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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무협

RamiNix
작품등록일 :
2022.06.29 16:22
최근연재일 :
2022.10.16 17:17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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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629

작성
22.07.20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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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2 서이국에서 온 아가씨 (01)

DUMMY

“여기 튀긴 닭 반 마리여!”


대충 자리를 잡고 등짐을 푼다. 등판을 덮는 갈색이 살짝 섞인 연한 흑발이 바람결에 나풀거리자 손으로 대충 잡아 높이 올려 묶어버린다.


“......다잖아, 글쎄.”


“......에이.......아무렴......싸늘하다지만......”


쫑긋, 귀를 세우니 멀지 않은 자리에서 두 남자의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린다.


“아 글쎄, 진짜래두! 지금 관아에서 나와서 조사 중이야!”


“말이 되는 소리를. 신선이 아니라 신선 할애비여도 그건 불가능해.”


대수롭잖게 흘려도 될 법한 두 농군의 이야기지만 촉이 좋은 그녀의 귀는 민감하게 중요 정보를 포착해낸다.


“안녕하세요?”


싱긋 웃으며 갑자기 나타난 아가씨를 두 농군은 멍하니 쳐다본다. 이런 시골에서는, 아니 나가본 적은 없지만 아마 대도시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미색임에 분명하다. 얼굴의 반을 차지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짙고 아름다운 큰 눈, 오똑한 콧날, 한가득 미소를 머금은 매력적인 입매.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선녀신가?”


“방금 왔는데여, 뭐 좀 대답 듣고 싶은 게 있어서여.”


싱글벙글 웃으며 말하는 그녀를 잠시 지켜보던 농군이 무릎을 탁, 하고 친다. 무언가 슬쩍 부정확한 발음과 곰곰이 뜯어보면 자연스럽지 못한 문장의 연결.


“그래. 이 나라 사람은 확실히 아니구먼. 이름이 뭔가?”


“어? 어떻게 아셨어여? 저 서이국에서 왓서요. 이름은 시엔이예여, 안시엔.”


“허허, 이 나이 먹으면 딱히 별 재주라고까진 할 건 없지만 젊은이들은 대충 보기만 해도 파악이 되지. 그리고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아가씨 말하는 게 티가 나는데.”


본인의 예상이 적중하자 기분이 좋은 듯 막걸리를 한 사발 주욱 들이킨 농군이 기분 좋게 웃어 재낀다.


“한어 익히느라 고생이 많았겠어. 그래, 뭐가 그리 궁금해서 어렵게 입을 여셨나?”


반대편에 앉은 농군이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묻자 안 그래도 큼지막한 그녀의 눈이 더욱 커진다.


“어, 있잔아여, 아까 하신 말씀 중에서 그... 수도로 향하는 길목에 그 ...무슨 고개? 산 너머에 무슨 일이 있다고 하셨-----”


“헛소리야, 헛소리! 아가씨, 그런 소리는 하나도 믿을 게 못된다우.”


그녀의 말을 끊고 농군이 막걸리를 한 사발 더 들이켠다. 몸짓과 표정은 그야말로 ‘더 이상 대꾸할 가치가 없다’ 라는 걸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앞자리에 앉은 다른 농군이 혀를 끌끌 차며 전 하나를 집어 우물거리더니 입을 연다.


“사람하고는. 말이 안 통하는데 뭘 더 말해서 무엇 하누. 쇠귀에 경 읽기지. 아가씨, 이름이 시엔이랬나? 좀 들어봐봐. 이 앞 너머 고개에 그래, 아가씨가 말한 그 고개가 그러고 보니 경성으로 향하는 길목 초입이 맞구먼. 여튼, 그 길목에 글쎄 갑자기 겨울이 왔어, 겨울이! 산 전체가 얼음으로 가득한 게 모조리 얼어붙어 버렸다구!”


“음? 지금은 아직 초가을인데여.”


