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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 님의 서재입니다.

왕따 이등병의 1차 대전 생존기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대체역사

di********
작품등록일 :
2020.11.21 18:30
최근연재일 :
2024.05.10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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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5

  • 작성자
    Lv.44 g5******..
    작성일
    23.02.11 13:38
    No. 1

    이게 말이 안되는게 이렇게 약탈하면 대다수는 파르티잔으로 돌변하여 밤에 기습하거나 영국군을 불러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4 di******..
    작성일
    23.02.11 13:45
    No. 2

    다큐멘터리 보면서 그 당시 주민들 인터뷰보면서 참고로햇습니다 네 저래서 결국 영국군한테 정보 알려줬다고 하더라구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4 g5******..
    작성일
    23.02.11 13:41
    No. 3

    그리고 설정 오류가 너무 다분합니다 임팔 코히마 등의 지역명은 하나도 안나오고 이상한 전투만 나오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4 di******..
    작성일
    23.02.11 13:46
    No. 4

    어떤 부분이 설정오류인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겟습니다! 네 앞으로는 이런 부분 더 신경써서 쓰도록 하겟습니다 구체적인 전투 묘사보다는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4 di******..
    작성일
    23.02.11 20:40
    No. 5

    독자여러분 제가 얄타회담 책 읽고있는데 제가 정확히 이해한게 맞는지 궁금합니다
    소련에서는 독일에 포로로 잡히면 반역자라고 여기고 그게 심지어 스탈린의 아들이 포로로 잡혔다고 하더라도 며느리를 강제노동수용소에 넣었다고 하는데요
    얄타 회담에서 미국 영국쪽 연합군이 잡은 포로를 소련에게 넘겨줄때
    포로의 의사와 상관없이 소련쪽에 넘겨주었다고 하는데
    그러면 그냥 죽으라고 보내는거나 다름없는데 진짜 잔인하네요 ㄷㄷㄷ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증오하는자
    작성일
    23.02.24 19:16
    No. 6

    이 부분은 좀 상당히 복잡한 면이 있습니다. 야코프의 아내는 유대인이었기에 스탈린이 트로츠키에 의해서인지 개인의 성격문제인지 러시아와 동유럽내 퍼진 반유대주의 때문인지는 모를 일이나 며느리의 신분이 반유대주의 감정이 건드러졌으며 NKVD장교와의 이혼녀이니 좋게 볼 수 없죠.

    거기다 스탈린 입장에서는 본인이 모스크바에 남듯이 잔혹한 명령을 집행하기 위해서라도 일종의 본보기로서 자신의 가족, 아끼는 장남의 가족을 이리했는데 너희가 안 따를것이냐는 부분도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4 di******..
    작성일
    23.02.24 19:23
    No. 7

    아하! 이런 상황이 있었군요 정보 감사합니다 하긴 본보기로서 엄격히 처리했겠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증오하는자
    작성일
    23.02.24 19:20
    No. 8

    227호 명령을 들여다보면 독소전으로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많은 소수민족들이 이탈을 하며 연방의 근간이 근간이 흔들리고 있었죠. 미국의 남북전쟁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죠?

    근데, 모스크바에서 방어에 성공했지만 남부전선에서 독일군이 밀고 들어오는 상황이며 특히 중요한 공업 및 유전지대와 랜드리스 루트가 끊길 위험이 있는 상황입니다. 거기에 있는 체첸등 다른 민족 이탈문제도 있는등 또다시 연방 근간이 흔들릴 위기죠.

    그렇기에 소련도 인명경시 위험은 알지만 이런 막장 상황에서 배수진을 친 것으로 봐야합니다. 민주주의 국가들도 여론에 휩쓸려 더 막장스러운 상황도 있는데다 이스라엘은 여론 감정이 안좋아 지도층이 뭘할 수 없는 상황이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4 di******..
    작성일
    23.02.24 19:24
    No. 9

    대충 어떤 상황이었는지 이해가 가네요 정보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증오하는자
    작성일
    23.02.24 19:27
    No. 10

