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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RANG 님의 서재입니다.

소시오패스(인 척하는) 후작 길들이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판타지

광사능
작품등록일 :
2021.03.04 14:59
최근연재일 :
2021.03.25 21:36
연재수 :
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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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287

작성
21.03.05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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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최악의 첫만남2

.




DUMMY

"윽..."

여자는 통증 때문에 눈을 뜨며 자기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냈다. 머리를 부딪힌 것인지 위아래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아닌게 아니라 자신의 몸이 땅에 처박히듯 누워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차 내부는 산산조각이 나있었다. 사고가 난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을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복부에 피가 나고 있었다. 단순한 출혈이 아닌, 쏟아져나온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지경이었다. 피가 나기 전에는 그저 붉은 선에 불과했다. 얇은 붓으로 붉은색의 잉크를 그려넣은 수준.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선이 아닌 칼에 베인 상처였다. 피가 쏟아져나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귀찮네.."

그녀는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다리를 질질 끌어서 마차 끄트머리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몸 속에서 비명을 지르는 통증을 무시한다. 일단은 마차 밖으로 나가서 상황을 파악하는게 우선이었다. 치료는 그 후의 일이었다.

"끄응...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꽤나 호전적인 놈이구나.. 설마 마차 채로 박살내버릴 줄은..."

그녀는 마차가 부서지기 전의 상황을 모두 알고 있었다.

의문의 사람이 나타나고, 엄청난 실력자인게 분명한 그 사람이 마차를 부수며 상인과 청년을 순식간에 죽여버렸다. 그들이 죽지 않게 막아줄 힘이 그녀에게는 충분히 있었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처음이라고는 해도 노예 거래를 하던 사람들이다. 동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생각했다. 노예 거래는 여러 사람의 인생을 망친다.

노예로 팔리는 자, 노예로 팔리는 자의 가족 그리고 노예를 파는 자.

노예로 팔리는 자는 몸이 팔리고,

노예로 팔리는 자의 가족은 마음이 팔리고,

노예를 파는 자는 양심을 판다.

한 명의 가해자로 여러 명의 피해자를 만든다.

살인과 같은.. 어찌보면 살인보다 더한 행위다.

마차 밖에는 네 구의 시체가 나뒹굴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마차 밖으로 기어가던 그녀는 갑자기 느껴지는 미묘하게 따가운 이마의 통증에 그녀는 살짝 신음했다.

아니, 정확히는 두 명의 몸뚱이라기 정확히 반으로 갈라져 4명이 죽은 것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었다.

초록빛으로 싱그러워야 할 나뭇잎은 시체에서 분사된 핏물을 뒤집어 써 붉게 변해있었다.

바닥에 쏟아져있는 내장은 징그럽기 짝이없었고 청년의 상반신은 아직까지 꿈틀대고 있었다.

청년은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

듣지 않아도 여자는 그 말을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이 죽는 모습은 많이 봐왔기에, 마지막으로 그들이 말하는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 혹은 이루지 못한 자신의 꿈을 말하며 죽어간다. 하지만 동정해 줄 필요는 없다. 자신도 그만큼의 죄를 지은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죄란 단순히 용서를 빌고 죗값을 치룬다고 없어지는게 아니다. 죄악은 인간의 영혼에 줄을 긋고 영원히 방치된다. 선행으로 덧칠해도 그 틈새는 메꿔지지 않으며 결국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것을 들고가게 된다.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것일까. 점점 사고가 어려워진 여자가 생각했다. 여자는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따뜻한 물기가 이마를 타고 흘러내려 땅을 적셨다. 그녀는 그것을 팔로 슥, 흝었다. 팔에 한가득 묻은 액체는 피였다.

그것도 꽤나 많은 양이었다. 아까 전부터 흐르고 있었는데 느끼지 못했던 건가, 복부의 출혈과 함께 벌써부터 그녀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 정도였다.

"하아... 넘어지며 구를 때 어딘가에 부딪히기라도 한건가.. 빨리 지혈하지 않으면 또 죽을지도..."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녀는 얼굴 한쪽을 뒤집을 정도로 흐르는 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양팔로 몸을 지탱해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핑─!

갑작스러운 현기증과 함께 몸이 기울어지며 팔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덕분에 그녀의 몸은 빙글 돌아 등을 땅에 쳐박았다.

피를 너무 흘렸어.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숨을 몇 번 쉬지도 못하고 죽을 것이 분명 했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 한두 번 죽어본게 아니었으니까. 그녀가 두려운 것은 다시 눈을 떠도 바뀌지 않는 현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것에 비하면 죽음따위는 두렵지 않다.

멀어져가는 의식 속. 동굴 속처럼 울리듯이 들리는 것은 누군가가 걸어오는 소리. 곧이어 시야는 검게 변하고 귓가에 울리는 소리도 점점 멀어져갔다.

