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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 님의 서재입니다.

왕따 이등병의 1차 대전 생존기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대체역사

di********
작품등록일 :
2020.11.21 18:30
최근연재일 :
2024.05.10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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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7

  • 작성자
    Lv.99 증오하는자
    작성일
    22.07.01 08:30
    No. 31

    말씀처럼 상당히 감정적으로 가는 히틀러 특성상 한스를 버리지 않을것은 사실입니다 어찌보면, 프랭클린 루즈벨트와 윌리엄 리히의 관계라 볼 수 있고 그보다도 더하다고 보는게 맞을테죠 윌리엄 리히는 남북전쟁 참전자 출신 변호사 집안에서 태어나서 해군사관학교를 47등 중 14등로 졸업하고 전통적으로 소위 진급전 1~2년간의 견습사관(준사관)으로 복무하던 중 미국-에스파냐 전쟁에 참가하였고 태평야에서 근무하며 소위 시절에 미국-필리핀 전쟁과 의화단 전쟁에 참여한 후 미해군 사관학교로 돌아와서 육상근무를 하다 워싱턴의 미해군 항법국에서 근무 하던 중 해군차관보로 있던 루즈벨트와 인연을 쌓습니다 루즈벨트는 앨리너와 결훈한 후 민주장 출신으로 뉴욕주 상원의원에 오른후 미해군 차관보로 갔으며 그곳에서 해군쪽과 연을 맺으며 해군에 호의적인 감정을 가졌죠 그의 상관이던 제프 대니얼스 해군 장관은 자신을 까기도 한 루즈벨트를 대인배스럽게 계속 후원하였고 그덕분에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 루즈벨트의 명으로 멕시코 대사로도 갔으며 비서 겸 친구였으며 후에 해군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루즈벨트 지지그룹을 만들었다는 말도 나올 정도로 루즈벨트의 킹메이커로 활동한 루이 하우와도 인연이 있는데 그 인연 중 하나가 리히와의 관계였습니다 그렇게 만든 연으로 그는 그때부터 루즈벨트의 군사적 조언가로 활동하였고 고속승진하며 대령으로 올랐으며 10년간 근무 끝에 제독인 소장에 오릅니다 뭔가 이상하죠? 원래 미해군에서는 준장 계급이 없었으며 일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원스타가 소장이죠 리히 뿐만 아니라 킹과 니미츠, 홀시등 미해군 사령관들도 10년 이상 복무하여서 소장으로 올랐던 겁니다 준장계급이 만들어진 것은 1943년인데 미 해군이 지원제를 징병제로 바꾸면서 해군과 해병이 400만 까지 올랐고 그들을 관리하고자 준장계급이 만들었고 고참 대령들을 넣는 것을 시작으로 이 시점에서 미해군은 대령에서 준장 그후 소장으로 가는 계급체계를 완성합니다

    1927년에 소장으로 오른 후 1937년에 대장으로 진급하였으며 1939년까지 제7대 해군참모총장을 지냈죠 이때 미해군은 군축을 하면서도 세계 1위 해군직을 계속 유지하고자 하였던 영국의 뻘짓으로 그나마 일본의 조약 탈퇴에 대비하여 만든 보험인 에스컬레이션 조항으로 전함 스펙을 올렸음에도 미영건함 계획에 악영향을 준 제2차 런던군축조약으로 혼란을 겪었는데 이때 리히가 근무하였으며 미국이 그나마 일본과 이탈리아가 독박을 썼으나 워낙에 큰 뻘짓탓에 일본에게만 좋을 팀킬 상황을 빠르게 수습할 능력을 가져서 어떻게든 수습하여 걸작 아이오와급 전함을 만들었는데 이때 최고직이던 리히의 리더쉽이 보였다고 할 수 있죠 1939년에 퇴역하여 푸에르토리코 총독으로 파견되었고 그후 나치독일에서 멸망당하기 전 프랑스에 대사로 파견되기도 했는데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하면서 태평양 전쟁이 개전함에 따라 리히는 해군으로 복귀하면서 대통령의 군사자문을 목적으로 육해군 최고사령관 참모총장에 오릅니다 당연히 최고사령관은 루즈벨트였고 이 직책은 후임 오마 브래들리에 의해 미군 합동참모의장으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그걸 고려하면 조지 C. 마셜과 어니스트 킹,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더글러스 맥아더, 체스터 니미츠, 헨리 아놀드등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원수들과 장군들보다 높은 상관일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가졌던거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4 di******..
    작성일
    22.07.01 19:02
    No. 32

