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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이돌이 능력을 숨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강동태수
작품등록일 :
2022.05.11 19:24
최근연재일 :
2022.08.05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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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1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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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과일향이 나던 사람

DUMMY

2화- 과일향이 나던 사람



제이에스 사옥에서 조금 떨어진 공터. 마치 고등학교 불량학생들이 끽연을 위해 자주 찾을 것 같이 생긴 뒷골목 사이로 새파란 하늘에 구름이 떠다녔다.


어떤 구름이냐면, 사랑이 형의 전자담배에서 나는 과일 멘솔향 구름이었다.


사랑이 형을 다시 본 것도 거의 십년 만이다. 안 그렇게 생겨서 골초였던 형은 데뷔 물망에 올라있다 나갔었으니까, 제이에스를 나간 뒤로는 이 길을 완전히 접었다고 들었었다.

그 뒤로는 몇 년간 아예 그에게 연락도, 그의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수단도 모두 끊어졌었다.


눈망울에 나에 대한 걱정을 가득 담은 체 과일향 전담 연기를 뱉는 그의 선한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냥 자기가 담배 피우고 싶어서 데리고 나온 거 아닌가?’ 싶었지만, 오랜만에 본 사랑이 형이 너무 반가워 따질 마음이 나지 않았다.


사랑이 형의 얼굴을 다시 보게 되다니. 육아 스트레스에 찌든 사십대 주부처럼 피폐한 얼굴로 담배 피우는 모습마저 예뻐보였다.


겉과 속이 똑같은 사람. 몇 달 안 되는 기간 동안 내가 본 사랑이 형이 그랬다. 오남매의 장남이라던 형은 입사 후 주변과 어울릴 생각 없이 묵묵히 연습만 하며 항상 혼자 다니는 나를 옆라인에서 안타까운 눈으로 보더니 슬금슬금 다가왔었다.


나이차 나는 동생 넷을 업다시피 키우며 육아에 찌든 탓에 스물 한살인데도 종종 피곤에 찌든 주부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저 어울리지 않는 담배도 네 쌍둥이를 키우다 보니 우울증이 왔을 때 시작한 거였다.


"동태 너무 신경쓰지 마. 걘 월평 때만 되면 원래 그래.”

"월평이요?"



월말평가. 제이에스 엔터 연습생들 모두를 누르는 공포의 날. 누가 남아있어도 되는지, 누가 나가야 하는지 이사진의 앞에서 한달간의 노력이 평가되는 날이다. 즉, 앞으로도 너에게 트레이닝비를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 대표와 데뷔한 선배들까지 와서 세세하게 물고 뜯으며 해부하는 날.


"형, 나. 넘어질 때 머리가 좀 이상해졌나 봐. 너무 어지러워.”

"뭐, 진짜?"


전담까지 떨어뜨릴 뻔 한 사랑이 형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동생들이 잔병치레할 때마다 업고 응급실로 뛰어갔던 경험을 살려 당장 날 번쩍 들어 단단한 어깨 위에 짊어지고 병원으로 달려갈 기세였다.


"어, 막 어지럽고. 메슥거리고. 막 오늘 하루 종일 내가 뭐했는지 기억이 안 나. 그래서 말인데.”

“말해, 증상이 어떤데. 병원 갈래?”

“나 기억 상실증 같은데, 오늘이 며칠이지?”

“... .”


금방 내 몸을 들쳐 업을 기세였다 당황해 입을 벌린 사랑이 형을 향해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이어갔다.


“아까 넘어지면서 머리를 부딪쳤어. 아무래도 기억상실같아. 내가 여기 언제 들어왔는지도 기억이 안 나. 내가 이 회사에 오래 있었나? 근데 나 몇살이지?”


혼비백산해 안절부절 못하던 사랑이 형이 급하게 주머니를 뒤적였다. 내 얼굴 앞에 휴대폰을 들이밀며 형이 외쳤다.


“오늘은 7월 14일! 넌 2월에 들어왔고! 내 이름은 최사랑! 우리 만난 지 5달 됐어. 그리고 또! 네 이름은 기억나는 거야?”


- 연애 금지

- 술담배 금지

- 휴대폰 소지 금지


연습생에게 철저히 금지된 세가지 중 세가지 금지항목을 당당히 위반하고 사는 사랑이 형이 내 눈 앞에 들이댄 그의 블랙베리 휴대폰 화면 속 현재 시간 15:32 숫자 위, 연도를 재빠르게 눈으로 훑었다.


- 2014년 -


원래의 내가 있던 시간은 2021년. 그리고 내가 제이에스에 들어왔던 게 18살 때였다.

나는 정확히 X년 전, 연습생 시절로 회귀해 있었다.


원래대로였다면 사랑이 형은 지금으로부터 얼마 안돼서 이 회사를 나가게 된다. 그리고 다시 혼자가 됐던 내게 우명우 무리가 다가왔었다.


2014년 가을의 월말평가회. 아직도 잊을 수 없던 그날. 평소와 다르게 대강당에서 오디션 형식으로 성대하게 개최됐던 그날의 월평에는 평소와 다른 손님들 몇명이 참가했었다.


