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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태 님의 서재입니다.

자본주의의 노예가 된 대악마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현대판타지

고이태
작품등록일 :
2021.05.12 13:36
최근연재일 :
2021.05.14 17:06
연재수 :
5 회
조회수 :
337
추천수 :
13
글자수 :
19,849

작성
21.05.14 17:06
조회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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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1쪽

계약 체결

DUMMY

“다이.”


“원 페어.”


“히히, 난 투 페어. 첫판은 내가 먹었네.”


“이거 어쩌죠. 저는 스트레이트. 잘 먹겠습니다.”


“첫판에 행운이 따르는구먼. 행운은 두 번 일어나지 않는 법이지. 톰, 바로 다음 패 돌려.”


“패 제대로 섞은 거 맞아요? 다이.”


“저도 다이.”


“으음, 다이.”


“다들 너무 소심하시네. A 탑.”


벌써 어제 저녁값은 넘게 벌었는걸. 존즈 녀석 아직까진 표정을 나름대로 유지하고 있네. 그게 얼마나 가려나.


“주인장, 여기 담뱃잎이랑 성냥!”


존즈는 품속에서 자신의 파이프 담배를 꺼냈다. 곱게 잘린 담뱃잎을 넣고 불을 붙였다. 깊게 한 번 빨고는 고개를 위로 젖혀 회색 연기를 뿜었다.


“왜 그리 쳐다봐, 촌놈. 설마 담배도 처음 보나?”


“향이 좋네요. 담배는 얼마나 합니까?”


“이거? 네가 하루 일한 돈이면 충분히 사지. 여유만 되면 시가도 좋아. 너무 비싸서 문제지.”


퍼지는 담배 향을 맡으니 내 고향 생각이 난다. 지옥의 유황불 냄새와 너무나 비슷해. 생각해보니 계약을 끝내기 전에는 지옥에도 못가는 거잖아. 씨발!


시간이 꽤 지났는지 주인장이 점심거리를 가지고 왔다. 메뉴는 샌드위치였다. 다들 한 손에는 카드를 다른 손에는 샌드위치를 들고 다시 게임을 시작했다. 결과는 아침때와 별 차이 없었다. 가끔 기적의 패로 지기도 했지만 크게 보면 내가 판돈을 다 먹어치운 셈이었다. 두 일꾼은 가져온 돈이 다 떨어져 판을 나갔다.


“지갑은 아직 두둑한가요? 슬슬 다 떨어질 때가 된 거 같은데, 아니에요?”


“끄응, 내 걱정하지 말고 빨리 돈이나 걸어.”


“지미, 너한테 이런 재능이 있을 줄이야. 벌써 얼마를 딴 거야.”


“일주일 치 넘게는 벌었네요. 이걸로 괜찮은 파이프나 하나 사야겠어요. 먼저 패 까시죠.”


“이번엔 진짜 이겼어. 플러시!”


“죄송합니다. 풀 하우스.”


“에이 쌍!”


“어휴, 감사합니다. 돈 벌기 참 쉽네요. 5달러가 30달러가 되었어요. 다 여러분 덕이에요.”


“나도 이제 개털이야. 너 장난질 친 거 아냐?”


“장난질은 무슨. 그럼 이제 본 게임을 해볼까요. 주인장!”


가끔 한 둘 들어오는 손님에게 칵테일을 내던 주인장은 가게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커다란 맥주잔 여섯 개와 안주를 담은 접시를 동시에 드는 묘기를 보였다.


“뭐야, 오늘 영업은 더 안 하는 거야?”


“오늘 매상은 너희들이 다 채웠으니까 괜찮아. 나도 같이 마시자고. 오늘 승자는 요 녀석인가. 눈뜨고 코 베일 거같이 생겼는데 천성 노름꾼이었잖아.”


“헹, 운이 좋은 거지.”


“동전까지 탈탈 털린 놈이 그리 말해도 아무도 안 들을걸. 잠시 기다려봐. 승자를 위한 특별한 축하주를 선사하지.”


주인장은 다시 카운터로 돌아갔다. 병을 몇 개를 따더니 고급스러운 유리잔에 부은 뒤 섞었다. 거기에 레몬 한 조각을 꽂은 뒤 나에게 건넸다.


“내 이름은 단테라고 하네. 자네는 이름이 어떻게 되지?”


“제임스 드랑, 편하게 지미라고 부르시죠.”


나는 잔을 단숨에 비웠다. 오, 레몬 향은 강하게 나는데 신맛은 느껴지지 않아. 톡톡 터지는 탄산의 느낌도 좋고. 꽤 맛있어.


“어때? 맛있지. 내가 직접 만든 리몬첼로(Limoncello)에 탄산수를 넣어 칵테일이지. 미국으로 오기 전 이탈리아에서 어머니가 가르쳐 준 방식으로 만든 거야. 단골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거라고. 영광으로 알아.”