    윌리험 리히는 47등 중 14등이었으면 우수한 성적이네요 아 루즈벨트와 인연을 쌓앗군요 루즈벨트의 군사적 조언가가 대고 대령으로 올랏군요 진짜 고속 승진이네요 아 리히가 아이오와급 전함을 만들엇군요! 능력이 좋군요! 1939년에 퇴역하고 총독으로 파견되엇군요 그렇게 육해군 최고사령관 참모총장이 되엇군요 한스랑 비슷하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증오하는자
    작성일
    22.07.01 09:09
    No. 33

    여기서 왜 리히가 그런 높은 자리에 올랐다는 것을 보자면 우선 당시 각군의 참모총장들보다도 고참이었으며 루스벨트 대통령의 신임도 있었겠지만, 규모와 정치적 영향력이 큰 육군이 통합 직책을 이용하여 해군을 자기들 밑으로 두려는 것 아니냐는 해군의 우려와 반발을 사전에 무마하려는 정치적인 의도가 큰 인사조치였다 봐야합니다 그렇기에 전쟁부를 국방부로 바꾸면서 육방부를 우려하여 국방부 장관에는 베트남전 당시 엄청난 화재로 반파도 당하였던 포레스탈급 항공모함 함명에도 이름이 들어간 제임스 포레스탈이 오른 것이고 암만 높아도 결국 자문이 가장 비중 높으면서 소속인 해군의 군령권과 군정권은 모두 해군참모총장 겸 함대총사령관인 어니스트 킹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후버의 보호하에 퇴역한 병사 2만 5천여 명이 보너스 지급을 요구하는 평화시위였던 보너스 군대 사건을 패튼과 경전차를 동원하여 강제진압을 한데다가 루즈벨트가 대공황 극복을 위하여 군축하면서 육군 예산의 51%를 감축하며 갈등을 빚다 육군참모총장 복무 후 퇴역하여 필리핀 연방 정부의 군사 고문 겸 원수로 있던 맥아더와 함께 1942년 7월에 복권한 리히는 엄창난 계급에 오른 후 자연스럽게 합동참모회의의 의장으로서 육군의 마셜과 미육군항공대(공군)의 아놀드 그리고 해군의 킹과 함께 논의하여 만든 지침서를 맥아더와 니미츠, 아이젠하워 같은 전구사령관들에게 하달하였고 아침마다 루즈벨트에게 전황에 관한 의견을 내는등 제2차 세계대전의 미국 승전에 크게 기여합니다 당시 육군의 마셜과 해군의 킹, 육군항공대의 아놀드는 워낙 개성이 강한데다 킹의 성격자체가 워낙에 좌충우돌하여 다른 둘과 사이가 엄청 안 좋았던데다 마셜과 킹은 각각 작전 주안점이 유럽과 태평양이라 시시때때로 싸웠고, 아놀드와 킹은 폭격 전략을 논의하다가 갈등이 생겼으며 어느정도 냐면 미 해군 태평양 함대사령부는 일본의 항구를 봉쇄하기 위해 일본 본토 근해에 기뢰살포 작업을 진행하고자 B-29등 육군항공대의 폭격기들을 항구 봉쇄로 돌렸고 커티스 르메이는 기존 도시 폭격을 더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여 담판을 지으러간 아놀드에게 킹이 해군은 빠질테니 육군 혼자 잘해보라고 나왔을 정도라네요 물론 결과적으로 그렇게 돌려졌으며 해상봉쇄하는 기아작전은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고 나중에 킹도 협조한 르메이에게 고맙다고는 하였죠 그런 최고 지휘관들의 의견을 조율하고 연합군의 작전 구상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알레스카 방위군 사령관으로서 얄류산 전역을 지휘하였고 오키나와 전투를 지휘다가 일본군 47mm 포 포격으로 발생한 바위 파편에 치명상을 당하여 제2차 세계대전 중 가장 큰 고위급 장교 사망자가 된 사이먼 버크너처럼 사이나쁜 육해군을 잘 조율하여 전쟁을 승리에 이끌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중 모든 전투에 그가 관여한 것을 보자면 전쟁부 장관 스팀슨가 함께 그 역할을 엄청나다 하여야 합니다

