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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흑기사는 안락하게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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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캣
작품등록일 :
2021.07.26 12:21
최근연재일 :
2021.08.07 08:58
연재수 :
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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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글자수 :
72,880

작성
21.08.05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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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0 예비 수녀의 고민거리

DUMMY

에이윈에게 큐브를 받고 일주일 뒤.


레빗은 검을 휘두르는 제이슨의 주변에서 큐브를 이리저리 돌리는 중이었다. 덕분에 제이슨은 수련에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레빗이 큐브를 이리저리 돌릴때마다 이런저런 마법이 자꾸만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야! 그거 다른데가서 하면 안되냐?"


마침내 분이 폭발한 제이슨이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그러나 레빗은 큐브에 온통 정신이 팔려서 듣지 못했다.


'옳거니. 여기 두군데를 빠르게 돌리면 마법을 조합할 수도 있겠구나.'


큐브를 돌리다보면 알맞은 문장끼리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갈 때가 있었다.


레빗이 그 순간을 캐치해서 마나를 흘려보내자, 순식간에 두 개 이상의 마법을 큐브를 통해 시전할 수 있었다.


물론 타고난 반사신경이 있어서 가능한 묘기였다. 레빗은 손을 휘저어 마법을 흐트러뜨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내말은 이제 말같지도 않냐? 어!? 아우 속터져."

"어? 뭐라고 했는데?"


제이슨이 답답한지 고릴라처럼 가슴을 쿵쿵 쳤다. 레빗은 제이슨이 길길이 날뛰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집중 안되니까 딴 데 가서 하라고!"

"검이란 원래 어떤 상황에서도 완벽하게 휘두를 줄 알아야 한다더라."

"아이씨 진짜 말이라도 못하면."


제이슨이 레빗을 흘겨보며 뭐라고 더 쏘아붙이려 했지만, 누군가의 목소리가 옆에서 끼어들었다. 수련장 한 쪽에서 신께 기도를 드리던 에피린이었다.


"어머, 제이슨. 그러고 있으니 정말로 성난 고릴라같네. 왜 그런 별명이 붙었는지 아직도 자각을 못하는 걸까?"

"넌 또 왜 여기서 기도하는 건데!"

"누님에게 그게 무슨 말버릇이니, 성난 고릴라. 정말로 고릴라처럼 지능이 퇴화해버린걸까?"


에피린이 새침하게 쏘아붙이자 제이슨은 푸욱 한숨을 내쉬었다.


"너 누린내 난다고 수련장은 싫다지 않았냐? 내가 누누이 말하지만, 레빗이 보고싶은거면-"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에피린이 품에 들고있던 커다란 성서가 휘리릭 허공을 날았다. 성서는 제이슨의 미간에 정확히 날아가 꽂혔다.


퍽. 어억!


검을 휘두르느라 잔뜩 지쳐있던 제이슨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결국 눈을 까뒤집은 채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그 광경을 지켜본 레빗이 아연한 표정으로 물었다.


"......예비 수녀가 그렇게 막 성서를 내던지고 그래도 되나?"

"흥. 쓸데없는 말을 하니까 천벌을 받은거야."

"그렇군."


하지만 레빗의 관심은 딱 거기까지였다. 그는 이제 큐브를 반납하러 에이윈에게 가야했고, 뒷수습은 그의 몫이 아니었다. 레빗이 휙 돌아서자 에피린이 급히 옷깃을 붙잡았다.


"잠깐만. 나도 같이가."

"에이윈한테? 가서 뭐하게."

"조금 묻고싶은게 있어서."

"그럼 나중에 가서 물어보면 되지, 굳이 내 시간까지 뺏어야 하나?"


레빗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에피린에게 싸늘한 눈초리를 보내며 덧붙였다.


"예비 수녀가 악마의 자식이랑 어울린다는 소문이 돌면 네게 좋지 않을텐데?"

"그건 내가 미안하다고 했잖아! 대체 언제까지 삐져있을 셈인거니?"

"너 때문에 바이올렛 님한테 얼마나 미안했는지 알아? 루이가 아니었으면 진작에 쫓겨났을 거다."


레빗의 말대로였다.


그가 계속해서 바이올렛의 아이들과 마찰을 일으키고 사고를 쳐도 저택에 남아있을 수 있는 이유는. 오롯이 루이 덕분이었다.


레빗이 혼수상태에 빠진 사이, 루이가 열심히 바이올렛에게 애교 공세를 펼쳤다는 안나의 말을 듣고는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물론 루이가 위기감을 느껴서 일부러 그랬다거나 한건 아니었다. 그저 평소대로 했을 뿐.


"흥. 아무튼 따라갈거야."

"맘대로 하던가."


잔뜩 뾰로통한 표정의 에피린이 레빗의 뒤를 따랐다.


에피린은 사실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게 많았다. 그러나 슬금슬금 레빗의 옆얼굴을 볼때마다 꿈에서 만난 그가 생각나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를 받아들여 줘.