“단테 씨는 이탈리아 출신인가요?”


“그렇지. 한 20년 전에 성공하겠다고 무작정 건너왔어. 결과는 시원찮았지만. 그래도 자기 이름으로 된 가게 하나 냈으면 나름 성공했다 말할 수 있지 않겠어?”


모두 술을 마셨다. 목이 텁텁해지면 접시 위 안주를 게걸스럽게 비웠다. 한 명도 빠짐없이 즐겁게 웃고 있었다. 나이, 인종, 직업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냥 마시고 먹고 웃음뿐이었다.


“술을 못 마시는 나 빼고 다들 뻗었군. 지미, 너는 괜찮아?”


“저는 멀쩡해요, 톰.”


인간들은 술에 왜 이리 약한지 모르겠어. 겨우 맥주 몇 잔 가지고 이 꼴이라니. 인간들은 늘 그래. 온갖 즐길 거리는 잘만 만들지. 그러나 제대로 즐기는 법은 몰라.


“일단 이 짐 덩어리들을 차에 싣자고. 주인장은 그냥 소파에 던져두면 알아서 하겠지.”


둘이서 낑낑대며 취객들을 옮겼다. 톰은 운전대를 잡았다. 나는 뒷좌석이 아닌 보조석에 앉았다. 내가 문을 닫자 톰은 시동을 걸고 액셀을 밟았다.


“어때, 오늘은 즐거웠나?”


“그럼요. 한탕 크게 하고 술도 엄청 마셨는걸요.”


“그럼 존즈씨는 어때?”


존즈는 곯아떨어져 코를 크게 골고 있었다. 흠, 굳이 어떻냐고 묻는다면···.


“돈에 미친 놈 같긴 하지만 그래도 상종 못 할 인간은 아니다, 이정도일까요.”


“맞아. 그냥 보면 돈에 환장한 인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지. 그래도 저자만큼 괜찮은 인간도 별로 없어.”


“그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요.”


“너, 여기가 첫 일자리지? 그럼 잘 모를 거야. 너 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젊은이들을 죽도록 굴리고 돈을 떼먹거나, 외국에서 온 이민자에게 일을 시키곤 돈은 주기 싫으니 누명을 씌워 경찰에 넘기는 거야. 더한 악질도 있어. 부모 없는 가난한 어린애들을 법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노예처럼 부리는 거야. 그러다 죽어도 상관없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아이들이니까 문제 될 일도 없어.”


“그런 일이 일상적인가요?”


“응, 다들 알면서도 바꿀 생각은 없어. 자기 일이 아니거든. 내 알 바 아니다, 이거지. 존즈에게 우리는 돈을 벌어다 주는 인간이지. 그런데 다른 쓰레기들에게 우리는 돈 벌어다 주는 가축이야. 그러니 그냥 최대한 뽑아먹을 생각밖에 없어. 그래도 존즈는 우리를 사람으로 본다고. 굴린 만큼 돈은 주잖아.”


음, 인간들은 정말 바뀌지를 않는군. 자동차니 전구니 별 희한한 물건은 잘도 만들면서 행동거지는 왜 바꾸지를 못하는 거지? 그딴 짓거리 하다가 내가 태운 놈들 뼛가루만 모아도 톤(ton) 단위는 되는데 아직도 여전하네. 천사의 하얀색을 좋아하면서도 양심의 색깔은 검은색이야. 난 한 것도 없는데 벌써 지옥이나 다름없네. 내 손으로 ‘직접’ 해야는 데 앞으로 어쩌지.


“잘 알겠습니다.”


“거기다 불쌍한 인간이야. 너무 미워하지는 마.”


“그건 이해가 안 되는데요. 부족할 것 없는 삶이잖아요.”


“겉으로는 그렇지. 그런데 자식 복이 없어. 장남은 전쟁에서 죽어버리고 차남은 농사짓기 싫다고 동부로 떠났다지. 지금은 연락도 안 되나 봐.”


“하는 말을 들으면 지옥이나 다름없네요. 그러면 고향을 떠나왔다는 킴도 그렇고 이탈리아에서 왔다는 단테 씨도 그렇고 왜 굳이 고생하며 찾아오는 거죠.”


“둘 중 하나지. 그나마 나은 지옥을 찾아왔거나, 천국인 줄 알았는데 지옥이었다. 몇 눈치 빠른 놈들이 크게 성공했다니까 나도 되겠다 싶어서 제 발로 걸어온 거야. 정작 성공한 놈들이 가장 먼저 한 짓이 뭔 줄 알아? 자기가 올라탄 사다리를 부숴버리는 거였어. 어이쿠, 벌써 도착했네. 또다시 고생 좀 해야겠는걸. 여기 정신 못 차리는 시체들 좀 옮기자고.”


