 14쪽
13 백인쟁투 +9 23.11.21 10,970 232 15쪽
12 백인쟁투 +5 23.11.20 11,082 201 16쪽
11 무신지로 +13 23.11.17 11,145 223 17쪽
10 무신지로 +10 23.11.16 11,285 231 15쪽
9 무신지로 +6 23.11.15 11,611 21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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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하늘 +6 23.11.13 11,636 238 13쪽
6 자격 +11 23.11.10 11,800 247 18쪽
5 자격 +6 23.11.09 12,117 236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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