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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 님의 서재입니다.

음영잔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임제
작품등록일 :
2012.05.15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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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04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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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

DUMMY

새벽 무렵.

육전호는 습관처럼 눈을 떴다.

한참 깊은 잠을 잘 시간이어서인지 모옥 안은 훈련생들의 코 고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침상에 앉아 잠시 숙소 안 풍경을 바라보던 육전호는 자신의 검을 챙겨들고 조심스레 방문을 나섰다.

서늘한 공기가 폐부를 가르자 머릿속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초여름이라고는 하지만 깊은 산중의 새벽 기운은 쌀쌀했다.

시퍼런 달빛이 연무장을 비추고 있었고 그 뒤로 산 그림자가 어두운 숙명처럼 길게 드리워져있었다.

초원의 밤도 그랬었다. 그때, 열다섯의 어린 육전호는 다시는 가족들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에, 저 달빛을 보며 불면의 밤을 보냈었다.

그런 그를 애처롭게 여긴 것일까. 유세명이 자신의 무공 몇 가지를 전수해 주었다. 무사히 살아남아 가족들 품으로 돌아가길 바란다는 말과 함께.

고향의 무관에서 익힌 기초적인 운기토납법과 실전에서는 무용지물인 삼 초식의 검법 밖에 모르던 육전호에게 유세명이 가르쳐 준 무당파의 무공은 전혀 새로운 경지의 것이었다. 하지만 전쟁터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는 차분하게 무공을 익힐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때문에 자는 시간을 쪼개어 가면서 수련을 해야 했다.

그렇게 어렵게 익힌 유운검법과 유운신법은 초원의 적들에 의해 늘 위태롭던 그의 목숨을 여러 차례 구해주었다.

또한, 무당파 고유의 신공이나 심법은 배울 수 없었으나 유세명의 몇 가지 조언에 의해 육전호의 운기토납법은 꽤 효과적인 것으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육전호 본인의 노력이었다. 적의 후방에 침투하여 몇 달을 숨어 지내는 작전이 다반사였지만 잠시라도 연공을 게을리 한 적이 없었다.

황명에 의해 비찰대원으로 차출 당한 몇몇 백도 문파의 청년 고수들도 어린 육전호의 노력을 가상하게 여겨 틈만 나면 여러 가지 유용한 잡기들을 가르쳐 주곤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비록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였지만 일찍이 가족의 품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육전호에게 유세명과 여러 비찰대원들은 서로 의지할 수 있는 동료이자 가족이었다.

그때와 같은 달빛을 보며 잠시 과거를 회상하던 육전호는 천천히 연무장을 벗어나 숲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슬이 맺혀있는 수풀을 헤치며 얼마간 좁은 오솔길을 걷자 조그마한 공터가 나타났다. 가문비나무로 둘러싸인 이 공터는 육전호만의 공간이었다. 교육대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된 이곳에서의 새벽 연무도 벌써 석 달째였다.


일다경(一茶頃) 정도 도인체조(道人體操)로 온몸을 부드럽게 푼 후 결가부좌를 틀었다. 새벽의 찬 공기가 길고 가느다란 호흡과 함께 그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단전 깊숙이 잠들어 있던 기운이 꿈틀거렸다. 밭을 가는 농부의 심정으로 정성스레 단전을 일구었다. 일곱 살에 운기토납법을 배운 후로 벌써 십사 년이 흘렀다. 그 세월만큼이나 익숙한 진기가 그의 몸 구석구석을 힘차게 누비고 다녔다.


몇 달 전 군문을 나서게 되면서 처음으로 무당산을 올랐었다.

몰랐었지만, 자신이 익히고 있는 유운검법과 유운신법은 무당의 적전제자에게만 허락되는 것이었다. 사문의 특별한 허락이 있지 않으면 속가제자라 해도 익힐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런 귀한 무공을 유세명 장군이 자신에게 가르친 것이었다.

무림에 대한 지식이 일천했던 육전호도 그 일이 규율이 엄하기로 강호에 소문이 자자한 무당파에서는 큰 사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그런데 유세명 장군이, 자신의 사부인 옥허자(玉虛子)를 통해 뒤늦게나마 사문의 허락을 구했으며, 무당파의 장로원에서는 육전호를 옥허자의 속가제자로 추인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뜻하지 않게 사형제가 되어버린 유세명의 권유에 따라 옥허자에게 배사(拜師)의 예(禮)를 갖추기 위해 무당산을 올랐다.