체온은 떨어지고 몸에서는 힘이 빠진다.

소리는 멀어져가고 시야는 좁아져갔다.

의식은 희미해지고 끝내는...


───────────────────────────


인기척에 히르켄은 고개를 마차의 짐칸 쪽으로 돌렸다. 노예가 실려있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절벽에서 떨어져서도 살아 있을 줄은 몰랐다. 그는 마차 쪽으로 다가갔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천사의 날개같은 흰색과 신비로운 검은 무늬가 아우러지며 일렁거리는 긴 생머리였다. 두 눈은 잠든 듯이 감겨 있어 얼굴에 흘러내리는 피만 아니었다면 잠들었다고 생각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히르켄은 죽은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름답다. 그것이 그녀를 본 히르켄의 소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거기까지. 더이상 여자를 보고 히르켄이 뭔가를 느끼는 것은 없었다.

여자를 살리는게 당연했나? 정도의 의문이 들었을 뿐이었다. 자신의 수하인 가인은 사건을 해결할 때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입이 닳도록 말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히르켄은 마차와 함께 실려있던 여자까지 베어버렸다.

히르켄 정도의 실력자라면 노예상인들만 베어버리는게 가능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귀찮으니까. 겨우 그 정도의 이유였다.

"유해수습 정도는 해주지."

생각해보면 여자를 살려서 성에 데려가는게 시체를 치우는 것보다 덜 귀찮았을 것 같은데, 같은 생각을 하며 히르켄은 여자의 시신을 들어올리려 했다.

그때.

치이이익.

비유하자면, 뜨거운 쇠를 물 속에 넣을 때의 소리.

​표현하자면, 살이 끓어오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닌게 아니라 여자의 상처에서는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히르켄은 폭탄을 의심하고 뒤로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인간의 몸이 갑자기 끓어오를 일은 없었다. 마법이나 특수한 장치를 사용한게 아닌 이상.

다행히도 폭탄은 아니었다. 자세히 살펴보자 그 소리가 들리는 것은 여자의 상처부위였다.

장기가 보일 정도로 큰 상처을 입은 배와 동맥 근처인지 지금도 피가 조금씩 흘러내리는 머리 부분에서 들리는 소리와 함께 점점 상처가 아물어가는게 눈에 보였다. 단순히 상처가 아무는게 아닌, 찢겨져나간 장기와 부러진 뼈까지 회복되고 있었다.

"무슨..."

시체의 상처가 저절로 아물어간다. 피가 빠져나가 하얗게 질린 얼굴에는 생기가 돌아온다. 믿을 수 없는 상황에 히르켄은 멍하니 아물어가는 상처를 바라볼 뿐이었다. 죽은 여자가 눈 앞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상처가 전부 아물고 수증기가 더 이상 피어오르지 않자, 여자의 가슴이 조금씩 오르락내리락 하기 시작했다. 숨을 쉬기 시작한 것이다.

"분명히 죽었는데..."

히르켄은 자기도 모르게 여자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푹신함과 포근함, 그리고 그 너머에서 심장 박동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죽은 사람의 부활이라니, 그것을 보자 히르켄의 안에 새로운 감정이 생겨났다.

호기심. 여자를 보고 두번째 느낀 것이었다. 그것을 자각하자 히르켄은 피식 웃으며 스스로도 오랜만에 진심으로 웃었다고 생각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다니, 거기다 상처까지 전부 나아서... 재밌군."

히르켄은 자신의 검을 감싸던 천을 가져와서 누더기만 걸친, 그마저도 거의 찢어진 옷을 입고 있는 여자의 몸을 감쌌다.


───────────────────────────


레스티아 후작 영지.

대륙의 남쪽에 위치한 후작의 영지는 특이하게도 '대륙의 중심'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테두리가 울퉁불퉁한 초승달같이 생긴 대륙은 북쪽 끝과 남쪽 끝의 교루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거리도 문제였지만 가장 빠르게 가는 방법으로 바다를 건너면 각종 마물과 험난한 해류들이 그들을 맞이했다.

따라서 대부분의 상인들은 조금 돌아가기는 해도 안전한 지역에 있는 후작의 영지에 들렸다. 그 덕분에 후작의 영지는 해상무역의 중심지가 되었고 덕분에 지금 후작의 성 안에서 바쁘게 자신의 주인을 찾는 가인을 한숨쉬게 만들었다.

"하아.. 또 어딜 가신거야?"

가인은 왼손으로 머리를 괴고 오른손으로는 열심히 히르켄의 사인을 따라해서 서류에 사인을 하고 있었다. 히르켄의 유일한 직속수하이자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가인의 현재 위치는 히르켄의 집무실이자 방이었다.