    이런 잔인한 명령을 계속 강조할 수 없고 지도자가 본인 가족도 강력히 적용한다는 본보기가 있어야 따르는법입니다. 그런점에서 과거에 신라 화랑인 관창처럼 아들들이 희생되는 것처럼 야코프의 아내는 희생양의 조건이 맞는 셈이죠. 흐루쇼프도 자기 아들의 투항 의심도 받아야했는등 이걸 뭐라학니 힘듭니다. 스탈린답지만 그만큼 소련상황이 심각했고 스탈린 본인도 위험한데 그걸 이겨낸 스탈린의 정치력과 정치가로서 냉혹함의 필요성을 보여준 사례라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야코프 가족들은 전후 조사로 석방되어 후한대접을 받았으며 야코프 본인도 직접 본 참상도 있기에 독일과의 부역을 거부한것이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4 di******..
    작성일
    23.02.24 19:28
    No. 11

    스탈린도 그런 명령 내리고 싶어서 내린건 아니었군요 정보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증오하는자
    작성일
    23.02.24 19:30
    No. 12

    얄타에서의 소련포로 인도 문제는 이것도 복잡한 정치계산이 통합니다. 일단 인간적으로 소련이 독일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보았습니까? 이런 피해도 없었죠. 그러니 소련군의 약탈을 방조한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독일이 소련을 이정도 초토화시키는게 제정신일까요?

    현 독일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적극적으로 나올 수 없는것이 워낙에 이런 이미지가 있기에 그런 지원이 과연 우크라이나에 이로울지 러시아의 전의만 불태울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한 계기일 수 있다봅니다. 본인들 일이 크니 감정적으로도 꺼려지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4 di******..
    작성일
    23.02.24 19:44
    No. 13

    역사적인 정보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증오하는자
    작성일
    23.02.24 19:33
    No. 14

    그보다 큰 것이 전후 소련의 위치 때문입니다. 일단 소련내에서 두리틀 폭격대 중 1기와 몇몇 폭격기들이 연해주에 불시착한데다 소련이 독일로 진군하면서 폴란드와 독일 동부의 포로수용소에 있는 미영 포로의 안전이 우선이었죠.

    미영포로가 서부에 있는것이 아니었고 주요 산업시설이 있는 동부에 간 경우가 많기에 이들의 안전을 보장받아야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한국인 의용군과 우크라이나 군인 중 한국인 입장에서 누굴 석방시키고 싶을까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4 di******..
    작성일
    23.02.24 19:45
    No. 15

    아 두리틀 폭격대와 폭격기들 불시착했기에 일단 미영 포로 교환이 중요했겠네요 당연히 자국민 우선이겠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증오하는자
    작성일
    23.02.24 19:36
    No. 16

    거기다 루즈벨트는 독일과 일본, 이탈리아 뿐만이 아니라 프랑스와 영국 같은 식민제국들도 붕괴시켜야한다 보았으며 서로 극단적이기에 협의를 해서 어느 하나가 독주할 수 없게 해야한다는 판단하에 전후 세계질서를 이끌러 컨트롤타워로 소련과 미국을 선점했습니다. 그러니 동유럽에서의 소련영향력 확대도 방관하였고 소련의 포로 이송에 동의했죠.

    소련으로서도 소련이란 연방의 근간을 얼마든지 흔들 이들을 데려오는게 연방의 전후 재건에서 근간을 다시 잡는 일이었고 독일 동부전선 참전자 송환도 이들에 대한 본보기를 보여야 민심을 잡을 수 있기에 이 메리트가 맘에 들었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4 di******..
    작성일
    23.02.24 19:46
    No. 17

    얄타 회담때 루즈벨트가 처칠에게 상당히 비협조적이었던 이유가 있군요 근데 아무리 봐도 그로 인하여 625 전쟁이 일어났던 것도 같은...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증오하는자
    작성일
    23.02.24 19:40
    No. 18

    다만, 미영이 만슈타인 같은 고위층이나 상당수에 대해선 거부했고 유럽 소국인 리히텐슈타인 같은 국가적으로 러시아 해방군 인도 거부하는 배짱을 보이긴 했죠.

    그러나 이런 전후 파트너로서의 역할이 필요해서 러시아내전 당시와는 달리 러시아 포로들의 필요성이 적은데다 이들도 전쟁에 부역한것이 크고 나치독일에 대한 증오가 크기에 넘기는것에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특히 바르샤바 초토화등 이들이 벌인 전쟁범죄도 무시못하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4 di******..
    작성일
    23.02.24 19:47
    No. 19

    아 미영이 거부할건 거부했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증오하는자
    작성일
    23.02.24 19:46
    No. 20

    이러는 한편으로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서 프랑스를 전승국으로 삼아야했죠. 근데, 소련입장에서는 빠르게 무너진데다 이 프랑스무기들이 추축국 무장중 하나였고 비시프랑스 휘하 프랑스인들중 부역자도 많기에 이들을 무시할 수 없어서 전승국 인정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니 프랑스란 편을 얻어야하니 프랑스보다 작은 자유폴란드란 카드도 거리낌없이 버린것이고 소련견제에 프랑스가 필요하여 미국이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침략 반대하다 소련에 붙을 수 있다는 프랑스 협박탓에 군사무기 지원을 한겁니다.

