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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주장 님의 서재입니다.

꼴통 아카데미의 선생님이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창빙
작품등록일 :
2023.05.10 17:43
최근연재일 :
2023.05.10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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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0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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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쪽

...이게 내가 가르칠 학생들?

DUMMY

"길어야 3년입니다."


의사가 차트를 보며 말을 이었다.


"벌써 심장이 마수한테 상당부분 잠식되었어요. 아무리 저항하신다 해도 3년이면 나올 준비가 끝날 겁니다. 힘을 쓰시면 더 당겨지고요."

"제가 죽어도... 말인가요?"

"이게 현성 씨의 몸을 기생충처럼 숙주 삼는 개념이 아니고 현성 씨가 힘으로 억누르고 있는 상태라서요. 현성 씨가 죽으면 곧바로 깨어난다고 보시면 됩니다. 재앙이죠."


재앙. 그 말이 정확했다. 1년 전 중국 일대를 초토화시킨 재해 1등급 괴수 알데바란. 그 재앙 자체가 내 심장을 좀먹고 있었으니까. 세상에게도 나에게도 재앙이었다.

내가 죽어 놈이 깨어나면 그야말로 세계멸망이니.


나는 연구소를 나와 하늘을 올라다보았다. 3년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치곤 기분이 나쁘지 않다. 나만 죽는 게 아니라서 그런가? 어차피 놈이 다시 깨어나면 지구도 끝장이었다.


"어이, 화이트! 여기야 여기!"


연구소 앞 주차장에서 대머리 하나가 손을 흔든다. 내가 속한 헌터 팀의 팀장 겸 매니져였다.

화이트는 내 코드네임이었고.

나는 차 뒷자석에 탔다. 안전벨트를 안 메는 건 각성자의 특권이다.


"밖에서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요. 쪽팔리게."

"어쩌라고. 그나저나 결과는 어땠어?"

"최악이에요. 답이 없대. 우린 다 3년 뒤에 죽은 목숨이야."

"예상은 했지만, 훨씬 더 절망적이군."

"이참에 일 그만두고 가족들이랑 같이 피서라도 가는 건 어때요? 3년 뒤엔 내가 지구 반대편으로 가 줄게."

"하핫! 미안하지만 난 지금 가족이랑 천년만년 같이 살 거거든. 그걸 위해서라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아직 할 게 남았어?"


재해 1등급 초대형 거대괴수 알데바란. 내 심장에 똬리를 튼 괴수의 이름이다.

재해 1등급은 좆이 아니다. 그 의미도 무시무시한 '지구멸망 확정' 2등급은 '지구멸망 위험' 3등급은 '한개 나라 궤멸 확정'이었다.

여지껏 재해 3등급 판정을 받은 마수도 손에 꼽는 걸 생각하면, 내가 심장에 놈의 핵을 봉인한 것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해볼 건 다 해봤던 것 같은데. 이 1년동안 실험대 위에도 올라가봤고, 민간요법부터 뭐까지...."


물론 결론은 '답이 없다' 였다. 무슨 수를 써도 심장 안에 자리 잡은 놈을 잠재울 방법이 없었다.


치료도 안 돼, 자살도 못 해. 남은 건 그야말로 종말을 기다리며 모은 돈으로 피서나 즐기는 것일 터다.


"하나, 해 볼 게 아직 남았어. 그래도. 오스트라무스라고 알아?"

"노스트라무스? 2000년에 지구가 멸망한다고 했던 그 예언가?"

"아니 걔 말고."

"아, 그 오스트라무스."


대 예언가 오스트라무스. 한때 세간에서는 그를 노스트라무스를 잇는 대 예언가라고 불렀지만, 실제로는 대 예언자라기엔 애매한 한국의 무당 같은 사람이었다. 예전에 그가 활발히 활동했을 때 뒷조사가 끝났다.


오스트라무스는 인터넷에서 활동하던 예명이고 본명은 김득춘. 몇 년 전에는 비트코인 떡상, 한국 대 독일전에서 한국 3:1 역배를 터트릴 정도로 신통한 인물이었지만... 요즘은 한물 간 뒷방 노인네나 다름없었다.


"그 사람한테 연락이 왔어. 4번 폰으로."

"... 4번 휴대폰? 형 4번 번호를 그 사람이 알아?"

"알려준 적은 없어, 적어도."