정기 평가회를 위해 제이에스 트레이닝 센터 대강당에 들어선 수십명의 연습생들은 눈 앞에 벌어진 상황에 당황했다.


주르르 자리잡고 앉은 이사진들의 한가운데에, 천회장의 바로 옆자리에 건방지게도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여자가 있었다. 재이에스가 낳은 당대 최고의 스타 중 하나이자 당시 케이팝을 대표하던 명실상부 한국 최고의 걸그룹. 블루문의 센터이자 솔로 가수로도 입지를 다져가고 있던 오하영.


그날의 월평은 블루문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할 괜찮은 연습생을 물색하는 자리였고, 그 주연으로 선발된 게 최사랑 형이었다. 이대로라면 데뷔조에 드는 것도 문제없을 거라고 모두가 그를 부러워했지.


그로부터 몇 달 뒤, 블루문의 뮤직 비디오 촬영 일주일 전 쯤이었다. 출근했는데 여느 때와 달리 공간이 텅 비어 있고, 연습생들이 한 곳에 몰려 부산했다. 사랑이 형이 보이지 않아 그를 찾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을 향했다. 게시판 앞에 모인 수십명이 웅성이고 있었다.


게시판 한가운데에는 클럽으로 보이는 장소에서 퇴폐적인 눈빛의 최사랑이 헐벗은 여자들 사이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진이 붙어있었다.


그날 임원실로 소환됐던 사랑이 형의 퇴출이 즉시 결정됐고 다음날, 그는 영원히 이 곳을 떠났다.


양쪽 눈 아래 퀭하니 기미가 내려앉은 팬더같은 얼굴로 하늘을 향해 과일향 전담 연기를 시원하게 내뱉고 있는 그를 보니 그 날의 기억이 떠올라 소름이 끼치려 했다. 얼굴에 티가 났던걸까. 내 걱정에 초조해져서인지, 다리를 덜덜 떨며 드래곤의 파이어 브레스처럼 전자담배 연기를 뿜어대던 그가 결심한 듯 내 양 어깨를 붙잡았다.


“경우야, 너 그냥 형이랑 같이 바로 병원에 가자.”

“형.”


내게 다가오는 그의 가슴을 두 손으로 밀어냈다. 자신의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얼굴을 들지 못하는 내게 당황하는 게 느껴졌지만, 그 날을 생각하니 도저히 그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내 진지한 얼굴에 사랑이 형은 당황스러운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내 눈빛이 그렇게 부담스러운가?


“...너 진짜 왜 이래, 오늘.”

“...형, 나 부탁이 있는데 들어줄 수 있어요?”

“뭔데. 진짜, 쑥스럽게.”


그의 손을 덥썩 잡고 간절한 눈으로 나보다 한참 위에 있는 형의 눈을 올려다봤다. 최대한 불쌍해 보이길 바라면서.


“나 형이랑 꼭 같이 데뷔하고 싶어.”

“하하, 녀석. 것 참.”


그러면서도 자기도 기분이 좋은지 눈이 반달로 접히다 아예 없어져 버린 형이 연신 뒷머리를 긁적인다. 철부지나 할 수 있을 법한 소리지만, 이런 꾸밈 없는 말이 더 순수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그러니까, 담배 끊자. 오늘부터.”


그리고 다음 말을 듣는 순간 그 얼굴이 왈칵 구겨졌다.


담배쟁이도 마뜩찮은 건 마찬가지지만, 사랑이 형은 제이에스 연습생 풀에서 내가 기억하는 가장 멀쩡한 사람이었다. 이전 생에서 막상 데뷔한 뒤 멤버들에 비하면 그는 지상에 떨어진 천사나 다름 없다. 적어도 이 형은 시기 질투로 남의 뒷통수 칠 그런 사람은 아니다. 일단 그런 머리가 안된다.

지난 생에서 사랑이 형이 이 곳을 나간 후 어떻게 됐는지 알았을 때는 너무 놀라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 나, 난 진짜 아니야! 난 그런 기억이 없어! 난 그런 거 안했다고!


게시판 앞에서 자신을 사진을 뜯어낸 사랑의 형의 참담한 얼굴이 떠올라왔다. 그 순간에도 나는 그에게 아무 도움을 주지 못했었다. 제발 나를 믿어달라고 했지만 게시판 앞에 모인 사람들의 눈에 떠오른 차가운 눈빛들. 그 눈빛에 절망한 그가 고개를 돌려 사람들 사이에 있던 나를 찾았다.


그리고 마침내 사람들의 머리 사이에서 내 얼굴을 찾은 사랑이 형의 간절한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외면했었다. 연습실을 뛰쳐나가 버린 사랑이 형을 그 후로 다시는 볼 수 없었다.


- 나 걔 담배 피우는 거 봤어. 전에 공터에서 전자담배 신나게 빨고 있던데?

- 헐, 그럼 찐이네. 그 사진에서도 담배 피우고 있었잖아.

