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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기순덕님의 서재입니다.

문지기 김 순 덕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에리카짱
작품등록일 :
2023.05.31 20:13
최근연재일 :
2024.04.16 21:47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375
추천수 :
2
글자수 :
93,230

작성
23.05.31 20:42
조회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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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0쪽

문지기 김순덕

DUMMY

휘이익! 휘이익!


바람 소리와 함께 달려오는 한 여인이 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하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은색 패딩이 번쩍였다.


새하얀 운동화가 바닥을 짚는 것과 동시에 자그마한 몸이 날아올라 까만색 물체를 덮쳤다.


'퍽!'


고꾸라진 물체는 숨이 끊긴 것처럼 퍼덕거림을 멈췄다.


어둠 속에 고요가 찾아왔다.


노련한 그녀는 속지 않았다.


누르고 있는 몸에 힘을 더 주고 요가에서 배운 복식호흡을 시작했다.


‘후 후 후 세 번 들이마시고 후 후 후 후 네 번 내쉬고’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언제까지라도 버티고 있을 듯 완강한 힘이었다.


꿈틀대는 발악의 몸짓이 멈췄다. 한두 번 겪어본 게 아니다. 이들에겐 처음이지만 그녀에게는 수십 번도 더 겪은 일이었다.


‘이번에는 연기력이 형편없군. 좀 더 꿈틀대다가 퍼졌어야지. 겨우 몇 번 하고... 쯧쯧쯧... 인내심이 영...’


그녀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검은 물체가 미끄러지듯 나가려다 팔꿈치의 강력한 타격감에 다시 힘을 잃었다.


“그냥 편하게 가면 되지. 꼭 이렇게 힘 빼게 하는 망할 것들이 있어.”


그림자의 모양을 한 검은 물체가 서서히 사람의 형체로 변해갔다.


황금빛 헝클어진 머리가 희망을 잃은 듯 툭!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몽글몽글 솜 이불처럼 보드라운 드레스 자락이 바닥에 펼쳐지며 어둠 속에 하얀 얼룩을 만들었다. 중세 시대에서 온 듯 화려한 드레스 차림의 아름다운 여인이 완전히 모습이 드러냈다. 투명한 피부와 가느다란 팔은 그녀의 연약함을 증명하며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났다. 검은 때가 벗겨지듯 하얗고 고운 모습에 산전수전 다 겪어본 순덕이지만 등골이 서늘해졌다.


“좀 살살할 걸 그랬나? 하이! 하우 아 유?”


본능적으로 영어가 튀어나왔다.


“아니지. 사람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지. 아니 야리야리하게 생겼으면 야리야리하게 굴 것이지. 늙은이를 이리 혹사 시키나?”


순덕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딱히 양심적이지는 않지만 악인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손바닥을 바지에 대고 탈탈 털며 고개를 들었다. 새하얀 긴 머리를 뒤로 누이며 살며시 흔드는 그녀의 얼굴은 족히 70은 되어 보였다.


성형외과나 피부과는 전혀 다녀보지 않은 듯한 자연스러운 주름과 특유의 시니컬한 웃음을 머금은 비뚤어진 입. 까만 구슬같이 윤이 나는 눈매의 그녀는 지금 이야기의 주인공, 문지기 김순덕이다.


드넓은 우주에는 수많은 행성들이 존재하고 그들은 차원의 세계로 연결되어 있다. 차원의 이동은 오로지 죽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즉, 죽음 이후 영혼은 다른 행성에서 환생한다. 그 영혼들이 드나드는 문, 신과 문지기에게만 허락된 문. 차원 문이 이곳에 있다. 문지기와 그 딸의 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이 문을 지켜야 하는 숙명을 지녔다. 방금 본 거무튀튀했다 금발로 변한 그 녀석은 차원의 무법자, ‘드랍인’이라 부른다.


“아이고, 삭신이야!”


순덕의 무릎에서 우드득 소리가 났다.


한 손으로는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을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허리를 짚으며 연신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야! 이! 죽자고 도망가면 늙은이라 못 잡을 줄 알았어?”


바들바들 떨리는 여자의 야윈 몸을 보자 순덕의 마음이 다시 약해졌다.


“뭘 또... 울 것처럼. 너무 겁먹지 마! 곱게 보내줄게.”