우리 팀 팀장의 4번 휴대폰은 형이 최고의 중요 요인에게만 번호를 알려주는 최상급 VVIP 전용 휴대폰이었다. 존재를 아는 사람조차 세계에서 몇 없었다.


"거기에 전화를 걸었다고?"

"아무튼, 자기가 방법을 알고 있으니까 널 그리로 보내라고 했어. 그리고 뭘 준비하라고까지 말했었는데... 뭐였더라?"


팀장이 잠시 휴대폰의 메모를 확인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김득춘이 어떤 인물인지는 몰라도, 이 정도의 스케일에서 그 대가가 가벼울 리 없었다. 요인 암살, 언론 조작? 아니면... 막대한 돈? 절대적인 갑의 위치를 선점한 늙은 너구리가 어떤 걸 대가를 요구할 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


"15년도 개역교육과정 고등 1학년 무술... 수업을 준비하라는데?"

"...."

"...."



"뭐?"





~~



"정확히 들었네. 정확하게는 무투랑 마물의 이해, 던전 해부 과목까지지."


팀장의 4번 휴대폰으로 김덕춘에게 전화를 건 상황이었다.


"그게 지금 상황과 무슨 관련이 있지?"

"잉? 관련은 없는데... 내 정보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는 게 잘못된 건가?"

"그 대가가... 고작 수업을 준비하는 거라고?"

"요즘 일손이 좀 부족해서 말이야 핫핫핫! 어차피 자네도 현역으로 뛰기는 글르지 않았나. 세계 최고의 헌터를 교사로 모시는 거야 모든 이사장들의 꿈일 걸세. 나는 좋은 사람 밑에 둬서 좋고, 자네는 몸 고칠 단서와 소일거리 찾아서 좋고. 한국 속담처럼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지."

"...."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원래 이런 사람인가.


'하지만 절대 보통 사람은 아니다. 내 상황까지 알고 있어.'


내 심장에 관한 이야기는 극비 중 극비다. 회사 내에서도 아는 사람은 손에 꼽고 연구진들또한 입단속을 철처히 시켰다. 어지간한 대기업들이 맘먹는다 해도 정보를 얻는 건 불가능할 정도였다.


"자네도 교사로 오려면 이것저것 정리할 게 많겠지? 시간 넉넉히 줄 테니 입학식날 학교로 오게. 장소는 보내 두겠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가 뚝 끊겼다. 문자메시지로 '아람고등학교'의 위치정도만 달랑 왔다.


"아람고등학교...?"

"어? 거기 아냐? 한국 최고라던, 나도 스카우트하러 몇 번 갔던 적 있었는데."

"그래?"


팀장이 지도를 슥 보더니 확신했다.


"거기 맞네. 옆에 코엑스 있고, 세븐일레븐 있고... 음 맞아."

"김득춘이 이런 곳의 이사장으로 있다고? 여기 국립 아니야?"

"그게 좀 복잡할 걸? 예산이 너무 많이 들어서 민간 투자자들을 좀 모집했다고 들었는데... 아마 그중 하나 아닐까? 일단 받아."


팀장이 서랍에서 책을 꺼내 내밀었다. 무술(상), 마물의 이해I, 던전 해부I .... 한글 표지의 교과서였다.


"나보고 진짜 수업 준비를 하라고?"

"별 수 있나? 너 어차피 힘도 못 써서 이제 할 것도 없잖아. 이거라도 해."

"조, 조금은 쓸 수 있거든? 심장에 자극 안 가는 선에서 이렇게 이렇게 잘 하면...."

"그럼 평소의 몇 프로야? 고등학생 수준은 되나?"

"...."

"수업 준비 해. 세상 멸망이 다가왔는데 이런 거라도 해 봐야지."


"그럼 난 다른 일정이 있어서. 여기서 점심이라도 먹고 있어. 1시간 뒤에 대리러 올 테니까."


팀장은 날 뉴욕 시내 한복판에 내려주고는 슝 제 갈 길을 가버렸다. 예전에 헌터 '화이트'로 활동할 때는 아주 일거수일투족 감시 못 해서 안달이었던 작자가 이제는 방생을 해주더니, 기뻐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 좀 걸을까."


혼자서 뉴욕 시내를 걸어본게 얼마나 됐더라?