“글쎄 그걸 누가 모르나! 그러니까 조홧속이라는 거지! 아마 내 생각엔 어느 신선과 요괴가 대판 붙어도 단단히 한판 벌인 모양이야!”


“에라이, 예끼! 날씨를 바꾸는 게 어디 신선이 한두 명 들러붙어서 될 일인가! 재수 없으면 길 가다 만난 요괴에게 잡아먹히고 인생 종치는 험한 세상이라지만 자네 말은 너무 과장이 심해! 아무리 가을이라지만 얼음은커녕 눈도 생각하기 힘든데...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아직 단풍도 다 안 내려 왔다고.”


“아가씨, 여기 닭 나왔어!”


아직도 티격태격하는 두 농군을 뒤로하고 시엔은 조용히 자신의 상 앞으로 되돌아온다. 방금 튀긴 듯한 따끈따끈한 닭이 먹기 좋게 토막 나 있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이 뭔가 이상하다. 두리번두리번, 큼지막한 조각 하나하나를 들춰보던 그녀가 살짝 울상이 된 얼굴로 주모를 찾는다.


“저기여, 머리가 없는데여?”


“으응? 에그머니, 뭔 소리를 하는겨, 시방? 머리는 원래 없는 거지.”


“머리 되게 맛있는데?”


“워메. 이 아가씨 이쁘게 생겨서 식성 한번 고약하네. 그 통통한 살 잔뜩 앞에 놔두고 머리를 먹겠다구? 대체 어느 나라 식성이여 그게?”


시무룩해져 있는 시엔을 보고 혀를 끌끌 찬다. 주막 일을 오래 한 사람답게 주모는 곳곳에 상을 내가면서 저기 대낮부터 농사일은 팽개쳐둔 채 술만 퍼먹고 앉아있는 두 한심한 놈팽이들이 실없이 안주 삼아 하는 헛소리를 대충 귀동냥해 들은 모양인지 그녀가 이 나라 사람이 아닌 것쯤은 이미 알고 있는 눈치다.


“우리나라도 저어기 끝 쪽 추운 지방으로 가면 먹는다고는 들었는데 실제로 달라하는 사람을 보는 건 장사하면서 처음이구먼. 기다려봐! 튀길 때 같이 튀기고 목을 잘라내는 거니까 소쿠리에 모아둔 게 있긴 있을 거야. 거참, 특이한 아가씨 다 보겠네.”


말은 다소 거칠게 하지만 잠시 뒤 주막 부엌에서 나온 주모의 손에는ㅡ보기에 그리 썩 좋아 보이진 않은ㅡ튀긴 닭 머리가 담긴 접시 하나를 들고나온다. 어차피 다른 이들은 안 먹는 부위고 내버려 두자니 쓰레기라 오늘 하루 장사하며 모아둔 닭대가리는 모조리 들고나온 듯했다.


“우아, 감사합니다!”


시엔이 얼마 나오는 것 같지도 않은 살점을 뜯는 것을 잠깐 보고 있던 주모가 고개를 돌려버린다. 처음엔 반 장난인 줄 알았는데 가져다준 닭대가리를 신나게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정말로 괴이하긴 괴이했나 보다. 하긴 한족은 통통한 살점을 주로 선호하니 ‘키우는 개나 있으면 주기 좋겠다’ 라고 생각하던 쓸모없는 부위를 예쁘장하게 생긴 처자가 눈이 돌아가 허겁지겁 먹는 모습은 주모에게는 정말로 희한하게 받아들여질 법했다.


“이 마싯는 걸 왜 한족들은 안 먹지.”


대가리를 갈라 그 안 내용물까지 싹싹 먹은 후에야 비로소 닭 날개를 집은 시엔은 우물우물 살을 씹으며 머리를 굴린다.

그러니까 고개 하나가 갑자기 한겨울이 된 것처럼 얼어붙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날씨는 초가을. 사실 초가을이라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다. 아직도 오후엔 해가 쨍쨍하기만 하니 오히려 늦여름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터. 다만 산이 많은 이 한국은 밤이 되면 기온이 뚝 떨어져 버리는 바람에 이 구월의 날씨는 무어라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렵다. 여튼 이런 날씨에 겨울이 왔다구? 그것도 산이 하나가 얼어버릴 정도로?