'그때 정말로 그런 말을 했던거 같기도 하고...'


그러자 볼이 달아오르는게 느껴졌다. 이런 얼굴을 저놈에게 보이기 싫었다. 결국 그녀는 입을 열 수 없었다.


'얜 왜 안절부절 못하는 거야?'


물론 레빗은 에피린의 신성력을 몰아내기 위해 '마나를 받아들여!'라고 말했던 거지만, 에피린이 저렇게 왜곡해서 받아들이고 있는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애초에 기억할리도 없다고 생각했다. 당시 에피린은 거진 정신이 나간 상태였으니.


또각또각. 저벅저벅.


결국 침묵한 둘이 걷는 저택의 복도에는 공허한 발소리만 들렸다.




* * *




에이윈이 건네준 큐브는 마법사들이 가끔 심심풀이로 사용하는 장난감이었다.


내부에 마나를 흘려가며 알맞은 조합을 찾아 각인된 마법을 발생시키는 것 쯤. 마나를 느끼고 움직일줄만 알면 어린 아이도 충분히 가능했다.


그러나 큐브를 돌리다보면 제작자가 의도하지 않은 마법의 조합이 생겨나곤 했다. 숙달된 마법사들은 보통 이런 조합들을 찾으며 놀곤 했지만...


"네놈이 여기까지 해내리라곤 기대하지 않았는데 말이지."


에이윈이 머리를 긁적이며 레빗이 건넨 큐브를 받아 들었다. 레빗은 이미 에이윈 앞에서 시연을 끝낸 뒤였다.


"이정도면 합격입니까?"

"합격이다마다. 흐응. 그동안 마나 수련도 꾸준히 했었나보군?"


레빗이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환생하고 가장 먼저 신경썼던게 마나 코어를 만드는 일이었으니 오죽할까.


에이윈은 나머지 시험도구 두개를 더 내주었다. 전에 보았던 깃털 모양의 브로치와 단검이었다.


"이 브로치는 네 마력이 띄는 가장 짙은 속성을 알려줄 것이다. 그리고 단검에는 바람의 정령 실피드가 깃들어 있지. 그녀를 불러내면 합격이야."


브로치 사용법은 간단했다. 그저 손에 쥐었더니 브로치가 온통 붉은 빛을 발했다.


"흐음. 불인가. 지크놈의 유전자를 타고난 만큼 그럴거라 생각은 했지."


메이릴은 그럴줄 알았다는 듯 심드렁하게 브로치를 돌려받았다. 그리고 이번엔 실피드의 단검 쪽.


우웅- 우우웅---


"얘 엄청 기뻐하는데요?"

"아니다! 얼른 내려 놔라! 그러다가 폭-"


레빗이 에이윈의 말을 이해했을 땐 이미 실피드가 폭주하기 시작한 뒤였다.


-싫어어어어! 이거 놔! 놓으란 말야!!!


녹색 빛에 감싸인 단검에서 갑자기 꼬마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피드였다.


깜짝 놀란 레빗이 단검을 바닥에 떨어뜨리자 단검은 바람을 타고 휘날리며 방 여기저기를 할퀴었다.


-내가 놓으라고 했지! 왜 내 말을 안듣는 거야! 미워! 에이윈도 미워--윽엑.


그러나 단검은 곧장 에이윈의 손에 잡혔다. 기괴한 소리를 내며 붙잡힌 실피드는 단검에서 녹색 빛이 사라짐과 동시에 잠잠해졌다.


"젠장. 아무리 정령과 안맞더라도 보통 이정도까지 폭주하진 않는데."


에이윈은 온통 난도질된 방안을 보곤 혀를 쯧하고 찼다.


"아무래도 네 몸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정령술은 손대지 않는 걸로 하지."


그대로 포기하자니 레빗은 입맛이 썼다. 하지만 별 수 있나. 내가 아무리 좋아해도 저쪽이 싫어하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예. 그럼 일단 마법만 배우는 쪽으로 하겠습니다."

"헌데 메이릴, 너는 어쩌다 여기 있는게냐? 엄마의 옛 이야기라도 궁금해졌느냐?"


에피린은 정령의 폭주에 휩쓸리는 바람에 잔뜩 질린 표정이었지만, 에이윈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에게 향하는 실피드의 공격쯤 다 막아주고도 여유가 넘쳤다.


"저... 저도 마법을 배울 수 있을까요?"

"너는 예비 수녀가 아니더냐. 왜 내게 마법을 배우려 하는거지?"


마법사와 사제는 처음부터 양립할 수 없는 직종이다. 수련장에서 있었던 레빗과 에피린의 일화에서 보았듯, 마나와 신성력은 서로 상극인 힘.


몸에 코어를 형성해 마나를 축적하는 마법사는 신이 내려주는 신성력을 받을 수 없고, 신의 힘을 내려받는 사제 역시 몸에 마나를 쌓을 수 없다.


"사제는 마법을 쓸 수 없다는 사실쯤이야 이미 알고 있겠지. 신앙심이 갑자기 사라지기라도 한게냐?"