나는 정오의 뉴옥을 가볍게 산책했다. 뉴욕 시내는 유명세답게 사람이 정말 많았고, 그만큼 활기가 넘쳤다.


'1년 전 이맘대쯤만 해도 지옥이었는데 말이야.'


미국인들이 종말을 앞에 두면 무섭다는 걸 그때 실검했다. 물건 사재기부터 해서 살인, 약탈, 강간 방화... 난리도 아니었다고 했지.지금은 정리되고,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서 다행이었다. 햄버거집도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으니 말이다.


햄버거 집 입구에서 햄버거를 든 '화이트' 판넬이 따봉을 날리고 있다.


[세계 최고의 헌터 팀 히어로 파티가 인정한 맛!]


'... 이딴 쓰레기같은 문구는 누가 생각해낸 거야?'


아무리 가면을 썼다고 해도 좀 낯간지럽다. 나는 붉어진 얼굴을 식히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주문하시겠어요?"

"어... 화이트 세트 주세요."

"죄송합니다 손님. 화이트 세트는 매진이라서요. 피넛이랑 사뮤엘 세트가 남았는데 다른 걸로 하시겠어요?"


피넛이랑 사뮤엘. 둘 다 내 동료의 코드네임이었다.


"... 화이트 콜라보 세트가 그렇게 인기가 많아요?"

"그럼요! 물량도 넉넉히 준비했는데, 오늘 오전 안에 다 팔렸어요. 다른 팀원들 세트도 잘 나가긴 하는데, 화이트 만큼은 아니거든요. 유독 어린애들한테 인기에요."


그래 보인다. 유독 어린애들이 내 피규어가지고 잘 노는 게 매장 곳곳에서 보였으니.


"싸우는 게 멋있잖아요. 계속 맞아도 다시 일어나고. 그런 점이 잘 들어먹힌 거 아닐까요? 저도 화이트 팬이에요."

"그러...세요."


헌터가 싸우는 게 엔터테이먼트가 된 시대다. 그야, 실제로 마법 빵빵 쏴대고 초인적인 움직임으로 뛰어다니는데, 재미없는 게 이상했다. 잘 찍힌 헌터 직캠을 한번 보면 허구의 액션 판타지 영화는 쳐다도 못 본다고들 말했다.

덕분에 현대에 와서는 나처럼 싸움밖에 모르는 헌터들이 팬을 거느리고 다니고, 스타 행세를 하고 다녔다.

게이트 폐쇄, 소방, 치안 유지, 그리고 각종 인명 구조에 힘쓰는 슈퍼스타. 그게 요즘 헌터였다. 그 중에서도 난 꽤 인기있으니, 햄버거집 알바가 내 팬인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근데 이건 비밀인데요... 요즘 화이트가 좀 수상해요."

"...네? 뭐, 뭐가요?"


순간 내 간담이 서늘해졌다.


"못 느꼈어요? 알데바란 토벌전을 기점으로 완전 딴 사람이 됐잖아요! 그, 키도 좀 작아진 것 같고, 슈트 위에 걸친 아우터때문에 잘 안 보이는데 골반이랑 가슴도 좀 튀어나온 것 같고, 몸짓도 예전엔 투박했었는데 지금은 우아해졌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요! 완전 다른 사람 같다니까요?"

"아아...."


난 또. 이건 내 후임자 이야기였다. 내가 은퇴한다고 해서 '화이트'의 이름값까지 버릴 순 없었으니까. 사람이 다르니 당연히 생김새도 몸짓도 다를 수밖에 없는 거다.

단순히 회사에서 발표를 유보하고 있는 것 뿐인 시시한 이야기였다.


"제 생각에 이건... 화이트가 트랜스젠더가 된 것 같아요."

"...... 네??"

"그거 이외에는 설명이 안 돼요! 알데바란 토벌전에서 뭔가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게 분명해요. 요새는 예전이랑 다르게 자궁이랑 질 이식수술도 가능하잖아요? 분명해요. 100퍼센트라구요."

"씨발, 뭔, 무슨 그런 해괴한 소문이... 그, 그냥 다른 사람일 수도 있잖아요?"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하죠! 화이트는 세계 최고의 가드인데, 그런 실력의 여자가 어디 흔해요? 확실해요. 커뮤니티에서도 이게 주류 의견이라구요."

"... 알겠으니까 아무 버거나 빨리 주세요."