인간 기준으로는 긴 시간이 지났다. 뭐, 내 인생에 비하면 순간에 불과하지만. 1년 동안 돈 한 푼 허투루 쓴 적이 없다. 똥을 퍼내고 가끔 존즈랑 카드놀이 좀 해서 1000달러를 모았다. 이거면 작은 가게 하나는 차리겠지.


“지미, 오늘부터 그만두는 거야?”


“그렇죠. 킴이랑 짐승 놈들 뒷바라지하는 것도 끝이네요.”


“내가 살면서 너보다 독한 놈은 못 봤어. 1년간 좋은 옷 한 벌, 비싼 담배 하나에도 동전 한 닢 안 썼잖아.”


“킴이 할 말이에요? 킴도 저 못지않게 벌었잖아요. 저야 가게 차린다고 모았지만, 킴은 대체 어디다 쓰는 거예요?”

“최고의 투자를 하고 있지. 언젠가 내가 모은 돈을 돌려받을 그 날이 오면 100배, 1000배는 넘게 돌아올 거야.”


“그 날이 언제 올지 모르겠지만 응원할게요. 저답지는 않지만, 그동안 고마웠어요.”


“그래. 날 잡아서 톰이랑 존즈씨 데리고 가게 한 번 찾아가지.”


“네.”


함께 일한 동료들에게 인사했다. 그다음에 존즈를 만나 내 마지막 임금을 받았다.


“잘 가라, 촌놈”


“잘 있으쇼, 영감탱이.”


“새끼가 말하는 꼬락서니하고는···.”


“뭐요. 이제 여기 일꾼도 아닌데. 그래도 돈은 넉넉히 줬으니까 인사라도 하는 겁니다. 그럼 진짜로 잘 있으쇼.”


“빨리 꺼져!”


“예이~.”


묵직한 지갑을 들고 시내로 내려왔다. 그래도 기분 좋은 날인데 가볍게 한잔할까.


“단테씨, 접니다. 항상 마시는 그거 주세요.”


“아침 일찍부터 누군가 했더니 지미, 너였나. 금방 갖다 주지.”


“못 본 사이 안색이 창백해졌는데요, 꼭 곧 죽을 사람처럼.”


“눈치는 빠르네. 진짜로 곧 죽게 생겼다.”


“그럼 왜 여기 있어요. 병원부터 가야지.”


“어차피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야. 병원에 쓸 돈도 없는 데 가서 뭐해. 가게나 지키다 그냥 죽어야지.”


“거짓말하지 마시죠. 내가 죽은 인간들 많이 봤거든요. 근데 입으로는 ‘그냥 죽어야지’라면서 진짜 죽으려는 인간은 없었거든요. 살고 싶죠? 아직 눈에 밟히는 게 많죠?”


“그래. 맞다. 하지만 그럼 어쩌자고. 병원비는 더럽게 비싸고 가진 돈은 하나도 없어. 그런데 내가 뭘 할 수 있나.”


“제가 돈을 꽤 모았죠. 한 1000달러는 됩니다. 이거면 병원비는 충분히 되겠죠. 이 돈 받고 가게 넘기시죠.”


고민해봤자지. 겨우 살아남을 밧줄이 보이는데 포기한다고? 말도 안 되지. 대충 봐도 가게의 가치는 1000달러는 가볍게 넘어.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이건가. 이런 좋은 기회가 그냥 굴러오다니.


“좋아. 대신 조건이 있다.”


“조건이요?”


단테는 구석으로 들어가 작은 수첩 하나를 가져왔다.


“이건 내가 만든 레시피다. 여기서 내놓는 메뉴는 다 적혀있지. 내 인생을 바친 가게를 헐값에 가져가는 건 좋아. 가게 이름을 바꿔도 좋아. 하지만 싸구려로 만드는 건 용납 못 한다. 그러니 제대로 운영해. 이것만 ‘약속’한다면 가게를 넘기마.”


보기보다 뚝심 있는 인간이잖아. 굳이 ‘약속’이라 콕 집어 말하니까 영 찝찝하네. 그래도 이 좋은 기회를 포기할 수는 없고. 뭐, 괜찮겠지. 내 실력이면 그리 쉽게 망하지도 않을 테고.


“좋습니다.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하죠.”


“그래. 잘 부탁한다.”


드디어 내 가게가 생겼다. 지옥으로 돌아갈 한 걸음을 내디딘 거야. 망할 신한테 엿 먹일 날도 한 걸음 가까워진 거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제임스 드랑 회고록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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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약 체결 +2 21.05.14 41 2 11쪽
4 게임 시작 21.05.13 36 3 11쪽
3 어서 일해라! 21.05.12 57 2 10쪽
2 당했다 21.05.12 89 2 11쪽
1 프롤로그 +3 21.05.12 112 4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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