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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흑기사는 안락하게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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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캣
작품등록일 :
2021.07.26 12:21
최근연재일 :
2021.08.07 08:58
연재수 :
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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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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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글자수 :
72,880

작성
21.07.28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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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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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3 반짝이는 황금색

DUMMY

땅거미가 짙게 깔리고, 날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레빗이 보자기 가득 음식을 들고 돌아왔다. 수비대에서 챙겨준 것들이었다. 루이는 사과 한 알을 집어들며 방방 뛰었다.


"와, 신선한 사과다!"


레빗은 세상 행복한 표정인 루이를 보며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루이를 위해서라도 얼른 신세를 바꿔야 할텐데.'


그나마 누군가의 노예가 아닌게 천만 다행. 자유의 몸이니 받아주는 곳이 있기만 하다면 어디로든 갈 수 있었다.


게다가 형제의 불길한 외모 덕에 노예상이 납치해갈 우려도 적었다.


"아. 지금은 상황이 좀 다른가?"


레빗이 희어진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비비며 중얼거렸다.


디우스 공자를 따라 아카데미에 재학하던 시절. 역사학 교수는 흰 머리와 금색 눈동자가 용사 지그문트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다만.


-다른 세상에서 온 용사 지그문트는 마왕을 쓰러트린 뒤, 세간의 이목이 싫다며 조용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인마대전 이후 그의 행적은 어떠한 기록이나 구전으로도 전해지지 않고 있지요. 저명한 역사학자인 아렌트 자작의 저서에서는.....


지그문트에 대한 이야기는 모조리 인마대전 당시의 것만 남아있었다. 때문에 그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갔는지는 그저 가설만 무성할 뿐.


그런 와중에 또다른 백발금안의 소유자가 나타났다?


여기저기서 관심을 갖지 않으면 되려 이상할 정도였다. 수비대를 오가며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었으니, 신전에도 분명 소문이 돌았을 것이다.


'악마의 자식이 영웅 흉내를 낸다며 이단으로 몰아갈 수도 있지만.'


레빗은 성국이 그러지 않을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전생에서 직접 겪어본 그들은 철저하게 황금과 이득을 쫓는 집단.


이단으로 몰아가긴 커녕, 자신을 얼굴마담으로 세워 다시금 돈자루를 불릴 계획을 세우리라.


그러나 레빗은 다시는 그 구역질나는 곳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순백으로 덧칠된 신전의 기둥은, 마치 성국을 위해 희생된 이들의 붉은 피를 덮기위해 칠해진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전생에 자신의 몸과 정신을 멋대로 주물렀던 죗값을 톡톡히 받아낼 요량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힘을 길러야 한다.'


지금처럼 궁핍한 환경에서 몸을 단련하는 건 쉽지가 않으니, 당장 도움이 되는건 마나 수련법 뿐.


마나 수련법은 각 가문이나 파벌마다 대대로만 전해져 내려오는 일종의 비전이었다.


'물론 굳이 배우지 않더라도 상관 없지.'


레빗은 흑기사시절 강제로 주입당한 인공 마나 코어를 떠올리며, 자체적으로 코어를 형성하고 마나를 늘리는 방법을 찾아냈다.


레빗에게서 마나를 감지한 요한센의 느낌은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루이. 형은 잠시 명상좀 할테니까, 얌전히 사과 먹으면서 천막에 들어가 있어."

"나도 형아 옆에서 쉴래."

"그러던가."


레빗은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사방으로 기감을 펼쳤다. 마나를 느끼고 흡수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펼친 기감에 별안간 인기척이 잡혔다. 골목의 입구쪽, 커다란 나무 상자 뒷편이었다.


"누구지?"


레빗이 눈을 뜨며 나즈막이 부르자, 상자 뒤에서 제이슨이 걸어나왔다. 숨어있던걸 들켜서 뜨끔한 표정이었다.


"무슨 일이냐? 복수라도 하러 온거면 말리고 싶은데."

"그..."


그 말에 제이슨은 뒷머리를 연신 쓸어대며 우물쭈물하다가, 돌연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그동안... 미안했다."


레빗은 놀란 표정으로 엎드린 그를 쳐다보았다. 제이슨이 저럴 놈이 아닌데? 루이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자신이 먹던 사과와 제이슨을 번갈아보며 말했다.


"제이슨이 사과했어!"

"그렇네. 제법 달콤한걸?"


배운 단어를 기가막히게 써먹은 루이였다. 레빗이 대견한 마음에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물론 그걸 기깔나게 살린 자신의 유머감각도 마음에 들었다.