“음냐... 말이 안되는데에.”


배가 고팠는지 어느새 닭의 절반을 먹어 치우고 있다. 간간이 나오는 헛손질. 생각에 잠겨 반사적으로 손을 놀리는 게 분명하다. 그 단적인 예로 멀리서 주모가 근처 사람들을 모아 그녀의 특이한 식성을 두고 손가락질하며 화제 삼고 있어도 시엔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흠... 경성으로 가려면 그 고갤 넘어야 하는데... 어떡하지. 다른 길도 있긴 하지만 너무 돌아가 버려서 시간이 두세 배는 걸릴 테고... 괜히 무리하게 고개를 넘으려다가 못된 요괴나 나쁜 신선이라도 만나면...’


닭을 뜯다 말고 시엔은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그런 일은 절대로 사양이다. 애초에 그들은 자신같이 평범한 인간과는 그 힘의 크기가 차원이 달라 무슨 상황이 되었건 간에 얼결에라도 휘말렸다간 손해만 보기 십상이다. 이 신선이라는 것들도 이 한국이란 나라엔 어찌 그리 많은 건지. ‘산수지리가 수려하고 기운이 강해 인재들이 많은 나라’ 라고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막상 와보니 이건 그 정도가 지나치다.

남자라면 신선, 여자라면 선녀라 불리는 이 선인들은 평범한 이들과는 달리 몸 안에 품고 있는 기력이 월등히 강해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쉬이 해내는 이들이다. 선인들은 다양한 생명체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 자신들이 가진 힘을 십분 발휘해 곳곳에서 사람들을 도왔다. 신성한 부적을 사용해 의학적 치료가 불가능한 병자를 낫게 한다던가, 착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못된 요괴들을 처치한다던가, 어딘가에 있다는 하늘로 향하는 문을 지킨다던가. 나라님을 직접 모시는 이들도 있고 마을에서 일종의 지도자 노릇을 하는 자들도 있었다. 또는 조용히 산속에 숨어 살며 그저 수련에 수련을 거듭하는 자들도 있고. 그리고 세상 이치가 그렇듯 양이 있으면 음도 있는 법. 보잘것없는 힘만을 믿고 다른 이들을 핍박하여 이익을 취하는 나쁜 놈들도 종종 존재했으며 심지어는 요괴와 결탁해 심각한 악행을 저지르는 놈들도 있었다. 그런 놈들은 신선... 이라고 하기보단 그저 잡무당 정도로 부르는 게 적당하겠지.

문제는 그런 이들이 너무 많다는 거였다. 큰 마을마다 관아가 있다고 해도 일일이 그런 놈들을 찾아다니며 처단하기엔 한계가 있다. 게다가 굳이 그런 놈들이 아니더라도 산속 곳곳에 무리 지어 진을 치고 도적질하는 놈들은 또 어찌 그리 많은지. 시엔도 여행을 하면서 위험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나마 어릴 때 무예를 배울 기회가 있어 어찌어찌 겨우 제 한 몸 지킬 정도는 되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여자 혼자 일행도 없이 한국을 여행할 생각은 도저히 하지 못했으리라.


“그래, 아가씨 닭은 다 먹었어?”


무의식중에 다 먹은 빈 그릇을 한참이나 헤집고 있던 손가락이 그제야 멈춘다. 헤헤. 이놈의 식성, 너무 좋아서 탈이다. 언제 다 먹은 거지? 고개를 들어보니 주모가 앞에서 말을 걸고 있었다.


“아, 네에. 정말 맛있었어여.”


끄응, 하는 표정으로 주모가 접시 하나를 내밀자 그 안에는 닭의 생고기와 주문한 적도 없는 주먹밥이 두어 개 더 들어있다.


