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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석케어93 님의 서재입니다.

거짓말과 신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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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석케어93
작품등록일 :
2024.02.22 18:26
최근연재일 :
2024.03.10 08:00
연재수 :
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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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수 :
77,872

작성
24.02.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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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5화

DUMMY

“이봐, 잠자긴 이르다고.”


뺨에서 느껴진 아픔에 눈을 떠보니 채광장이 아니었다.


정신 병동을 연상케 하는 밀폐된 새하얀 방.

남녀 한 쌍이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남자 쪽의 대략적인 나이는 40세 중반, 신장 165cm로 추정. 땅딸막하지만 터질듯한 근육을 보유하고 있다. 광부들과 비슷한 체형에 친밀감마저 느껴진다.


옆의 여자의 생김새는 평범했지만, 특이하게도 페이지가 듬성듬성 찢어진 공책을 들고 있었다.


“아야—야···”


뜨거워진 볼을 만져보려 했으나, 손이 뒤로 강하게 결박되어 있었다.



“당신들은 테러범인가요?”


사내는 어이없다는 듯이 코웃음 쳤다.


“누가 신의 자식이 아니랄까 봐 이런 상황에서도 동요하지 않는군.”


······이 남자 유쾌한 오해를 하고 있네.

나는 신의 자식이 아닌데.


딱히 정정해줄 이유가 없었기에 조용히 했다.

다른 의도로 받아들였는지, 사내가 한숨을 내쉰다.


“‘델피니에’라고 들어봤나?”

“아뇨, 처음 들어요.”

“이거 무지한 녀석이구만. 테러 단체 중에서는 나름 유명한데 말이야.”


간략하게 상황을 요약하면 채광장을 습격한 사람들은 ‘델피니에’라는 단체이고, 나는 그들의 거처로 납치되었나 보다.


“저는 무슨 용건이 있어서 데려왔나요?”


방치했으면 알아서 도망쳤을 텐 데.

그들은 시선을 교환했다.

집중해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여자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가 대답한다.


대변인도 아니고.


“너는 지금 어중간한 위치에 놓여있다는 걸 알고 있냐?”

“제가 요?”


한 번 너의 입장을 알려줘야겠군, 하며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CDF를 죽였잖냐? 위험 해 보여서 데려오기는 했지만, 도시에서 보낸 스파이일지도 모르니 심문할 거야.”


실제로는 고문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방을 둘러보았으나 다행히 도구는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진행되나요?”


내심 궁금해서 질문을 하자, 그가 여자 머리에 손을 올렸다.


“보통이라면 질문을 할 때마다 이 녀석이 능력을 사용하지.”


공책의 존재 이유는 신무를 위해서 구나.


별로 숨기는 것도 없다. 무엇을 묻더라도 허심탄회하게 답해줄 생각이다.

‘보통이라면’ 이란 단어가 찝찝하지만.


“시작하세요.”


이제까지 말했던 내용과 다르게 사내는 고개를 흔들었다. 대신 드디어 여자 쪽이 무거운 입을 열었다.


“불가능해요.”


나를 바라보는 시선.

본인이 신의 자식이면서, 그 이상의 정체 모를 무언가를 조우한 두려움 섞인 시선이다.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닫기를 몇 차례.

침을 한번 삼킨 그녀가 입을 열었다.


“당신의 머리 속에는 마치··· 검은 안개 같은 무언가로 둘러 쌓여 있어요. 그것 때문에 생각을 읽어낼 수도 없고요······.”


검은 안개라.

광산에서 마주쳤던 실체 없는 덩어리를 말하는 거겠지.

······허락도 없이 남의 머리 속으로 침입하기는.


불쾌하다.

지금은 덩어리의 환청이 들리거나, 두통이 느껴지지 않는다.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그 검은 안개가 저에게 말을 걸더군요. ‘신을 죽여라.’ 라고요.”


설명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담배를 피기 시작한 사내.

지루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그는 여자의 설명이 끝나자, 빨아들였던 연기를 밖으로 토해내었다.

빡빡한 연기가 내 얼굴에 감싸였고 시야는 금세 뿌옇게 되었다.


“네가 뭐 하는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해가 일치하더군. 꽤나 잘 날뛰기도 하고 말이지.”


순전히 이름 모를 광부의 악몽 내용이 좋았기 때문이다.

다음에 능력을 사용하더라도 이번과 같으리라 장담 못한다.