그 때, 어쩌면 유운검법에 어울릴만한 무당파의 심법이나 신공을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무척이나 발걸음이 가벼웠었다. 하지만, 무당산에서 만난 여러 장로들과 적전제자들의 태도를 보고는 자신의 그런 기대감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육전호는 무당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무당파에서는 유세명과 육전호 두 사람을, 사문의 허락도 없이 무공을 가르치고 배웠다며 기사멸조(欺師滅祖)의 죄를 지은 죄인으로 여기고 있었다.

아마도 유세명이 황상의 총애를 받고 있는 정위대장군(正位大將軍)이 아니었다면 육전호는 아마 그 자리에서 단전을 파괴당하고 참회동에 갇히는 참극을 당했을 지도 몰랐다.

그 정도로 육전호에 대한 무당파의 몇몇 장로와 적전제자들의 적개심은 컸다.

숨이 턱턱 막히도록 사방에서 그를 향해 뿌리던 강렬한 살기는 북방의 전쟁터에서도 겪어보지 못한 소름끼치는 것이었다.

그날의 씁쓸했던 기억은 육전호로 하여금 무당파의 심법에 대한 기대를 접게 만들었으며 막연하게나마 갖고 있던 무당파에 대한 동경과 애정마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약 한 시진 동안 네 번의 소주천(小舟天)을 마치니, 머리는 맑았으며 몸은 한층 더 가벼워졌다.

어느새 먼동이 트고 있었다.

가지고 온 검을 조심스레 빼 들었다. 잘 제련된 하얀 검신이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했다.

그가 십구 세가 되던 해에 전쟁터에서 얻은 검이었다.

적이나 아군이나 전쟁터에서는 주로 도(刀)나 창을 주로 사용하는 데 반해 지휘관급이나 비찰대에서는 검을 사용하는 이들이 많았다. 육전호가 갖고 있는 검도 적의 장수로 보이는 이의 시체가 차고 있던 전리품이었다.

별다른 장식이 없는 단순한 검이었지만 거무튀튀한 검집은 귀한 상어나 고래의 가죽으로 만든 듯했으며 검신은 값비싼 현철을 오랫동안 정련해서 만든, 시중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검이었다.

거기에다 그를 친동생처럼 아껴주던, 비찰대(秘察隊) 동료였던 남궁성도(南宮成道)가 선물한 검수(劒穗)가 길게 매달려있었다. 맑은 녹색의 비취옥(翡翠玉)을 붉은 명주실로 엮어 장식한 수실은 검의 단순한 겉모습에 은은한 기품이 흐르게 하고 있었다.

육전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수일명검(守一明劍), 삼재검법(三才劍法), 유운검법(柔雲劍法)을 정성을 다해 한 수 한 수 천천히 풀어 펼쳤다. 정적에 잠겨있던 숲의 사방으로 부드러운, 때론 날카로운 검풍이 뻗어가기 시작했다.


전쟁터에서 생과 사를 넘나드는 사투를 벌이는 동안, 그가 익혀온 검법들은 각각의 초식들이 지니고 있던 본래의 특성을 잃어버리고 살기가 강하며 패도적인 모습으로 변모했다.

초식의 변화가 단순해지면서 일격에 적을 주살할 수 있도록 빠르면서도 무겁게 변했던 것이었다.

좀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초식이 갖고 있는 원래의 형(形)을 차분히 살피고 진기와의 연동(連動)을 좀 더 고민해야 한다는 유세명의 충고에 따라 이제껏 그가 배운 검법들을 처음부터 다시 익히고 있었던 것이었다.


수일명검은 그의 고향인 무한(武漢), 정확히는 무창(武昌)의 금성무관에서 배운 무공이었다.

육전호가 일곱 살이 되던 해에 또래의 평범한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몇 가지 호신용 권각술을 배우기 위해 무관을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다른 재능이 있었는지 그를 눈여겨보던 무술사범이 운기토납법과 함께 수일명검을 가르쳐주었던 것이다.

거창한 명칭만큼이나 복잡하고 화려한 초식을 갖추고 있지만 실전에서는 그다지 쓸모가 크지 않은 검법이었다.