'제이슨과의 관계는 빚을 지워두는 정도로 만족할 참이었는데.'


그가 찾아와 엎드려서 잘못을 비는 일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그냥 고개만 숙였어도 됐을텐데."


제이슨은 달콤하니 뭐니 하는 레빗의 놀림에도 굴욕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저 가만히 고개를 들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 같았다. 워낙 해온게 많으니까..."


그는 그동안 레빗에게 벌인 악행을 진심으로 부끄러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용서를 구하고자 싶었다.


레빗 역시 그를 용서하지 못할 만큼 앙금이 쌓인건 아니었다. 다만, 전생에 얻어맞은 기억이 떠오르자 조금 울컥한 정도?


"그래? 진심이면 손가락이라도 하나 잘라서 보여주던가."


레빗이 짐짓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제이슨을 시험하기 위한 태도였다.


"......알았다. 그걸로 네 분이 풀린다면."


그렇다고 다짜고짜 손가락을 달라니! 제이슨은 진심을 보여주겠다던 각오가 무색하게 주저하고 말았다.


그러나 자신은 장차 멋진 기사가 될 사람. 그리고 진정한 기사는, 스스로에게 한 맹세조차 결코 굽히지 않는 법이다.


제이슨은 정말로 품에서 단도를 꺼내 자신의 검지에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칼날이 서서히 살갗을 파고들 무렵...


'제기랄.'


레빗이 곧바로 달려들어 제이슨의 팔을 걷어찼다. 도저히 못하겠다고 하면 적당히 넘어갈 생각이었는데.


"미친놈. 하란다고 진짜 하냐?"

"......"

"그리고 기사 되겠다는 놈이, 약지도 아니고 검지를 자르면 앞으로 검은 어떻게 잡을건데? 환장하겠군."


제이슨은 억울한 듯 입을 열었다.


"정말 이렇게 하지 않으면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았다."

"대체 왜 그렇게 내 용서를 받고 싶어하지? 그것도 손가락까지 잃어가면서. 그냥 서로 신경쓰지 않고 살면 되는거 아닌가?"


레빗의 입장에선 그쪽이 훨씬 더 편했다. 제이슨 같은 어린애들과 어울려봐야 얻을만한게 뭐가 있겠나.


훗날엔 실력있는 기사가 되긴 하지만, 적어도 5년은 지난 뒤의 이야기일 뿐. 레빗은 자비처 가문에 미움을 사지 않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이 빚은 나중에 제대로 갚아라, 어쭙잖게 자해 같은 걸로 때우려 들지 말고. 아, 그리고 내가 방금 구해준 손가락 값도 받을거다."

"그건 네가 시켜서... 아니다. 그럼 정말로 용서해 주는거냐?"

"앞으로 너 하는거 보고."


손가락 건은 조금 억울했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용서를 받자 제이슨은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물론 레빗이 모든 앙금을 내려놓고 용서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진정으로 반성하는 모습이 보였고, 어린 루이를 건든 적은 전생을 통틀어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나마 일정 선을 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정상참작이었다.


"그, 그럼 이만 갈게."

"벌써 가려고?"


뒤돌아 가려던 제이슨이 뜨끔해서 돌아보았다.


"...왜?"

"뭐 원하던게 있는거 아닌가? 그러니까 이렇게 찾아와서 빈게 아니었나 싶은데."


정곡이었다. 제이슨이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었던 건 맞지만, 사실 목적이 하나 더 있었다. 차마 부끄러워서 말하지 못하고 있었던 건데.


'네놈이 뭘 묻고 싶은지 나는 다 알고 있지.'


레빗은 두 번의 생을 거치며, 몸에 맞지않게 정신이 훌쩍 자란 상태. 고작해야 열넷쯤 되는 사내 아이의 심리는 불보듯 뻔했다.


"아까... 어떻게 한거야?"

"넘어뜨린거 말이지?"


제이슨이 놀란 눈으로 끄덕였다. 그러자 레빗이 그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단도 갖고있지? 이리 줘봐."


* * *


"......그래서 알려주는 도중에 내가 찾아왔다?"

"그렇습니다."


요한센의 물음에 레빗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목졸린 본인이 그렇다는데 뭘 어쩌겠는가. 돌이켜보니 졸랐다기보단 손을 갖다댄것과 더 가까운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 밤중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레빗,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부디 사실대로 말해줬으면 좋겠구나. 무슨 일이 있었던 게냐?"