시원치 악몽이거나, 최악의 경우 주변에 악몽을 꾼 사람이 없으면 있으나 마나 한 능력이다.


“아까 내가 보통이라고 했지? 보통을 벗어난 너 같은 괴물 따위 그냥 죽여버려. 그게 골머리를 덜 썩으니까 말이야.”


죽을 이유가 없지만, 딱히 살아갈 이유도 없다.

오히려 좋은 기회일지도 모르겠네.


“좋을 대로 하세요.”

아프게 만 죽이지 않는다면 상관없다.

테러범이니 인체 급소도 잘 알고 있겠지.

단칼에 즉사하길 바란다.


깨끗하게 단념하자, 그는 나를 별종이라도 보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실력 빼고는 미친놈 이구만.”

“잘 모르겠네요.”

“이래서 신의 자식 놈들이 싫어. 어쨌든 나의 팀에 들어와라. 그러면 무마 시켜줄 수 있어.”


어디서 부터 어디까지 무마 시켜준다는 건지.

사전에 대화를 나눴는지 여자 쪽은 가만히 있는다.


“어떤 능력을 가졌든, 신무든 상관없어. 어떻게 하겠어?”


무턱대고 들어가서 고생하고 싶지 않다. 정보를 모으고 판단해도 늦지 않겠지.

어디까지 답해줄지 몰라도 한번 질문해보자.


“팀이라 했는데, 몇 명이죠?”


꿈틀.

담배를 끼운 손가락에 미약한 경련이 일었다.

손과는 상반되게 그는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

“현재는 2명, 내일 증원 될 1명. 원래는 두 명 더 있었지만 뒈져버렸지.”


그 이상의 자세한 내용은 들려주지 않는다.

뭐, 테러범이니 총이라도 맞아서 죽었겠지.

나까지 합하면 4명이구나.


다음 질문.


“채광장은 왜 습격하셨나요?”


아타르는 산간 외지에다 유명하지 않은 도시다.

특히 채광장은 습격해서 무슨 이득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쓴 웃음을 지었다.


“훈련이 끝난 신입들의 첫 임무였지. 단순히 운반하면 되는 일이었는데, 어디서 틀어졌는지 원—"


사격 솜씨가 뛰어났던 그들이 신입이라니.

그렇다면 이 사내는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졌을 지 내심 궁금하다.


결과론 적으로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다른 도시의 CDF대원들은 모르겠지만,


아타르의 CDF는 체계 성도 없고 공적에만 열을 올렸으니 말이다.


“아. 신의 자식 한 명이 있었는데, 그 분도 신입이었나 보네요.”


어중간한 실력으로 광부를 구하려 했던 여자. 결국 산산조각 나 버렸지.

불문율 이었는지 사내가 ‘아차’라 중얼거리며 이마를 짚었다.

잠자코 있던 여자가 바닥을 발로 찬다. 분노로 인해 실내의 기온이 급락한 느낌이다.


“——아니야.”


내 머리 속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때 망설임과 무감정의 비율이 4:6이라면,

지금은 분노와 무감정으로 7:3 정도.


제 화를 못이긴 그녀가 이를 갈며 다음 말을 내뱉는다.


“걔는 신의 자식인데도 우리와 다르게 많은 감정이 남아있었고 착했어. 신입끼리 투입되는 게 걱정된다면서 따라간 거였는데······”

“그게 상관이 있나요?”


나는 신의 자식이 아니다. 선천적으로 감정이 옅을 뿐이다.

직설적으로 물어보자, 여자 대신 사내가 대답해 주었다.


“——어이 진짜 몰라서 묻는 거냐?”


그는 담배를 빨아들였다가 재차 내뱉고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신의 자식 놈들은 편차가 있지만, 죄다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짓거리만 하거든. 불쌍한 녀석만 죽어버렸지.”

“그럼 그 여자 분 말고 다른 선임 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데요?”

“나는 다른 지역의 임무에 투입되었고, 다른 선임 팀은 저격수를 처리하고 있었지. 전부 처치했을 때는 이미 늦었 다더군.”


다음 질문이다.

이번에는 어디까지 정직하게 대답해줄지 궁금해서 하는 질문이다.

대답을 안 해주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여기는 어디죠?”


정신 병동을 연상케 하는 밀폐된 새하얀 방. 내 기억 상 아타르에 이렇게 청결한 건물은 없었다.

예상과 달리 그는 선뜻 대답을 해 주었다.


“버려진 도시 중 하나야.”