삼재검법은 유세명에게서 처음 배운 무당파의 검법이었다. 무당의 제자라면 누구나 배우는 기초검법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초식의 변화가 조금씩 다른 몇 가지의 삼재검법을 가르치고 있는 강호의 군소 문파들이 여럿 있어 무림에서는 흔히 삼류검법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육전호가 실전에서 가장 유용하게 사용하던 검법이었다.

유운검법은 무당파에서도 적전제자들만이 익힐 수 있는 것으로 속가제자는 장로회의의 허락이 있어야 익힐 수 있는 진산절기 중 하나였다.

일찍이 무당의 유명한 속가제자였던 유세명이 장로원의 허락 아래 그의 사부인 옥허자에게 양의신공(兩儀神功), 유운신법(流雲身法)과 함께 사사한 것으로, 일곱 개의 부드러운 초식 속에 숨어 있는 강맹한 힘은 그에 걸맞은 신공(神功)이나 심법(心法)과 함께 익힐 때 발현될 수 있는 것이었다.

때문에 육전호가 펼치는 유운검법은 유세명의 그것에 비해 위력이 현저하게 모자라는 편이었고 후반부의 세 초식은 그나마도 내력이 부족해 제대로 시전하기조차 어려웠다.


그럭저럭 유운검법 후반부 삼 초식까지 펼치고 나니 꽤 시간이 흘러 따사로운 아침 햇살이 작은 공터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도인체조를 하며 잠시 땀을 식힌 육전호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다시 숲길을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숲길 중간 중간 빈 터에는 몇몇 교육생들이 가부좌를 틀고 있거나 검을 들어 무공을 펼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여기저기서 전해 들었던, 타인의 연공을 훔쳐보지 않는다는 무림의 관습에 따라 육전호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이른 아침임에도 연무장에는 몇몇 교육생들이 두세 명씩 짝을 지어 목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무림맹의 몇몇 원로들이 머리를 맞대고 만들었다는 청살검진(靑殺劍陳)이었다.

교육 중 알게 된 사실로, 무공이 강한 적을 합공하기 위해 만들었으며 다양한 변화를 주며 공격에 치중하는 검진이었다. 두 명 이상이면 펼칠 수 있으며 함께 펼치는 숫자가 많은 수록 그 위력이 배가된다는 검진이었다.

하지만, 그 수법이 명문의 제자가 펼치기에는 도의에 어긋나는 면이 있고, 합격술이라는 점 때문에 무림맹 내에서도 알려져 있지 않고, 오로지 제삼 경비단의 단원들만이 익히고 있는 검진이었다.

육전호는 연무장 한쪽 구석에 앉아 교육생들이 펼치는 청살검진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육 호, 어때? 새벽수련을 하느라 지쳤겠지만 다시 몸 좀 풀지 않겠나?”

단정한 인상의 중년 사내가 다가와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간혹 육전호와 다른 교육생 간에 문제가 생기면 늘 나서서 도와주곤 하는 교육생 이 호, 정우태였다.

산동의 작은 문파인 비룡방(飛龍幇)의 대제자(大弟子)였으며 산동무림에서는 산동북검(山東北劍)이란 별호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교육생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으로는, 약 이 년 전쯤에 산동남검(山東南劍)이라 불리던 태산파의 일대제자와 비무를 했지만 패했으며 그 후 비룡방을 떠났다고 한다.

비룡방의 대들보와 같았던 대제자가 비무에서 패한 후 자취를 감추자 문도들도 하나 둘 방을 떠나기 시작했고 그 여파로 문파의 기틀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지자 비룡방주는 봉문을 선언했다고 한다.


“좋습니다.”

육전호는 흔쾌히 대답하곤 이호가 건네주는 목검을 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십일 호께서는……?”

육전호가 묻자 이 호는 미소를 띤 채 눈을 흘깃거렸다.

“바로 자네 뒤에 있지 않은가.”

육전호가 뒤를 돌아보니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준수한 외모의 사내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화산파의 적전제자라는 십일 호. 봉천우였다.

“아, 죄송합니다, 뒤에 계신 줄 몰랐습니다.”

“괜찮아.”

봉천우는 수려한 이목구비와는 달리 무표정한 얼굴로 육전호와 정우태를 일별하곤 연무장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허리에 느슨하게 묶여 있던 목검이 그 끝을 땅바닥에 질질 끌리며 따라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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