    포츠담 회담 사진보면 사망한 루즈벨트를 대신한 트루먼가 선거 패배한 처칠을 대신한 애틀리와 함께 있던 스탈린 뒤로 영국 외교장관 어니스트 베빈과 미국 국무장관 제임스 번즈 그리고 소련 외교장관 뱌체슬라프 미하일로비치 몰로토프와 함께 있는 해군제복 입은 사람이 리히로 그 위상을 볼 수 있고 루즈벨트가 생전에 태평양전쟁에 종지부를 찍을 몰락 작전이나 원폭투하 모두 망설였던 것이 리히의 조언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영향을 주었냐를 추측할겁니다 물론, 그는 기아작전등 해상봉쇄만으로 고사하는게 가능하다며 도덕적 문제가 큰 핵 사용을 반대하였으나 상당한 강경파였던 트루먼의 등장과 함께 포츠담 선언에 관하여 사실상 거부나 다름없어 명분을 준 일본의 노코멘트에다 포인트 제도에 따라 전역자들을 거르면서 재편성한 탓에 미군의 전체적 전력이 약한 상황에서 오키나와와 이오지마의 경험으로 몰락작전 희생자가 사실이나 다름없는 상황탓에 원폭 투하를 막을 수 없었죠 여튼, 그런 점에서 히틀러와 한스 루즈벨트와 리히의 관계와 같은 면모를 보였다고 볼 수 있어요 다만 상세하게 보자면 히틀러와 보어만의 관계로도 보는게 가능할 것 같고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4 di******..
    작성일
    22.07.01 19:03
    No. 34

    정치적인 이유가 있었군요 해군을 자기 밑으로 두려는 해군의 우려와 반발을 무마하려는 것 이엇군요 윌리엄 리히가 원폭 투하를 반대했었군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4 di******..
    작성일
    22.07.01 19:06
    No. 35

    1942년 7월 복권햇군요 아침마다 루즈벨트에게 전황 의견서를 내는 ㅎㄷㄷㄷㄷ 기아작전 등 해상봉쇄만으로 고사하는게 가능했다고 주장하는군요 근데 제가 생각해도 핵 사용 안해도 어차피 일본이 패망한 상황이라 굳이 핵 사용할 이유가 잇엇는지는 모르겟습니다 리히도 그렇게 생각햇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2 n2******..
    작성일
    22.07.01 11:17
    No. 36

    만약에 나중에 히틀러와 루스벨트가 만날때, 리히와 한스가 서로 만나는 모습도 보고 싶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4 di******..
    작성일
    22.07.01 19:06
    No. 37

    3부에서 리히가 등장할거 같긴 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4 g5******..
    작성일
    22.07.01 12:36
    No. 38

    슬슬 모스크바 공방전 끝나겠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4 di******..
    작성일
    22.07.01 19:07
    No. 39

    네 이제 끝날때 되었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증오하는자
    작성일
    22.07.01 21:47
    No. 40

    일단 리히는 퇴역하여 프랑스든 영국이든 미국 대사로 활동하겠죠 일본이 미국을 공격한 이상 복권할 가능성은 높기는 합니다만 한스 같은 경우에 워낙에 정치적 치명타를 당한 상황에서 과연 높은 계급에 오를지도 모르고 루프트바페는 모르나 카이저마리네와 사이가 안 좋고 독일은 워낙 각군간의 자존심이 워낙 크고 그들의 지휘관급 역시 나치당의 고위직이니 한스 능력으로는 그것자체가 불가능하다 봅니다 물론, 육군참모총장이던 마셜이 포즈담에 참가한 만큼 가능성은 높죠

    모스크바 공방전은 아직 안 끝났다고 봐야하죠 현 상황상 이미 동맹국이든 독일군이든 모스크바 공세의 화력은 떨어졌기에 우선 재정비를 위하여 물러날 준비는 할겁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모스크바라는 맛난 케이크는 미련을 못 버릴테죠 그러니 라스푸티차가 멈춘 겨울에 한번더 공격을 감행하고자 할 겁니다 물론, 그 마지막 화력도 결국 무위로 돌아갈테고 독일군은 엄청난 피해를 당한채 소련 반격으로 쫓겨나는 신세를 면치 못할테고 그걸로 모스크바 공방전은 끝났다고 봐야겠죠 즉, 아직 한번은 더 남은거예요 아마 오토가 여기서 개고생하여 겨우 복권하였다 소련 반격받고 엄청난 공포와 고통속에 도주하는 게 나오듯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4 di******..
    작성일
    22.07.02 00:14
    No. 41