“어떻게—···”


도시 밖에는 항상 검은 무리가 상주 해서 걸어서 이동할 수 없다. 유일한 방법은 지하철과 항공밖에 없다.

기절한 나를 탈것으로 데리고 왔다면 눈에 띄었을 텐 데.


내가 뒷말은 흐렸음에도 질문의 의도를 알아챈 그가 희미하게 웃는다.


“공간 이동계의 신의 자식 놈이 있거든.”


그것 참 편리한 능력이네. 잠시 집에 다녀오게 해 달라고 부탁하면 들어주려나.


······아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몰라도, 지금이면 이미 집에 CDF가 들이닥쳤겠지.

애초에 가지고 올 물건도 없고, 들키면 안 되는 물품도 없으니 상관은 없다 만.


나의 질문은 슬슬 막바지에 다다른다.


“당신의 팀에 들어가면 무엇을 하게 되는 거죠?”

“한 달 동안 훈련과 그에 관련된 지식을 때려 박고, 남은 2달은 실전에 투입돼.”

“실전이라면?”

“처음은 채광장에서 봤던 것과 같은 짓거리를 하고, 이후에는 아타르에 강림하는 신을 죽이겠지.”


델피니에의 목적은 신을 죽이는 거구나.

그제서야 사내가 이해가 일치한다고 말했던 이유를 이해했다.

훈련 1달, 실전 2달이면 빡셀것 같은데.


좋아. 이제 마지막 질문이다.


“꽤나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저는 괜찮을까요?”


듣지 말아야 할 기밀의 일부도 들어버린 기분이다.

질문이 우스웠는지, 그는 하핫 하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너가 수락하지 않으면 심문이고 나발이고 지금 죽여버릴 거니까.”


재빠르게 담배를 꺼낸 반대편 주머니에서 튀어나온 단검.


타악.

책상을 살짝 찍었음에도 수직으로 섰다.

어쩐지 술술 털어놓는다 했는데, 그럴 속셈이었구나.


“다시 한번 말해주지. 너는 어중간한 위치에 있어. 살기 위해서는 내 팀에 합류하는 수밖에 없지. 어떻게 하겠나?”


내가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기억되어야 한다.

홀로 도망치는 신세보다는 기회가 늘어나겠지.


솔직한 심정으로는 싫다.

혼자가 편하고 훈련도 귀찮을 것 같다.


하지만.

거절을 했다간 덩어리가 나를 괴롭히겠지.

지금도 싫다는 생각을 가지니까, 스멀스멀 두통이 몰려든다.


······정말 선택지 없는 선택이구나.


“합류할 게요.”


대답을 내놓자, 사내는 필터까지 타 들어간 담배를 책상 위에 찌그러뜨렸다.


“좋은 선택이야. 거절했다간 우선 혓바닥부터 잘라버렸을 거 거든.”


이 남자, 웃는 얼굴로 터무니없는 발언을 하네.


“그럼 본격적으로 심문하러 가볼까?”


그는 고개를 돌려 옆의 여자를 바라본다.


“어이 알고 있지?”

"알아. 말 맞춰 달라는 거잖아."

“그에 상응하는 보수를 지불할 테니까, 좀 봐 달라고.”


이어서 뒷 주머니에서 천 봉투를 꺼내었다.

이토록 유용하게 주머니를 활용하는 사람은 처음 보네.


“혹시 몰라서 말하는데, 도망칠 생각은 단념하는 게 좋을 거야.”

“도망칠 생각도 없었어요. 그래서 이유는 뭔가요?”

“너의 몸에 위치 추적기를 심어 놓았거든.”


기절한 사람의 육체에 무슨 짓을 해 놓은 건지.

어떻게 주입했는지 상처는 없고 통증마저 느껴지지 않는다.

천천히 머리 위로 봉투가 내려온다.


“아.”


깜빡했었다.


"제 이름은 무명이에요. 당신의 이름은 뭐에요?"


참나 요즘 망할 세상에 어울리는 망할 이름이군. 그가 불만 어린 어조로 투덜거린다.


“여기서는 본명을 알려줄 생각하지 말고, 들을 생각도 하지 마. 애초에 서로를 코드네임으로 부르니까 너도 생각해 두라고.”


머리에 봉투가 완전히 씌워졌다.

수많은 미세한 구멍을 통해 빛이 들어오고.


“델피니에에 가입한 걸 빌어먹게도 환영한다.”


사내는 심술궂게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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