두두둑 소리와 함께 순덕의 허리가 펴졌다. 손바닥을 펼쳐 허리에 대고 다시 한 번 자세를 잡았다. 좌우로 몸을 돌리며 스트레칭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손에 잡혀 이리 저리 끌려다니던 여자의 무게감에 순덕은 그제야 생각난 듯 여자의 어깨를 반대편 손으로 톡톡 두드리며 위로했다. 거친 손놀림 아래 숨은 측은지심이 잘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순덕의 마음은 그랬다.


“때가 됐어.”


순덕이 여자를 아래에 놓았다. 아니 바닥으로 내팽개쳤다가 더 맞는 표현이었다.


워낙에 몸에 밴 습관이라 아차 싶었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니 어쩔 수 없었다. 여자는 그대로 아래로 고꾸라지듯 쓰러졌다.


순덕은 왼쪽 손바닥을 펼쳐 하늘로 뻗었다. 순간의 정적. 아무것도 없는 까만 하늘에 푸드득! 한 마리 새가 날아갔다.


“참! 오른쪽이었지. 나이 먹으니 방향도 헛갈려.”


멋있는 자세를 취했지만 민망하게 어정쩡한 모양새로 몸을 틀어 다시 오른 손바닥을 펼쳐 하늘을 향했다.


검은 하늘에 별이 박히듯 하얀 점이 찍혔다. 점점 커지던 점은 검은 구멍이 되어 입을 벌렸다. 사람 하나는 족히 들어갈 만한 크기가 되자 구멍 속에 새로운 세상이 보였다. 거울 속을 들여다보듯 대칭을 이룬 그 속으로 여인의 몸이 빨려 들어갔다. 절망이 가득한 그녀의 표정은 마치 지옥으로 끌려가는 듯했다.


“잘 가! 망할 것! 조심성 없으니 괜히 딸려 들어와 너나 나나 고생시키는 거야. 극락왕생해라!"


김순덕의 얼굴은 승리의 기쁨으로 빛났다. 여자가 구멍 속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가자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한 밤하늘에는 별빛이 가득했다. 클리어했다는 것을 확인한 후 그녀는 의기양양하게 돌아섰다.


문지기의 첫 번째 의무는 질서다.


실수로 혹은 다른 이유를 가진 채 차원의 문으로 빨려 들어온 ‘드랍인’들을 잡아 돌려보내야 한다.


드랍인이 차원 문을 넘어오는 경우는 두 가지다.


첫 번째,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죽음 직전 살고자 하는 욕망이 극에 달했을 때


두 번째, 그 행성의 차원 문지기를 살해하고 넘어오는 경우이다.


대부분의 드랍인이 문지기에 의해 처리되지만 걸러지지 않은 드랍인은 90일이 지나면 자연히 소멸된다.


그들의 자멸은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사람들에게 공포를 일으킬 수 있으며 문지기는 이런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며 드랍인들을 잡아야 한다.


그런데...


“아이고, 삭신이야”


김순덕의 나이는 이미 70을 훌쩍 넘겼다.


차원의 문을 지키는 ‘문지기’라 하더라도 인간의 몸을 갖고 태어나기에 나이 들어가는 것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일을 마치고 걸어가는 그녀의 몸집은 어둠 속에서 더 작아 보였다.


사실 김순덕의 키는 150이 될까 말까였다.


“나 왔어.”


문을 열자 한약방 특유의 냄새가 훅 하고 들어왔다. 평상에 앉아 약초를 썰고 있는 순덕의 남편 광덕은 고개도 들지 않았다.


“나 왔어.”


못 들었나 보다.


그러거나 말거나 순덕은 평상에 철퍼덕 앉았다. 그제서야 광덕의 고개가 위로 올라왔다.


“언제 왔어?”


“이 짓도 못하겠어. 이제.”


“힘들었나 보네. 여기 물”


광덕은 자신이 마시던 텀블러를 들어 순덕에게 내밀었다.


“물 싫어. 다른 거 없어?”


광덕의 무거운 몸이 일어났다. 우수수 떨어지는 약초들이 순덕에게 튀자 순덕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쫌!”


“응? 뭐라고?”


“이래서 연하를 만났어야 하는데, 나도 늙었는데 한참 더 늙었어.”


“응? 뭐 딴 거 줘?”


광덕의 손에 박카스가 들려 있었다.


“D야 F야?”


광덕이 노안 때문에 고개를 뒤로 젖혀 병을 멀리 들고 들여다보자 성질 급한 순덕이 벌떡 일어났다.


“이리 내. 그냥 먹을게. 저녁은 뭐야?”


