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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흑기사는 안락하게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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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캣
작품등록일 :
2021.07.26 12:21
최근연재일 :
2021.08.07 08:58
연재수 :
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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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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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2,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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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31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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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7 소녀의 마음

DUMMY

저택에서 맞는 두번째 아침.


안나가 형제의 방으로 직접 식사를 가져왔다. 파티 준비로 바이올렛 부인이 식당 출입을 엄금했기 때문.


레빗은 어제도 요한센의 방에서 끼니를 해결했기에, 저택에 있으면서도 이틀 동안이나 다른 형제들을 마주칠 일이 없었다.


"잘 먹었어, 안나."

"잘 먹었습니다!"


간단한 빵과 스프. 그리고 삶은 달걀이 전부였지만, 버린 음식을 주워먹으며 살아온 형제에게는 진수성찬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형제의 인사에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안나는 그런 형제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으나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제 엄연한 요한센 가의 도련님들이었다.


"네. 루이 도련님은 오늘도 바이올렛 부인께서 부르셨어요. 식사를 마치고 몸단장을 한 뒤 모셔갈게요."

"응!"

"레빗 도련님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음. 나는 수련장을 좀 쓰고 싶은데, 따로 허락을 받아야하나?"

"아마 상관없을거에요. 루이 도련님 모셔다드리고 따라갈게요."

"고마워 안나."


수련장은 저택 뒷편에 있는 목재 건물이었다. 동관, 서관, 중앙으로 이루어진 저택의 건물 중 하나에 필적할 만큼 커다랬는데, 안에는 수련을 위한 공간을 제외하고도 대련장이 무려 네개나 있었다.


'요한센 가는 생각보다 대단한 곳이었구나.'


말이 일개 수비대장이지, 요한센은 어떤 영지의 영주라고 해도 믿을만한 재력을 갖추고 있었다.


사실 바이올렛의 지분이 더 컸지만, 세간은 방계에도 손을 뻗은 자비처 가문의 재력으로 인식했다.

"일단은 근력 운동부터. 끄응-"


드르륵, 쿵! 레빗은 꽤 무거워보이는 석재 아령 따위의 기구들을 한데 그러모았다.


벽면에 잔뜩 비치된 수련용 목검이나 장대 등에는 관심이 없었다.


마나를 끌어올리면 레빗의 비쩍마른 팔로도 휘두를 수야 있겠지만, 마나의 힘에 의존해선 안된다는게 그의 철학이었다.


'기초 근력이 있으면, 마나를 사용했을때 효율이 배가 되는 법이지. 근섬유 하나하나에 마나를 흘려보내서...'


레빗은 실제 전생에서 자비처 가문의 검사들을 상대로도 여러번 검을 맞대었지만, 그렇게 대단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자비처 가문의 검술은 기술에 중점을 두는 검술.


어떻게하면 검로를 좀 더 날카롭고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를 연구하지, 어떻게하면 힘을 더 싣거나 타격을 줄 수 있을지를 고려하는 검술이 아니었다.


그렇듯 기술에 매달리다보니 자연스레 근력 훈련을 등한시 해버린 것이다.


결국 자비처의 검사들은 부족한 근력을 마나를 이용한 신체강화에 의존했다. 덕분에 그들의 검은 정확하고 예리했으나, 힘이 부족했다.


'요한센도 조금만 손봐주면 전성기를 늘릴 수 있을텐데...'


레빗은 십수년 뒤의 이야기를 듣고 낙담하던 요한센의 얼굴을 떠올렸다.


요한센이 계속해서 전성기를 유지한다면, 훗날 꽤 쓸만한 전력으로 남아있으리라.


레빗은 나중에 이야기를 슬쩍 흘려보기로 했다. 어찌됐건 지금은 자신의 수련에 집중할 때.


흐읍- 레빗이 힘차게 벤치 프레스를 들어올렸다. 근섬유 하나하나가 질러대는 비명은 마치 감미로운 노랫소리처럼 들렸다.