나는 치즈버거 세트를 받고 도망치듯 2층으로 올라갔다. 사람 생각하는 거야 자유라지만, 저건 너무 자유분방한 것이 아닌가?


나는 창가 라운지에 앉아 버거를 한 입 먹었다.


'어이가 없네. 무슨 트랜스젠더야.'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나온다. 그 와중에 버거는 더럽게 짰다.


'참... 나.'


그렇게 치즈버거를 다 해치우고 멍하니 바깥을 바라봤다.


치즈버거는 짜고 느끼하지만 맛있었고, 소문은 황당했지만 재밌었다. 애들은 장난감가지고 놀고, 햄버거집 아르바이트를 하는 젊은 여자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하며 접한 소문을 떠들어 댔다. 창 밖에선 이런저런 볼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소한 것들이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해줬다.


"살고 싶다."


별건 아니고, 살고 싶다. 격렬하고 막 오열하면서 살고 싶은 정도는 아닌 것 같고 그냥 치즈버거나 먹으면서 은은하게 살고 싶었다.

기왕 돈도 많이 벌었으니, 어디 숨어들어가서 유유자적한 삶도 살아보고 싶었다. 하루종일 바닥에서 뒹굴거리고, 티비 보고 그런 삶....


"엄마, 저 아저씨 울어."

"쉿. 그런 말 하면 못 써."


나는 아까 팀장이 준 교과서를 폈다.


마물의 이해I, 던전 해부I, 무술(상)


대충 훑어보니 내가 다 아는 것들이었다. 공부를 한 적은 없는데, 경험으로 어렴풋이 아는 느낌? 무투 교과서에 실린 초식들은 처음 보는 것들 뿐이지만 한 번 보고 따라할 수 있을 정도로 쉽고 간단한 동작뿐이었다.


'이걸 애들한테 가르치라 이거지.'


좋아, 해 보자. 기왕 뒤질 목숨 발버둥 한번 쳐주마.

나는 책을 처음부터 읽으며 수업을 천천히 구상했다. 달 단위의 시간을 들여 수업을 다 준비했을 무렵, 김득춘이 말했던 입학식 날이 다가왔다.


~~


"넥타이 잘 맸어? 책은 챙겼고?"

"내가 애야?"

"애새끼나 다름없지. 내가 니네 사소한 뒷바라지를 얼마나 해줬는지 알아? 너 처음 계약할 때 길 잃었던 것부터 설명해줄까?"

"다 챙겼어."

"오-케이. 학교도 슬슬 보인다. 저기 저 부유섬이야."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도심 한복판, 산 한 개정도 되는 높이에 거대한 땅덩어리가 둥둥 떠 있었다.


"어마어마하군...."


세계를 뒤져 봐도 거대한 부유섬은 없다. 심지어 학교라니, 비행기로 통학하라 이건가?


"에이, 기숙사같은 게 있겠지. 저런 게 또 신설이라 그런 자잘한 것도 철저할걸?"


정말 그랬다. 부유섬으로 가는 워프 게이트가 지하철역에 있었다.


"뭐야, 돈을 얼마나 바른 거야?"

"글쎄... 비트코인으로 어지간히도 벌었나 본데? 두 명이요. 한 명은 신임 선생에 한 명은 매니저."


우우웅---- 주차장처럼 되어 있는 인터폰에 신분증을 보여주니 워프 게이트 안 공간이 소용돌이치며 차를 빨아들였다.

눈을 한번 깜빡하니 어느새 구름이 수직선상에 있었다. 부유섬 위로 올라온 것이다.

워프 게이트 바로 앞에는 고급스런 분수대가 있고, 그 뒤에는 타지마할처럼 거대한 학교 본관과, 주위에 자잘한 별관들이 보인다.


"입학식은 본관 강당에서 한대. 나는 이만 가볼 테니까 여기서부터는 혼자 가."

"마지막까지 신세 졌네."


난 지금 팀을 나온 상황이었기에 팀장이 바래다 줄 필요는 없었다. 순전히 호의인 것이다.


"고마우면 나중에 우리 딸 생일 파티에나 와."


팀장은 선글라스를 멋들어지게 쓰고는 다시 워프 게이트로 들어갔다. 처음 스카우트 당했을 때도 저 선글라스였는데, 끝까지 바람 같은 사람이었다.