- 나도 최사랑 그렇게 안 봐서 사진 가짜인 줄 알았잖아. 담배 피우는 것도 찐이면 그것도 찐인거네. 와, 걔 무섭다.


게시판 사건 후 그가 담배 피우는 걸 봤다는 연습생들이 한두 명씩 튀어 나왔다. 다 큰 성인의 전자담배 정도로 데뷔조 물망에까지 오르는 연습생을 아예 퇴출하진 않겠지만, 사진 속에서 그가 여자들 사이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퇴폐적인 이미지와 겹치니 문란한 사생활을 하는 게 틀림없다는 게 기정사실화가 돼버렸다.


제이에스 지하실 연습생들 사이에서 최사랑이 일진이라더라, 여자 연습생이 고백하니 갖고 놀다 버렸다더라, 온갖 추문이 떠돌았다. 연습이 끝나면 집에 가 네 쌍둥이를 돌보느라 늘 수면부족에 시달리는 주부 만렙이 클럽에 다니다니. 내가 아는 사랑이 형의 모습과 전혀 맞지 않았다.


- 아니에요, 사랑이 형은 술도 못 한다구요! 캔맥주 한 모금만 마셔도 얼굴이 시뻘개지는데. 완전 쑥맥이라구요. 담배도 육아 스트레스 땜에 냄새 안 나는 걸로 시작한 거에요.


뒤늦게 트레이너 이사에게 직접 찾아가 그의 추문 중에 잘못된 부분에 대해 억울한 점을 말했지만, 이미 결정된 일을 번복할 수는 없다는 대답 뿐이었다. 너도 데뷔하고 싶으면 앞으로 그와 친분 있던 티를 어디 가서 내지 말라는 조심스러운 주의를 받았을 뿐이었다.



소문이 빠르기로 유명한 좁은 바닥이다. 대형에서 그런 추문을 달고 퇴출된 연습생이 갈 곳이 있을 리 없었다.



몇 년 뒤, 에이센트로 활동하던 어느 날이었다. 사랑이 형의 갑작스러운 부고가 전해졌다. 이중추돌에 의한 교통사고. 택배를 배달하러 가던 길이었다 한다. 그 날은 마침 예정된 스케쥴도 갑자기 취소되어 숙소 내 방 안 침대 위에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다.


내가 사랑이 형을 외면했던 날. 자기에게서 고개를 돌리기 전 마주쳤던 그의 강아지같은 눈동자가 계속 생각났다. 마치 자기보다 훨씬 작은 주인에게 버림받은 커다란 강아지같던 그의 모습. 며칠동안 사랑이 형의 눈빛과 표정이 생각 나 누워 있어도 잠에 들 수 없었다.


불 꺼진 텅 빈 숙소 안에서 이불에 꽁꽁 감싸인 내 귀에까지 들릴 정도의 고성이 울려퍼졌다. 방문 밖에서 남자들이 싸우고 있었다. 불을 다 끄고 내 방 안에서 이불을 덮고 누워 있는데, 방문 밖으로 격한 말싸움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있는 줄 모르는 건가.’


좀 조용히 하라고 소리 치려다, 문을 열기 전 들려오는 대화 소리에 꼼짝도 못 하고 그대로 멎어 버렸었다.


“내가 거길 왜 가? 죽은 새끼가 병신이지. 연예인 못 해서 환장했다냐, 그런 걸로 죽게?”

“너 때문이야. 이 새끼야. 난 설마 그걸로 이런 일 생길 줄은 몰랐다고.”

“나 때문? 너도 같이 했었잖아. 난 너한테 최사랑이 길빵하는 사진 갖다준 거밖에 없다고, 니가 시켜서!”

“니가 그날 CCTV 가려놓은 건? 잊지 마. 어차피 너랑 난 공범이야. 이거 들통나면 우린 둘 다 끝장이라고.”


‘내가 지금 뭘 듣고 있는거지?’


숨소리를 죽이고 문에 한쪽 귀를 가져다 붙인 체 목소리에 집중했다. 전신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남자 둘의 성난 음성이 숙소에 울려 퍼졌다. 우명우와 김우환이었다.


“씨발, 이제 와 착한 척 하지 말고 너 입 조심해라. 알려지면 너랑 나 둘 다 죽는 거야. 어?”

“이 새끼가. 넌 진짜 양심도 없냐?”

“양심? 하!”


잠깐 조용해졌던 숙소의 정적을 우명우의 마른 목소리가 갈랐다.


“그 날 최사랑 길빵 사진 찍은 건 누가 뭐래도 너야. 내가 아니라.”

“나, 난 니가 사진만 갖다주면 나머진 다 니가 알아서 한다고 해서.”

“그래. 그 사진 합성하잔 아이디어 냈던 건 나. 나한테 소스 제공하고 내가 게시판에 사진 갖다 붙이는 동안 사람들 오는지 망까지 봐줬던 게 너였다고. 김우환.”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작가의말

오타지적 항상 감사합니다. 수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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