이렇듯 무리하게 운동을 하더라도 몸을 충분히 회복할 음식과 안식처가 있다는 현실이 너무 기뻤다.


레빗은 그에게 주어진 환경에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했다. 아마 요한센이 받아주지 않았다면 그의 성장은 더욱 늦게 시작됐을 것이다.


'요한센에게도 어떻게든 보답해야지.'


뻘뻘 흘러내리는 땀에서 짠맛이 났지만, 레빗은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봉을 내렸다가 들어올리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 * *


끼이익. 수련장의 커다란 문이 열렸다. 열다섯쯤 되어보이는 금발의 소녀였다.


'냄새.'


에피린은 어려서부터 수련장에 오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오죽하면 수련장이 있는 뒷뜰에도 발을 들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어머. 에피린님, 어서오세요."


입구 근처에 서 있던 안나가 그녀를 반겼다. 그러나 에피린은 안나를 쳐다보는 체도 안했다.


"안나. 저거하고 할 얘기가 있으니까, 부를때까지 나가 있어."


살벌한 분위기에 뭐라도 물으려 했지만, 에피린은 고용주의 딸이었다. 안나는 한창 단련중이던 레빗에게 손님이 왔음을 알리곤 수련장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그래서. 무슨 일이지?"


레빗이 단련용 벤치에 걸터앉아 천으로 땀을 쓱쓱 닦으며 물었다. 에피린은 레빗에게 다가가다가 살짝 놀랐다.


'땀냄새가 왜이러지?'


레빗에게선 아버지나 다른 무인들처럼 고약한 땀냄새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달콤한...?


의식이 그쯤까지 흐르자, 에피린은 머리를 세게 휘저었다.


'저 악마가 이젠 땀내로도 나를 홀리려고 하는거야! 저렇게나 치밀하다니. 비겁한...'


에피린은 잠깐 목을 가다듬고선 레빗을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네 정체를 알아, 이 비겁한 악마! 우리 가족을 홀려서 제물로 바치려고 하는거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품에 안고 있던 큼지막한 로자리오를 앞으로 내밀었다.


"나는 유일신교의 예비 수녀야."

"그래? 나중에 성국이 어떤 일을 벌이는지 알면 아주 깜짝 놀라겠군."

"...그리고 경전에서도 검은 머리와 붉은 눈은 악마의 상징이라고 했어. 다른 사람들은 속여도, 난 절대로 못속여!"


레빗은 굳은 표정의 에피린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이슨이 조심하라던게 이 뜻이었나.'


그저 경전에 몇 줄 적혀있다는 이유로, 멀쩡한 사람을 악마로 몰아가다니. 참으로 신실하기 그지없었다. 이 모습을 성국의 교황이 본다면 크게 박수치며 환호하리라.


하지만 레빗이 놀란 이유는 정작 따로 있었다.


예비 수녀의 힘이라곤 믿기 어려울 만큼 막대한 양의 신성력이 로자리오에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이제 붉은 눈도 아닌데?"

"흥. 우릴 속이려고 일부러 바꾼거잖아! 감히 용사님의 모습을 따라하다니."


신성력에 취한 에피린은, 곧 레빗의 말이 아예 들리지 않는 지경에 들어섰다. 눈동자 마저도 은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저건 성화잖아?!'


소녀의 몸 주변으로 일렁이는 투명한 은색의 기운. 신성력을 과도하게 받아들이면 일어나는 과부화 상태일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너 미쳤어?! 그거 당장 풀어. 그러다 정말로 죽는다고!"

"......"


이미 신성력이 몸에 가득 찼는지 눈과 살짝 벌린 입에서조차 은색 불길이 흘러나왔다.


성국과 인접한 마경의 최전선. 그곳에서 줄곧 싸웠던 레빗은, 저게 어떤 상태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걸 깨달았을 때. 그리고 그 상대가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하는 상대라면. 성기사들은 그들의 신께 아주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주여. 성기사 잭슨이 목숨을 걸고 바라옵나니, 저들을 징벌할 힘을 허락하소서!