    내 리히는 프랑스, 영국 등에서 미국 대사로 활동하겟네요 일본과 미국이 전쟁이 터지면 복권하구요
    한스가 주인공이니 그래도 복권하게 될거 같긴 합니다
    하긴 카이저마리네하고도 사이가 안좋긴 하겟죠 네 한스의 적이 한 둘이 아니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증오하는자
    작성일
    22.07.01 22:00
    No. 42

    일단 리히는 퇴역하여 프랑스든 영국이든 미국 대사로 활동하겠죠 일본이 미국을 공격한 이상 복권할 가능성은 높기는 합니다만 한스 같은 경우에 워낙에 정치적 치명타를 당한 상황에서 과연 높은 계급에 오를지도 모르고 루프트바페는 모르나 카이저마리네와 사이가 안 좋고 독일은 워낙 각군간의 자존심이 워낙 크고 그들의 지휘관급 역시 나치당의 고위직이니 한스 능력으로는 그것자체가 불가능하다 봅니다 물론, 육군참모총장이던 마셜이 포즈담에 참가한 만큼 가능성은 높죠

    모스크바 공방전은 아직 안 끝났다고 봐야하죠 현 상황상 이미 동맹국이든 독일군이든 모스크바 공세의 화력은 떨어졌기에 우선 재정비를 위하여 물러날 준비는 할겁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모스크바라는 맛난 케이크는 미련을 못 버릴테죠 그러니 라스푸티차가 멈춘 겨울에 한번더 공격을 감행하고자 할 겁니다 물론, 그 마지막 화력도 결국 무위로 돌아갈테고 독일군은 엄청난 피해를 당한채 소련 반격으로 쫓겨나는 신세를 면치 못할테고 그걸로 모스크바 공방전은 끝났다고 봐야겠죠 즉, 아직 한번은 더 남은거예요 아마 오토가 여기서 개고생하여 겨우 복권하였다 소련 반격받고 엄청난 공포와 고통속에 도주하는 게 나오듯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증오하는자
    작성일
    22.07.01 22:07
    No. 43

    무엇바도 태평양 전쟁에서 미군은 300만 이상을 동원했고 사상자는 50만에 가까웠으며 전비 또한 엄청났던 탓에 이오지마 전투를 프로파간다를 하여 애국심에 다시 불을 지펴서 전시국채를 거둬들여야 할 정도로 본토조차 염전사상도 퍼졌죠 거기에 중요한 유럽전선 끝나면서 포인트제도에 따라 전역자들도 많은데 에이스였던 전역자들 다 빠져나가고 남은 인원으로 다시 부대편성하면서 전력 약화에 따라 또 한번 큰 사상자 난다? 그건 정치적으로는 자살과 다를바없죠

    분명, 루즈벨트가 소련에게 양보를 한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또 복잡하죠 소련을 의심하면서 언싱커블 작전으로 연합국이던 소련을 공격하자고한 처칠조차도 암만 극박한 상황이나 동맹을 제안하면서 미국의 랜드리스가 제대로 작동하기 전에 가장 많은 물자를 원조하였으며 1944년에는 스탈린과 퍼센트 합의를 하여 동유럽 공산화를 용인까지했고 독일을 분할하고 완전히 무력화하는 미국의 모겐소 계획과, 스탈린의 독일 분할안에도 동의하였습니다 게다가 영국은 미소를 무시하면서 점령한 이탈리아를 준 식민지 취급하였고 영국에 폴란드 망명정부를 가졌음에도 폴란드 인민정부를 공인하는 것을 안 막았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4 di******..
    작성일
    22.07.02 00:17
    No. 44

    아 태평양 전쟁에 300만 이상을 동원햇고 사상자가 50만이엇군요 생각보다 피해가 컸네요 처칠도 많은 물자를 원조햇군요
    스탈린과 합의해서 동유럽 공산화 용인햇다니 진짜 악마들이 따로 없네요 이런거보면 미국 영화 프로파간다가 다 웃기기 짝이 없네요 지들이 엄청 영웅처럼 잘싸운것처럼하면서 소련인들 갈아넣었고
    또 동유럽 공산화해서 동유럽 국가들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은 방관했죠
    뭐 외교라는게 철저하게 자국 우선으로 돌아가는거죠 미국도 애초에 2차대전의 영웅이 아니었던...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4 di******..
    작성일
    22.07.02 00:18
    No. 45

