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설호의 서재입니다.

미령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설호(雪虎)
작품등록일 :
2011.04.03 23:48
최근연재일 :
2011.04.03 23:48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13,806
추천수 :
1,256
글자수 :
98,359

작성
11.03.05 16:24
조회
2,609
추천
39
글자
7쪽

미령(美靈)-17

DUMMY

잠시 후 여자가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뭔가가 공기를 빨아들이는 것 같은 짧은 바람소리가 들렸다. 생각해 보니 그것은 전에도 들었던 소리였다. 그것이 궁금해진 영욱은 노크를 했다. 하지만 대답이 없었다. 다시 한 번 노크를 해도 대답이 없자 영욱은 살며시 문을 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방금 전 방에 들어간 여자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고 방안은 예전처럼 텅 비어 있었다. 그런데 영욱이 다시 문을 닫으려고 할 때였다.

“뭐해요?”

갑자기 뒤에서 들려 온 여자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영욱은 멍하니 천청만 바라보았다. 도대체 누구이기에 가끔씩 꿈에 나타나 자신을 괴롭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옛날 소싯적에 아버지가 해준 이야기가 생각났다.

“꿈에서 보는 사람은 자신과 관련이 있거나 앞으로 만날 가능성이 많다고 하더라.”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꿈에서 본 여자의 행동은 도저히 정상적으로 볼 수 없는 것이었다. 갑자기 겁이 난 영욱은 이불을 끌어당겼다. 아직 시간이 일러 얼굴만 내놓고 잠을 청하려 했지만 이미 달아나버린 잠은 점점 멀어질 뿐이었다. 거의 한 시간 넘게 침대에서 이불과 씨름을 하던 영욱은 창밖이 완전히 밝아오자 그제야 일어나 침대를 정리했다. 세수를 끝내고 거실로 나가려던 영욱은 문 위에 붙어있던 부적을 발견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공짜라서 효험이 없나?’

방에서 나와 여전히 켜져 있는 거실과 주방의 불을 끄고 라면을 끓이던 영욱은 닫혀있는 작은방이 궁금했다. 조마조마 했지만 방문을 열어보니 텅 비어있었다. 하지만 전과는 달리 뭐라도 금방 튀어 나올 것은 기분이 들었다. 방문을 열어 둔 채 라면으로 아침을 때운 영욱은 방을 비워 놓아서 그런 것 같아 건넌방에 있던 옷걸이를 갖고 와 당장 입지 않는 옷들을 걸었다. 그래도 허전한 느낌이 들자 방문이 닫히지 않도록 쌀통으로 바쳐 놓았다. 거기에 청소기와 자주 쓰지 않는 것들을 갖다 놓으니 이제는 제법 구색을 갖춘 것이 허전해 보이지도 않았고 조금 전처럼 꺼림칙하지도 않았다. 집안 청소를 끝낸 영욱은 인터넷에서 받아놓은 공모전 파일을 열었다.

‘많이들 응모하겠지?’

대학 때 글을 좀 써보긴 했지만 한 번도 누구한테 서평을 받아 본 적이 없어 어떤 식으로 써야 할지 몰라 인터넷에서 각종 공모전에 당선된 글들을 찾아 읽어보았다. 몇 편을 읽고 난 영욱은 그 정도 글이면 자신도 충분히 쓸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됐다.

‘별것 아니네.’

물론 오래지 않아 자신의 한계를 깨닫게 될 것이지만 지금의 영욱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런데 어떤 얘기를 쓰지?’

막상 워드프로세서를 열어놓고 시작을 하려고 했으나 무엇을 소재로 할지 막막했다. 그것을 생각하느라 한 시간 가량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더니 이내 꾸벅꾸벅 졸기를 20분,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컴퓨터를 끄려고 하는데 옆에 있던 핸드폰에서 진동음이 들려왔다. 지은이였다. 영욱은 들뜬 마음을 억누르고 전화를 받았다.

“오랜만이야.”

“안녕하셨어요?”

“그럼. 그동안 잘 지냈어?”

“네.”

“몸은 좀 어때?”