레빗이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냐는 듯 멀뚱멀뚱 쳐다만보자, 요한센은 진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내가 목에 검을 들이댔을 때, 넌 순간적으로 마나를 끌어올렸지."

"!"


'무의식적으로 아주 조금 반응했을 뿐인데, 그걸 보았다고?'


레빗도 본인이 아니었다면 전혀 못느꼈을 정도로 미약한 움직임이었다. 레빗은 속으로 요한센에 대한 평가를 대폭 끌어올렸다. 저정도로 마나에 민감한 사람었을 줄이야.


실제로 요한센은 마법사를 했으면 훨씬 대성했을 사람이었다. 명문 검가에서 태어난 탓에 평생동안 마법을 접할 기회가 없었을 뿐.


"반응을 보아하니 맞는 모양이군. 누가 가르쳐줬나? 스승이 누구지?"

"혼자서 익혔습니다."

"혼자서라.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렇다면 네놈은 레빗의 탈을 쓴 무언가라고 봐도 되겠군."


'진짠데.'


요한센이 믿지 않자 레빗은 조금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요한센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사고의 전개였다.


세상에 널린 용병들조차 조악하다곤 하나 마나를 사용했다. 그러나 그들은 돈을 내고 마나 수련법을 배웠거나 스승이 있었다.


그리고 각 가문이 자랑하는 독자적인 마나 수련법들 역시 어떤 기원에서 가지를 조금 뻗었을 뿐.


세상이 이럴진대, 가난한 뒷골목 어린아이가 스스로 마나 수련법을 터득한다? 적어도 요한센의 상식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결국 '무언가가 레빗의 몸을 빼앗은게 아닌가' 의심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부관 조드가 옆에서 거들었다.


"어쩐지. 외모도 그렇고, 말투나 분위기가 전과 많이 다른 게 미심쩍긴 했는데 말입니다..."

"레빗! 저, 정말이야?"


제이슨의 얼빵한 물음에 레빗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설마 몸을 뺏은게 아니냐는 말까지 들을 줄이야. 미처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이상한 방향으로 의심받으면 곤란해. 자칫하다간 요한센에게 이 자리에서 죽는다.'


어차피 더 숨기지도 못할 거. 레빗은 최선을 다해 이 상황에서 빠져나가기로 결심했다.


마침 자신의 손에 제법 쓸만한 도구가 있었다. 제이슨의 단도였다.


"직접 증거를 보여드리죠."


레빗은 그렇게 말하고는 단도를 의식하며 서서히 마나를 끌어올렸다. 그러자 칼날이 마나의 빛으로 덧씌워지기 시작했다. 검기였다.


"저 나이에 벌써 검기를?"


조드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중얼거렸다.


물론 천재들이 간혹 어린나이에 검기를 두르는 일은 있었지만... 정작 놀라야 할 부분은 그게 아니었다.


마족이나 마녀들의 마나는 보통 탁한 계열의 보라색이나 검은색.


성국의 빛은 밝은 백색.


마지막으로 일반적인 마나 유저들은 기본인 푸른색.


그리고 레빗의 검기는, 휘황찬란한 황금색이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요한센과 조드, 제이슨, 병사 넷은 한 마음이 되어 입을 쩍 벌렸다.


'황금색이라니!'


심지어 레빗 본인도 놀란 참이었다.


푸른색 마나를 보여준다면, 마족이나 마녀에게 몸을 빼앗겼다는 의심은 벗을 줄 알았다. 그가 정말로 사악한 존재였다면 불길한 색의 검기가 솟아났을테니까.


그러나 레빗의 해법은 결국 또다른 의문을 낳고 말았다.


'골아프게 됐네...'


상황이 점점 산으로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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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2 제이슨과 늑대인간은 레빗이 밉다 +1 21.08.07 17 2 11쪽
12 #11 너도 이제 동료네? +1 21.08.06 37 2 12쪽
11 #10 예비 수녀의 고민거리 +1 21.08.05 41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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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7 소녀의 마음 +1 21.07.31 74 4 13쪽
7 #6 고백과 새로운 갈등 +1 21.07.30 90 7 13쪽
6 #5 위기 모면 +2 21.07.29 95 6 12쪽
5 #4 유일신의 용사? +4 21.07.28 107 7 12쪽
» #3 반짝이는 황금색 +1 21.07.28 111 8 11쪽
3 #2 레빗과 기사 요한센 21.07.27 140 14 13쪽
2 #1 돌아오긴 했는데 21.07.26 161 13 15쪽
1 #P 지난 이야기 +1 21.07.26 198 1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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