“이거 저 작자들 방금 안줏거리로 닭 시킬 때 몰래 조금 떼서 회로 쳐봤거든? 한번 먹어볼려? 나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옛날에 우리 시엄니가 어릴 때 살던 마을에선 잔치가 있을 때마다 닭 머리랑 닭 회가 꼭 상에 올라왔었다고 얘기하시던 게 떠오르더라고. 그래서 한번 흉내 내본 건데 아가씨가 이런 것도 먹으려나 모르겠네. 아, 주먹밥은 그냥 남는 걸로 대충 만들어 본 거야.”


“우아, 감사합니다! 고마워여!”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가 받아들자 주모는 속 편한 미소를 짓는다. 타지에서 온 이방인의 식성을 두고 동네 사람들끼리 속닥거린 게 내심 미안했나 보다. 뭐 본인이 그것을 눈치챘는지는 둘째치더라도. 그렇게 나름 만족스럽게 웃으며 가려는 주모의 등 뒤에다 불쑥 시엔이 말을 건다.


“근데 저기여, 아주머니.”


“으응? 왜?”


“그 있잖아여, 요 앞에 고개가 얼어붙었다는-----”


설레설레. 손사래를 치는 주모가 단언한다.


“뻥이야, 다 뻥. 부엌 입구만 해도 더워서 못 들어갈 이 늦여름에 얼음은 무슨 얼어 죽을. 농사일에 지친 농군들이 심심해서 지어낸 헛소리지 뭐. 관에서 조사를 나왔다구? 높으신 양반네들이 비싼 쌀밥 처먹고 할 짓이 없어서 조사를 나와?”


주모의 말은 시엔에겐 묘하게도 굉장히 설득력 있었다. 실제로 줄곧 의식하면서 살펴보고 있었던 건 전혀 아니었지만 분명히 주모는 딱 한 번 자신에게 줄 닭 머리를 가지러 갔을 때를 제외하곤 부엌의 입구조차 얼씬하지 않았으니까. 그녀의 서방인 듯한 사내가 황당하게도 열기로 가득한 무더운 부엌 안에서 일을 보고 있는 것 같았는데―그건 뭐 이 집의 사정이고―일손을 돕기는커녕 마치 남의 주막에 놀러 온 손님인 양 널찍한 평상에 기대앉아 거친 부채질과 함께 ‘더워죽겠네’ 을 연발하는 주모는 ‘얼음 따윈 없다’ 를 온몸으로 웅변하고 있는 듯했다. 자신의 모국인 서이국이나 이곳 한국이나 남자는 부엌일을 거의 하지 않는 게 일반적인 경우인데 이 집은 정말 남자가 에지간히 능력이 없나보다, 라고 시엔은 생각한다.


‘헤에... 뭐야. 가도 되겠네, 그럼.’


만족스런 표정으로 마지막 남은 닭의 머리를 뜯은 시엔은 시원하게 결단을 내렸다. 그래, 이 날씨에 겨울이라니. 말도 안 되지. 일정이 급해서 나도 모르게 신경이 조금 날카로워졌었나보다고 속 편히 생각한 시엔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배도 든든하니 빨리 고개를 넘으면 날이 저물기 전엔 다음 마을에 도착할 수 있을 터였다. 산 넘어간다고 평소 안 먹던 비싼 닭도 시켜 먹었으니 돈값은 충분히 해야 했다. 사실 한 마리는 좀 부담스러운데 주막이 꽤 크고 장사가 잘되는 편이었는지 반 마리 주문이 가능하다는 말에 충동적으로 시킨 것이긴 하지만.

점심값을 치르고 서둘러 마을 어귀로 길을 나선다. 그녀의 신조는 ‘행동이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것’. 그래, 무언가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가능한 빠르게 그에 맞춰 움직여 줘야 좋은 결과가 뒤따르는 법이다. 아버지가 늘 말씀하셨던 것처럼 말이야.


“좋아, 가볼까~?”


그리고 정확히 여섯 시간 뒤, 산 중턱에 도착하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의 빠른 결단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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