“이제 괜찮아요.”

지은의 목소리는 전보다 훨씬 생기 있게 들렸다. 영욱은 곧 만나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 병원엔 안 가도 되는 거야?”

“정기적으로 검사만 받으면 돼요.”

“아직도 검사를 받아야 해?”

“혹시 다른 합병증 생길까봐 그러는 거죠.”

“그렇다면 다행이지.”

전화를 하는 내내 영욱은 이번엔 지은을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그녀도 혼자가 됐고 자신도 그러하니 어쩌면 하늘이 준 기회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럼 이제 밖에 외출도 하겠네?”

“그건 아직요.”

“다 낫다며?”

“그렇긴 한데 아직 밖에 나다니기가 조금은 불편해서요.”

영욱은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지은의 말은 외견상으로 나타나는 흉터보다도 남들 눈에 뜨일 정도의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그렇다고 대 놓고 물어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전무님은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작가가 한번 돼 볼까 생각중이야.”

“작가요?”

“응. 인터넷에 보니까 신인작가 공모전이 있더군. 그래서 한번 응모해 보려고.”

“좋죠. 전무님 예전에 사보에 글 올리신 적 있죠?”

“그거야 서너 페이지짜리였는데 뭐.”

“그래도요. 잘 되실 거예요. 워낙 글재주가 좋으시잖아요.”

지은의 칭찬을 들은 영욱은 우쭐해져 그녀의 상태를 궁금해 했던 일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글쎄 두고 봐야지.”

“아무튼 일거리를 찾으셨다니 다행이네요.”

“지은이도 아직 나이가 있는데 뭔가 해야지.”

“그건 천천히 생각하기로 했어요.”

영욱은 이혼했다는 것을 말할까 말까 망설였다. 비록 나이 차가 좀 나긴 하지만 한때 배우자로 여겼던 여자였고 지은이 정도라면 다른 남자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기에 자칫하면 놓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지은의 상태가 어떤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의 이혼 사실을 털어놓기엔 무리가 있었다. 영욱은 그녀에게 아직은 정신적 충격이 남아 있을 테니 당분간 재혼 같은 건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다음을 기약했다. 전화를 끊고 응모작의 소재를 무엇으로 할까 생각하던 영욱은 공모전 안내문에 나와 있는 문구를 보고 해답을 찾게 되었다.

‘그렇지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것을 이야기로 쓰면 되겠다.’

소재가 정해지자 마침 빈속도 채울 겸 점심을 준비했다. 준비래 봐야 혼자 사는 이혼남의 점심이었기에 마트 식품 코너에서 사온 김치와 밑반찬 두어 개를 꺼내 놓는 것이 전부였다. 냉동실에 적어도 2주는 됐음직한 꽝꽝 얼어버린 삼겹살도 있었으나 구워먹기가 귀찮아 거의 있는 걸로 대충대충 끼니를 때우곤 했다. 궁상맞은 설거지를 끝내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은 영욱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점심 먹기 전에 제목만 입력했을 뿐인데 워드프로세서 편집 창엔 서너 페이지 분량의 글이 쓰여 있는 것이다. 전에 썼던 파일을 열었던 것이 아닌가 하여 날짜를 확인해보니 아주 오래전에 글이나 한번 써볼까 했다가 포기했던 그 파일이었다. 그런데 글을 읽어보니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문맥은 물론 자신도 생소하게 느껴지는 미사어구가 읽으면 읽을수록 그 속에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다. 영욱은 어쩌면 옛날에 파일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미처 지우지 못한 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96 키티비
    작성일
    11.03.08 13:06
    No. 1

    네 잘 봤습니다. ~ 앞선 분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한 문단을 약 4줄 정도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나이 먹어서 그런가 읽기가 조금 힘들다는...^^;; 내용은 정말 좋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6 풍산
    작성일
    11.03.18 11:16
    No. 2

    지선이라는 여자도 죽은 듯한 분위기가 나네요.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미령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 미령(美靈)-2 +3 11.02.22 3,418 23 7쪽
1 미령(美靈)-1 +2 11.02.22 4,697 32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