    세상이란게 결코 만만한것이 아닙니다. 미국도 우크라이나 지지한건 좋은데 아프리카에 지원하면 몰라도 처음부터 협박으로 시작한게 사실이고 인플레방지법으로 뒤통수 친 전적이 있는데도 민주주의 명분하에 반강제적 참여 권유하고 반대로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 조치를 지지하는 모순이 있죠. 유엔 거부권이 루즈벨트가 파트너로서 소련이 다수인 서방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보장으로서 냉전 유산이라 없애는 것도 있지만 러시아 악용만 거론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남용도 막아야한다는 이유도 제시된겁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4 di******..
    작성일
    23.02.24 19:48
    No. 21

    네 처칠이 얄타 회담에서 프랑스를 전승국으로 해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죠 하긴 비시 프랑스에선 부역자도 많기는 했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증오하는자
    작성일
    23.02.24 19:51
    No. 22

    근데, 한국전은 복잡합니다. 정리하자면 소련은 핵이란 유일한 카드를 가진 미국을 건들 수 없었고 미국은 핵만 믿고 어디가 뚫리든 대응할 수 있다 생각해 에치슨 라인을 설정한 것이죠. 더불어 한반도에서는 어느 세력도 관여하지 않아야 안전하단 입장이고 소련이 허튼짓 하지 않을것이라 생각했고요.

    그러나 소련이 핵실험에 성공하자 미국은 어디든 소련확장을 막아야한다고 입장을 바꿔 신속히 한국을 지원했죠. 반대로 스탈린은 핵이란 자신감도 있는데다 북한이 미국의 시선 끄는 버림패로서 보였기에 승인한겁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4 di******..
    작성일
    23.02.24 19:56
    No. 23

    네 에치슨 라인에 한반도는 포함되고 있지 않았죠 루즈벨트는 625전쟁이 발발할 것을 몰랄을듯요 북한이 미국 시선 끄는 패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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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9 증오하는자
    작성일
    23.02.24 19:54
    No. 24

    그 승인도 적극적인게 아니며 지원을 하되 사보타주 수준으로 북한이 순식간에 이기지 못하게 하였으며 유엔에서 거부권 행사할 수 있음에도 위성국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과의 면담을 통해 소련유엔대사 참석을 불참하도록 지시한점에서 보듯 북한이 미국을 붙잡는 사이 유럽에서의 영향을 투사하기로 한겁니다.

    거기다 북한이 무너질 위험을 중공에게 맡겨 공산권내에서 중공의 힘을 빼내 공산권 1등국으로서의 소련 지위를 지키고자 했습니다.

    그러니 스탈린이 얼마나 무섭고 똑똑한지와 김일성이가 얼마나 등신인지를 보여준 사례가 아닐까요? 미국 바이든도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직접갔다 피터졌기에 우크라이나와 유럽이란 방패로 러시아 힘 빼는동안 대만에서 중국을 더 신경쓴다는 정치적 계산을 쓴거라봅니다. 정치발언이 위험하긴한데...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4 di******..
    작성일
    23.02.24 19:58
    No. 25

    아 몰랐는데 사보타주 수준 지원이었군요 순식간에 이기지 못하게 했군요 ㄷㄷㄷ 아 이 당시 상황이 복잡하네요 소련 유엔대사 참석 불참하도록 지시했군요 그렇게 북한이 미국 붙잡는 사이 유럽에서 영향력 투사가 목적이었군요
    헉 ㄷㄷㄷ 공산권 내에 중공 힘 빼는 것도 목적이었군요 결국 중공의 힘을 빼기 위한 것 이었군요 네 얄타 회담 공부하니 머리 좋긴 하더라구요
    바이든 정말 그런거 같긴 하네요 지원해주되 우크라이나가 완전히 이길만큼 지원해주고 있지는 않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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