"가끔가다 이렇게 사라지시니.. 나야 말로 진짜 개고생이네."

말이라도 해주고서 나가면 자신이 곧바로 대리 업무를 할텐데 말도 없이 사라지니 금방 일에 차질이 생겨버렸다. 이제는 감이 생겨서 주인이 사라졌다는 느낌이 들면 찾아와서 일을 하지만 예전에는 무척이나 힘들었다.

속으로 자신의 처량함과 고용주의 부당함을 욕하면서도 가인은 열심히 펜을 놀렸다. 처리할 서류가 한두 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책상에 쌓여있던 서류가 절반으로 줄어가던 즈음이었다.

창틀에 누군가가 발을 올리는 소리가 들렸다.

몇 십미터나 넘는 집무실의 창틀에 아무것도 없이 올라와서 발을 올릴 수 있는 것은 히르켄만한 실력자밖에 없었다.

그러니 보나마나 자신의 주인이겠지, 라고 생각하며 가인은 고개를 돌렸다.

​"주인님, 이제야 오시다...그건 뭡니까?"

가인은 말하다가 히르켄의 어깨에 걸쳐져 있는 누더기를 보고 당황해서 말했다. 언듯 보이는 것은 누더기 사이로 흘러내린 털... 아니, 머리카락이었다.

"오다 주웠어."

히르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얼굴을 보고 가인은 몸이 얼음처럼 굳는게 느껴졌다.

그 이유는 충격.

자신의 주인이 진심으로 미소를 지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항상 짓고 있는 비릿한 웃음이 아닌 진심. 히르켄을 보필한지 10년 가까이 지냈지만 그가 진심으로 웃었던 적은 두 손으로도 셀 수 있을 정도였다. 아니, 방금 걸로 10번은 된 것 같기도 하고...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또 다시 주인이 사고를 치고 돌아왔다는게 중요했다.

"ㄴ.."

"조사좀 다녀와. 가는 김에 뒷처리도 하고."

누구입니까? 그 누더기 속의 여자는, 이라고 말하려 했지만 갑작스러운 명령에 가인은 누더기 속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사라졌다.

"어디 말씀입니까?"

"노예상인들이 다니는 길. 중간 쯤에 있다. 얼른 갔다와."

"예, 알겠습니다. 근데 누구입니까? 그 누더기 속의 여자는? 또 전부 죽여버리신겁니까?"

가인이 대답을 하고 질문을 하자 히르켄은 자신의 침대 쪽으로 움직이려다가 멈칫했다. 그리고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시체."

또 노예상인을 죽이시다가 노예까지 죽여버렸나보군.

가인은 마음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상인들이 들여오는 노예들은 불합리하게 노예가 된 사람들이 태반이니까 함부로 죽이지 말아달라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히르켄은 어째서인지 이해를 하지 못하고 따라서 말을 듣지도 않았다.

"일단 얼른 조사를 다녀오겠습니다. 근데.. 적어도 서류 사인 정도는 끝내주세요."

가인이 문 밖으로 나가는 걸 보면서 히르켄은 여자를 침대에 눕혔다. 누더기에 둘러 쌓인 여자를 보고 히르켄은 적어도 옷은 입혀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같이 아름다운 사람이 누더기에 쌓여있는게 보기에 안좋기 때문이라던가.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침대에 더러운 옷을 입은 사람을 눕히기 싫었을 뿐.

히르켄이 방 밖으로 나가자 마침 한 시녀가 방문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시녀는 히르켄을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안에 여자가 있다. 옷좀 입혀놔. 아, 시체였으니까 상복이 좋겠군."

"예?"

여자? 시체? 상복?

시녀는 이해 할 수 없는 질문에 반문을 했지만 그 순간 오싹함을 느꼈다. 슬쩍 고개를 들어 히르켄을 바라보자 그가 자신을 비릿한 미소를 지으면서 쳐다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두 번 말해야해?"

싸늘한 목소리를 들은 시녀는 후작의 손이 금방이라도 자신의 목을 조를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 아닙니다! 빨리 준비하겠습니다!"

시녀는 허리를 한번 푹 숙이더니 얼른 달려갔다. 그런 시녀를 보고서 히르켄은 별다른 생각도 없이 차를 마시러 테라스를 향했다.


───────────────────────────


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이라면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생각해보는 문제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내지 못한다. 경험을 하지 못하면 답을 얻기 힘든게 바로 인간이니까. 나라면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이 대답은 정답은 아니지만 오답또한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말 그대로다.

“윽..”

의식이 돌아온다. 주변의 소리가 들려오고 눈에는 빛이 가득하다. 깊은 심해의 압력에 갇혀 있던 몸은 끈적한 수면 위로 떠오른다. 꽉 끼는 고무 속을 지나는 듯한 답답함은 사라지고 몸이 가벼워진다. 언젠가 느껴본 감각은 불쾌하면서도 잠에서 깬 것처럼 상쾌하다.