"좋아. 나도 가볼까."


나는 입학식이 시작되는 본관으로 향했다. 부지는 넓었지만 중간중간 예쁜 안내원이 길을 안내해줬기에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입학식은 이 대강당 안입니다. 학부모이신가요? 선생님이신가요?"


학생으로는 안 보이는 건가.


"선생님입니다."

"네~ 그럼 들어가시고 오른쪽 교사 자리에 착석하시면 됩니다.~"


대강당 문을 지키는 안내원은 모든 안내원을 통틀어 가장 예뻤다.

그녀가 문을 열자, 나는 그녀의 안내대로 우측 의자에 조심스레 앉았다. 내 옆자리에는 먼저 앉으신 선생님들이 있었지만, 진행은 아직이었다.

내가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당의 불이 툭 꺼졌다.


팟!


곧이어 단상에 하이라이트가 켜지고, 사회자가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지금부터, 제 7회 입학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앞서 입학생 대표 선서문 낭독이 있겠습니다. 전부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일어나는 소리가 났다.


"신입생 대표, 수석입학생 김시우 앞으로."


학생 줄의 맨 앞 좌측 자리에서 키가 크고 훤칠한 남학생이 일어났다. 그는 기품있고 당당한 발걸음으로 무대 위에 올라가 선서문을 받았다.


"선서. 나는 자랑스러운 아크 아카데미의 신입생 대표로서, 모든 교육과정에 성실히 임하고, 약자를 도우며, 세계로 뻗어나갈 것을 선서합니다."


짝짝짝짝짝!!!


선서가 끝나자마자 터져나오는 박수. 뿐만 아니라 감탄도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오오, 저게 그 정선 김씨 68대손 김시우인가? 그 검성의 손자라던?"

"벌써부터 기백이 엄청납니다! 하하하!"

"지금 2학년들도 그렇지만, 버릴 애들이 정말 하나도 없군요. 그야말로 황금 기수들입니다!"


나는 선생들의 호들갑을 귀기울여 들었다.


'오호. 쟤가 그리 대단하다 이거지.'


대단해 보이긴 한다. 대한민국의 검성이라면 나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그 할아버지의 손자라면 필시 무시무시한 재능의 소유자일 테지.


다른 애들은 어떨까. 곧 내 수업을 들을 애들인지라 관심이 갔다. 나는 그들 사이에 슬쩍 끼어들어 물었다.


"그, 선생님들께서는 저기 있는 학생들 중 누가 제일 전도유망하다고 보십니까? 방금 나온 김시우 빼고요."

"응? 그거야 뭐, 굳이 볼 것까지도 없지. 무투과엔 김시우 말고도 그 못지않은 권왕의 수제자 곽종학이 있으니까."

"마법부는 또 어떻고? 이제 13살인 주제에 월반해서 입학한 노은솔에, 술식을 1초만에 암산한다는 진민성도 있지 않는가! 뛰어난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오... 뭔가 대단한 애들이 많네요. 저는 학생시절에 그런 별명 없었는데."

"정말 좋은 학생들이지... ... 그나저나 자넨 누군가? 본 적 없는 얼굴인데."

"아,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이번에 새로 들어온 무투 교사입니다."

"아~ 그 알데바란 토벌전에 참가했다던? 얘기 들었네 들었어!"

"아이구, 또 대단한 사람이 왔구만!"

"별말씀을요."


---- 다음으로는 교직원 소개가 있겠습니다. 선생님들은 모두 앞으로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아까 떠들던 이름모를 선생님들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위로 올라갔다. 위에서 보니 학생들의 얼굴이 더 잘 보인다. 번쩍번쩍한 아카데미 교복에 국내 최고 아카데미에 입학했다는 자부심 가득한 얼굴들.


'이게, 내가 가르칠 학생들.'


그 생기 넘치는 젊은이들을 보고 있자니 왠지모르게 두근거렸다.


"먼저, 마법 기초를 가르치시고, 1학년 알파 반을 담당해주실 유다현 선생님이십니다."


우리들 속에서 한 여자가 나와 고개를 숙였다. 가슴 크고 예뻐서 그런진 몰라도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가 터져나왔다.


"유다현 선생님. 이번에 캐스터 상 후보까지 올라가셨대. 심사 중이라는데?"