“삼겹살 좀 구우려고 텃밭에서 상추 좀 뜯어 뒀는데...”


“그러니까 삼겹살을 샀다는 거야? 상추만 뜯었다는 거야?”


순덕은 고기를 참 좋아한다.


“삼겹살은 같이 사러 가야지.”


광덕이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아! 나 진짜 피곤한데...”


순덕의 투정에서 싫지 않음이 느껴졌다.


“지금 몇 시야?”


“여섯 시 됐나?”


“그럴 리가? 밖이 깜깜한데”


“벌써?”


“10시네. 마트 문 닫았어.”


“하이고, 상추만 먹어야겠네.”


도망쳣던 '드랍인'을 떠올리며 순덕의 눈이 번뜩였다.


“이놈의 시키. 뭘 그리 잡히기 싫어서 도망을 가? 어차피 내 손에 잡힐 게.”


“아! 오늘은 딱 고기를 먹어줘야 하는데...”


사실 순덕이 그 나이까지 현역을 뛰고 있는 이유는 딸에게 문지기의 피가 전혀 흐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뭐 입양을 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문지기로서의 기질이 전혀 없었다.


차원의 문을 볼 수 없고 드랍인조차 구별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대대로 잘 이어져 왔는데 순덕은 죽을 때까지 대를 이을 문지기가 나오지 않을까 불안했다.


다행히 딸이 결혼해서 두 딸을 낳아 순덕에게는 손녀가 둘 있다. 큰 애가 지금 중3이니.... 생각할수록 속에 열불이 났다. 문지기는 성인이 될 때까지 능력을 가지지 못한다. 뭔 거지같은 법인지...


덕분에 앞으로 최소 4년은 현역으로 뛰어야 한다. 만약 첫째가 아니면 둘째는 이제 겨우 초등학교 3학년이니...... 생각할수록 암담했다.


“젠장할!”


“옆집에 가서 고기 좀 있나 물어볼까?”


광덕이 긴장했다.


“됐어.”


“거 참 미안하네. 밖에서 일하고 와서 힘들텐데..... 고작 풀떼기나 먹어야 하고...”


“대충 때우고 내일 마트 가면 되지.”


광덕의 얼굴이 다시 펴졌다. 50년 전 순덕은 광덕의 거칠고 남자다운 매력에 빠졌었다. 문지기는 남편을 고를 때 오로지 필! 에 의지 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대부분의 문지기들의 남편은 둔하다. 둔한 사람을 일부러 고른 게 아닌데 희한하게 둔하다.


특히 광덕은 쓸데없이 착한데 눈치가 빠르지 못했다. 그냥 둔했다.


순덕이 탈탈 털며 일어났다. 습관이 되었다. 광덕이 한약방을 해서 늘 약초가 온 몸에 달라 붙었다. 털지 않고 들어가면 침대에 걸리적거리는 느낌 때문에 밤새 뒤척여야 했다.


보기와는 달리 은근 예민한 스타일이라 순덕은 잠자리에 민감했다.


“밥 줘!”


순덕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광덕이 2층으로 올라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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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기 김 순 덕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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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소녀의 잘못된 선택 23.09.19 8 0 9쪽
20 소녀와 소년 23.07.04 8 0 9쪽
19 문지기 방망이! 23.06.28 9 0 9쪽
18 불사가 아니야? 23.06.16 11 0 10쪽
17 누구냐 넌? 23.06.16 9 0 9쪽
16 망할 년 23.06.15 11 0 9쪽
15 응징 23.06.14 13 0 10쪽
14 디~게 나쁜데 머리 좋은 놈 23.06.13 15 0 9쪽
13 혼자 열리는 엘리베이터 23.06.12 14 0 9쪽
12 마녀 23.06.09 18 0 9쪽
11 마루 아래 검은 손 23.06.08 16 0 10쪽
10 학교에 간 드랍 인 23.06.07 14 0 9쪽
9 여린 마음의 능력자 23.06.06 16 0 9쪽
8 잘생긴 놈 23.06.05 13 0 9쪽
7 무당의 저주 23.06.02 14 0 9쪽
6 기 센 두 여자 23.06.02 14 0 9쪽
5 초희 한약방 23.06.01 18 0 10쪽
4 죽기 싫어! 23.06.01 18 0 10쪽
3 드랍아이 23.06.01 17 0 10쪽
2 문지기의 손녀 23.05.31 26 0 9쪽
» 문지기 김순덕 +2 23.05.31 90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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