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호 명령을 들여다보면 독소전으로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많은 소수민족들이 이탈을 하며 연방의 근간이 근간이 흔들리고 있었죠. 미국의 남북전쟁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죠?
근데, 모스크바에서 방어에 성공했지만 남부전선에서 독일군이 밀고 들어오는 상황이며 특히 중요한 공업 및 유전지대와 랜드리스 루트가 끊길 위험이 있는 상황입니다. 거기에 있는 체첸등 다른 민족 이탈문제도 있는등 또다시 연방 근간이 흔들릴 위기죠.
그렇기에 소련도 인명경시 위험은 알지만 이런 막장 상황에서 배수진을 친 것으로 봐야합니다. 민주주의 국가들도 여론에 휩쓸려 더 막장스러운 상황도 있는데다 이스라엘은 여론 감정이 안좋아 지도층이 뭘할 수 없는 상황이죠.
이런 잔인한 명령을 계속 강조할 수 없고 지도자가 본인 가족도 강력히 적용한다는 본보기가 있어야 따르는법입니다. 그런점에서 과거에 신라 화랑인 관창처럼 아들들이 희생되는 것처럼 야코프의 아내는 희생양의 조건이 맞는 셈이죠. 흐루쇼프도 자기 아들의 투항 의심도 받아야했는등 이걸 뭐라학니 힘듭니다. 스탈린답지만 그만큼 소련상황이 심각했고 스탈린 본인도 위험한데 그걸 이겨낸 스탈린의 정치력과 정치가로서 냉혹함의 필요성을 보여준 사례라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야코프 가족들은 전후 조사로 석방되어 후한대접을 받았으며 야코프 본인도 직접 본 참상도 있기에 독일과의 부역을 거부한것이죠
거기다 루즈벨트는 독일과 일본, 이탈리아 뿐만이 아니라 프랑스와 영국 같은 식민제국들도 붕괴시켜야한다 보았으며 서로 극단적이기에 협의를 해서 어느 하나가 독주할 수 없게 해야한다는 판단하에 전후 세계질서를 이끌러 컨트롤타워로 소련과 미국을 선점했습니다. 그러니 동유럽에서의 소련영향력 확대도 방관하였고 소련의 포로 이송에 동의했죠.
소련으로서도 소련이란 연방의 근간을 얼마든지 흔들 이들을 데려오는게 연방의 전후 재건에서 근간을 다시 잡는 일이었고 독일 동부전선 참전자 송환도 이들에 대한 본보기를 보여야 민심을 잡을 수 있기에 이 메리트가 맘에 들었죠
이러는 한편으로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서 프랑스를 전승국으로 삼아야했죠. 근데, 소련입장에서는 빠르게 무너진데다 이 프랑스무기들이 추축국 무장중 하나였고 비시프랑스 휘하 프랑스인들중 부역자도 많기에 이들을 무시할 수 없어서 전승국 인정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니 프랑스란 편을 얻어야하니 프랑스보다 작은 자유폴란드란 카드도 거리낌없이 버린것이고 소련견제에 프랑스가 필요하여 미국이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침략 반대하다 소련에 붙을 수 있다는 프랑스 협박탓에 군사무기 지원을 한겁니다.
세상이란게 결코 만만한것이 아닙니다. 미국도 우크라이나 지지한건 좋은데 아프리카에 지원하면 몰라도 처음부터 협박으로 시작한게 사실이고 인플레방지법으로 뒤통수 친 전적이 있는데도 민주주의 명분하에 반강제적 참여 권유하고 반대로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 조치를 지지하는 모순이 있죠. 유엔 거부권이 루즈벨트가 파트너로서 소련이 다수인 서방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보장으로서 냉전 유산이라 없애는 것도 있지만 러시아 악용만 거론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남용도 막아야한다는 이유도 제시된겁니다
그 승인도 적극적인게 아니며 지원을 하되 사보타주 수준으로 북한이 순식간에 이기지 못하게 하였으며 유엔에서 거부권 행사할 수 있음에도 위성국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과의 면담을 통해 소련유엔대사 참석을 불참하도록 지시한점에서 보듯 북한이 미국을 붙잡는 사이 유럽에서의 영향을 투사하기로 한겁니다.
거기다 북한이 무너질 위험을 중공에게 맡겨 공산권내에서 중공의 힘을 빼내 공산권 1등국으로서의 소련 지위를 지키고자 했습니다.
그러니 스탈린이 얼마나 무섭고 똑똑한지와 김일성이가 얼마나 등신인지를 보여준 사례가 아닐까요? 미국 바이든도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직접갔다 피터졌기에 우크라이나와 유럽이란 방패로 러시아 힘 빼는동안 대만에서 중국을 더 신경쓴다는 정치적 계산을 쓴거라봅니다. 정치발언이 위험하긴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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