"헐! 어떡해어떡해! 다현 쌤 진짜 존예. 나 알파 반이란 말이야. 진짜 유다현 선생님 매일 볼 수 있는 거야?"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뛸 듯이 기뻐하는게 앞에서 보였다. 하긴, 이 큰 학교의 교사를 할 정도라면 어중간한 사람은 아닐 터였다.


"다음은 1학년 학생지도를 맡으실 송경백 선생님...."


나 빼고 다 차례로 앞으로 나와 인사했다. 몰랐는데, 내 옆에 앉았던 선생님들도 다 어디의 무슨 수장이라느니, 뭘 역임하셨다느니, 한가닥 하시던 분이셨다.


내 차례는 맨 마지막이었다.

나는 차례가 오기 직전, 마지막으로 수트의 매무새를 점검했다.


"음, 이 분은 소개를 좀 더 길게 해야겠네요. 어렵게 모신 분이라 섭섭해하시면 안 되거든요."

""하하하하!""

"이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1년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재해 1급 괴소 알테바란 토벌전에 참가하신 경력이 있고!"

""오오오오!!""

"숱한 재해 4급, 5급 마수들을 격파한 경험이 있으신, 현존 최강의 헌터라 믿어 의심치 않는 분이십니다!!!"

""와아아아!!!''


내가 나오기도 전에 환호가 쏟아진다. 나는 왠지 민망한 기분이 들어 자세를 쭉 폈다.


'내 정체를 까기로 한 건가? 깜짝 놀랐네 그럼 그럴 거라고 사전에 얘기나 좀 해주지.'


수 년을 정체를 숨기고 산 사람에게 배려심도 없다.

나는 앞으로 몇 걸음 걸어나왔다. 그에 맞춰 사회자가 있는 힘껏 소리쳤다.


"소개합니다! 미국 에이펙스 팀의 가드셨던 이한성 선생님이십니다!!!"

""와야아아아아!""


지금까지 들렸던 것보다 훨씬 큰 박수와 환호 소리가 강당 안을 가득 채웠다.


짝짝짝짝짝!!!


"와아아!! 이한성 선생님!!"

"멋지다!!"


나를 향해 박수와 찬사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

하지만 나는 나사 하나 빠진 얼굴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다들 알겠지만, 내 이름은 이한성이 아니라 백현성이다.


"...???"


경력은 안 틀렸다. 알데바란 토벌전 참가, 4,5등급 던전 격파. 다 나 맞는데? 그런데 에이펙스의 이한성은 어디서 튀어나온 어중이 떠중이의 이름이란 말인가?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아무래도 학교 직원이 내 이름을 착각한 모양이었다. 백현성, 이한성... 이름 비슷한가? 비슷하다고 하면 비슷했고 아니라고 하면 또 아니었다. 하지만 넓은 아량으로 실수로 인정해줄 수 있었다.


나는 당황을 티내지 않고 앞으로 좀 더 나와 사회자의 마이크를 뺐었다.


"하하, 이렇게 좋은 학교도 이런 실수를 하네요. 다시 한 번 소개하겠습니다. 이 학교에서 무술 수업을 맡게 된 백현성입니다. 선생 일은 처음이지만 준비 정말 많이 했으니 믿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담백하고 열심히 가르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내가 생각해도 썩 괜찮은 임기응변이었다. 이제 모두의 오해도 어느정도 풀리겠지.

-- 그럴 터인데. 어쩐지 학생들의 표정이 좋지 않다.


"이한성 선생님이 아니잖아?"

"백현성? 처음 듣는 이름인데?"

"검색해도 안 나와. 듣보잡인가봐."


'시발 뭐? 듣보잡?'


살다살다 내가 듣보잡 소리를 듣다니. 정체를 숨기고 다니니까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


...분위기가 안 좋다.


이쯤되면 슬슬 눈치껏 진행해 줬으면 좋겠는데 사회자는 미동이 없다.

나는 마이크를 돌려주는 겸 눈치를 주기 위해 사회자 쪽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보이는 사회자의 당황한 시선.


"뭐야? 당신 누구야?"

"네?"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 보안팀, 끌어내!"


길을 안내해줬던 미녀 안내원들이 내 양 팔을 잡았다. 헌터인지 팔이 꿈쩍도 안 했다.