모순되는 두 가지 감각에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정신을 차리려 애를 쓴다. 좋은 것일지 나쁜 것일지 모르겠지만 죽음이란 것은 그녀에게 익숙한 것이니까 말이다.

"아무래도, 한번 죽은 모양이네."

몸을 일으켜서 몸의 상태를 확인했다.

주위는 호화스러운 장식으로 꾸며져있는 화려한 방. 시원한 바다를 연상케하는 벽지와 그 위에 그려진 멋들어진 황금빛 무늬. 밝은 갈색의 가구들은 아마도 더운 지방의 바다를 묘사 해놓은 것이 분명했다. 무엇보다 공기 중에서는 짭쪼름한 바다의 냄새가 미미하게나마 맡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쁘지는 않은 인테리어네."

주변을 둘러보자 그제서야 자신이 무지막지하게 큰 침대에 눕혀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60센치미터를 조금 넘는 그녀의 3배는 가뿐히 넘을만한 길이와 너비의 침대.

그리고 그것의 푹신함은 마치 침대 전체가 구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기분 좋았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의문. 자신은 과다출혈로 죽었었다. 그렇다면 여기 있는 자신을 누군가 옮겨주었다는 것이었다. 시체였을 자신을 어째서 이렇게 좋은 침대에 눕혀놓았을까? 게다가 옷도 갈아입혀져 있다.

일부러인 것인지, 아니면 사이즈가 이것밖에 없는 것인지. 원피스 형태인 옷은 기장은 정확히 맞았지만 나머지는 너무나 컸다. 하지만 피부로 느껴지는 질감은 싸구려 원단에서 느낄 수 있는 수준의 부드러움이 아니었다.

"확실히 죽기 전에 입고 있던 것은 누더기나 다름 없었지."

주변 상황 파악을 마친 그녀는 드디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응?"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집중하여 자신의 다리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저주가 걸려있네."

그녀의 눈에는 자신의 다리와 가슴... 정확히는 심장에 걸려있는 술식이 뚜렷하게 보였다.

"다리에 있는 술식은 해당 부위의 신경과 마나의 흐름을 망가뜨리는 것이고.. 심장에 있는 것은 형태는 조금 다르지만 노예계약 술식이네."

술식이란, 마나를 원하는 방향으로 강제적으로 흐르게 하는 회로이자 마나 그 자체이다. 마나는 의지로 다룰 수는 있어도 만질 수는 없다. 하지만 두 술식의 정확한 이름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용도를 순식간에 파악한 그녀는 가슴 쪽에 있는 술식을 어루만졌다. 동시에 술식은 그녀의 손에 연기가 공기 중에 흩어지듯이 날아가버렸다.

그것에 이어 그녀는 자신의 다리에 있는 술식도 손으로 털어내었다. 원래라면 그런 행위는 이뤄 질 수가 없지만 그녀가 한 행동은 고작 털어내는 것이었다. 그 정도로 그녀는 쉽게 노예계약 술식과 앉은뱅이의 저주를 없애버렸다. 그녀에게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이제는 움직일 수 있겠지?"

완벽히 저주를 없앴다고 생각한 그녀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쿠웅!

여전히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로는 몸의 중심을 잡을 수 없었다. 곧이어 중심을 잃은 그녀는 침대에서 굴러떨어졌다.

"아야..!"

침대의 높이는 그렇게 낮지는 않았지만 바닥은 푹신한 카펫이 깔려 있어서 다치지는 않았다.

"으흠... 꼴이 말이 아니네. 누가 보기라도 한다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문은 열려있었고 얼굴이 주름지고 외알안경을 낀 노인이 턱을 벌린 채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

노인은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 듯 입만 뻥긋거렸다. 애초에 말해봤자 무슨 말인지 알아 듣지도 못할테지만.

"미안하지만 좀 도와주지 않겠어? 다리에 힘이 안들어가서 말이야."

"저기..."

"후작님 깨어났습니다​!!"

여자가 듣기에 무슨 뜻인지 모를 비명을 지른 노인은 단단히 충격을 받은 것인지 어디론가 달려갔다.

달려나가는 노인을 불러세우려 했던 그녀는 이미 사람의 인기척이 사라진 문 쪽을 바라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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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에딘 편 21.03.17 19 0 19쪽
7 최악의 첫만남7 21.03.16 48 0 12쪽
6 최악의 첫만남6 21.03.15 28 0 13쪽
5 최악의 첫만남5 21.03.10 33 0 14쪽
4 최악의 첫만남4 21.03.09 33 0 12쪽
3 최악의 첫만남3 21.03.08 36 1 13쪽
» 최악의 첫만남2 21.03.05 35 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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