그럴때면 신은 거리낌없이 자녀들에게 자신의 힘을 내려주었다. 너무나도 커서 소화하지 못해 신체를 붕괴시켜버릴 만큼의 막대한 힘을.


그리고 성기사들은 죽어서 신의 품에 안길 것이라 굳게 믿었기에, 기꺼이 자신의 몸을 바쳤다.


그들은 이를 '신성한 희생'이라 불렀다.


그렇게 신성한 희생을 시전한 성기사들은 막대한 신성력으로 전장을 휘둘렀고, 9성에 도달했던 흑기사 레빗조차도 상대하기 껄끄러운 존재였다.


"이런 젠장!"


지금이라도 멈춰야 했지만, 뛰어가 말릴 틈도 없었다. 에피린의 로자리오에서 갑자기 은색 빛이 퍼져나왔기 때문!


'홀리 라이트!'


레빗은 재빨리 주변에 굴러다니던 막대를 집어들고 체내의 마나를 전부 끌어올렸다. 예상대로 에피린은 그를 향해 은빛 광선을 퍼부었다.


"큭!"


레빗은 늦지않게 막대에 황금빛 검기를 둘러 홀리 라이트를 쳐냈다.


굉음이 울리며 수련장의 천장이 부서져 나가고, 빛의 파편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벽면에 온통 구멍을 뚫었다.


몇 발이고 계속해서 막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레빗보다도 에피린이 제 힘을 못이겨서 먼저 쓰러질 테니까. 고명한 성기사들조차 저 상태론 십분을 채 넘기지 못했다.


하지만 레빗은 에피린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아무리 에피린이 제멋대로 덤벼왔다고 한들, 죽기라도 하면 곤란한 정도론 끝나지 않으리라!


요한센이 형제에게 칼을 뽑아드는 미래가 눈앞에 그려졌다. 운좋게 얻은 협력자를 이렇게 잃을 순 없었다.


'체내의 성력을 모두 흩어버려야 한다.'


레빗은 신성한 희생의 파훼법을 알고 있었다.


'신성력과 마나는 상극이다. 에피린의 몸에 마나를 성공적으로 주입한다면, 신성력은 밀려나갈테고... 불구가 되더라도 최소한 죽지는 않겠지.'


레빗은 지체없이 곧바로 밀고 들어갔다.


거리가 좁혀지는걸 경계한 에피린이 홀리 라이트를 두어번 더 날려봤으나, 그의 돌진을 막을 순 없었다.


"덕분에 첫날부터 수련 한 번 알차게 하네! 제기랄!"


와락. 레빗은 로자리오를 멀찍이 날려보낸 뒤, 에피린의 몸을 끌어안았다. 넓은 면적으로 단번에 마나를 흘려보내기 위해서였다.


'만든지 얼마 안 된 코어라 출력이 부족하다!'


"내 마나를 받아들여, 에피린! 제발!"


그리고 레빗의 간절한 외침이 에피린의 마음에 닿은 것일까.


격렬하게 마나를 거부하던 에피린의 몸에서 조금씩 통로가 열리기 시작했다.


이때다 싶었던 레빗은, 자신의 코어 뿐 아니라 온몸에 흐르던 마나도 모조리 에피린에게 쏟아부었다.


그러자 화악하고 커다란 빛기둥이 일어나 하늘을 향해 뻗어나간 뒤, 에피린의 몸에서 신성력이 완전히 사라졌다.


레빗의 마나도 통째로 넘어가버린 건 덤이었다.


"히끅. 히끅... 흐아아앙--"


에피린은 정신이 돌아오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레빗이 얼떨결에 안은 채로 조금 다독여주자, 곧 품에 안긴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


때마침 바이올렛 부인이 하인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거의 폐허가 되어버린 수련장.


그 한가운데 우뚝 선 남자 아이와, 품에 안긴 장녀 에피린의 모습이 보였다.


"......"


뭐라도 해명하려 했지만, 그도 마찬가지로 거의 탈진해버린 상황. 입술조차 움직이기 힘들었다.