"잠깐만요! 저 여기 선생 맞아요. 아람 아카데미 무술... 읍읍!! 읍....!!"


안내원들은 내 입을 막고 밖으로 끌고나갔다.



~~



안내원들이 날 풀어준 건 본관으로부터 한참 멀어진 다음이었다.


"푸하! 도대체 저한테 왜 이러시는 겁니까?"

"그건 우리가 할 말인데요. 왜 남의 학교에 숨어들어와서 행패에요?"

"저 여기 선생님 맞아요. 이사장님이랑 이야기도 다 됐다구요."

"선생님 명단에 당신 이름이 있었으면 끌려오지도 않았겠죠. 거기에, 여기 국립인데 이사장이 어딨어요?"

"아니! 그... 아 답답하네."


나는 휴대폰의 지도 앱을 켜 내밀었다. 화면엔 이사장이 보내준 '아람고등학교'의 주소가 적혀 있었다.


"이사장이, 김득춘이라는 사람이 여기 아람 아카데미로 오라고 했다니까요? 이렇게 주소까지 보내서?"

"...아람 아카데미?"


갑자기 서로를 쳐다보는 안내원들.


"여긴 아크 아카데미인데요. 아람 아카데미는 어디에요?"

"아... 언니. 여기 거기같아요. 아람동에 있는 거기요. 지도 앱이 10년은 된 거라 업데이트가 안 된 것 같은데요?"

"아 맞네. 인터페이스 구린 거 봐. 아람공고였네 여기."

"무슨 소립니까?"


아람공고?

동생 안내원이 자기 휴대폰을 들어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지금 보여주신 지도는 옛날에 쓰던 평면 지도잖아요. 이러면 부유섬에 있는지 지상에 있는지 구별을 못해서 요즘은 다 스마트폰 입체 지도를 쓰거든요. 그, 국제법상으로 부유섬은 주소를 항공 주소라는 특수한 주소체계를 써야 하는데, 지금 보여주신 주소는 일반적인 도로명 주소잖아요. 그러니까 여기가 아니라 지상에서 이 지도를 따라가셨어야 했어요."

"그, 그럼 아람 아카데미는...?"

"여기죠, 아무래도."


안내원이 땅 아래를 가리켰다.


.

.

.


택시가 부유섬의 그늘 속으로 들어갔다. 여기서부터 아람동이었다.


'아람동....'


아크 아카데미의 그늘 아래 있는, 기형적인 동네.


"24시간 햇볕이 안 들어서 집값이 더럽게 싸기로 유명하지. 그래서 말로는 설명못할 온갖 앰생들이 각지에서 몰려온다우. 도박, 알콜중독은 양반이고 전과자, 조폭 천지지. 승차거부 안 당한게 용해~."

"아... 예."

"그나저나 그쪽 팔자도 참 기구해? 아람공고 선생님이라니. 혹시 어디서 죄 지었어? 하하핫! 막이래."

"...."

"뭐, 생각보다는 할만 하지 않을까? 아람공고 양아치들이 요즘 좀 잠잠하다는 소문도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가? 아무튼, 그래도 왔으니까 열심히 해 봐."

"참 크나큰 위로가 되네요."


듣기로 아람공고라는 곳은 희대의 꼴통 고등학교로 유명한 모양이었다. 성적이 낮거나, 학비가 없거나, 문제를 일으킨 학생들이나 입학하는 문제아 집합소, 그게 세간에서 보는 아람공고였다.


택시기사가 창 밖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다 왔네. 저기가 아람공고."


허름한 저층 빌팅 속 널찍한 학교 부지가 보인다. 악명(?)에 비해 공간 자체는 무진장 컸다. 비록 축구장 4배 되는 정도 크기에 평범한 학교 건물 달랑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었지만, 크긴 컸다.


나는 택시값을 지불하고 아람공고의 정문 앞에 섰다. 그 흔한 수위아저씨도 없고, 있는 거라곤 다 썩은 초라한 나무 명패 뿐이다.


<헌터특성화사립고교 아람공업고등학교>


"...무슨 학교가...."


끼이이이잉익---

낡은 쪽문을 열고 들어가니 스탠드에 걸린 안내문이 하나 보인다.


신입생 입학식은 이쪽으로

--------------->


대충 A4용지에 빨간 화살표 그려둔 게 성의없다.