에피린은 에이윈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 아무래도 제 몸에 코어가 생긴 것 같아서요..."


그 말을 들은 에이윈의 한쪽 눈썹이 쓰윽 올라갔다. 마나 코어라는 건 그렇게 한숨 자고 일어나면 갑자기 생겨난다거나 하는게 아니었다.


에피린에게 마나를 넘기느라 무리한 나머지 코어가 부서졌는데, 그 잔해가 에피린에게 넘어가 재구축된 게 아닐까요?


레빗이 그런 짐작을 에이윈에게 전하자, 에이윈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마나가 코어째로 넘어갔다고? 큭, 크흐흑. 카하하핫! 그런게 정말 가능한 일이란 말이더냐? 카카캇! 아이고, 배야. 크하하학."


에이윈이 괴상한 웃음 소리를 내며 테이블을 쾅쾅 쳤다.


"너는 정말... 나를 즐겁게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는 놈이로구나!"


예로부터 마나 코어를 주고받는 기술에 대해서 여러 연구가 있었다.


이미 수명을 다해가는 대마법사들은 자신의 연구를 이어받을 제자들에게 코어를 넘겨주길 원했고, 경지에 다다른 기사들 역시 비슷했다.


그러나 결국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코어를 이식하는 방법 자체야 여럿 개발되었지만, 정작 이어받는 상대방이 코어의 힘을 받아들이지 못해 심장이 뻥뻥 터져나간 것이다.


그러니 레빗의 가설대로라면 에피린은 이미 죽었어야 했다.


어차피 진위를 가리는데는 별 어려울 것도 없다. 에이윈이 직접 레빗과 에피린의 코어를 느껴보면 될 일.


레빗은 부상에서 회복하는 사이에 이미 코어의 재구축을 마쳐놓은 상태였다.


"자. 어디 한 번 볼까? 확인 들어갑니다~"


에이윈은 콧노래를 부르며 두 손을 각각 에피린과 레빗의 등에 얹었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이야 말로 에이윈이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으니, 신날 법도 했다.


그러나 에이윈이 강제로 두명의 마나를 끌어올렸을 때. 그녀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거기에 남은건 경악 뿐이었다.


"뭐야. 진짜였잖아?"


마나 코어는 대체로 수련하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손끝으로 느껴지는 두 코어는 온전히 같은 특질을 가지고 있었다.


"같은 수련법으로도 만들어지는 코어는 다 다른 개성을 띠게 되는 법인데... 어쩌다 이렇게 된거지?"


에이윈은 등에서 손을 떼는 것도 잊은채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레빗이 에이윈의 손을 치우며 에피린을 쳐다보았다.


에피린 본인도 놀란 눈치였다. 레빗을 통해 마나를 느꼈을 뿐. 그의 마나 코어가 통째로 넘어왔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그... 어떡하지?"

"뭘 어떡해. 앞으로 사제 되긴 글렀구만. 낄낄."


레빗이 에피린을 놀리자, 에피린은 부아가 잔뜩 치밀어서 그를 쏘아보았다.


"너는 왜 그렇게 미운 말밖에 못하는거니?"

"얼씨구. 니가 나한테 했던 짓거릴 떠올려봐. 내가 좋은 말 하게 생겼냐? 예비 수녀라는 애가 멀쩡한 사람을 악마로 몰아가는 것도 모자라서, 이젠 마나 코어까지 훔쳐갔네?"

"니가 넣은거잖아! 난 이딴거 절대로 갖고싶지 않았어!"


그렇게 둘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가운데 앉아 골몰하던 에이윈의 뇌리에, 어떤 생각이 팟하고 스쳐지나갔다.


"이거... 아무래도 큰일난 것 같다."

"네? 뭐가요?"


레빗의 물음에 에이윈이 전에 없이 진중한 얼굴이 되어 입을 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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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2 제이슨과 늑대인간은 레빗이 밉다 +1 21.08.07 17 2 11쪽
12 #11 너도 이제 동료네? +1 21.08.06 37 2 12쪽
» #10 예비 수녀의 고민거리 +1 21.08.05 42 2 12쪽
10 #9 출생의 비밀 +1 21.08.03 62 3 14쪽
9 #8 전설의 용사와 새로운 친구 +1 21.08.02 64 5 12쪽
8 #7 소녀의 마음 +1 21.07.31 74 4 13쪽
7 #6 고백과 새로운 갈등 +1 21.07.30 90 7 13쪽
6 #5 위기 모면 +2 21.07.29 95 6 12쪽
5 #4 유일신의 용사? +4 21.07.28 107 7 12쪽
4 #3 반짝이는 황금색 +1 21.07.28 111 8 11쪽
3 #2 레빗과 기사 요한센 21.07.27 140 14 13쪽
2 #1 돌아오긴 했는데 21.07.26 161 13 15쪽
1 #P 지난 이야기 +1 21.07.26 198 1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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