결국 레빗은 잔뜩 후들거리는 무릎을 희생하면서까지, 에피린을 안전하게 바닥에 눕힌 뒤.


자신도 그 옆에 기절해 쓰러져버렸다.


* * *


에피린은 눈을 감은 채 하늘 위를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아... 기분 좋아.'


처음에는 폭신한 구름 위를 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누군가에게 안겨있다는 느낌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누군가의 손길이 자꾸만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신께서 나를 받아주신 걸까.'


그리고 마침내 신의 존안을 영접하기 위해 눈을 떴을 때.


그 곳에는 그렇게 만나고 싶었던 신이 아닌, 레빗의 얼굴이 있었다.


하지만 레빗은 어쩐지 어린 아이가 아닌, 어른의 모습이었다.


'악마!'


-덕분에 좋은 경험을 하는군.


이러면 안되는데. 어째서인지 싫은 기분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그의 손길은 거부할 수 없을만큼 너무나도 부드럽고, 따뜻했다.


'다들 이런 식으로 악마에게 굴복해버린 걸까...?'


-나를 받아들여 줘.


악마가 에피린의 귀에 속삭였다.


그의 속삭임에서 마성이 느껴졌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의 목소리가 이처럼 달고 매혹적일 수 있을리가 없었다.


에피린은 끝끝내 마성에 굴복하진 않았지만. 자신의 몸을 악마에게 맡긴 채, 계속해서 허공을 둥둥 떠다녔다.


제법 나쁘지 않았다.


* * *


"오. 정신을 차렸나?"


처음 듣는 여성의 목소리였다. 레빗은 눈을 뜨자마자 음성이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


"...엘프?"

"그렇다. 나는 엘프지. 너는 인간인가?"


엘프가 한쪽 눈을 찡긋하며 물었다. 다른 한 쪽은 검은색 안대가 가리고 있어서 보이지 않았다.


"내 이름은 에이윈. 전직 스트라이더고, 네 생명의 은인이며, 앞으로 스승이 될 사람이다. 잘 기억해두도록."

"에피린... 에피린은?"

"그 아이는 날마다 네 방문 앞에 서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지. 일단 쉬어두거라.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았으니."


레빗은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눈을 감았다. 앞이 깜깜해졌다.


그리고 얼마쯤 지났을까.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의식이 뒤로 휙 밀려나다가, 마치 물에 빠진 것처럼...


-야, 지크.


에이윈의 목소리가 멀리서부터 먹먹하게 들려왔다. 귀에 물이 가득 들어찬 느낌이었다.


그리고 분명 이쪽을 향해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녀가 부르는 이름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거기 있는거 다 알아, 이 새끼야. 애새끼 몸에 들어가서 장난질이나 치고, 재밌냐? 어?


'누구한테 말하는 거지?'


레빗이 그렇게 의문을 품던 바로 그때.


별안간 입이 제멋대로 열리더니, 그의 것이 아닌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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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2 제이슨과 늑대인간은 레빗이 밉다 +1 21.08.07 16 2 11쪽
12 #11 너도 이제 동료네? +1 21.08.06 37 2 12쪽
11 #10 예비 수녀의 고민거리 +1 21.08.05 41 2 12쪽
10 #9 출생의 비밀 +1 21.08.03 62 3 14쪽
9 #8 전설의 용사와 새로운 친구 +1 21.08.02 64 5 12쪽
» #7 소녀의 마음 +1 21.07.31 74 4 13쪽
7 #6 고백과 새로운 갈등 +1 21.07.30 90 7 13쪽
6 #5 위기 모면 +2 21.07.29 95 6 12쪽
5 #4 유일신의 용사? +4 21.07.28 107 7 12쪽
4 #3 반짝이는 황금색 +1 21.07.28 110 8 11쪽
3 #2 레빗과 기사 요한센 21.07.27 138 14 13쪽
2 #1 돌아오긴 했는데 21.07.26 161 13 15쪽
1 #P 지난 이야기 +1 21.07.26 197 1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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