    영국이 이탈리아를 준 식민지 취급했군요 네 폴란드에 대한 영국의 대처가 참 웃기더라구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증오하는자
    작성일
    22.07.01 22:18
    No. 46

    독일분할은그 이전부터미국의 5+1 분할이나 영국의 2개국 분할안등 그 이전부터 논의되어 오던 전후 독일에 대한 다양한 처리 방안을 조정하여 얄타에서 결정지은것에 가깝고 동유럽 공산화도 그러한 조정과정에 나온거예요 거기에 프랑스를 승전국으로 하나 전범국으로 하나라는 문제에서 하나라도 동맹을 더 만들어야 하는 상황속에 항복후 상당한 프랑스 물자가 독소전에 사용하였던 점에서 소련은 프랑스에서 영유권을 주장하는게 가능하며 이탈리아에서도 영유권 주장 가능한 탓에 영국도 함부로 못하였던거예요 분명하게 소련은 가장 피 흘렸고 국토가 초토화 당하였으며 독일은 법과 제도등에서 구시대 못 벗어난 일본과 달리 의도적으로 그러한 범죄를 저질렀던 탓에 더 피해가 컸고 그건 유럽과 미국도 고려할 수 밖에 없었죠 그렇게 보면 소련에서 요구할게 너무 많은 만큼 전 루즈벨트가 그렇게 소련에게 양보라 하나 적정선을 정하였다봐요 결국 루즈벨트는 독일군의 80%를 상대한 소련에게 어느 정도의 양보를 하는 것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를 용인받았고 스탈린도미국이 주도하는 대연합에 합류하는 대신, 소련의 안보와 적대 국가였던 독일과 일본의 무력화를 보장받았거요

    루즈벨트가 죽은 후 냉 전이 본격화되던 시점에서조차 그리스 공산 파르티잔들의 활동을 통제하였으며 루즈벨트가 구상한 UN에 참가한 것만 봐도 분명 생각할 여지가 남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제외한 소련 수뇌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시장을 개방하여 과학 기술과 공산품을 받는 대신, 소련의 원자재를 미국에 넘겨주려하는등 미국과 우호를 강화하려는 것도 맞죠 그러나 루즈벨트의 죽음과 냉전이라는 스탈린이 예상치 못한 사태가 나고 스탈린과 소련 수뇌부들이 처음부터 준비한 일이 아니었지만, 루즈벨트 사후에 완충 지대로 삼으려 한 동유럽 국가들도 루즈벨트의 눈치가 보여 의회제와 시장 경제를 허용하는 인민 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하는 것으로 끝내려하던걸 어겨서 그전부터 NKVD와 GRU를 동원해 동유럽 국가들의 선거에 개입, 친소 세력이 집권하게 하는 걸 넘어 소련식 프로렐타리아 독재정을 만든 것에서 봐도 늘 준수할 것이라 떠들어 대던 얄타 합의를 자기 손으로 깨버린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죠 게다가 1946년부터 서방에 강경한 연설도 하고 이란과 터키등을 압박하는 모습에서 설사 스탈린의 시도 대부분이 서방과의 외교에서 우위를 점하고 소련의 안보를 강화하려는 블러핑이었으나, 서방 세계는 이 블러핑을 스탈린의 진심으로 받아들였고 소련이 세계 혁명을 추구한다고 믿었기에 욕심 부렸다 망한 자업자득을 하였죠 분명한건 스탈린이 그 이상을 원했다면, 루즈벨트는 스탈린과 다시 길고 긴 협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고 적어도 스탈린은 루즈벨트 구상을 좋게 받았다는 거죠 요건 역전다방에서 최근편에 다루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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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글
    작성자
    Lv.44 di******..
    작성일
    22.07.02 00:22
    No. 47

    서방이 동유럽 공산화에 동의해놓고서는 냉전한거 참 웃기네요 국익때문에 그랫다는건 알겟는데 여태까지 전쟁 영화가 다 프로파간다라는건 잘 알겠네요 솔직히 말해서 소련이 제일 싫기는 하지만 미국, 영국 둘다 피 많이 흘린게 자업자득같네요 뭐 자기 국익에 최우선으로 하는건 맞다만 최소한 잘난척은 안했으면...미국 전쟁 영화에서 맨날 유대인만 천사처럼 그리는거보고 동유럽에서 비난하는게 이유가 있네요
    제가 볼땐 서방 세계가 스탈린을 진심으로 믿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방 정치인들은 저능아가 아니죠 알면서도 묵인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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