그마저도 더럽게 뜨문뜨문 붙여놔서 길을 찾는 데 조금 해매야 했다.


입학식이 시작되는 곳은 체육관 겸 강당이었다. 조심스레 문을 여니, 다행히 입학식은 아직인지 강당 안은 살짝 소란스러웠다.


강당 안에는 입학식을 기다리는 학생과 교직원 50명 남짓이 주르륵 줄을 지어 앉아 있었다. 나는 조심히 안으로 들어가 구석에 있는 선생님 의자에 슬그머니 엉덩이를 밀어넣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 의자에서 키 작은 여선생님이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툭툭.

"아-"


끼이이이이이이익--~--~-~~---~!!


귀를 찢는 하울링 소리, 그건 한참이 지나서야 잦아들었다.

.

.

"......아, 아.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하나둘, 하나둘. 양호하네요. 그럼 MP3파일 준비해주세요. 그... 네네. 마법전사 유다솜 폴더에 입학식 폴더 있어요. 네."


구석에 앉은 다른 선생님이 노트북 조작을 마치고 엄지손가락을 들자 그녀가 다시 말했다.


"아. 그럼 지금부터 제 189회 아람고등학교 입학식 시작하겠습니다아...."


짝짝짝....

듣기만 해도 힘빠지는 박수 소리.


"먼저 입학생 대표 선서문 낭독이 있겠습니다. 입학생 대표, 수석입학생 민지아 앞으로."


....



"민지아? 수석입학생 민지아 앞으로."


아무도 안 나온다. 자세히 보니 맨 앞 좌측 끝자리가 비어 있다.


"아, 결석인가요...."


선서할 수석입학생이 없는 듣도보도못한 초유의 무근본사태. 그러나 사회자는 이런 일이 익숙한 듯 다음 진행을 이어갔다.


"그럼 차석입학생인 권민준이 하는 걸로. 권민준 앞으로."


....

또 아무도 안 나온다. 차석이면 수석자리 옆에 앉아 있는 쟨가? 자고 있는데?


"권민준?"

"쿨... 쿨...."

"권민준 앞으로."

"쿨... 컥!... 스읍... 뭐야 시벌."

"너 선서문 받으래...."

"응?"


보다못한 옆자리 학우가 귀띔해주자 그제서야 밍기적, 밍기적, 나와 선서문을 받는 권민준. 한 손을 주머니에 꼽고 짝다리를 짚은 모습이 참 인상깊다.


"민준학생, 선서할 땐 주머니에서 손을 빼야죠."

"...."

"자. 이제 선서하세요."

"저 선서 할 줄 모르는데요."

"...."


사회자가 마이크를 놓고 내려와 권민준에게 선서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다시 올라왔다.

어느새 손을 다시 주머니에 꽂은 권민준이 한 손으로 선서문을 들고 낭독했다.


"어, 선서. 나는 자랑스러운 아람공고의 학생으로서 모든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약자를 도우며, 사회로 넓게 뻗어나갈 것을 선서합니다. 2020년 3월 2일. 신입생 대표 민지아."


짝짝짝....


"네, 잘했습니다. 이제 들어가세요. 다음은 아람공고의 선생님들을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마법 (상), 마물생물학, 던전그래프 등을 지도해주실 유다솜 선생님입니다."


...또 아무도 안 나온다 싶더니 갑자기 사회자가

마이크를 놓고 총총총, 무대 위로 올라갔다.


너였냐.


"네, 잘 부탁드립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 다시 단상으로 총총총 걸어가 다시 마이크를 잡는 그녀.


"그럼 마지막으로...."


'마지막? 이제 고작 두 명짼데?'


"무투(상), 마물의 생태, 던전해부학 등등을 지도해주실 백현성 선생님이십니다."


아아, 결국 이 순간이 왔다. 내심 안 오길 바랬지만, 이 순간이 왔다.

나는 무대 위로 걸어올라갔다. 시야가 높아지니 학생들의 얼굴들이 더 잘 보인다.


칙칙한 구식 마이 교복에, 빨리 집에나 가고 싶다는 얼굴들. 그 생기 없는 학생들을 보고 있자니 내 힘도 덩달아 빠지는 듯하다.


'이게, 내가 가르칠 학생들....?'


에에....

에에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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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통 아카데미의 선생님이 되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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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내가 가르칠 학생들? 23.05.10 26 0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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